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6. 14. 00:58

1.

최근 통계청은 2008년 태어난 아이의 기대수명이 80.1세가 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1970년의 61.0세보다 무려 20년 가까이 늘어난 수치이며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이 OECD 평균인 79.1세를 넘어섰다는 걸 의미한다고 언론은 덧붙였는데, 사실 평균수명이 늘어난 데에는 영아와 유아사망률이 낮아진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의료체계와 더불어 개인위생과 영양이 개선된 덕분일 텐데,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서 매립한 고엽제 성분이 흘러들었다고 의심하는 경북 칠곡군 지역의 낙동강에서 상수도 원수를 취수하는 대구의 영아사망률이 다른 지역보다 1.5배 높다는 소식이 들리는 걸 볼 때, 예외가 이따금 발생하는 모양이다.

 

요사이의 백일이나 돌잔치는 예전과 성격이 다르다. 백일이나 첫돌은 넘겼으니 천수를 누릴 거라며 축하하는 게 아니라 아기 핑계로 모처럼 친지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자는 데 의미가 크겠다. 그만큼 아이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안전망은 확실해 보이는데, 정작 부모들은 걱정이 많다. 덩치가 전에 없이 크는 아이들이 비만, 아토피와 같은 질환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운동량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는 영양이 비만의 원인이라고 믿지만 우리는 아이의 운동량을 늘리지도, 영양을 줄이지도 못한다. 환경호르몬이나 첨가물로 오염된 공기와 음식이 아토피를 일으킨다고 짐작하지만 넘쳐나는 원인을 줄이지 못한다.

 

최근 유럽은 항생제 내성 장출혈성 슈퍼박테리아가 확산되어 채소 공포증이 일고 있다고 한다. 독일의 한 지방정부에서 스페인산 유기농 오이에서 검출되었다고 발표했고 언론은 가축의 분뇨를 거름으로 사용한 유기농산물에서 사람에게 전파되었을 것으로 전문가의 발언을 토대로 추정했다. 하지만 아직 가축의 분뇨에 어떻게 슈퍼박테리아가 침투했는지 밝히지 못한 상태인데, 독일 중앙정부는 사람에서 검출된 슈퍼박테리아가 오이에서 검출된 슈퍼박테리아와 다르다고 번복했다. 그러자 수출 차질로 많은 손해를 입은 스페인 정부는 조치를 취하겠다며 발끈했다는데, 날 것으로 먹는 채소가 원인이라는 추정이 수정되지 않아서 그런지 채소 소비는 하염없이 위축된 모양이다.

 

20명 가까운 유럽인을 희생시킨 슈퍼박테리아가 어느 경로로 전파되었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유럽의 중산층 소비자들이 찾는 유기농 채소를 시장에서 일제히 철수시킨다면 슈퍼박테리아는 사라질까. 면역이 약해진 요즘의 아이들이나 노인들을 공격하지 않을 것인가. 일단 가족에게 채소를 먹이지 않으려는 소비자의 행동은 정당하지만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요즘 근본을 생각하는 힘을 잃었다. 전문가의 노력으로 슈퍼박테리아 전파의 경로는 찾아낼지 모르지만 예전에 없었던 슈퍼박테리아가 어떤 이유로 왜 요사이에 발생했고 저토록 퍼지는지, 근본 원인을 추적해 대안을 찾지 못한다.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에 속수무책인 현대의학은 아토피의 원인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는데, 예년에 없었던 질병의 목록은 아토피 말고도 많다. 아이에게 발생하는 증후군은 왜 그리 많은가. ‘새집증후군컴퓨터단말기증후군에서 별의 별 이름으로 이어지는 증후군이 부모의 불안감을 더욱 부추기는 가운데 주의력결핍과잉장애증후군도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증상도 심각해진다고 전문가들은 걱정한다. 원인 제거 없는 치료는 환자 발생을 줄이지 못하는데, 예년에 없었던 질병들의 원인은 그런 질병의 종류만큼 다양할까.

 

2.

