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9. 11. 13. 01:36

 

올해 단풍이 유난히 붉고 아름다웠다. 강원도 높은 산부터 붉게 물들이던 단풍이 남도로 이어지며 절정을 이뤘다. 계절이 순조로웠기 때문이라고 기상 전문가는 풀이했다. 겨울은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올 봄과 여름도 가을처럼 계절다웠다. 봄엔 따뜻했고 무더웠던 복을 지나 특별한 이상기후도 없었다. 실로 오랜만에 만난 계절다운 계절의 연속이었다.

 

작년 이맘 때 우리 가을은 늦여름처럼 더웠다. 늦더위가 11월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러자 남동산업단지의 유수지에 구더기가 들끓었고 그 구더기를 먹은 철새들이 연쇄적으로 죽어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썩은 유수지에 발생하는 구더기도 찬바람이 돌면 없어져야 정상인데 철새가 날아오도록 이어졌고,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시베리아 인근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겨울철새들은 전처럼 갯벌 주변의 습지에 허기진 상태에서 내려앉았을 텐데 반가운 마음으로 구더기들을 허겁지겁 먹었을 것이다. 한데 그 구더기가 보툴리누스균에 오염되었을 줄이야.

 

보툴리즘 독소에 마취된 꼼짝도 못하는 철새가 죽어갈 때 옆구리를 뚫고 썩은 물로 흘러나가던 구더기는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내려앉은 철새를 하늘에서 보고 반갑게 내려온 철새들이 그 구더기를 신나게 먹은 뒤 연거푸 죽어나가는 일이 이어진 것이다. 자원봉사 점수를 원하는 중고등학생을 위해 여는 환경단체의 바깥 행사는 보통 수업이 없는 토요일을 고르는 게 보통이지만 작년 이맘때 환경단체는 마음이 급했다. 철새의 죽음이 이어지는 걸 차마 볼 수 없었기에 수업을 있는 토요일에 철새 구조작업에 돌입했고, 그날 추적추적 내리는 차가운 가을비를 맞으며 죽은 철새를 걷어내고 속절없이 죽어가는 철새들을 구조했으며 구더기를 먹지 못하게 소리소리 질렀던 청소년들은 자연의 생명가치에 대한 연민의 정과 함께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직까지 올해의 계절은 순조롭다. 도시의 가을도 아름답게 지나갔다. 새벽까지 내린 비가 말끔하게 갠 어느 오전, 평상시처럼 집에서 일찍 나와 인적이 드문 보행자도로를 따라 지하철 몇 정거장을 걷는데, 문득 도로를 덮은 가로수 낙엽들이 다채롭다는 걸 느꼈다. 느티나무와 포플러, 은행나무와 회화나무, 아파트단지 둔덕에 심은 소나무와 잣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과 사이사이의 무궁화 낙엽이 흩어져 푹신하게 밟히는 보행자도로는 멀리까지 한 폭의 가을 그림을 펼치고 있지 않던가. 막 개기 시작한 파란 하늘은 양떼구름을 연출해 누구라도 지나가는 이가 있다면 함께 감상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실로 모처럼 도시에서 새하얗게 뭉친 구름을 보았던 거다.

 

가을비가 내리면 보통 추워지기 마련인데, 그날은 따스했다. 그런 날씨가 사나흘 이어진다면 철모르는 개나리가 노란 꽃잎을 몇 개 펼칠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꽃눈은 겨울을 맞을 것이다. 비 내린 뒤에도 따뜻했던 그 가을 날씨가 기상이변으로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가을이 깊어진다고 빗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나가듯 수은주를 일방적으로 내리기만 하는 건 아니다. 해안에서 바닷물이 하루에 두 번 밀거나 썰 때처럼 아침저녁 내려갔다 오후에 오르던 수은주는 어떤 날은 더 떨어지고 어떤 날은 덜 떨어지며 겨울로 접어들 게다. 삼라만상의 생명들은 계절의 유연한 변화에 이미 적응되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얇은 옷을 가방에 하나 더 챙겨 넣고 낙엽 푹신한 보행자도로를 걸었던 나도 물론이고.

 

어느 해 가을이었을 거다. 강원도를 지나는 고속도로 휴게소였는데, 삼삼오오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주전부리를 입에 넣으려고 애를 쓸 때 문득 하늘에 걸린 뭉게구름이 눈에 띄게 푹신하다는 걸 느꼈고, 하늘을 대고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내 행동을 재미있게 보는 일행에게 이제 저런 뭉게구름을 볼 날이 얼마 없을 거라 말했는데, 비 개인 가을철 강원도로 갈 일이 없어서 그런지 그때처럼 푹신한 뭉게구름은 본 적이 없다. 사실 가을이 무르익던 날 문득 보았던 양떼구름 사이의 파란 하늘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우리 하늘을 언제는 깊은 바닷물처럼 코발트빛이라고 했는데, 그날은 코발트가 아니었다. 그저 빛바랜 파랑이었다. 그나마 가장자리에 붉은 기운을 머금은. 간밤에 내린 비 정도로 도시의 찌든 매연을 모두 몰아내지 못한 것이리라.

 

깊게 파란 하늘은 2월 스페인과 독일에서 보았다. 울울창창했던 숲을 15세기 대항해 시절 모두 잘라낸 스페인의 바닷가는 1년에 비가 몇 차례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눈이 부신 지중해의 햇살은 따사로운 2월에도 집집마다 창을 닫게 만들었는데, 낮은 지붕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어릴 적 가을걷이 마친 주안의 들판에서 가오리연 날리며 보던 하늘과 색이 같았다. 루루 지방의 오염 때문에 덴마크와 스웨덴의 호수가 더러워질 지경이었다는 독일의 하늘도 진하게 파랬다. 펜대를 올리면 파란 잉크가 고일 것처럼. 애국가 3절에 나오는 우리의 하늘이 왜 스페인과 독일에 와있는지 약이 올랐다. 자동차도 많고 공업단지도 큰 그네들은 언제 우리 하늘을 가지고 간 거지. 언제 바꿔친 거지.

