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3. 14. 21:38

 

지진에 이은 쓰나미와 핵발전소 내의 수소 폭발. 일본에서 연일 일어나는 사상 최악의 재해가 언제 진정될지 모르는 가운데, 이웃나라의 어려움을 바라보는 우리는 막연한 위로보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방법을 찾고 싶어진다. 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가깝고 먼 나라”, 일본. 민족의 뿌리를 도려내려 했던 그들의 침략의 역사가 진정한 반성과 화해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걸 결코 잊지 않는 우리들이지만, 역사적으로 조금 거슬러 올라가 유전자나 언어로 비교하면 가장 가까운 사이의 민족이라는 걸 충분히 안다. 그렇기에 요즘 양국의 젊은이들은 어느새 장단점을 서로 이해하며 다독거리는 관계로 성숙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두 민족에게 상대의 희로애락은 남의 일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과 우리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처한 환경이 분명히 다르다. 적어도 4천 년 이상 달랐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그런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않은 눈앞의 불행 속에서 남 탓 하지 않고 차분하게 사태를 받아들이며 서로 격려하며 내일을 대비하는 일본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신선한 감동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만일 우리에게 같은 사고가 발생한다면 일본사회와 같은 모습이 재현될 수 있을까. 아이티공화국에 지진이 벌어졌을 때 약탈에 이은 폭력이 난무했다. 그저 남의 일일까. 1995년 삼풍백화점이 붕괴되고 구조 활동이 한참일 때 좀도둑이 극성이었다. 우리에게 그저 옛날의 일일 뿐일까.

 

일부 사재기하는 이가 없지 않다지만 약탈은커녕 새치기도 없이 남은 물건을 나누려는 심성이 일본의 시민사회에 확립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아무래도 부자든 가난한 자든, 나와 내 식구의 어려움이 사회의 따뜻한 배려로 극복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른바 보편적 복지가 뒷받침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려움을 극복할 때까지 정부나 사회에서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남의 물건에 손을 댈 이유가 없다. 새치기나 사재기는 불편부당한 지원에 대한 확신이 있는 공동체에서 위험하고 쓸데없는 행동일 뿐이다.

 

1976년 중국 당산을 뒤흔든 대지진 때 사람들은 누구나 가난해도 이웃이나 상점을 약탈하지 않았다. 당시 개방되기 전인 중국은 지금보다 신속한 복지전달 체계가 확립되었다고 믿기 어렵지만 당산 주민들은 나보다 먼저 이웃을 보살폈고 한 톨의 쌀도 나눴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당시 일본 외교관은 감동의 눈물을 적셨다고 경험자는 전한다. ‘보편적 복지체제가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없었지만 서로 믿고 돕던 이웃이기에 아무도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같은 해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 세계 최고의 부자동네인 뉴욕에서 10시간 동안 정전이 발생했을 때, 강도, 상해, 강간이 빈발했던 이비규환과 비교할 수 없었다고 역사학자들은 전한다.

 

아침 10시에 열어 오후 5시까지 문을 닫지 않는 민들레 국수집은 밥을 먹으러 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푸는 게 아니라 그들을 섬긴다 생각한다. 그 국수집은 입 다물고 줄을 서서 들어와 앉아야 하루 한 끼 제공하는 엄격한 복지기관의 밥집이 아니다. 누구든 언제든 찾아와 편안하게 밥을 나누는 쾌적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아무도 얻어먹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배려하기 때문이다. 서울 세운상가 한쪽에는 넥타이를 맸든 넝마를 걸쳤든, 무조건 1500원을 받는 국밥집이 있었다. 결코 친절하지 않은 그 국밥집 주인은 모자라면 밥이나 국을 얼마든지 얹어주었지만 밥값을 깎아주지도, 더 받지 않았다. 언제나 공평했기에 찾는 손님은 모두 편안할 수 있었다.

