생태계·동물

디딤돌 2013. 4. 6. 11:07


  지난 311일은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4기의 반응로가 연쇄 폭발한 지 2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날 오후 서울광장에서 환경단체가 핵발전과 핵폐기물의 치명적 위험성을 알렸고 몇 생활협동조합에서 안전한 먹을거리를 시민들에게 저렴하게 나누는 행사를 축제처럼 펼쳤다. 때를 같이해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의 소식을 전하는 사진집 한 권이 발간되었다.

 

후쿠시마의 동물


미국의 저널리스크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 없는 세상에서 사람이 갑자기 떠나면 그 자리를 고양이가 지배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폭발 19일 뒤 사람이 모두 사라진 지역을 방문한 사진작가는 아직 고양이가 맹수가 못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사람 품에서 사료에 의존하든, 길거리에서 음식 쓰레기를 뒤지든, 안정된 먹이가 없다면 야성이 남은 고양이도 방사능이 뒤덮인 공간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걸 일깨웠다.


330일부터 3개월 동안 17차례, 사람들이 허둥지둥 떠난 지역에 자원봉사자들과 들어간 사진작가는 고양이 56마리, 13마리, 13마리를 구조했다. 그러면서 굶주려 죽어간 동물의 실상을 취재한 사진작가는 죽음의 땅에 남겨진 동물들의 참상을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로 적나라하게 전했다. 그이는 다가오는 고양이나 개, 그리고 닭은 일부 구조할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비쩍 마른 돼지와 소, 그리고 말은 가져간 사료를 던져주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중단해야 했다. 뒤에 들어간 당국에서 살처분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땅값이 구소련의 체르노빌보다 비싸서 그랬을까. 일반적으로 폭발 지점에서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의 주민을 내보냈던 체르노빌과 달리 일본은 반경 20킬로미터 이내의 주민을 소개하는데 그쳤다. 방사능이 탈출 반경 내에 머무를 리 없어도 당국이 정한 위험 공간의 방사능 준위는 당연히 밖보다 높을 터. 안전해졌다는 근거도 없는데 떠난 주민들이 당국의 허가를 일부러 받아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애지중지하던 집안의 반려동물을 두고 나온 이는 발을 동동 굴렸을 텐데, 축사의 가축은 얼마나 처참했을까.


누군가 문을 연 축사의 가축은 사정이 더러 나았다. 용케 풀밭을 차지한 소는 운이 좋았다. 전자상가 주차장을 낯설게 서성이는 소도 있었지만 목이 말라 수로에 들어갔다 빠져나가지 못하고 기진맥진한 젖소도 있었다. 그 녀석들은 머지않아 수로에 머리 처박고 죽은 동료처럼 퉁퉁 불어 썩어갈 게 틀림없다. 죽어 널브러진 무리 사이에 가녀린 숨을 고르던 젖소들은 사람을 보자마자 왜 이제 나타나느냐, 어서 사료를 달라고 울부짖으며 모여들었지만 사진작가나 자원봉사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목줄이 묶인 마당의 개들은 거의 죽었다. 줄이 풀린 개들은 깡말랐지만 건네는 사료보다 쓰다듬는 손길에 더 목말라했다.


거친 사료를 허겁지겁 먹다 토하고, 다시 먹다 토하길 반복하는 개와 고양이들은 구조되어 죽음의 땅을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핵발전소 인근에서 기준치의 수천에서 수백 배 방사능에 오염된 개와 고양이는 데리고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임신한 동물도 많았을 텐데, 이미 2년이 경과한 요즘, 어떻게 되었을까. 후쿠시마 인근에서 귀 없는 토끼들이 발견되었는데, 살아남았더라도 정상적 삶은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높다. 살처분하려 들어간 총구나 독약에 무참하게 희생되었을지 모른다. 차라리 그 편이 더 나을지 모른다.

 

본성 잃은 울타리 안의 동물


모든 생명체들은 태어났으므로 행복한 걸까. 그리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태어나자마자 계란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비닐봉투 속에 켜켜이 담겨 죽는 수평아리도 그런 주장에 동의할까. 부리가 잘린 채 좁디좁은 철사우리에 갇혀 허구헛날 계란만 낳아야 하는 암컷은 먹이를 끊임없이 주는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할까. 사료 되도록 적게 먹으면서도 빨리 살쪄 삼계탕 뚝배기에 일제히 들어가야 하는 용도로 육종된 닭은 어떨까. 인부의 억센 손아귀에 목덜미가 잡힌 채 사료를 꾸역꾸역 먹다 간이 터질 만큼 커지면 도살되는 푸아그라용 오리와 거위도 동의할까.


하루에 최소 두 번 우유를 짜내지 않으면 염증에 시달리게 되는 커다란 유방을 가진 젖소는 몸에 맞지 않는 옥수수를 시종 먹어야 한다. 산성인 사람과 달리 풀을 뜯는 소의 거대한 4개 위장은 중성이어야 한다. 그래야 미생물이 섬유소를 효과적으로 분해한다. 미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옥수수만 계속 먹으면 거품이 생겨 위가 부풀고, 폐를 위축시켜 소가 질식사할 수 있다. 그래서 용의주도한 축산과학은 위에서 몸 밖으로 구멍을 내어 거품을 빼낸다. 몸에 구멍이 생긴 젖소는 후쿠시마에서 굶주려 죽는 방사능 젖소에 비해 행복할까.