 

높은 건물을 결코 자랑하지 않는 그네들은 자동차는 물론 공장의 굴뚝을 철저하게 단속한다고 들었다. 우리도 많이 나아졌다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영흥도로 가려고 시화방조제를 건널 때 오른편 차창을 보면 인천의 하늘이, 왼편 차창을 보면 화성 쪽의 하늘이 보인다. 시커먼 하늘 아래 썩은 이빨처럼 삐죽삐죽 아파트가 솟은 곳이 연수구고 나는 거기에 산다. 한데 화성의 하늘은 그나마 파랗다. 맑은 날 김포공항 하늘 위에서 창문을 열고 먼저 내리는 비행기를 보라. 시커먼 공기층으로 자맥질한다. 저기로 가면 폐가 남아날 것 같지 않은데 곧 내가 탄 비행기도 바퀴를 내린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걸까. 독일에서 보름 정도 있다 돌아오니 남동산업단지를 옆에 둔 연수구의 공기에서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가 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주변 냄새에 금방 익숙해지는 코는 며칠 지나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진정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닐 텐데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사람의 신체는 다소 유연하므로 충분히 이겨내기 때문이라기보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개구리처럼 모르고 지나가는 건 아닐까. 공기뿐이 아니다. 파리도 외면하는 농약 묻은 포도를 즐겨먹고, 구더기를 죽일 정도로 강한 독성이 남은 밀가루로 과자를 만들어 먹는 우리 인간은 자신의 몸이 축나고 있다는 사실을 여간해서 깨닫지 못한다.

 

고맙게도 계절은 또 이어진다. 가끔이던 기상이변이 일상으로 반복돼도 겨울은 가을보다 춥고 여름은 봄보다 더울 것이다. 사람의 지나친 개발로 지구가 연실 더워지지만 아직 감내할 범위 내에 있다. 우리의 몸에 그 정도 유연성은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계속 견뎌낼 수 있을까. 아토피와 조류독감은 이제 자연스러웠던 시절로 돌아가라고 거듭 경고하는데, 인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4대강은 막히고 갯벌은 메워지며 땅은 인간이 살포하는 독약으로 죽어가는데 하늘은 더럽기 짝이 없다. 도로와 골프장으로 생태계의 뭇 생명가치들은 자취를 감추는데 텔레비전 오락물에 정신이 빼앗긴 사람은 통 하늘을 볼 줄 모른다.

 

무던한 자연은 고맙게도 인간에게 기회를 뉘우칠 여전히 준다. 아직까지는 그런데 언제까지 인내해줄 것인지. 계절이 계절다울 때, 생태계가 살아 있기에 자연스러웠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 돌이킬 수 있을 시간이 남았을지 모르나 그 순간은 그리 충분해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의 폐쇄된 공간에서 당장 일에 치어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도 가끔은 하늘과 땅과 생태계의 어제와 오늘을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의 창’을 내주길 바란다. 생태계에서 태어난 사람도 생태계의 일원일 때 가장 건강하므로. 그건 우리의 자식들도 마찬가지이므로. 벌써 12월이 다 지나간다. 곧 찬 바람이 불겠지. (인천in, 2009년 12월 ?일)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9. 4. 19. 03:53

 

기상 관측 이래 4월 최고의 더위가 기상 관측 이래 최고의 3월 더위 이후에 맹위를 떨칠 때, 남동공단유수지와 길 건너 외암도유수지를 찾았다. 작년 늦은 가을에서 이른 겨울, 기억을 따라 내려왔던 겨울철새들이 떼로 죽어나가 인천의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발을 동동 굴려야 했던 곳이다. 지금 그곳은 목하 공사 중이다. 아암도에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확장하느라 파일 내리치는 굉음이 고막을 자극하는 가운데 수많은 중장비가 들락거린다.

 

너른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남동공단은 바다를 연하는 남쪽 자리, 승기천이 갯벌로 빠져나갔던 곳에 남동공단유수지를 넓게 남겼다. 빗물을 완충하고 필요하다면 다시 채워둔 물을 사용하려는 의도였지만 한번도 활용된 바는 없다. 사실 갯벌을 평탄하게 매립한 곳에 유수지는 필요하다. 풍수해가 있을 수 없는 갯벌 위에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깔았으니 당연하다. 내리는 비는 어디론가 낮은 곳으로 흘러야하는데 매립지에서 마땅히 갈 곳이 없다. 넘치는 빗물이 공장이나 건물에 스며들도록 놔둘 수 없으니 빗물을 받는 하수도는 유수지로 이어지게 만든 것이다.

 

남동공단의 남쪽에 조성된 유수지는 한쪽으로 편중되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게다가 빗물을 받아야 하는 관에 공장 폐수관로를 잘못 이어놓는 일이 초기에 잦았다. 조성되자마자 폐수가 고이며 악취가 진동했으니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인근에 승기하수종말처리장이 생기면서 사정이 나아졌다. 남동공단과 연수구 아파트단지에서 발생한 오폐수가 정화돼 모이고, 하수관로가 다시 정비되면서 빗물이 흘러들자 남동공단유수지가 개과천선한 것이다. 아직 악취는 남았어도 철새가 날아들고, 철새를 반기는 시민들이 보전의 목소리를 높이기에 이르렀다.

 

조수간만의 차가 유난한 인천의 바닷물이 오랜 세월 밀고 썰며 만들어낸 남동공단 이전의 인천갯벌은 참으로 완만하면서 넓었다. 육지에서 쏟아지던 흙과 모래를 먼 바다로 가지고 나갔다 다시 바닷가로 되가지고 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갯벌에는 생명들이 가득했다. 그 생명들이 먹고 숨 쉬며 후대를 이어오면서 갯벌은 육지에서 쏟아지는 영양염류를 정화했고 갯벌을 구성하는 막대한 식물성플랑크톤은 대기를 정화했다. 그 갯벌의 일부가 남동공단으로 매립돼 사라졌어도 나머지가 광활했을 때 갯벌을 미처 떠날 수 없었던 주민들은 맨손으로 수많은 어패류를 채취해왔고, 덕분에 시민들은 인천의 풍요로웠던 풍미를 조금이나마 기억할 수 있었다.