114가지 영양소가 가득한 완전식품으로, 세대를 가리지 않고 사랑받는 우유를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은 200밀리리터 용량의 컵으로 하루 두세 잔, 이후 두 잔을 마시라고 한 언론은 전했다. 그렇게 우유를 마시면 마시지 않은 집단에 비해 어려서부터 키가 크고 골밀도도 충실하다고 어떤 뉴질랜드 연구에서 밝혔단다. ‘낙농자조금관리위원회의 자료를 일방적으로 참고한 중앙의 일간지가 그렇게 보도했다. 한국유산균학회장을 비롯한 여러 관련 전문가들이 우유에 함유된 8대 영양소는 신체기관이 급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자동차 연료와 같으므로 우유를 꼭 챙기라고 권한다는 걸 새삼 강조한 그 언론은 낙농가 스스로 낙농산업을 보호하고 다양한 사업을 통해 유유소비를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익집단의 자료를 전폭적으로 소개한 것이다. 우유에 포함된 많은 양의 칼슘보다 모유와 채소에 함유된 칼슘이 훨씬 잘 흡수된다는 점, 우유가 당뇨병을 비롯한 어린이의 질병을 유발시킨다는 연구는 결코 인용하지 않았다.

 

낙농업계의 로비로 학교 급식에 포함되면서 우유 소비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유럽의 경험은 미국으로 이어졌고, 결국 미국 식 우유 급식은 세계가 선망하는 표준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몇 해 전,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뉴욕도 우유를 급식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우유 급식하는 학생 대부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형성되고 비만의 징후가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부연하면서.

 

버터나 치즈와 같은 낙농식품으로 가공하던 과거, 농부는 넓은 풀밭을 서성이며 풀을 뜯던 젖소에서 우유를 받았을 테지만 더 많은 우유를 남보다 빨리 받아야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지금은 아니다. 어린 나이부터 임신을 해서 우유를 쏟아내는 젖소는 덩치 못지않게 유방이 예전에 볼 수 없었을 정도로 커진 반면, 사육조건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런 소에 거액을 투자한 목장은 목초보다 유전자조작 옥수수로 가공한 사료를 주로 먹이고 임신 기간에도 많은 우유를 받기 위해 성호르몬을 주입한다. 그래서 비만과 당뇨를 유발하는 요즘의 우유에 칼로리는 넘치지만 영양분은 부족하다. 그뿐 아니라 아이에게 성조숙증도 안긴다.

 

2008년 중국에 이어 중국산 분유를 수입하는 국가들을 아연 긴장케 했던 멜라민 파동이 중국에서 여태 끊이지 않는다. 처벌이 약하거나 단속이 느슨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질소 성분이 많은 멜라민이므로 섞더라도 발각되지 않으면 개별 농가는 우유 수집업자에게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탓이리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어지는 편의는 돈으로 구입해야 하므로 분유라는 편의에 의존하게 된 산모는 돈벌이에 나설 수밖에 없다. 태어난 아이에게 타고난 모성을 기울이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에서 모유를 먹일 수 없는 엄마는 늘어나고, 영양 보조식품으로 가끔 곁들이기보다 떨어지면 아이의 성장에 지장이라도 생길 듯 가정의 냉장고마다 상비하면서 우유의 시장규모는 걷잡을 수 없게 커졌다. 그에 비례해 우유 생산 농가 역시 늘어났지만 규제는 따르지 못했을 것이다. 2008년 이후 중국의 규제기관은 엄격한 사육조건을 요구하고 우유 수집업자까지 엄격하게 검사하려 들면서 그에 맞게 투자를 늘린 목장은 살아남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농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도태될 수 없는 영세 농민에게 멜라민을 섞으라는 악덕상인의 은밀한 유혹은 효과가 있었을 텐데, 생산한 우유를 이웃과 나누던 공생의 시절에 감히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콩팥을 비롯해 신체의 장기가 한참 성장하는 유아에게 지속적으로 일정 양 이상 유입될 경우 치명적인 멜라민은 유제품을 가끔 먹는 아이나 성인에게 그리 위험하지 않다. 식품첨가물에 비한다면 애교에 불과할지 모른다. 국내 또는 세계 굴지의 식품회사에서 대량으로 가공 생산해 현란한 상품광고를 내세우며 판매하는 유제품과 가공육을 비롯한 숱한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식품첨가물의 실상은 어떤가. 공장 설비의 노화나 피로에 지친 노동자의 실수가 빚은 사고로 다이옥신이나 비소와 같은 치명적 물질이 허가 없이 들어가는 사례도 빈발하지만 그건 노력 여하에 따라 재발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다. 문제는 1인 당 평생 320킬로그램 섭취하는 수백 가지의 식품첨가물로, 대부분 자연물질이 아니라 합성한 석유화학제품이다. 법으로 정한 허용 기준치를 만족하는 양을 첨가했다고 기업은 주장할 테지만 허용 기준치가 개개인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확신은 내놓지 못한다.