 

과거의 수입과 지위와 행실이 어떠했든, 일정 나이가 든 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연금이 사회적으로 만족스럽게 똑같다면 노인 사이에 위화감이나 불안감은 없을 것이다. 똑같은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젊은 나이부터 노후대비를 위해 몸과 마음에 맞지 않는 일로 지치거나 병들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돈을 더 벌어들이려 아등바등할 일도 없지만 많은 돈을 남긴 이를 그리 부러워할 일도 없을 것이다. 보편적이기 때문일 텐데, 같은 맥락으로, 학교급식을 제공하는 일도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돈이 없는 집의 아이에게 딱지를 붙이고 밥을 주는 복지가 아니라 누구나 똑같은 대우를 받는 보편적 급식이라면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드는 사회에 신뢰가 더욱 두터워지지 않을까.

 

여러 경험을 미루어본다면, 복지 앞에 돈은 부차적일 수 있다. 1976년 당산이 그랬을 것이다. 물론 시장이 끌고가는 현대사회에서 돈으로 제공되는 복지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돈보다 위안, 불편부당함, 자신의 일처럼 돕는 이웃이 있는 사회라면 남보다 많은 주머니의 돈은 오히려 불편한 존재일 수 있겠다. 일본인의 호응으로 많은 돈을 번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큰돈을 선뜻 기부하는 것은 나누고자 하는 마음의 일환일지 모른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얼른 달려가고 싶어도 몸이 따를 수 없으니 돈이라도 나누려는 심사일 게다. 중소기업의 희생으로 큰돈을 벌어들인 대기업이 초과 이윤을 더 나누는 행위도 그럴 것이다. 경영 일선에서 빠져나온 세계적 부자들의 조건 없는 기부는 속죄나 허영심보다 나누려는 심사에서 비롯되어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금은 불편부당한 사회를 충분히 지향하는 수준에서 징수되어야 타당할 것이다.

 

일본의 세금이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지 알지 못한다. 일본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마련된 보편적 복지와 그 전달 체계가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역시 모른다. 이번 재해를 계기로 보도되는 일련의 화면만으로 섣불리 짐작하기 없지만, 정부의 조치를 대체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이는 일본사회는 시민사회에 정부와 이웃에 대한 믿음이 든든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제공하는 복지와 규제가 보편적이라고 믿기에 가능해진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돌이키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보여주는 일본인의 질서 있는 행동과 이웃에 대한 도움과 배려는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네 고층아파트 숲처럼, 몇 년을 함께 살아도 뜨내기처럼 인사도 없이 지낸다면 돕고 싶어도 돕지 못한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 사이에 믿음이 생기기 어렵지 않은가.

 

정부든 개인이든, 돈이 있든 없든, 보편적 복지는 먼저 신뢰가 바탕이 된 사회라야 뿌리내리기 쉬울 것이다. 낮은 주택이 어깨를 나란히 한 작은 도시에서 불행과 희망을 나누는 일본인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면서 또한 따뜻한 그들의 사회에 부러움도 느낀다. 그들은 어깨를 부딪치며 낯붉히는 타인들로 북적이는 도시보다 쓰나미에 약했더라도 닥친 불행은 능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믿음이 바탕이 된 보편적 복지가 더욱 단단해지겠지. (인천in, 2011.3.15)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10. 30. 11:09

 

김황식 국무총리는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언론 기자와 공관에서 오찬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총리는 “약자라고 해서 무조건 봐주지는 말아야 한다. 응석받이 어린이처럼 복지도 ‘무조건’은 안 된다!”며 지하철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65세 이상 노인에게 일괄적으로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복지를 반대한다고 발언해 작은 파문이 잠깐 일었다. “복지도 결국 생산과 연결돼야 하는데 과잉복지가 되다보니 일 안하고 술 마시고 알코올 중독된다.”고 현 노인복지 제도에 불만을 표출한 국무총리는 "서민을 보살피더라도 원칙 있어야지 인심 쓰듯 복지 정책을 펴면 안 된다!"는 소신을 밝힌 것이었다.