 

송도신도시를 위해 남동공단 너머의 갯벌까지 대부분 매립되면서 유구했던 인천의 맨손어업은 일거에 자취를 감췄다. 사람보다 먼저 깃들었던 생명들은 운 좋으면 화석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남동공단보다 훨씬 광활한 송도신도시 부지에 공원은 넓어도 유수지가 없지만, 해안도로와 송도신도시 부지 사이에 물길을 조금 남겼다. 거기가 바로 겨울철새의 가녀린 안식처 외암도유수지다. 인근에 조그맣게 남은 송도11공구, 소래포구와 연한 ‘고잔갯벌’에 밀물이 높아질 때 바닷물의 일부가 교환되기는 하지만 허구헛날 정체되는 외암도유수지가 빗물을 완충할 능력은 없을 것이다. 드넓은 송도신도시 부지의 가운데를 관통해 바다로 이어지는 공원이 그 역할을 대신할 텐데, 확장되는 해안도로에 침식되는 외암도유수지는 송도신도시 7공구와 연접한 곳에 갈대가 무성하다. 지친 겨울철새들에게 쉼터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인천의 오랜 체취가 사라진 송도신도시 부지에 갯벌센터와 컨벤션센터가 들어섰고 초고층 아파트단지가 완공된 후에 151층 쌍둥이 빌딩이 자리할 예정인데 아마도 유전자 어디에 자리잡았을 기억을 가다듬는 생명들이 인근의 습지에 깃든다. 호수가 얼어붙기 시작하는 시베리아를 떠나 지금의 남동공단과 송도신도시 일원의 갯벌로 해마다 찾아오는 겨울철새가 그들이다. 남은 곳이 고작 고잔갯벌이고 물이 고이는 쉼터가 겨우 남동공단유수지와 인근의 좁디좁은 외암도유수지에 불과하더라도 그들에게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보톡스. 전직 대통령도 처방했다니, 주름살을 없애는 무슨 신비의 약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독약이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보툴리눔 독소. 그 독소를 충분히 희석한 보톡스는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임상에 적용시킨 무수한 의약품 중에서 하나로, 성형에 이용하자 각광받은 예가 될 것이다. 성형에 적용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을 보톡스는 근육을 마비시키는 위험한 독성을 이용한다. 보톡스를 주입하면 마비된 근육은 사용하지 않을 테니 위축될 터. 그런 약효로 사각턱이 잠시 갸름해지고 주름이 한시적으로 제거된다는 거다. 성형외과 의사들은 안전을 장담하지만, 참으로 과감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농도가 문제일 뿐 모든 물질은 독약이라고 어떤 화학자는 말한다지만 아무리 희석한다 해도 분명한 독극물이라면 환자 이외의 다수에게 예뻐지라며 처방할 의사는 없을 것 같은데, 보톡스를 주사맞는 이는 과연 환자일까. 차라리 고객이라 해야 옳지 않을까. 여기에서 그런 거 따지지 말자. 하기야 강력한 독성물질인 불소도 적당한 농도로 수돗물에 섞으면 이가 튼튼해진다고 주장하는 의사도 있다. 문제는 수돗물에 들어가면 싫어도 무차별적으로 마실 수밖에 없으므로, 선택의 문제에 부딪힌다는 점이다. 따라서 불소가 이를 튼튼하게 한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분명하더라도 원하는 사람에게 제한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아무도 늙어가는 걸 좋아할 리 없다. 가능하다면 얼굴에 주름이 없기를 바란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불소와 같은 맥락으로 수돗물에 보톡스를 안전한 농도로 섞자는 발상은 나오지 않는다. 가격이 높거나 먹어 효과를 보는 약품이 아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몸에 축적되는 불소는 나이든 이의 뼈를 부러뜨릴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처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보톡스의 부작용 사례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그런데 분명한 건, 보툴리눔 독소는 심각한 식중독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보통 상한 음식이나 통조림에 숨어있던 포자로 번성하는 미생물, ‘클로스트리움 보툴리눔’이 분비하는 보툴리눔 독성은 사린가스보다 10만 배나 강해 몸무게 1킬로그램 당 천분의1 마이크로그램으로 실험동물의 절반을 죽게 만들 정도라고 한다. 1995년 3월 동경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하여 12명을 사망케 하고 5천여 명을 호흡곤란에 빠지게 한 오옴진리교는 그 전에 보툴리눔 독소를 살포하려 몇 차례 시도했다는데, 보툴리눔 독소는 위장 뿐 아니라 호흡기를 통해 몸에 들어와도 문제를 일으킨다. 먼저 발음과 발성이 마비되고 동공이 확장돼 시야가 흐려지며 골격근이 마비되다 호흡이 급격히 불가능해지면서 급기야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복어 독 테트로도톡신처럼, 정신은 명료한 가운데 몸이 마비되면서 죽어가는 보툴리눔 독소증을 보툴리즘이라고 말한다. 젊음을 아름답게 유지하려는 욕망은 보톡스를 마다하지 않는데, 처방하는 의사나 처방을 받는 환자(어쩌면 고객)는 그 치명성을 모르는 것인가, 알면서도 감당하는 것인가. 아름다움이 반드시 젊음만은 아니지만 내면보다 외모의 아름다움을 향한 사람의 집착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인가. 보톡스는 백혈병이 깊어진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죽음으로 이끈 장미 가시보다 더욱 치명적인, 팜므파탈의 유혹인지 모른다.

 

보톡스는 안전하게 희석한 사람의 성형용 의약품일 따름이라고 의사들이 주장하니 이제 언급을 자제하기로 하고, 보툴리즘은 어느 동물에게나 치명적인데, 인천의 갯벌에 날아온 겨울철새에게 보툴리즘처럼 치명적인 사건은 이제껏 없었다. 신선한 풀을 찾아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누와 순록 떼처럼, 섭생과 양육을 위해 크릴새우가 넘치는 남극을 찾아갔다 다시 적도로 돌아오는 혹등고래처럼, 시베리아의 호수가 단단히 얼어붙기 전에 청둥오리, 황오리, 흰죽지, 기러기 들은 수천 킬로미터를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쉼 없이 날아 우리나라 서해안을 찾는다. 거기에 갯벌이 있기 때문이다. 무리를 이끌고 전에 내렸던 곳을 당도해 하늘에서 바라보니 온갖 중장비들이 몰려들어 갯벌을 떠들썩하게 매립한다면 그들은 당혹스러울 것이다. 허기지고 지친 몸은 쉴 장소로 찾아 더 날아가야 한다. 사람이나 철새나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쉴 자리를 찾지 못하면 더욱 피곤해진다.

