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2. 8. 25. 12:55

   개고기 없이 무더위 견디기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른다. 찾아간 회의실에는 에어컨이 없어 장소를 바꿨다는데, 선풍기로 식힌 땀을 다시 흘리며 들어간 찻집. 과연 시원했지만 이내 더워졌다. 공기마저 답답해 얼음물을 연실 마셔도 소용이 없었다. 선풍기가 돌아가는 그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잘 견디므로, 외부인을 위한 에어컨 배려는 없어도 그만이었다. 모두 더우니 땀 흘리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회의에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회의장. 에어컨이 훌륭한 실내를 나와 예약한 삼계탕 집으로 나갔다. 낮은 온도로 에어컨을 켜도 펄펄 끓는 삼계탕 도가니를 끊임없이 내오는 식당은 더웠다. 먹는 이는 말할 것도 없을 텐데, 비 오듯 땀을 쏟는 일행은 차라리 밖이 더 시원할 거라 생각했다. 이열치열인가. 삼계탕 먹은 일행은 늦은 시간까지 회의를 강행했는데, 삼계탕 효과는 아니었다. 일행은 삼계탕과 관계없이 긴 회의 시간을 견뎌냈다. 에어컨은 몰라도 평소 고기를 많이 먹기 때문은 아니었다. 과한 육식으로 몸이 부푼 이가 적지 않았으므로.


삼계탕이나 개고기를 먹지 않고 무더위를 보내면 몸이 허해질까. 에어컨 없는 공간에서 삼계탕과 개고기를 피해도 몸이 허하지 않은 처지라서 뭐라 할 말이 없는데, 복날과 관계없이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더 더워졌다. 체온 가까운 기온이 계속되므로 일을 집중하기 어렵다. 원고를 쓰거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회의장에서 특히 버겁다. 그러므로 에어컨은 필수일까. 그런 것 같지 않다. 에어컨 없던 시절, 중요한 결정이 여름이면 미루어지고 문사의 집필은 중단되었다는 말은 일찍이 듣지 못했다. 다만 더위 피한 밤을 기다렸겠지.


비교적 잘 먹고, 대낮에 쉴 수 있는 도회지의 문사들이야 그렇다 치고, 장마가 와야 천수답에 물이 고이니 삼복더위에 모내기했던 농부들은 몸이 허해졌을지 모른다. 저장해둔 잡곡까지 바닥을 보이던 시기에 몸을 잔뜩 구부리며 며칠을 일해야 했으니 오죽했으랴. 그때 닭을 잡고 싶지만 내 논일을 같이 한 이웃에게 두루 대접할 정도로 덩치가 큰 건 아니다. 소나 돼지는 살림밑천이니 참고, 비슷한 처지의 농부들은 자기 집의 개를 번갈아 내놓았을 테지. 강아지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므로.


지금은 고기가 지천이다. 닭고기는 물론 쇠고기와 돼지고기도 널렸다. 해산물은 또 얼마나 많은가. 농민들의 몸도 삼복더위에 허해지지 않는다. 이양기 때문만이 아니다. 양수기와 보온 못자리 덕분에 장마철 이전에 대부분의 논은 모내기를 마친다. 천수답도 거의 사라졌다. 지독한 가뭄이 아니라면 양수기가 불필요한데, 온갖 농기계 덕분에 농번기에도 일손이 전처럼 많아야 하는 게 아니다. 초고령화된 농촌에 일 부탁할 이웃이 드문 까닭에 주로 도시의 아들이나 친지와 농사를 짓는데, 저녁마다 고기반찬이 올라왔으니 남의 집 개를 잡을 일도 없다.


도시나 농촌이나 허할 기회조차 없지만, 삼복더위가 오면 반가운 듯 개고기와 닭고기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저 의례적이거나 맛과 재미 때문이다. 손님이 북적이는 식당의 수와 크기로 볼 때, 개고기보다 닭고기 먹는 이가 훨씬 많을 텐데, 개와 달리, 지금은 시장에서 닭을 구하는 시대가 아니다. 누가 무슨 사료를 주고 어떻게 키웠는지 전혀 알 수 없고, 알려고 들지 않는 대기업 제품의 닭고기를 먹는다. 손님 대부분은 얼마나 위생적으로 처리했는지 모르면서 대기업 제품이므로 막연히 믿는다. 하지만 개의 경우는 확신하지 못한다.