 

대체로 식품의약품안전청과 같은 규제기관이 아니라 식품회사에서 실시하는 동물실험으로 얻는 허용 기준치의 안전성은 사람에 직접 적용할 수 없으며, 사람에 따라, 그 사람이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 다르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수백 가지의 첨가물이 인체 내에서 만날 경우 상승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식품회사는 물론 규제기관도 사전에 상승효과 여부를 평가하지 않고 평가할 수도 없다. 가공식품이 소화과정에서 어떤 물질로 변화될 지 미리 파악해 첨가물의 허용 기준치를 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동일한 피해 사례가 축적되면서 소비자에 의해 문제가 불거질 수 있지만 개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허가된 식품첨가물을 허용 기준치 이하로 넣은 기업이 앞장서서 피해의 인과관계를 밝히려 들 리 없으니 피해를 당한 소비자가 먼저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데, 들어가는 첨가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원인이 워낙 다양하므로 소비자가 인과관계를 소상하게 밝히기 대단히 어려울 게 틀림없고, 의심만으로 피해보상에 응할 기업은 없다. 애초 허용 기준치는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를 위한 허용 수준을 알리는 수치인 까닭이다. 어렵게 인과관계가 밝혀내도, 소용없는 건 마찬가지다. 과민한 체질에 의한 예외적인 사례로 취급할 테니, 피해보상은 기대할 수 없다. 허용 기준치를 소비자가 규제하지 않는 한, 문제를 일으키는 첨가물은 계속 허용될 것이다.

 

3.

2005년에 아픈 아이들의 세대를 쓴 우석훈의 가정에 요즘 아기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책을 펴냈을 때 신혼이었던 그가 여전히 서울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아기가 없을 것이다. 재개발 열풍에서 자유롭지 못한 서울에서 100만 분의 10미터 단위의 길이인 먼지, 진폐증의 원인이 되는 이른바 ‘pm10’의 공포를 벗어날 수 없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그 책에서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런 먼지는 우석훈의 지적처럼 개발이나 재개발현장의 반경 2킬로미터 이내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날아오르는 미세한 재를 완벽하게 제거하지 않는 석탄화력발전소 주변도 물론이지만 도로 인근의 주택도 예외가 아니다. 어디 먼지뿐인가. 새 가구나 옷에서 발생하는 포름알데히드, 온갖 화학제품에서 발생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로 휘감긴 집과 학교도 예외일 수 없다. 이른바 새집증후군새교실증후군이 나타나는 현장이다.

 

담을 없앴더니 골목을 공유하는 이웃집의 아이들이 기웃하고, 놀이터를 만들어 아이들이 찾아와 놀자 엄마들까지 모여며 골목 안이 작은 공동체가 되었다는 10여 년 전의 대구의 사례는 참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공동체가 도시 재개발로 흔들리고 있다고 처음 담 허물기에 나섰던 활동가는 전했다. 집주인이든 세입자든 오순도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반갑게 웃던 이웃이 돈 앞에서 갈라지더라는 거다. 하나 또는 둘의 자녀를 둔 이웃은 그 골목에서 많은 언니, 오빠, 누나, 동생들과 식구처럼 친해지고, 동네의 이모, 고모,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허물없이 지내곤 했는데, 추억이 되고 말았다. 번듯하게 올라설 고층아파트를 구입하거나 세 들 수 없는 처지의 이웃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거였다.