 

겨울철새의 처지에서 생각해보자. 숨이 턱밑까치 차오르는데 남동공단유수지와 외암도유수지가 눈에 띈다. 드넓었던 갯벌이 사라진 뒤에 비좁게 물이 고였어도 거기엔 사람과 중장비가 들락거리지 않고 작년에 내려가 먹이도 구한 기억도 있다. 대부분의 철새들은 시화호나 화옹호, 천수만이나 멀리 금강하수의 더 넓은 곳을 찾아 남쪽으로 힘겹게 내려갔지만 거긴 먼저 도착한 겨울철새들로 북적인다. 갯벌이 자꾸 줄어드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리라. 더 날아갈 수 없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니 오호라! 먼저 내려간 새들이 이미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가. 지친 몸을 어서 쉬려면 예도 감지덕지라 여긴 철새들이 비로소 안심하고 서둘러 내려간다.

 

아뿔싸. 그런데 거기에 보툴리눔 독소가 있을 줄이야. 썩은 통조림이 따뜻해질 때 번성해야 할 보툴리즘 균이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늦은 가을에 창궐한 것이다. 그것도 플랑크톤이 가득한 갯벌에서. 더위로 썩어버린 갯벌에 만연한 보툴리눔 독소가 겨울을 앞둔 계절까지 남아 있으리라고 창공에서 헤아릴 방법이 없었던 겨울철새는 단순히 운이 나빴던 걸까. 앞서 내려앉은 철새들이 평화롭게 보여 내려갔을 뿐인데. 내려와 보니 웬 구더기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허기진 철새에게 구더기는 반가운 영양식임에 틀림없으니 허겁지겁 먹었을 테고, 이윽고 구더기는 보툴리눔 균을 겨울철새에 전파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신은 멀쩡한데 온몸은 마비되니 날아오르지 못하고 공포에 질려 물에 떠있을 뿐인데 창공에서 그 모습을 본 철새들이 연이어 내려온다. 그리고 구더기를 먹는다. 그 구더기는 유수지에 맥없이 떠있는 철새의 옆구리를 뚫고 빠져나온 것이다.

 

자원봉사 점수가 없다면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환경단체에서 주관하는 행사현장에 모여들 리 없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할당된 시간을 채워야하는 까닭에 하릴없이 관공서 유리창을 닦던 학생들을 불러모으려면 환경단체는 수업이 없는 토요일, 이른바 ‘놀토’를 택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럴 여유가 없이 다급했다. 내려오지 말라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막대기를 하늘에 대고 정신없이 휘둘러도 아랑곳하지 않는 철새들은 당연한 듯 구더기를 먹지 않던가. 온몸이 마비돼 죽은 철새의 몸은 구더기로 뒤범벅이고 악취는 진동하건만 철새들은 또 내려온다. 이러다가 안 되겠다 싶어 황급히 자원봉사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놀토가 아니어도 와주는 학생이 있겠지. 한 사람이라도 더 와서 한 마리라도 더 날려 보내야하고, 죽은 철새는 한시바삐 수거해야 한다. 그래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토요일 오후 남동공단과 외암도유수지에 약간의 학생들이 모였다.

 

겨울이 다가오는 계절에 내리는 비는 뼈마디를 파고들고 시커멓게 썩은 갯벌에 발이 푹푹 빠지니 여간 힘겨운 게 아니지만 사람이 다가가도 날아오르지 못한 채 눈만 껌뻑이며 죽어가는 철새들에 동정심을 느낀 학생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갈대숲 사이 여기에도 저기에도 썩어가는 사체들, 분명히 살아 있지만 옆구리에서 구더기가 스멀거리는 철새는 구조해도 소용이 없었다. 머리를 잡아 올리면 다리와 몸이 떨어져나가며 죽고 마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다. 어쩌다 온전해 보여 번쩍 안아올린 철새도 맥을 못 추기는 마찬가지다. 짧아지는 해는 어느새 서편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마음이 급해 안절부절못하던 자원봉사 학생들의 눈매는 어느새 촉촉해졌다. 빗물 때문이 아니다. 속절없이 죽어가는 철새들에 속죄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구한 철새는 죽어가는 철새의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본격적인 겨울이 다가와 구더기가 사라지기까지 내려온 철새는 그 이후에도 속절없이 죽어나갔다. 날씨가 쨍하고 추우면 몸이 성한 철새들은 남쪽으로 날아갈 테지만 이번 겨울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 겨울철새에 닥친 보툴리즘은 남동공단유수지와 외암도유수지에서 한정하지 않았다. 안양천에도, 한강에도 철새들이 떼로 죽었다. 이상 고온으로 오염된 물의 용존산소가 고갈되자 보툴리즘을 일으키는 균이 이상 번성했기 때문이라고 보건환경연구소는 덤덤하게 밝혔지만 전문가의 원인 분석은 대개 거기까지다. 이상 기온이 계속되거나 심화되는 근본 이유는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니 철새가 죽어나간다고 가슴앓이 하지 않고, 대책을 세우지 못해 발을 동동 굴리지 않는다.

 

 

 

인천에서 영흥도로 가려면 시화방조제를 건넌다. 그때 왼편 차창은 화성의 파란 하늘을, 오른편 차창은 인천 연수구의 시커먼 하늘을 뚜렷하게 대비시킨다. 그 시커먼 하늘 아래 유수지에서 겨울철새들이 떼로 죽었다. 왜 그런 하늘을 택했을까. 인천에서 조금 더 먼 깨끗한 하늘로 날아와 주민들이 팔 걷고 보호하는 시화호나 지자체 차원에서 도래지를 관리하는 천수만과 금강하구로 날아갈 것이지. 철새로 붐비는 천수만과 금강하구에 내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서열이 낮았던 걸까. 아무튼, 저토록 오염된 하늘을 뚫고 날아왔으니 지칠만하기도 하겠다. 날아온 것만으로 용하고 고맙다.