 

국무총리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오늘의 우리나라를 있게 한 어르신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말기를 바란다”며 포문을 연 야당은 돈 많은 노인 중에 지하철 타는 이가 몇이나 되는가 반문하며 “돈 내고 지하철 타는 노인과 안 내고 타는 노인을 나눠 이 사회를 또 분열”시키려고 노인 무임승차를 과잉복지라고 발언한 정부의 철학과 복지 부재를 나무랬다. 나아가 노인에게 지하철 요금을 받아 알량한 적자폭 메우기보다 한해에 20조나 되는 ‘부자감세’를 줄여 적자를 보전하라고 되받아친 야당은 지하철의 노인 무임승차를 우리나라가 가야할 ‘보편적 복지’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했다.

 

국무총리의 발언을 두고 대한노인회에서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자 파문을 가라앉히려는 총리실 담당자는 진짜 필요한 계층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높은 수준의 복지’를 강조하며 예를 드는 과정에서 나온 실수라고 사과하고 “무임승차 제도 반대나 지하철 적자 보전을 위한 책임 전가로 해석하는 것은 총리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다”고 해명하며 이해를 구했고, 대한노인회 측은 사과를 받아들이며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일단락된 것일까. 야당이 요구한 ‘보편적 복지’에 대응한 국무총리실의 ‘높은 수준의 복지’에 대한 개념이 자못 궁금한데, 사실상 김황식 국무총리는 노인들을 인심 좋은 부자에게 손 내미는 걸인 취급했다.

 

오늘 대도시마다 지하철이 뚫리고 노인에게 무임승차권을 배포할 수 있게 된 데 이 시대 노인의 노력이 지대했다. 노인들의 희생을 딛고 전에 없던 여유가 생긴 자손들은 시방 이 땅의 노인에게 고작 지하철 무임승차권 이외에 어떤 보편적 대접을 하는가. 지하철 노약자 좌석 정도? 국무총리는 기초노령연금을 받아 술이나 마셔 알코올 중독이 된 사례를 지적했지만 “65세이상 전체 노인의 70%에게 매월 일정액의 연금을 드려서 국가발전과 자녀양육에 헌신해 온 노고에 보답하려는” 기초노령연금의 취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노인이 가난하든 돈이 많던, 기초노령연금은 요긴한 생활자금이 된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손자손녀에게 용돈을 쥐어주거나 이웃과 만나는 비용에 보탤 것이다. 알량한 연금으로 어쩌다 술도 마시겠지. 그런 노인의 생활이 과잉인가.

 