사육에서 도축과 포장까지, 하루 수십 만 마리를 처리하는 대기업 제품의 닭이 과연 위생적인지 여부는 예서 따지지 말자. 근교 허름한 곳에서 고기용으로 사육하는 개 농장은 겉보기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농장 주인은 그런 지적에 펄쩍 뛴다. 의심스러우면 와서 보라고 강변한다. 과일장수에게 파는 사과 맛있느냐 물을 수 없는 법. 개 농장 주인의 말을 신뢰할 수 없는 이는 대체로 소비자가 아니다. 소비자보다 행정가, 언론인, 시의원이나 국회의원 들은 삼복 시기가 되면 개고기 도축 합법화를 논의하자고 나선다. 펄쩍 뛰던 개 농장 주인은 떳떳해질 테니 반대하지 않는 눈치다.


생각해보자. 사위 와야 잡는 닭이야말로 가장 위생적이다. 자신의 딸과 사위,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손주들이 먹을 고기가 아닌가. 내 집 일 도와준 이웃과 같이 먹으려고 시장에서 서너 마리 사거나 닭장에서 가져온 닭도 위생적이다. 하지만 누가 키웠는지 모르는 닭을 시장에서 잡아서 팔 때 문제가 된다. 식중독이 발생한 거다. 그렇다면 비교해보자. 손님 보는 앞에서 한두 마리 잡던 예전과 대기업에서 한꺼번에 처리해 냉동하는 요즘, 식중독은 언제 더 발생했는가. 마찬가지 맥락인데, 개의 사육과 도축을 제도화하면 안심할 수 있을까. 공장식으로 사육해 냉동한 개를 대형 상가의 식품매장에서 팔면 위생적이 될까.


위생만이 쟁점의 전부일 수 없다. 밀집 사육하는 닭은 서로 쪼아 상처를 입히므로, 상품성을 위해 부리 끝을 미리 자른다. 닭고기가 그렇듯, 개고기도 이윤의 극대화를 노리는 대기업에서 독점할 텐데, 두 마리만 가둬도 무섭게 으르렁거리며 죽어라 물어뜯는 개는 어떻게 사육하려 들까. 지금도 귀청을 미리 뚫고 이 몇 개를 뽑는다던데, 혹시 양처럼 순하고 돼지처럼 살찌는 개를 육종하는 건 아닐까. 수육과 전골로 구별해 부위별로 포장하거나, 핫도그가 아닌 도그버거가 떠들썩한 광고를 등에 업고 출현하는 건 아닐까. 합법화가 되면 ‘3분 보신탕을 내놓겠다고 벼르는 업자가 있는 마당이다.


문화상대주의는 온당치 않으니 개고기 조롱하는 이에 대항해 그네의 음식문화를 비난하지 말자. 한데 개고기가 지켜야 할 우리의 고유 식문화는 아니다. 그러므로 고기가 지천인 세상에서, 사람과 눈 맞추며 정 나누는 개까지 고기용으로 사육할 당위성은 없다. 입맛을 위해 생명을 끊을 명분도 약하다. 소와 돼지도, 닭과 오리도, 심지어 연어도 유전자를 조작한 옥수수와 콩을 먹인다는데, 개는 아니 그럴까. 소비자의 눈을 피해 미국산 쇠고기의 도축부산물은 수입하는 건 아닐까.


     에어컨 때문에 여름 감기가 흔한 요즘, 사육과 도축 합법화로 얻는 고기가 지나치게 많다. 그래서 지구온난화는 심해진다. 그렇다면 견과류나 제발 제철 제고장의 콩 단백질을 먹으면 어떨까. 고깃살도 절로 줄 텐데. (작은책, 20129월호)

태풍피해 없으 셨나요?
또 온다는데 걱정입니다..