 

영흥도에는 현재 80만 킬로와트급 석탄화력발전소 4기가 가동 중이다. 화력발전소 부지 확보를 위해 영흥도 해변의 갯벌을 매립하려 할 때, 주식회사 남동화력은 지키지 않을 협약을 매립허가권을 가진 인천시와 맺었다. 우선 2기는 석탄을 연료로 하는 발전소로 짓고 나머지는 청정에너지를 원칙으로 논의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건만 부지를 넓게 매립한 후 약속이행을 외면한 것이다. 법적 구속력 없는 협약을 남동화력이 지키지 않은 것인데, 인천시는 협약의 한계를 진작 알고 있었다. 오염된 대기 아래에서 숨쉬고 살아야 하는 인천시민은 누구를 원망하야 하나. 한데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정부에 석탄화력 4기를 추가해달라고 신청했다 2기의 건설을 허가받은 남동화력은 모두 6기에서 만족할 자세가 아니가 때문이다. 8기를 늘 가동할 수 있도록 12기를 확보하려는 의지를 은근히 드러내곤 하지만 인천시는 거기에 대해 어떠한 발언권도 행사할 수 없다.

 

인천시는 수도권의 대기를 청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크고 작은 건물의 주인에게 보일러를 교체토록 종용했지만 그 효과는 영흥도에서 2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동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2기가 추가된 현재 모두 4기가 24시간 가동되고 있다. 황이나 질소산화물의 배출 총량이 늘어나지 않았으니 악화된 건 아니라고 남동화력은 강변하고 싶겠지만 그건 대기에 한한다. 온배수를 따져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고온 고압의 수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발전소는 터빈을 빠져나온 수증기를 식혀야 하는데, 그를 위해 깊은 바다에서 차가운 물을 퍼올리고, 수증기를 식히고 데워진 물을 인근 바다로 내보낸다. 그 물이 온배수다. 발전용 터빈이 늘어날수록 온배수의 양이 늘고, 그만큼 주변 해역의 수온은 오를 수밖에 없다.

 

영흥도에 화력발전소가 가동한 이후 축적된 모니터링 결과가 아직 충분하지 않아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겠지만, 현재의 4기에서 6기로, 앞으로 8기에서 어쩌면 12기로 발전용량을 늘일 경우, 인천 앞바다의 수온은 예전에 없이 상승할 테고, 생태계는 괴멸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수온 변화는 해양 생태계의 기반인 플랑크톤의 분포에 변화를 초래하게 만드는데 영흥도 석탄화력발전소의 온배수는 지구온난화로 생태계 안정성이 흔들리는 바다를 더욱 교란할 게 틀림없다. 게다가 시화호와 송도신도시 개발로 대부분의 인근 갯벌마저 사라진 마당이 아닌가.

 

최근 겨울철새들의 집단 폐사가 끊이지 않는다. 2000년 천수만의 가창오리 만 여 마리가 죽은 사건을 필두로 제주도와 한강, 안양천과 탄천에서 수십에서 수백 마리의 철새들이 한꺼번에 죽어간다. 농약이나 밀렵꾼의 독극물도 빼놓을 수 없고 지구온난화로 이동 시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 이유도 배제할 수 없지만, 광범위한 갯벌 매립으로 내려앉을 곳을 찾지 못한 게 근본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얼마 남지 않은 갯벌마다, 광활하게 매립한 지역에 넓게 조성한 저수지마다 철새들이 운집되었으니 바이러스의 창궐은 그만큼 쉽다. 기력이 쇠진한 상태에서 도착한 철새들의 면역이 약화된 상태가 아닌가. 보툴리즘과 더불어 가금콜레라도 겨울철새들을 위협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방역당국을 긴장시키는 조류독감이 반복되는 이유의 설명이기도 하다.

 

이번 봄에 우리 땅에서 조류독감이 창궐하지 않았다. 조류독감에 감염된 철새가 없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동하면서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양계장에 옮기지 않은 모양인데, 올해는 이대로 넘길 것인가. 내년 이후에도 마냥 안심할 수 있을까. 서해안에 갯벌이 광활했을 때 철새는 조류독감을 양계장에 퍼뜨리지 않았다. 조류독감에 걸린 철새 또한 면역이 지나치게 약화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어느 정도 앓다 이내 회복되어 돌아갔을 것이다. 농가를 돌아다니며 벌레를 잡아먹는 닭들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지금 마당에 놓아기르는 닭은 거의 없다. 용도에 따라 극단적으로 육종한 까닭에 유전자 다양성의 폭이 현저히 좁아진 닭들만이 사육조건을 엄격히 관리하는 축사에 갇혀 사육될 따름이다. 그런 닭은 질병에 매우 취약하다. 철새의 배설물에 섞인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넘어진다. 올 봄에 시베리아로 떠난 철새들이 조류독감을 전하지 않았다 해도 올 겨울에 다시 찾을 철새들도 그럴지, 알 수 없다. 시베리아가 아니라 우리의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남동공단과 외암도유수지에서 겨울철새들이 맥없이 죽어나갈 때 가까운 시화호에도 철새 천여 마리가 무더기로 죽었다. 바싹 긴장한 당국은 조류독감 바이러스나 보툴리눔 균을 먼저 의심했으나 간세포의 괴사를 유발하는 살모넬라 균에 의한 패혈증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살모넬라 균이 창궐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는데, 한 환경운동가는 이의를 강하게 제기했다. 그는 한국수자원공사가 ‘멀티테크노 단지’를 만들기 위해 호수 주변에 ‘순환골재’라는 이름하에 15톤 덤프트럭 8000대 분량을 매립한 폐콘크리트에 그 혐의를 둔다. 노출된 사람도 위험에 빠지게 하는 폐시멘트 독성이 때문이라는 건데, 어느 주장이 맞든, 결국 분별없는 개발이 근본 원인인 셈이다.