사실 많은 노인들은 과거 돈이 많았든 아니든, 당장 생활이 어려울 때가 많다. 이른바 ‘역모기지론’이라 하여, 집을 담보로 저당해 연금처럼 얼마의 돈을 지불하는 제도를 안내하면서 은행이나 보험회사는 재산을 보유하라고 귀띔하지만, 대부분의 노인은 재산을 보유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내리사랑’ 때문이다. 사업이든, 집 장만이든, 손 내미는 자식들에게 재산과 퇴직금까지 다 내주고 남긴 게 없는 게 보통이다. 보편적 복지라면 과거나 현재의 재산 크기를 고려해 기초노령연금을 지불하기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초생활이 가능한 비용을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에게 지불하는 이른바 ‘국민배당’이다. 1920년대 영국을 중심으로 논의된 시회신용 운동의 선구자인 클리포드 더글러스가 《경제적 민주주의》에서 추장한 ‘국민배당’은 “국민 개개인에게 정기적으로 현급을 지급하여 모든 사람이 근대적 기술이 가져다준 생산적 경제를 정당하게 나누어 갖는 제도”로 그 덕분에 “사회의 안정을 확보하고 시민들에게 대지의 은혜와 자신들의 노동성과를 공평하게 나누러 가질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배당’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녹색평론》 111호와 113호에서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일정액의 배당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한 달 단위로 정해진 나이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어김없이 지불된다면, 노인은 가족 부양하느라 힘겨워하는 자식에게 손 벌릴 일도 없고 지하철 무임승차권 논쟁 때문에 속상해할 일도 없다. 꼭 65세가 기준일 필요도 없다. 병원비나 장례비 걱정을 하는 70세 이상부터 차차 지불금을 늘릴 수 있다. 액수는 통념에 맞는 기초생활비를 사회적 합의로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상급학교에 진학할수록 늘어나는 의무교육의 비용을 국가에서 감당하듯 노인에 대한 배당금을 나이에 따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했더라고, 치매로 의식이 흔들릴지라도, 배당이 정확하게 지불된다면 가족이나 보호자에게 들어가는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노인에 지불되는 배당만큼 돈이 더 풀려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을 테지만, 안심해도 좋다. 인플레이션이 유발될 정도의 거금을 지불할 이유도 없지만, 어차피 배당을 하지 않아도 보험이든, 연금이든,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이든, 자신이 직접 벌어들인 돈이든, 어차피 그 정도 통화는 풀려나갈 게 아닌가. 당장 막대한 예산이 더 들어가서 어려울 것이라고? 교육과 국방, 그리고 복지에 들어가는 예산을 조정한다면 노인에게 배당되는 비용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정부나 지방정부에서 노인 개개인의 구좌에 정해진 날 일정액을 기입한다면 당장 현금이 없어도 지출 가능하다. 카드를 지급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많은 돈을 세금으로 걷기 어렵다고? 그럴까.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머지않아 노인이 될 젊은이라도 흔쾌히 양해할 수 있겠지만, 투명하고 진지한 논의를 통해 충분히 검토한다면 추가 세금 없이 얼마든지 운용할 방안은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클리포드 더글러스의 제안처럼 모든 국민에게 배당금을 제공하려 한다면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노인의 사회복지와 안정을 우선 고려하는 배당은 그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돈이 생기면 생활이 방탕해져서 오히려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의구심은 지워도 된다. 그런 노인이 간혹 있을 수 있겠지만 마음이 안정된 상태에서 그런 일탈은 드물 일 것이다. 돈이 들어올 테니 하던 일을 포기할까. 예를 들어 농사를 그만두는 일이 생길 거로 걱정할 수 있겠지만, 아닐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나이든 농부들은 돈보다 땅, 생명을 생각한다. 돈벌이를 위한 농업에서 해방된다면 진정으로 땅과 생명을 생각하는 농사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시골에 가서 농사짓고 싶은 노인이 늘어날 수 있고 돈이 없어 접어야 했던 자신과 이웃을 위한 일을 찾아나설 가능성이 높다. 노인의 배당금조차 자식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런 자식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못된 자식은 사회에서 당연히 교정해야겠지만, 생각해보라. 생활을 위해 못된 자식에게 손 내밀어야 하는 처지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노후에 안정적인 배당금이 지불된다는 사실은 노후대비를 위해 돈을 모아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니, 젊은이도 안정적으로 가족과 사회를 위한 삶을 추구하게 이끌 수 있다. 출세를 위해 남을 모함할 일도, 모함 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기보다 이웃과 사회와 생태계와 후손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이가 늘어날 게 틀림없다. 그런 사회를 좀 더 긍정적으로 지향하려면, 노인 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모든 이에게 국민배당이 지불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우선 노인부터 실시한 뒤 성과를 보고 확장할 수 있겠다. 국민배당이 확장되면 남들보다 많이 빨리 자식들을 가르치지 않으면 인생이 망칠 것 같은 강박관념 따위는 사라질 수 있다. 오직 돈벌이 때문에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에서 풀릴 것이고 조바심이 이끄는 탐욕보다 내일과 이웃을 생각하는 여유가 깃들 수 있다. 나아가 안정된 삶을 위협하는 지구온난화나 석유위기로 인한 국제사회의 갈등을 피할 수 있는 대안적 삶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니 노인 배당에 대한 논의부터 활성화되면 어떨까. (인천in, 201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