 
 
 

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2. 11. 13:21

인터넷 포털에 올라온 기대 넘치는 질문 하나. “남편과 근처 육지를 향해 수영을 하는데 갑자기 옆으로 우리보다 큰 잉어가 유유히 헤엄치며 지나가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더니 육지 쪽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거예요. 무슨 꿈인지 궁금합니다.” 얼마나 용한지 알 수 없지만 이어지는 해몽을 보자니 질문한 여인은 가슴이 무척 설렜을 것 같다. “수영을 한다는 건 자신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걸 암시합니다. 바다에서 근처 육지라면 섬을 말할 텐데, 섬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목표를 상징하니 조만간에 기쁜 소식과 귀한 자손이 찾아가겠군요. 축하합니다!”

 

대개의 잉어 꿈은 해몽이 좋다. 내가 잉어를 잡거나 내 집에 잉어가 들어오면 태몽이거나 재물이 늘어난다는 의미인데, 그저 연못의 잉어를 보기만 해도 길몽이라고 한다. 나는 왜 이제까지 잉어 꿈을 꾸지 못했을까. 아쉽지만 때로 흉몽도 있다. 자신이 잉어가 된다면? 그것 참. “정신적 고통은 심해지는데 의논할 사람이 없다”는 풀이가 나온단다. 그렇듯 잉어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중국 황하 중류에 ‘용문협’이라는 좁은 3단 골짜기가 있는데, 그 곳까지 올라가는 잉어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고 한다. 잉어가 용문을 통과하듯, 과거에 급제했을 때 우리는 ‘등용문’에 들었다 했다.

 

한때 오염 한강의 대표적 지천으로 지목되던 중랑천에 잉어가 떼를 지어 올라온다고 한다. 낡은 하수관을 정비하고 고도정수 처리한 하수를 방류하자 생물학적 산소 요구량(BOD)이 12피피엠에서 3피피엠 이하로 개선되며 나타난 현상이라고 의정부 시당국은 자랑한다. 어디 중랑천뿐이랴. 2급수로 정화한 생활하수를 5.5킬로미터의 ‘시민의 강’에 방류하자 고층 아파트 숲인 부천 중동 신시가지에 어른 팔뚝보다 큰 잉어들이 유유히 지나다닌다. 시멘트 콘크리트로 유려하게 단장된 청계천에도 잉어가 모습을 드러낸다던데, 사람이 아니라 잉어의 꿈은 무엇인가. 인간이 제발 하천을 깨끗하게 사용하주길 바라는 건 아닐까.

 

잉어는 바닥에 진흙이 깔리고 물 밖으로 잎을 내미는 수초가 많은 하천의 중하류에 주로 살지만 흐름을 거의 잃은 호소도 마다하지 않는데, 덕분에 주변에서 농사를 짓던 우리네의 삶과 무척이나 가깝다. 문화의 한 영역을 차지할 정도다. 길몽과 태몽을 안내할 뿐이 아니다. 알을 자그마치 30만 개나 낳으므로 다산의 상징으로 여겼는지 선조의 화폭이나 자수에 자주 선보이고, 자물쇠의 모양이나 문양에 단골로 등장한다. 물고기가 다 그렇긴 한데, 선조가 보기에 2쌍의 수염이 품격을 높이는 잉어는 언제나 눈을 뜨고 있다. 그래서 밤이고 낮이고 주위를 지켜볼 테니 뒤주나 곳간의 자물쇠로 화했다는 거다.

 

농민의 보양식으로 하천과 저수지의 잉어는 더 없이 요긴했을 것. 버릴 것이 하나 없다고 상찬한다. 동의보감에서 허준이 기록했듯, 잉어의 살은 태아의 태동을 안정시킬 뿐 아니라 입덧을 가라앉히고 산후에 부기를 빠지게 하며 모유까지 잘 나오게 한다니 임산부에게 그 이상이 없었을 게다. 어른 팔뚝만한 크기는 작은 측에 들고, 50센티미터가 넘는 녀석이 많은 잉어. 어떤 놈은 1미터가 넘기도 한다. 그런 잉어 한 마리만 잡아도 만삭의 몸으로 뙤약볕에서 김매느라 고생한 며느리에게 부족함이 없으리라. 며느리만이 아니다. 정액에 많은 아미노산이 유난히 풍부해 정력이 강해진다니 이번엔 사내들이 반긴다.