 

 

 

7년 전, 보툴리즘으로 71마리의 저어새가 대만에서 집단 폐사했을 때, 정부의 체계적인 조사에 응한 전문가들은 “서식지의 단순화와 먹이자원의 고갈에 의한 밀집화 현상”을 원인으로 지목하며 분별없는 해안개발에 경고했다. 환경단체 외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남동공단과 외암도유수지에서 겨울철새들이 죽어나가기 한달 전부터 우리나라를 중간 경유하는 도요새와 물떼새 종류들이 먼저 죽은 적 있었다. 정확한 조사가 없었기에 보툴리즘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어도, 사람에 의한 서식지 파괴와 오염에 의한 먹이 부족이 원인일 게 틀림없다. 거기에 지구온난화가 가중되었을 것인데 인천시는 마지막 남은 고잔갯벌마저 송도신도시 부지로 편입시키려고 혈안이다. 철새들이 죽어갈 때 누군가 보툴리눔 균은 새를 마비시켜 죽일 뿐 사람에 해를 마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죽은 새의 몸에 있는 균이 건강한 사람에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믿음이었겠지만 사실 무모했다. 별 탈 없이 자나가 다행이었지만, 철새가 사라지는 환경에서 사람인들 편안할 수 있을까. 초고층빌딩을 편리하게 유지하게 하는 전기가 충분하다면 비록 자연이 황폐한 곳일지라도 사람의 행복은 내내 보장될까.

 

올 2월 ‘송도갯벌을 지키는 시민모임’은 동춘동의 평생학습관에서 특별한 사진전을 개최했다. ‘인천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모임’과 ‘인천녹색연합’의 손을 잡고 고잔갯벌을 포함하여 남동공단유수지와 외암도유수지를 찾아오는 야생조류를 촬영해온 성과를 골라 “인천의 마지막 갯벌, 송도에 오는 아름다운 새 사진전”을 연 것이다. 그들은 소박한 사진집에서 “그동안 우리 주변에 이렇게 아름다운 새들의 세상이 있었음을 깨닫고 나누지 못했던 자연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바램”을 전하면서 “사라져가는 갯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깃들여서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생명들을 기록”했다고 말한다. 고잔갯벌마저 매립되면 인천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검은머리갈매기, 장다리물떼새, 알락꼬리마도요와 고방오리, 혹부리오리, 넓적부리들로, 보툴리즘으로 희생된 무리의 목록과 같았다.

 

인천에서 오래 살아온 시민들은 아암도를 기억한다. 지금은 해안도로에 보잘 것 없는 혹처럼 붙었지만 매립되기 전에는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을 따라 가족이나 친구, 어쩌다 애인의 손을 잡고 한두 번 정도는 다녀왔을 곳인 까닭이다. 아암도를 다녀온 후 낙섬에서 석양을 바라볼 수 있던 인천은 지금 없다. 매립돼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추억도 차차 삭으러들 것이다. 외암도는 아암도에서 밖으로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이라는 뜻인지 알 수 없는데, 그 이름을 딴 유수지에서 땀을 흘린 자원봉사자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구조한 겨울철새들은 올 겨울에도 인천의 갯벌을 찾으려 할지, 걱정이다. 외암도유수지와 남동공단유수지는 시방 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더 넓고 빠른 도로, 더 높고 화려한 건물에 둘러싸일 철새도래지는 목하 성형수술 중이다. 보톡스를 맞는다. (황해문화, 2009년 여름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3. 20. 00:52

 

1918년, 지금보다 사람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지구촌에 감당할 수 없는 독감이 퍼졌다. 이름하여 ‘스페인 독감’. 스페인 연구진이 분리해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지 유독 스페인에 환자가 많았던 건 아닌데, 연구자에 따라 2천만에서 무려 1억 가까운 인구가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미국인 평균 수명을 10년이나 단축했던 당시의 지구촌 인구가 10억이었다고 하니, 스페인 독감의 무서운 위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0만 명 이상 숨진 유럽은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다. 오랜 대치 속에서 오물과 배설물이 뒤섞인 참호에 번진 독감은 수많은 젊은이의 희생을 불렀지만 1200만 명 이상 사망한 인도의 상황은 끔찍했을 것이다. 막 생산한 곡물을 영국에 빼앗기듯 수출해야 했던 인도에서 영양실조로 시달리는 농민들이 독감으로 먼저 쓰러졌고, 날마다 수백구의 시체가 강으로 흘러내리는 걸 보며 공포에 질린 농민들이 도시의 슬럼으로 몰려나갔지만 그 길이 재앙일 줄이야. 아무런 위생 시설이 없는 슬럼에 독감이 번지자 주검이 한꺼번에 뒤엉킨 참상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스페인 독감의 희생자가 많았던 이유를 오랜 굶주림으로 면역력이 약화된 사람에게 바이러스가 집중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비슷한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해마다 굶주려 죽는 이가 3천만을 헤아리고 만성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가 8억에 이르는 지구촌에서 위생 상태가 매우 불량한 슬럼에 몰려사는 형편이 아닌가. 독감이 만연할 조건은 이미 충분하다는 뜻인데, 스페인 독감은 인간에서 인간 사이로 퍼져나간 조류독감이다. 비슷한 독감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걸 천만다행으로 여기는 전문가들은 스페인 독감과 같은 질병이 다시 창궐한다면 당장 1억 이상의 인구가 희생될 것으로 염려하는데, 몇 년 이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확신한다.

 

에이아이(AI, avian influenza)라고 말하는 조류독감은 명색이 조류독감인데 왜 사람을 공격할까. 그건 바이러스의 놀라운 변화 능력에 원인이 있는데, 《조류독감》(돌베개, 2008년)을 쓴 마이크 데이비스는 조류독감이 유발하는 위기의 핵심을 “지구적 규모의 농업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생태적 조건에 확고하게 적응한 치명적인 변종 독감이 새로운 유전자를 찾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능수능란하게 변하는 조류독감은 환경 적응력이 매우 뛰어나 어떤 상황에서 만나는 새로운 숙주라도 능히 공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호주의 풍뎅이가 사탕수수가 가득한 낯선 환경에 금방 익숙해지듯 조류독감은 전에 없었던 숙주에 쉽게 파고들어갈 수 있다는 거다.