 

흩어진 이웃의 아이들은 이제 재개발이 끝나도 거리에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나와도 반갑게 마주할 이웃은 없다. 뿌리를 잃은 삶에 남은 건 가혹한 경쟁이다. 남에게 쳐지지 않기 위해 돈벌이가 좋아야 하고, 만족할 수 있는 돈벌이를 위해 좋다는 대학에 집어넣으려면 외톨이가 된 아이가 학원을 전전하도록 닦달해야 한다. 물론 그런 주제가 안 되는 집구석의 아이는 컴퓨터 앞에 웅크릴 가능성이 높겠다. 눈이 쉬 피로해지고 심하면 두통 증세가 발생한다는 이른바 컴퓨터 단말기 증후군이 나타나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히키코모리라 칭하는 폐쇄증후군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경쟁은 끝을 원하지 않는다. 좋다는 대학에 들어가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에 따라 서열이 있으니 열패감이 교차할 테고, 용케 그 직업전선에 들어가도 돈과 권력을 좇는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쳐지면 각종 증후군에 시달릴 수 있으니 아이는 출발부터 남보다 우수해야 한다.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개개인의 면역력은 물론 사회의 친화력을 좀먹는다. 면역을 잃은 개인은 질병에 약하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광고는 태어난 아이에게 보험을 들라고 성화다. 서로 돌보던 이웃 사이의 돈독함을 폐기하고 돈으로 보살핌까지 구입하라는 꼬임이 번진다. 살벌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슈퍼박테리아는 활성화된다. 농산물과 식품에 이어 사람에게 치명적으로 전파되는 슈퍼박테리아만이 아니다. 사회의 안전망까지 해치는 슈퍼박테리아도 만연한다. 이웃 사이에 신뢰라는 면역력이 무너지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

 

경쟁은 다양성이 거세된 사회에서 빛을 발한다. 돈벌이가 신통하거나 권력이 막강하다는 직장이라는 기준은 경쟁에 몰입하는 대학들을 서열화했다. 경쟁 우위에 선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동일한 목표를 가진 교우에게 뒤지면 안 된다. 목표가 동일한 사회에서 다양한 개성은 배려되지 않는다. 혹독한 경쟁으로 유지되는 동질 집단에서 소외되는 자에게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열등하므로 패한 자에게 허용되는 게 없는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할 행동은 무엇인가. 카이스트에 자살하는 학생과 교수가 유난히 많은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데, 다양한 개성을 가진 교수와 학생이 교정에 공존하며 긴장 속에서 평소 위로와 격려를 나눴다면 자살은 그토록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면역이 약한 이에게 처방하는 항생제는 세균의 내성을 강화하니 항생제는 다시 갱신되어야 한다. 한데 항생제를 남발하면서 사람이 더욱 강력한 항생제를 개발하는 속도보다 빨리 미생물은 내성을 거듭 강화하더니, 그만 슈퍼박테리아가 나왔다.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번졌다. 최첨단 의학기술이 결국 문제의 박테리아의 경로를 특정 채소에서 밝혀낼 경우, 일사분란하게 그 채소를 성공적으로 폐기한다 해도 슈퍼박테리아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잃은 면역을 회복시키려 하지 않는 마당에 슈퍼박테리아는 종류를 늘릴 게 틀림없다. 게다가 전에 없던 질병이 만연되거나 철지나 등한시했던 질병이 오히려 강화돼 다시 창궐하는 게 지금의 세상이 아닌가. 슈퍼박테리아가 감염된 건 유기농 오이도 날 것으로 먹는 채소 때문일 리 없다. 사람은 물론이고 생태계와 삶의 방식에 깃든 다양성을 억압하며 세상을 획일화한 사람의 경쟁적 탐욕이 슈퍼박테리아와 숱한 증후군의 공동 원인이다.

 

비록 자연계의 다른 식물을 배제하는 게 농업이지만, 적어도 유기농산물은 주위 생태계와 농산물을 먹는 사람을 최대한 배려한다. 땅을 살리고 후손을 살리는 유기농산물은 생태계와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그런데 요즘 거대 자본에 포섭된 유기농산물은 땅과 후손과 생태계와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화학비료와 석유로 가공한 농약을 사용하지 않을 뿐, 충분히 발효되지 않은 가축의 분뇨를 대량으로 사용해야 하는 공장식 유기농업은 탐욕이 인도한다. 따라서 대규모로 생산해 유기농 매장에 일률적으로 공급할 따름이다. 기존의 기계화된 거대 농장처럼 획일적 생산방식에 맞게 종자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을 좁힌다면, 그 농작물은 유기농일지라도 질병에 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 시장을 상대로 막대한 규모로 생산해 판매하는 채소가 진작 가진 유전적 다양성이 여태 보전되었다면 유기농 여부와 관계없이 슈퍼박테리아에 쉬 감염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인의 면역력이 감퇴되지 않았다면 슈퍼박테리아에 노출되어도 별 탈이 없었을 것이다. 슈퍼박테리아가 아예 창궐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슈퍼박테리아 뿐인가, 조류독감과 구제역도, 광우병과 숱한 증후군도 요즘처럼 기승을 부릴 리 없다. 그리 멀지 않은 조상도 늘 그랬듯,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에서 나누었다면 그런 끔찍한 질병이 발생할 리도, 걷잡을 수 없게 퍼질 리도 거의 없었다.

