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1. 3. 11. 01:51

 

중요민속문화재 122호인 안동하회마을을 감돌아 흐르는 낙동강은 길다. 그도 그럴 것이 함백산 황지연못에서 부산 을숙도의 하구로 빠져나가는 사이, 백두대간과 숱한 계곡을 굽이굽이 흐르지 않은가. 낙동강은 폭이 넓다. 굽이쳐 흐르며 강모래를 가장자리에 펼쳐놓았기 때문이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백두대간에서 풍화돼 강물에 실려온 모래는 금모래 은모래다. 모래가 있으므로 낙동강은 맑디맑다. 그래서 남생이도 많았다.

 

석영과 장석과 운모로 구성된 화강암 모래는 백두대간에서 낙동강 물길을 따라 굽이굽이 움직이면서 비교적 연한 운모가 마모돼 줄어들고, 그 자리를 미생물에게 내준다. 미생물은 모래 사이를 흐르는 강물을 정화하며 동물성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고 동물성 플랑크톤은 수서곤충의 먹이가 되며 수서곤충은 물고기와 남생이의 먹이가 된다. 물론 잡식인 남생이가 물고기를 날름 잡아먹기도 한다. 낙동강이 생기고 낙동강에 수서곤충과 물고기와 남생이가 들어온 이래 계속되었다. 회룡포와 하회마을에도, 낙동강 제1경 경천대에도 사람보다 훨씬 먼저 찾아와 제 몸을 의탁했을 것이다. 모래가 게 있는 한 그랬다.

 

모래 속까지 따뜻해지는 5월 말에서 7월이면 짝을 만나는 남생이는 장마로 물이 불어나도 안전한 호수나 강가의 햇살 좋은 모래, 또는 모래가 섞여 부드러운 흙을 뒷발로 판 뒤 파낸 구멍에 배설물을 뿌릴 것이다. 그래야 대여섯 개의 타원형 알이 단단해진 둥지에서 안전할 테니까. 천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따뜻한 모래를 덮은 어미가 떠나고 두 달 뒤, 장마와 복중 무더위가 지나 아침저녁 산들바람이 불 때, 모래에서 나온 작디작은 남생이들은 사생결단으로 까치나 까마귀가 없는 물에 뛰어들 것이다. 바야흐로 가을 갈무리를 앞둔 삼라만상의 생명들의 몸이 토실토실할 때, 아직 껍질이 단단하지 않은 어린 남생이들도 수서곤충과 물풀을 뜯으며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그런 남생이의 습성은 우리 하천과 호수에 허락 없이 귀화한 붉은귀거북과 비슷하다. 앙증맞은 녹색 거북을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가 어느새 흥미를 잃어갈 때면 먹이 주고 배설물로 더러워진 물을 갈아주는 일은 엄마 몫. 주는 먹이를 잘도 삼키는가 싶더니 무럭무럭 손바닥만큼 자란 붉은귀거북은 앙증과 거리가 멀어진다. 아니 징그럽기까지 하다. 그럴 때 사람들은 방생을 도모한다. 생명체이므로 아무데나 내버릴 수 없으니 거북이가 살만한 호수나 강가 모래밭에 슬며시 내려놓는데, 이런! 그렇게 방생된 붉은귀거북이 한두 마리가 아니다. 지금은 보트장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새롭게 단장된 인천대공원의 호수는 커다란 붉은귀거북의 독무대였다. 상류에 서식했던 남생이는 자취를 감췄고.

 

다 자란 듯 보이는 남생이의 등딱지는 대개 15에서 25센티미터. 등뼈 쪽이 살짝 들려올라간 등딱지는 6각형 무늬가 선명한 갈색인데 옆구리와 배딱지가 단단하게 이어졌다. 그 안에 머리를 밀어 넣고 발톱이 날카로운 네 다리와 꼬리를 쏙 집어넣는다. 발로 톡톡 건드리며 굴리던 족제비나 삵은 난감한 표정짓다 이내 떠날 테고, 뜸들이며 안전을 확신한 남생이는 움츠렸던 몸을 쭉 빼고 잠시 접었던 일을 마저 하러 움직일 것이다. 천천히 뒤뚱뒤뚱. 단단한 껍질이 있으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움직이는 먹이까지 천천히 잡는 건 아니다. 입을 크게 벌리며 머리를 별안간 쭉 빼면 버들치도 민물새우도 꼼짝없이 걸려든다. 하지만 물풀의 뿌리를 뜯기도 하는 남생이는 청소부다. 죽은 물고기를 깨끗하게 먹어치운다.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해도 걱정스럽게 줄어들자 문화재청은 2005년 천연기념물 453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나섰지만 걱정은 줄어들지 않는다. 골재 채취로 강에 모래가 줄어드는 까닭만이 아니다. 모래를 채취해도 큰물이 들면 다시 쌓이지만 가장자리에 돌망태와 콘크리트를 부어 강을 직선으로 만들자 휩쓸려간 모래는 다시 쌓이지 않았다. 그뿐인가. 크고 작은 보로 가로막는 것도 모자라 아예 거대한 댐으로 흐름이 차단하자 굽이치지 못하는 강물은 화강암 모래를 더는 흘려보내지 못했다. 흐름이 단절되자 쌓였던 모래에 유기물은 덕지덕지 끼고, 산소가 부족해진 미생물이 죽자 플랑크톤도 수서곤충도 다 떠나고 말았다. 남생이가 살아갈 환경은 큰 강 상류의 샛강으로 위축되었는데, 거기도 직선으로 바뀐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4대강 사업10미터가 넘는 보 16개로 흐름을 차단하기만 하는 게 아니다. 수심 6미터를 확보하기 위해 모래를 막대하게 퍼낸다. 부산에서 서울을 지나 개성까지 100미터 폭에 10미터 높이로 쌓을 양이 강에서 사라지고 있다. 굴삭기가 들어오기 까마득히 오래 전부터 남생이들이 알을 낳던 모래들이다. 상류로 피한 남생이들은 그나마 다행일까. 아니다. 본류의 바닥이 갑자기 낮아지면 상류와 지류의 물살이 빨라지면서 모래와 자갈을 쓸어낸다. 모래를 잃은 남한강의 샛강인 연양천의 다리를 무너뜨린 이른바 역행침식이다. 굽이굽이 흐르는 4대 강뿐 아니라 그 샛강의 모래마저 쓸려내려가 거대한 보 바닥에 쌓이며 썩어갈 텐데, 남생이가 기댈 곳은 어딘가.