 

조류독감은 대부분의 바이러스와 달리 내부의 유전자가 DNA가 아니라 RNA로 구성된 특징을 가진다. RNA는 복사되는 과정이 DNA보다 훨씬 부정확해 변이가 DNA의 100만 배에 달한다니 그 중 새로운 숙주를 공격할 능력을 가진 조류독감이 새로 나타날 가능성은 그만큼 높을 것이다. 새들을 숙주로 삼던 조류독감이 놀라운 적응력으로 돼지나 사람을 공격할 수 있고 돼지를 공격하던 조류독감이 사람을 공격할 수 있으며 스페인 독감처럼 사람의 몸에서 빠져나간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을 직접 공격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류독감이 돌 때, 그 반경 내에서 사육하는 돼지는 감염여부와 관계없이 불문곡직 살처분한다. 전문가들은 독감을 A형과 B형, 그리고 C형으로 분류한다. C형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감기이고, B형은 주로 어린이를 괴롭히는 일반적인 독감으로 A형에서 약화된 모습으로 여기며, A형은 바로 사람에 번진 고병원성 조류독감이라고 본다. 결국 독감 바이러스의 현란한 적응력을 반영하는 건데, 바이러스를 분류한 지역의 이름을 붙여 홍콩A형, 파나마B형과 같이 구별한다.

 

조류독감의 표면에는 H로 표기하는 헤마글루티닌과 N으로 표기하는 뉴라미니다아제라는 두 가지 항원이 있다. 2008년 4월 전라북도에서 시작된 조류독감은 H5N1로 감염력이 높아 질병 발생지점에서 반경 3킬로미터 이내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와 같은 가금류를 모두 살처분한 이른바 ‘고병원성’이었다. 1968년 이후 세계의 연구자들은 15가지의 H와 9가지의 N을 밝혀냈다. 모두 조합한다면 135가지의 조류독감이 나타날 수 있는데, H5N1은 그 중 하나인 셈이다. 그 조합은 계속 추가될 수 있을 텐데, 문제는 내부에 8가닥 존재하는 RNA의 변화다. 두 가지 조류독감이 동일한 숙주에 동시에 들어가 8가닥의 RNA가 유전자를 교환할 경우, 이후 재배열되어 나타날 조류독감의 변이체는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될 수 있다는 거다.

 

양계장의 어린 닭을 대부분을 죽어 널브러지게 만드는 무서운 조류독감일지라도 사람까지 그렇게 몰살시키는 건 아니다. 조류독감이므로 그런 것일 리 없다. 사람의 유전자가 양계장의 닭보다 다양하고 면역력이 높기 때문인데, 슬럼은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백신과 치료제를 준비해야 하는데, 조류독감의 종류가 많고 변화가 하도 빨라 다양하고 정확한 백신을 준비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우리나라에 슬럼이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다고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류독감이 해마다 반복되는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고, 그러다 사람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분리된 A형 독감이 세계로 전파될지 모른다.

 

우리나라에 조류독감이 해마다 반복되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철새 이동로에 양계장과 같은 가금류 사육 축사가 밀집되었다는 점을 꼽는다.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철새 대부분이 여름철에 머무는 시베리아의 호수는 그야말로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온실과 다름없다고 마이크 데이비스는 자료를 인용해 이야기한다. 야생조류의 창자 내에서 무해한 상태로 번성한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호수를 매개로 다른 오리의 창자로 들어갈 테고, 우리나라로 날아오면서 배설물을 떨어뜨릴 경우, 에어로졸 상태로 공기 중에 확산되는 배설물이 철새 이동로에 위치하는 양계장이나 그 양계장을 출입하는 자동차에 묻을 수 있다. 철새가 떠날 때에도 조심해야 한다. 도래지를 가득 채웠던 철새들의 창자에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남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2007년 이전에 가금류를 살처분하게 만든 우리나라의 조류독감이 그랬다.

 

그런데, 왜 변이가 현란한 조류독감은 와글거리는 도래지의 철새보다 사육장의 가금류를 몰살시킬까. 논두렁이나 갯벌에 어쩌다 한두 마리 발견된 사체에서 간혹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되고 말 정도로 철새는 조류독감에 내성을 갖는데 양계장의 닭은 속절없이 죽어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조류독감 발생지역에서 고병원성은 반경 3킬로미터. 그 이외의 조류독감은 300미터 이내의 가금류는 예외 없이 살처분하는데, 마당에 풀어놓고 기르는 농가의 전통 가금류는 면역이 강해 잘 견딜 수 있는데도 살처분되는 건 아닐까.

 

수수께끼 하나! 세계적 상표를 가진 미국의 한 식품회사에서 한 봉투에 1달러 하는 통닭을 팔았는데, 봉투 속에 있어선 안 될 닭대가리가 나와 소비자를 경악시켰다. 그 회사 주식 가격은 떨어졌을까. 수수께끼 둘! 갯벌을 매립할 때 보통 커다란 호수도 조성하는데, 그 호수에 철새가 많이 내려앉는다. 철새가 매립지의 호수에 몰려드는 이유는 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일까. 두 가지 수수께끼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관련이야 성사시키기 나름이다. 답을 알아보며 두 수수께끼의 연관성을 살펴보자.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산업국가에서, 거대 식품회사는 닭을 한 마리씩 튀기지 않는다. 한 번에 수십만 마리를 자동으로 처리하는 까닭에 한 봉투에서 닭대가리가 나왔다면 다른 봉투도 그러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닭대가리가 나오자 소송을 한 소비자는 10만 달러의 배상을 받았다. 그 소식은 다른 소비자를 유인했다. 기왕에 사먹을 통닭, 내가 받아든 봉투에 닭대가리가 나오면 로또다. 1달러 내고 10만 달러를 챙길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그래서 그 회사의 주식이 잠시 올랐다나 어땠다나.

 

광활했던 갯벌을 편평하게 매립하면 쏟아지는 빗물은 갈 곳 몰라 제 자리를 맴돌 것이다. 그래서 일정 면적의 호수를 조성해 빗물로 인한 피해를 완충하고, 필요할 때 고인 물을 사용하고자 한다. 이른바 유수지(遊水池)다. 공단으로 사용하는 매립지의 호수는 공업용수로, 농토로 활용하는 매립지는 농업용수로, 주택단지로 바뀐 매립지의 호수는 홍수 피해를 완충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사람과 자동차의 접근이 거의 없고 오폐수의 유입량이 작은 유수지에는 철새가 내려앉는데 농토로 활용하는 서해안의 유수지에는 유난스레 철새가 많은 건 내려앉을 곳이 거기 밖에 남지 않은 까닭으로 보아야 옳다. 드넓었던 갯벌이 사라졌기에 온갖 철새들로 바글거리는 유수지라도 마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의 독감이 전에 없었던 게 아니듯 조류독감도 늘 있었을 테고, 특별히 면역이 약한 노약자가 아니라면 며칠 푹 앓다 멀쩡해지듯 자연 속의 조류도 그랬을 것이다. 철새도 자연에서 부대끼며 오랜 세월 살아왔다. 자연계의 모든 생물종이 그렇듯 제 눈에 맞는 암수가 짝을 이루며 후대를 이어오면서 다양한 유전자를 축적했다는 뜻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독감이 돌 때, 부모는 아이에게 사람들 많은 곳에 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갯벌을 잃은 철새에게 대안은 없다.