 

4.

당분이 풍성한 과자나 사탕에 무방비로 노출된 맞벌이 부부의 자녀에 상대적으로 많은 충치를 예방하겠다는 명분으로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 우리 사회 일각을 크게 흔든다. 독극물인 불소가 몸에 축적되어 수돗물불소화 초기에 알지 못했던 건강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최근에 와서 속속 밝혀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막무가내로 추진하려 들기 때문이다. 충치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려면 아이들이 당분을 지나치게 섭취하지 않도록 학교나 이웃이 지도하고, 과자나 사탕을 먹고 난 뒤 양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근본적이요 급선무일 것이다. 식품첨가물과 마찬가지로 불소에 대한 민감성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린이나 노약자, 임산부나 병약자, 그리고 불소를 마시고 싶지 않은 이까지 피할 방법이 없게 무차별적으로 수돗물에 불소를 넣는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불소를 원하는 이를 배려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개성을 배려하지 않은 채 거부할 방법도 없이 주어지는 편의는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획일적 기준을 따를 것을 무차별적으로 요구하는 중앙 세력의 의도에 포섭되는 사회에서 개개인의 삶은 개성을 구가하지 못한다. 모나면 정 맞을 것이다. 세계가 동일한 맛과 향을 가져야 하는 패스트푸드는 획일적 기준을 맞추기 위해 농작물과 사료와 가축과 가공방법을 표준화했다. 그뿐인가. 매장의 규격과 모양도, 종업원의 복장과 조리방법과 친절도, 심지어 상품 광고도 획일화했다. 그를 위해 농산물과 가축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을 최대한 좁히고 세계 각국의 고유한 문화까지 자신의 이익 욕구에 부합하도록 표준화했다. 이른바 맥도날드화. 중앙을 지배하는 세력이 추동하는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에서 멈추는 게 아니다. 탐욕을 충족하기 위해 사회 전반으로 파고든다. 개성이 넘쳤던 단독주택을 아파트로, 저층 아파트를 고층으로, 고층 아파트를 전기 과소비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초고층아파트로 바꾸게 하며 수많은 삶의 방식을 소외시킨 맥도날도화 된 익명의 사회에서 소외된 자는 쉽게 범죄에 이끌린다. 맥도날드화된 교육은 어떤가. 맥도날드화된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문화는 아니 그런가.

 

자폐증과 더불어 전에 들어 본 적도 없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증후군이 유년기 아동 사이에 전에 없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모르지만 출산 전후의 뇌손상이나 부모의 유전적 요인을 물려받아 나타나는 경향이 보인다는데, 임산부의 알코올이나 약물중독이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아이 뇌의 납 농도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걸 주목한다. 자폐와 학습장애를 유발하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증후군이 나타날 경우 의사의 진단을 받아 항불안제나 항경련제와 같은 정신병 약물을 복용할 것을 권하는 전문가는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원인을 아직 파악할 수 없지만 약물로 증상을 진정시키라고 조언한다. 한데, 원인 제거 없이 처방하는 약물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증후군이라는 질병을 과거에 들어본 적 없는 만큼 원인은 현대사회의 병리적 현상에서 찾아야 한다. 탐욕이 견인하는 경쟁적 사회, 개성을 배려하지 않는 획일적 사회에서 근본 원인을 찾고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아무도 소외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사람을 쫓기지 않게 한다. 등 뒤에서 자동차가 다가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는 마을에서 주민들은 느긋하게 행동하며 처음 보는 이와 눈이 마주쳐도 다정하게 인사를 나눈다. 유럽에서 요즘 건설하는 생태주거단지의 모습이 대개 그렇다. 다양한 개성이 배려되는 사회에 갈등은 드물다.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보전된 농작물의 씨앗은 질병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런 씨앗은 농부의 배려로 자연에서 꽃가루를 받아 수정되지만 종자기업에서 다수확품종이라며 대량으로 판매하는 씨앗은 불임처리된 것이 많다. 꽃가루로 수정해서 씨앗을 얻어도 다음 세대에 수확이 매우 신통치 않거나 아예 불가능하다. 빨리 몸집을 불리는 가축이 그렇다. 거대한 기업에서 획일적으로 가공해 세계에 공급하는 가공식품도 마찬가지다.

