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7. 9. 22. 14:51

안전한 에너지로 전환할 수요관리

 

노무현 행정부 초기, 윤선도의 자취가 남은 완도군 보길도에서 한 시인이 30일 넘는 단식을 했다. 보길도를 제외하고 인근 노화도로 전량 공급할 식수용 댐의 증축을 막으려 온몸으로 저항한 건데, 시인의 행동은 군 관계자와 주민대표의 합의로 상수원 대책위원회로 이어졌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대책위원회는 보길도의 경관과 생태계를 훼손할 댐 증축을 반려하고 상수도 관로의 확충을 권고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군사독재 정권이 강요한 보길도의 댐은 애초 수요예측을 과다하게 책정해놓고 방만하게 운영해왔다. 유권자를 의식했는지 거주민이 많은 노화도로 공급하던 수돗물이 모자라자 보길도 주민의 의견을 묻지 않고 증축을 결정했던 건데, 저항에 부딪혔고, 대책위원회가 현장에서 파악한 실태는 어처구니없었다. 댐과 관로에서 발생하는 누수만 막아도 노화도는 물론이고 보길도의 수돗물 공급도 충분한 게 아닌가. 목숨을 건 한 시인의 단식이 없었다면 한려해상국립공원 보길도의 풍광과 생태계는 여지없이 무너졌을 것이다.


우리 전력 공급도 방만하기 이를 데 없다. 국가의 경제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측하고 그에 상응할 전력량 확보를 염두에 두었다지만 그 정도가 무모에 가깝다. 우리보다 경험이 앞선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어떠했던가. 경제 규모가 커졌어도 전력 소비는 오히려 줄었다. 경제성장과 전기소비를 연동시킨 우리의 무모함은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예비 용량을 설정해 전력 생산에 여유를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지나치다. 일본은 전력예비율을 3%로 잡는데 우리는 20%가 아닌가. 전력을 예비하는 기술력이 일본보다 낮은 건 물론 아닐 것이다.


안정된 전력망이 존재하고 최첨단 장비와 우수한 인력이 포진한 우리나라의 발전시설이 일본에 비해 유난히 낡지 않았으므로 불시 정지가 빈발할 리 없다. 설치해 놓고 가동하지 않는 천연가스화력발전시설을 감안하면 불시 정지도 큰 걱정이 아니다. 한데 우리의 전력 예비율 산정방식은 발전 설비의 최대 용량을 기준으로 따지는 일본과 다르다. 우리 발전설비의 기술을 비웃는 건지, 설비용량을 최대보다 낮게 설정하고 그 바탕에서 전력예비율을 정한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전력 공급은 방만하다. 헐거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전력예비율은 올여름 30%를 넘었다. 신고리 5, 6호기 핵발전 설비의 건설 중단이 부당한가?


전력소비는 계절마다 다르고 하루에도 시간마다 다르다. 소비가 작은 시간이라고 가동을 멈출 수 없는 핵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가 많을수록 낭비 요인은 커진다. 전기를 보관한 기술이 미미한 상황에서 소비가 많은 시간에 맞춘 전력 공급 계획은 필히 그렇지 못한 시간에 막대한 전력을 버리는 낭비로 이어지게 만든다. 낭비를 줄이기 위해 수요를 분산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우리나라에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 제도가 뒷받침하지 않으니 산업시설을 전력 수요가 낮은 시간에 적극 가동하는 기업은 드물다.


우중충한 날씨가 많은 유럽, 특히 독일은 유럽 최대의 산업국가지만 태양광만으로 전력을 충당하는 날이 점점 늘어난다. 전기 수요가 많은 낮 시간 태양에서 가져오는 전기가 충분하다면 핵발전소를 줄여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산업 설비의 전기 소비 효율을 높인다면 경제규모가 커져도 전력 수요를 줄일 수 있다. 넓은 지붕, 아니 작은 지붕에도 태양광 패널을 적극적으로 부착한 독일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자국 핵발전소 17기 중 9기를 끈 이유가 그렇다. 나머지 8기는 2022년까지 모두 끌 예정이다.


전력 예비율이 터무니없이 높은 우리나라는 햇볕이 참 좋다. 안전할 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태양에서 전력을 구할 여유가 있다. 의지가 부족할 뿐, 기술과 자본도 충분히 뒷받침된다. 건설 중단한 신고리 5, 6호기는 물론이고 설계수명을 다한 핵발전소, 미세먼지 방출이 지나친 화력발전소들을 당장 퇴출해도 전력 공급에 문제 생길 리 없다. 안전할 뿐 아니라 안정적인 에너지를 자연에서 구하며 효율적으로 수요를 관리하면 위험천만한 핵발전소는 불필요하게 될 게 틀림없다. (기호일보, 2017.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