 

시베리아에서 무해한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갖고 먼 길, 오랫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날아온 철새들이 바글거리는 유수지는 여러 가지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뒤섞여 있을 텐데, 힘겹게 날아온 철새는 면역력이 약화된 상태일 것이다. 그 중 일부가 시름시름 앓다 결국 남들처럼 날아오르지 못하고, 이동이 자유롭지 못해 먹이를 구할 기회가 적었을 테니 갯벌 구석이나 논 가장자리에 곤두박질쳐 죽어갈지 모른다. 매립되지 않았다면 철새의 밀도가 높지 않은 가까운 갯벌이나 강 하구에서 남 못지않게 먹고 금방 회복되었겠지만 먹이 다툼에서 밀려 그만 생을 마감해야 했을지 모른다.

 

여기에서 세 번째 궁금한 점이 생긴다. 수수께끼는 아니다. 한여름인 중복, 전국의 군인들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삼계탕을 점심으로 먹는다. 군인 뿐 아니라 수많은 직장인과 학생들도 삼계탕을 즐길 텐데 그만한 물량을 어떻게 한꺼번에 조달할 수 있을까. 어리석은 질문이다. 그와 같은 우문에는 “양계장에서 미리 사육해 삼계탕 재료 포장공장에서 준비해두었다!”는 현답이 기다리고 있다. 특수 사료를 특수한 환경에서 35일 먹이며 사육하면 뚝배기에 쏙 들어가는 삼계탕용 닭이 완성된다. 대한민국의 뚝배기의 크기는 동일하다. 따라서 삼계탕용 닭의 크기가 들쭉날쭉하면 안 된다. 기계로 찍어낸 듯 똑같아야 한다. 들쭉날쭉한 닭들을 사가려는 포장공장은 없다. 기계에 걸리면 손해가 막심하다. 천편일률적인 닭들이 한꺼번에 포장공장으로 들어가면 기계가 털을 벗기고 대가리를 떼며 내장을 긁어낸 자리에 찹쌀과 대추와 인삼 잔가지 하나를 넣고 다리를 오므려 묶고 출하하기 좋게 포장할 것이다. 사람은 살아 있는 닭, 아니 병아리의 다리를 고리에 거는 일만 하면 그뿐이다. 윤리도 안타까움도 사절이다.

 

삼계탕용 닭의 원가는 마리 당 얼마일까. 그 방면에 과문해서 알 수 없는데, 삼계탕이 거의 팔리지 않는 겨울철, 아파트 입구에서 장작구이 두 마리에 만원에 파는 것을 보면 가격이 그리 높지 않을 거로 짐작할 수 있다. 35일 동안 들어가는 사료, 찹쌀, 대추, 인삼 잔가지의 비용도, 양계장과 포장공장의 운영비용도, 닭의 숫자로 나누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차 삼계용으로 출하될 계란은 다른 계란에 비해 결코 싸지 않을 거고, 그 계란을 낳는 암탉과 수탉의 가격도 꽤 높을 것이다. 그런 닭만 대량으로 사육하는 양계장의 유지비용도 적지 않겠지. 분명한 건, 과학축산이 지시하는대로 사육해야 천편일률적인 닭이 쏟아져나오고, 동시 다발적으로 전국의 뚝배기에 쏙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축산과학은 용도에 맞도록 극단적인 품종개량을 실시했을 테니 조상이 물려준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닭은 공산품과 같은 예측 가능한 식재료가 되고 말았는데, 그를 뒷받침한 건 녹색혁명이 주관한 넘쳐나는 사료였다.

 

이번 겨울은 기상관측 사상 유래 없이 따뜻했던 가을을 이어받은 만큼, 잠시 춥다 말았다. 시베리아를 떠나 허기져 찾아온 철새를 맞은 인천의 갯벌은 얼마 남지 않은데 그치는 게 아니었다. 새에 치명적인 보툴리즘 균으로 오염된 구더기가 번진 것이다. 허기져 내려와 구더기를 본 철새는 허겁지겁 먹었는데 내장에 퍼진 보툴리즘 균이 철새를 마비시켜 죽음에 이르게 했다. 하늘에서 마비된 채 앉아 있는 새들을 보고 덩달아 내려온 철새들이 주변에 퍼진 구더기를 먹고 희생되기를 반복하자 지역 환경단체는 발을 동동 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에 없이 뜨거웠던 가을은 보툴리즘 균을 불렀는데, 올 겨울에 별 일이 없을지 걱정이다. 우리의 날씨는 기상관측 사상 유래 없이 더워지기만 하는데, 환경변화에 쉽사리 적응하는 조류독감은 올 봄을 건너뛸 것인가.

 

허기진 철새를 받아주었던 우리의 갯벌이 위축되면서 오염되자 온난화를 맞는 철새는 재앙을 맞았는데, 철새의 안위에 무심한 우리는 조류독감의 경고에 둔감하기만 하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백신 개발 속도를 비웃는데, 치료제인 타미플루와 살처분으로 대응하는 사람은 자연의 포용력을 형편없이 위축시켰다. 예측 가능한 양계를 위해 획일화시킨 유전자는 환경변화에 속수무책인데, 품이 전에 없이 좁아진 자연은 예측 불가능해졌다. (사이언스올, 2009년 3월 4번 째)

황사를 보면서 어김없이 조류독감 생각을 했습니다.
각 계절마다 전자동으로 떠오르는 것들이 해마다 늘어갑니다.
사람 고생이야 댈 것 아니겠지요.
닭도 오리도 돼지도 또 고통의 문이 훤히 열리는 건 아닐지.
무사히 넘기길 바라는 게 도둑놈 심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조류독감 올해는 없이 그냥 지나가야만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