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3. 10. 01:27
 

한때 대한민국 독자를 울렸던 베스트셀러, 《가시고기》가 있었다. 2000년에 출간된 그 소설은 2007년 영화로 각색, 많은 관객도 눈물을 흘려야 했는데 정작 가시고기는 그 사실을 모른다. 참치처럼 크지 않은 물고기라면 대개 가시가 있다. 잘 발라내지 않으면 목에 걸린다. 그런데 가시고기는 가시가 몸 밖에 나와 있다. 그래서 가시고기다. 천적이 다가오거나 눈앞의 상대를 위협할 필요가 있을 때, 평소에 접어둔 등과 배의 가시를 날카롭게 세운다. 《가시고기》는 어이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을까.

 

백혈병 앓는 아이를 홀로 키우던 아빠가 자신의 각막을 팔아 수술비를 마련한 후, 말기 간암으로 쓸쓸히 세상을 떠나는 내용으로 이어지는 조창인의 소설은 부성애가 부각된 가시고기의 번식행동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다. 가시고기의 부성애가 도대체 어떻기에 소설가의 관심을 끌었을까.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쉽게 관찰되던 큰가시고기와 잔가시고기에 한번 물어볼까나. 대답할 리 없다. 그렇다면 직접 관찰할 밖에. 이제 삼라만상이 기지개를 펴는 봄이 왔다. 가시고기도 알 낳을 준비에 들어갔을 것이다.

 

베스트셀러를 의식했는지, 한국방송공사는 2001년 가시고기 생태에 관한 영상보고서를 방영했다. 1년 동안 큰가시고기를 촬영한 노작이었다.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 <쉬리> 이후에도 없었던 일이건만 큰가시고기는 조금도 감사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당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자료화면을 참고하거나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보자. 큰가시고기의 행동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송곳처럼 뾰족하게 올라온 가시 3개가 등지느러미에 거리를 두고 있으면 큰가시고기, 8개의 가시가 낮은 톱니처럼 나란히 배열된 뒤에 부드러운 등지느러미가 이어지면 잔가시고기다. 동해안과 남해안에 두루 분포하는 큰가시고기는 7센티미터 이상의 몸이 통통하지만 동해안 북측과 일부 내륙에 드물게 서식하는 잔가시고기는 5센티미터를 넘지 않고 날씬하다. 다른 물고기와 달리 블라인드 같은 비늘판이 30개 이상 세로로 이어지는데, 큰가시고기의 비닐판이 더 뚜렷하다. 우리나라에 큰가시고기와 잔가시고기만 있는 건 아니다. 생김새가 잔가시고기와 비슷하지만 몸이 조금 크고 등의 가시가 조금 더 날카로운 종이 더 있다. 그 이름이 바로 가시고기인데 아주 드물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가시고기의 가시는 자신은 물론, 알을 보호하는 데 요긴하다. 암컷이 낳은 알은 둥지에 쌓여 있다. 큰가시고기를 보자. 적어도 세 마리 이상의 암컷이 낳은 1500개 이상의 알은 산소를 많이 요구하는데, 암컷은 알을 낳자마자 둥지를 떠나 버렸다. 남은 알은 오롯이 수컷의 몫으로 남았다. 그때부터 수컷은 대부분의 알이 부화되어 나갈 때까지 지극정성을 쏟는다. 천적이 나타날 때마다 가시를 곧게 세우는 수컷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가슴지느러미를 흔들며 둥지 안에 산소를 불어넣는다. 그렇게 보름, 부화된 새끼들이 둥지에서 보이지 않을 즈음, 탈진해 죽는다.

 

얼음 같던 강물이 풀려 바다로 흘러드는 봄이면 가까운 바다에 몸을 맡기던 가시고기들은 일제히 강을 향한다. 터빈 식힐 바닷물이 빨려들어가는 취수구를 막아 발전소 가동이 중단될 정도인데, 그중 수컷은 민물이 내려오는 하구에 경쟁적으로 둥지를 튼다. 큰가시고기는 작은 모래나 흙바닥을 길게 판 자리에, 잔가시고기는 물풀 줄기에 물풀과 물이끼를 붙여 입구와 출구가 열린 둥지를 완성했다면, 드디어 암컷을 찾아 나설 차례가 온 거다. 배가 찬란하게 붉은 혼례복을 갖추고 목이 분홍색으로 변한 암컷 앞에서 물구나무 춤을 추면 암컷이 움직일 터. 따라오는 암컷을 지그재그 춤으로 유도한 수컷은 입구로 들어간 암컷의 꼬리를 뒤에서 자극해 알을 낳게 한다. 알을 낳은 암컷은 출구로 빠져나가고, 다시 두세 마리의 암컷을 더 유인한 수컷은 혼인색이 지저분해져 죽을 때까지 알을 돌볼 것이다.

 

1973년 니콜라스 틴버겐은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동물행동학자인 틴버겐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건 순전히 가시고기 때문이었다. 가시고기의 번식행동을 연구한 공로를 스웨덴 카로린스카 의학연구소에서 인정한 건데, 당시 두 명의 동물행동학자가 공동수상했다. 부화 직후 처음으로 본 물체를 어미로 각인하는 거위를 연구한 콘라트 로렌츠와 꿀벌의 신호 행동을 연구한 칼 폰 프리쉬가 그들이다. 1973년은 동물행동학을 바야흐로 세계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한 순간이었건만 당시 가시고기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노벨상을 안긴 가시고기 수컷은 부성애의 귀감이 되어 소설과 영화와 다큐멘터리로 소개되지만 암컷의 배역은 좀 그렇다. 은근히 젖먹이 남기고 달아난 엄마를 연상시키지 않던가. 그렇다면 수컷의 부성애는 눈물겹던가. 구성작가의 감성적 필력에 좌우될 텐데, 사실 가시고기 수컷도 자식을 위해 남은 삶을 접는 건 아니다. 구구한 해석을 다는 사람이 딱하다고 혀를 차든 말든,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타고난 습성대로 짝을 만나 알을 낳고, 보살피던 알이 부화되면 세상을 넘길 따름이다.

 

문제는 가시고기가 알 낳을 곳을 잃어간다는 거다.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얼었다 녹던 하천이 전과 같지 않지만 그 때문이 아니다. 화력과 핵발전소가 해안으로 모여드는 가시고기를 퇴치하려 들지만 그 때문도 아니다. 굽이치며 흐르던 강이 시멘트가 안내하는 직선으로 바뀐 뒤 강물이 들쭉날쭉 쏟아지면서 오랜 세월 맑게 유지되던 하구의 흙과 모래가 패여 둥지를 틀 곳이 줄었을 뿐 아니라 물이 오염되었다. 붉은 혼인색이 잘 드러나지 않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정화처리 하지 않은 공장폐수와 생활하수가 쏟아지자 물풀이 사라졌고, 가시고기는 그만 둥지를 칠 재료를 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영화 <쉬리>가 관객을 끌어모으자 ‘쉬리 탕’을 내놓는 식당이 문을 열었던 시절이 있었다. 소설 《가시고기》가 베스트셀러가 되기 1년 전이다. 아직 쉬리와 가시고기는 우리 땅을 지키고 있다. 낙동강과 한강이 제 물길을 지키는 한, 쉬리는 남을 것이다. 가시고기는 내일은 어떻게 될까. 가구당 주택보급률 100퍼센트를 돌파한 만큼, 가시고기의 신혼 터에 신경 쓸 때가 된 게 아닐까. 적어도, 부성애를 들먹이는 일보다 중요하지 싶다. (전원생활, 2008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