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1. 4. 18. 22:43

 

공자님도 말씀하셨다. “먼 곳에 사는 친구가 스스로 찾아오니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하고.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가 오래 만에 찾아왔을 때 그의 손을 이끌고 어디로 가야 하나. 함께 거닐던 기억을 머금은 갯벌도, 중턱에서 노을을 바라보던 작은 산도, 이제 옛 모습을 잃었다. 그래도 옛 맛은 남았지. 때는 6, 산란기를 맞아 도톰하게 살이 오른 병어를 먹으러 가야겠다. 병어회도 병어조림도 권할 수 있겠다.

 

서울 강남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사업을 소박하게 하는 친구를 만나니 인천다운 맛을 선보이겠단다. 모국에서 막 도착한 손님을 한식당에서 대접하는 교포의 성의와 비슷한 건데, 교포에게 한식은 이따금 맛보는 별미겠지만 내국인에게 새삼스러운 게 아니 듯, 인천 사람에게 인천다운 식당은 그리 흥미롭지 않다. 그래도 성의가 고마워 찾아간 식당.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생굴도 박대구이도 영 아니었다. 병어조림이 있다면 봐주려 했건만, 그마저 없다. “친구야, 인천으로 와라. 학생 때 푸짐하게 먹었던 병어조림 살 테니! 이른 여름의 도톰한 걸로.”

 

갯벌이 드넓은 서해안에 두루 분포하는 병어를 인천 특산이라 말할 수 없다. 갯벌에 많은 젓새우와 갯지렁이를 비롯해 동물성 플랑크톤까지 작은 입으로 즐겨먹는 병어는 수심 10에서 20미터인 암초 사이의 모래바닥에 알을 낳으니 인천에서 조금 떨어진 바다에서 적지 않게 잡았고 소래포구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한강에서 쓸려내려온 모래와 갯벌이 바닥에 곱게 내려앉은 인천 앞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10미터 이상 크다. 갯벌 때문에 혼탁해도 바닷물은 깨끗할 뿐 아니라 영양분이 풍부하니 육젓 새우가 풍족하고, 이맘때 병어도 토실토실할 수밖에 없다.

 

잘 익은 찹쌀을 꾹 눌러놓은 듯, 마름모꼴로 동글납작한 병어는 잘 자라면 몸이 60센티미터나 된다. 비스듬하게 위를 향하는 가슴지느러미를 빼면, 짧은 뒷지느러미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배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가 완전한 대칭을 이루고, 알파벳 브이 자를 옆으로 뉜 듯 몸길이의 4분의1이 넘는 커다란 꼬리지느러미는 밀물과 썰물이 쓰나미처럼 교차하는 바다에서 납작한 몸의 균형을 잡는다. 저층을 훑는 자루 모양의 커다란 그물에 청백색 등과 은백색 배를 번쩍이며 한 무리로 올라오는 병어는 지느러미를 움직이려는 근육이 발달해 그런가, 부드러우며 탄력이 그만이다.

 

, 여기 토실토실하고 동글납작한 병어 한 마리가 있다고 하자. 어떻게 요리해 먹어야 이맘때 병어의 위상을 살리는 걸까. 일단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비늘들을 털어내고 위아래 지느러미와 꼬리를 잘라낸 뒤 아가미 앞의 머리와 내장을 깨끗하게 제거해야겠지. 그러면 몸이 반으로 줄어들지만 살은 묵직하다. 납작한 광어와 달리 병어회는 껍질 채 썬다. 칼을 기울여 무를 비스듬하게 썰 듯 어슷하게 뼈까지 잘라내면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의 살점이 신선함을 과시하는데, 식성마다 다르겠지만, 비린내가 없는 6월의 쫀득한 병어회를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건 아무래도 무성의하다. 온갖 양념으로 버무린 장이라야 어울린다.

 

커다란 접시를 가득 채울 만큼 듬직한 병어까지 회로 썰자니 아깝다면? 역시 조림이 제격이다. 조림에 들어가자면 내장과 지느러미만 제거하면 된다. 맹물보다 멸치로 우려낸 육수를 집에서 가장 큰 냄비에 부은 뒤, 통으로 썬 여름 감자와 무를 침대처럼 깔아놓았다면 주인공인 병어가 등장할 차례다. 육수에 자박하게 잠길 정도로 얌전하게 올려놓은 병어 위에 간장에 고추장과 다진 마늘과 갖은 양념으로 걸쭉하게 버무린 양념장을 얹고 처음에 팔팔, 나중에 보글보글 끓여내면 고종과 순종이 좋아했다는 병어조림이 완성된다. 접시에 옮겨 담기 전에 숭숭 썬 대파와 실고추를 흩뿌리면 금상첨화겠지.

 

전라남도 해양바이오연구원은 살이 붉은 생선보다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을 많이 함유하는 병어는 DHA, EPA와 타우린이 풍부해 동맥경화나 뇌졸중과 같은 순환기 질환을 억제하고 치매와 당뇨병은 물론 암까지 예방하는 것으로 홍보하지만 병어가 치료제일 리 없다. 손쉽게 무침이나 구이, 매운탕이나 지리로 끓여도 별미인 병어는 입맛이 떨어지는 여름철의 밥도둑인데, 어라! 머지않아 고급 생선으로 등극하려는가. 해마다 작황이 줄어드는 만큼 가격이 높아지는 병어는 20마리 한 상자가 30만원을 호가한 지 오래라고 한다.

 

서해안의 주꾸미처럼 혹독했던 지난겨울의 후폭풍 때문인지, 병어가 예년처럼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병어가 점점 자취를 감추는 현상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감지되는데, 어인 일일까. 난류성 어류에게 냉수대는 치명적이지만 일시적 현상이다. 동해안에 난류성 어종인 참조기와 병어와 아주 가까운 덕대가 잡히는 우리 해역은 근래 점점 따뜻해지는데, 서해안의 병어는 왜 줄어드나. 한 전문가는 남획을 의심하며 병어회와 조림이 유명세를 타자 주문량을 맞추려 어선들이 산란기의 병어를 싹쓸이한다고 걱정한다. 그 전문가는 치어 방류나 산란기의 어획량을 제한을 제안하는데, 치명적 감소 이유는 더 생각할 수 있다.

 

참조기가 서해안을 찾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남획임에 틀림없지만 더 큰 이유는 사라지는 갯벌에 있다. 알 낳을 곳이 없는데 어찌 다가올 수 있다는 겐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사라진 갯벌이 무려 13천만 평이고, 그 전에 인천공항으로 1400만 평의 갯벌이 위축되었다. 인천의 송도신도시와 청라도 매립으로 사라진 갯벌이 1000만 평이 넘지만 계속 넓히려 든다. 도대체 간척지는 무엇으로 해수면보다 높이나.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육지의 흙은 아니다. 바로 병어가 산란하는 바다의 모래와 갯벌을 막대하게 퍼올린다. 갯벌과 더불어 참조기가 사라진 서해안에 병어까지 자취를 감출까봐 걱정하는 마당인데, 한국전력은 병어를 위협한다. 겨우 보전된 강화도 갯벌까지 파괴할 조력발전을 세계 최대로 짓고야 말겠다고 이만저만 고집부리는 게 아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방사성 물질로 바다가 오염된 일본은 생선을 우리나라에서 구할 가능성이 높다. 일제 강점기에 병어 맛을 기억하는 이의 입소문은 아직 명맥을 유지하는 병어 가격을 더욱 끌어올릴지 모르는데, 이러다 멀리서 고향을 찾아온 친구와 양식한 병어를 먹어야 하나. (전원생활, 2011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