운이 좋으면 태어나지마자 어미젖을 잠시 맛볼 수 있는 돼지는 어떤가. 어미젖을 강제로 떼어내자마자, 또는 어미젖을 먹지 못한 채 어금니가 뽑히는 새끼 돼지를 보자. 수퇘지는 마취를 하지 않은 인부의 손에 잡힌 고환이 떨어져나간다. 그렇게 축사에 들어선 돼지들은 하염없이 사료와 물 먹고 배설하며 쑥쑥 자란다. 그러다 축사가 비좁아질 만큼 크면 일제히 도살된다. 그때 생후 10개월 전후, 사람 나이로 10살도 되지 않지만 그 만큼 살게 해주었으므로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할까. 고기를 위해 사육되는 닭과 오리, 그리고 소의 운명도 상황은 돼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비참한 사육 환경에 개도 포함될 수 있다.


고기나 우유, 계란을 위해 축사에서 사육하는 가축의 사정만 비참한 건 아니다. 날카로워야 정상인 발톱이 뭉툭하게 잘린 개는 외출할 때 옷은 물론이고 양말에 신발까지 신어야 한다. 우아한 걸까? 거실이나 침대에서 안기고 애교를 떨어 마트에서 수입 사료를 주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개와 고양이는 찬란한 삶을 사는 걸까. 후쿠시마나 체르노빌에 남은 반려동물보다 나을 것으로 사람은 생각하겠지만 그럴까. 다시 생각해보자. 같은 종류의 동물을 만날 기회도 없이 집안에 갇혀 아양이 강요되는 반려동물에게 수의사가 많이 처방하는 약은 압도적으로 우울증치료제라고 한다.


하루 종일 끌어안고 부빌 정도로 예쁜 반려동물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을까. 앙증맞게 육종된 동물은 같은 품종끼리 교배해 새끼를 낳게 할 환경을 가정에서 만들기 어렵다. 타고난 본성을 잃어 면역력도 출산능력도 약화되어 전문가 아니라면 건강한 임신과 출산을 끌어내기 어렵다. 그런 품종들은 집중 출산하게 하는 전문 농장에서 태어난다. 어미는 새끼들만 죽어라고 낳다가 정말 지쳐서 죽지만, 농장은 그저 새끼들만 죽어라고 낳으라고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주는데, 그러느라 전기를 과하게 사용하다 간혹 불이 나기도 한다. 가끔 타죽기도 하는 반려동물의 어미는 제 새끼들이 사람 품에서 애지중지 자라므로 행복해 할까.

 

사람에게 이어지는 동물의 업보


현재 어떤 생활협동조합도 개고기를 취급하지 않는다. 개를 고기용으로 육종해 위생적으로 키웠다 해도, 법으로 도축을 허가할지라도, 취급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반려 또는 애완의 목적으로 키워왔던 개를 고기용으로 매장에 버젓이 올리는 일이야 생활협동조합에서 시도하지 않겠지만, 돼지고기와 쇠고기, 닭고기와 오리고기, 계란과 메추리알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판매할 게 틀림없다. 일부 독특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조합원들이 돼지와 닭을 애완용으로 키우더라도 변함이 없을 텐데, 생활협동조합에서 파는 고기들은 비참한 사육환경에서 얻은 고기가 아니라 확신할 수 있을까.


생활협동조합에서 일본에서 수입한 고기를 팔 리 없다. 후쿠시마 인근 가축의 고기는 당연히 없다. 후쿠시마 해역을 회유하는 해산물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텐데, 우리 바다가 후쿠시마 앞바다와 이어졌듯 하늘도 이어졌다. 유전자 조작 옥수수나 콩이 아니라 우리 땅의 목초를 먹이더라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반경 20킬로미터 이내보다 현저히 선량이 낮을지언정 고기에 방사성 물질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므로 생활협동조합은 파는 고기의 방사능 수치를 엄밀 측정해 공개할 필요가 있다. 한데 그 이상이어야 한다.


생활협동조합에서 취급하는 고기는 어느 정도의 사육환경에서 얼마나 자란 동물의 몸에서 얻었을까. 어린 나이에 도축한 가축이라면 먹는 이에게 행복을 전할 거 같지 않다. 그런 가축은 도축되면서, 다시 말해 죽으면서 원통해할 테고, 그때 분비되는 호르몬이 고기에 포함돼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그 방면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사람 덕분에 태어났더라도, 그러므로 행복해 해야 한다고 우기고 싶더라도, 사람이나 가축이나 반려동물이나, 타고난 생명을 어느 이상 구가한 뒤라야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해산물도 마찬가지다. 알을 낳지도 않은 어린 생선은 취급하지 않는 게 생활협동조합다운 일이다.


가축의 업보는 그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 이어진다. “내가 먹는 거 바로 나라고 하지 않던가.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연스러워야 건강하다. (푸른두레생협, 201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