 

5.

강화도에 흙벽돌집을 지은 한 목사 부부는 아토피를 앓는 취학 전 아이들을 자연에서 보살피며 스스로 치유하게 이끌고, 그 과정을 부모에게 각인시킨다.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주변의 농토에서 유기적으로 재배한 농작물과 고기와 계란을 함께 먹자 몸과 몰라보게 회복될 뿐 아니라 마음까지 너그러워지는 아이의 모습을 보모가 보게 되는 거다.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아이들은 자연에 뒹굴며 놀아야 한다. 학교에서 오로지 입학시험에 대비하는 공부에 매달리는 우리나라가 특히 참고해야 하겠는데, 비록 수업이 진행되는 시간일지라도 아이 손을 잡고 자연으로 나가라고, 일탈을 부추기는 자연주의자도 있다. 삭막한 경쟁사회에서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아이는 숱한 생명들이 어우러지는 자연에서 너그러움을 비로소 되찾고 쇠약해진 몸과 마을을 치유해야 한다는 거다. 자연 가까이에 둥지를 친 대안학교에서 입시공부의 폐해에서 벗어난 학생들은 청소년 시기에 자신의 세계관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개성이 만개하는 자연에서 함께 사는 삶의 가치를 배웠기 때문이리라. 그런 학생들을 특별히 받아들이는 대학교가 더러 있다. 성적 올리기에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 어려워하지만 이내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게 아닌가.

 

1992년 미국 LA폭동이 있은 뒤 한 언론인은 소리만 듣고 총의 종류를 구별할 수 있다며 재주를 자랑하는 아이들을 보고 절망한다. 소리만 들어도 어떤 새인지 알아야 할 시절이 아닌가. 경쟁사회가 양산하는 불행은 결국 자업자득이다. 아이에게 화학첨가물이 들어간 과자와 음료수를 건네며, 제 자식마저 언젠가 소외될지 모르는 맥도날드화 된 교육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배려는 가치를 잃는다. 삭막한 경쟁사회에서 진저리치는 사람이라면 이제 그 족쇄를 풀어야 한다. 이반 일리치는 우정과 환대를 주창했다. 언어나 인종, 종교나 계층, 성별이나 학력과 무관하게, 모든 이를 차별 없이 맞을 수 있는 공생의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거다. 그런 사회라면 유해색소가 들어간 음료수는 거부될 것이다. 고엽제는 뿌려지지도 남의 땅에 함부로 파묻지도 않을 것이다.

 

아토피와 유전병, 그리고 자폐와 온갖 증후군이 늘어나는 건 온갖 생명과 그들의 다채로운 삶이 충만한 땅에서 아이들이 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주어진 획일적 기준에 어긋날까 불안해하며 학교와 병원과 교회를 전전하면서 맥도날드화된 식품에 길들어지는 일상은 개성을 배려하는 생태사회와 우정과 환대로 맞는 공생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다. 조상이 온전하게 물려준 땅을 파괴하며 버렸기에 부메랑처럼 다가온 요사이 질병은 비싼 약으로 치유할 수 없다. 맥도날드화된 질병을 보유하며 늘리는 수명은 아름다울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식을 키우는 이는 주어지는 편의를 과감히 털어내고 함께 사는 삶을 회복하려 노력해야 한다. 병든 몸의 수명을 돈과 약으로 억지로 늘리려는 맥도날드화 된 세상이 아니라 땅과 가까이 하는 자연스러운 삶, 개성이 배려되는 생태적 삶의 복원으로 병든 몸을 치유하는 세상으로 가야한다.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발제문, 201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