 

고기에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동맥경화나 고혈압에 좋고 내장은 간에 약이 된다니 뚱뚱한 주당들이 흡족해할 것인데 다른 부위도 하찮게 여길 수 없다. 쓸개는 눈에 좋고 골은 이명에 효과가 있으며 뼈는 여성의 대하를 낫게 한데는 게 아닌가. 그 뿐이 아니다. 기왓장 같은 비늘은 산후 하혈을 진정시키고 피까지 아이의 종기와 부스럼을 완화한다니 백성에게 잉어는 차라리 축복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잉어 요리는 비늘을 제거하지 않은 백숙일 터. 한데 그 백숙에 잉어의 살코기는 보이지 않는다. 내장을 따로 긁어낸 잉어를 굵은 소금으로 비늘이 남을 만큼 닦아내고, 들기름으로 살짝 튀긴 몸통을 3시간 정도 푹 고아 건져 삼베로 짜내면 진한 곰국이 완성된다. 거기에 인삼, 대추, 밤 들을 넣고 은은하게 다시 곤 국물이 바로 잉어백숙이다. 어찌 몸에 좋지 않을 수 있으랴.

 

잡식성으로 아무거나 잘 먹고 게다가 쑥쑥 자라니 단백질원이 부족한 농경사회에서 더없이 훌륭한 양식어였건만, 욕심이 과했나. 1970년대 흔히 향어라고 말하는 이스라엘잉어를 정부에서 들여와 전국의 댐과 호수의 가두리 양식장에 풀어놓은 것이다. 한때 횟감으로 인기가 높았지만 시들해지면서 일부가 자연으로 빠져나갔는데 그만 토종 잉어와 만나 잡종이 만들어낸 게 아닌가. 그나마 다행인지 양식용으로 개량한 탓에 우리 자연에서 번식이 활발하지 못하다고 한다. 배스나 블루길처럼 급작스레 퍼져 하천 생태계를 점령하지 않았다는 건데, 여전히 전국 하천의 낚시터에서 제법 잡힌다.

 

잉어를 전문으로 잡는 낚시꾼에게 들깻묵가루가 인기인 모양이다. 들깻묵가루와 붕어떡밥을 9대1로 푸석푸석하게 반죽해 낚싯바늘 바로 뒤에 덕지덕지 묻히고 던지면 커다란 잉어가 영락없이 걸려들기 때문이라지만 문제는 늘 욕심이다. 빼곡히 몰려드는 낚시꾼들이 던지는 들깨묵떡밥으로 중랑천이 다시 오염된다는 게 아닌가. 욕심 사나운 강태공들은 낚시로 만족하지 않는다. 주위 눈총에 아랑곳 하지 않고 그물을 던지거나 아예 산란을 가로막는 자도 있다. 아카시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4월말부터 수초가 무성한 하천 가장자리로 알을 낳으려 허겁지겁 몰려드는 잉어를 뜰채를 떠올리는 인간, 잉어가 볼 때 천하의 불한당이다.

 

세금으로 단장한 하천을 구름에 달 가듯 지나가는 잉어들을 보며 시민들은 어렴풋하나마 자연을 느낀다. 그런 시민들은 먹이를 던져주며 흐뭇하게 바라볼 뿐 그곳에 낚싯대를 드리우려는 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한 마리에 수백에서 수천 만 원을 호가하는 비단잉어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바닷물이 섞이는 강서습지생태공원에 곧 어른 팔만한 잉어들이 첨벙대며 몰려와 방문자들의 탄성을 자아내겠지. 바야흐로 뭇 생명이 잉태되는 4월. 우리 민물고기의 대표인 잉어도 때를 놓치지 않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전원생활, 2010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