 

서식처 파괴뿐 아니라 보신과 자양강장에 효험이 있다며 분별없이 잡아가면서 자취를 감춰가는 남생이를 복원하겠다고 정부가 나섰다. 덕분인지, 수컷 5마리와 암컷 16마리를 확보한 서울대공원의 전문가들이 2005년에 14마리에 이어 이듬해 75마리의 새끼들을 얻었다고 한다. 부화 성공률을 75퍼센트까지 끌어올렸다는데, 일부 서울대공원의 호수에 시험 방사한 뒤 사나운 붉은귀거북을 제거한 전국의 하천이나 호수에 풀어줄 꿈을 꾸고 있는 전문가는 애완용으로 들어와 판매되고 있는 중국 남생이와 유전자가 섞일까 걱정하는 모양이다. 붉은귀거북을 버리는 인심이 중국 남생이라고 참을 리 없을 테니까.

 

판소리 흥부가는 흥부네 아이들 줄남생이처럼 늘어서 있다.”고 노래한다. 기생충을 털어내고 체온을 높이려 물 밖의 바위에 줄을 지었던 남생이는 이제 전설이 되었는데, 복원한 남생이를 금수강산 어디에 풀어주어야 하나. 자연형으로 복원된 청주의 무심천, 대전의 유등천, 그리고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남생이가 나타났다니 거기에 풀어주면 될까. 하지만 거긴 좁거나 모래가 흐르지 않는다. 굽이치는 물길을 따라 모래톱이 만들어지는 하천이 먼저 복원되지 않는다면 남생이는 제 복원이 그리 달갑지 않을 것이다. (전원생활, 20115월호)

 
 
 

도시·인천

디딤돌 2010. 2. 4. 14:17

서울시 노원구 주민들은 올해 구가 추진하는 최고의 사업으로 ‘당현천 생태하천 통수식’을 꼽았다고 한 언론은 전했다. 300여 억 원의 예산을 들여 빛의 거리, 건강의 거리, 참여의 거리를 만들겠다는 노원구 관계자는 “주간은 조형물로 경관성을 제고하며 야간엔 다양한 조명을 연출, 사람들이 즐겨 찾는 걷고 싶은 거리로 올 상반기 당현천 생태하천 복원과 함께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이다.

 

통수식에 참여한 만오천 명의 주민들은 아스팔트와 아파트단지로 점철된 동네에 각종 나무가 식재되고 꽃이 만개한 가운데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공원을 갖게 되리라는 희망으로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해서 당현천은 복원되는 게 아니다. 녹지가 조성된 하천공원으로 보아야 옳다. 지역의 역사 인물 조각상을 비롯해 온갖 편의시설을 갖춘 테마 거리를 사람 이외에 어떤 생물이 반기겠는가.

 

북한산에서 물이 흐르던 시절, 당현천에는 버들치와 메기, 도롱뇽과 다슬기가 반딧불이와 더불어 보존되었을 테지만 아파트와 아스팔트를 위해 주변이 성토되고 좁게 직선화되면서 그만 흐름을 잃었을 것이다. 비가 내리면 아스팔트를 적신 오염된 물줄기가 쏟아져 들어가겠지만 그치자마자 말라버리는 당현천에 거친 모래와 오니가 쌓여 악취를 유발했을 거고, 차라리 복개해 주차장으로 활용하자는 제안도 나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덮개를 벗고 단장된 청계천과 성북천이 인기를 끌자 지방자치단체장은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고, ‘복원’으로 마음을 바꾸게 되었을 수 있다.

 

삭막했던 도심에 맑은 물이 흐르고 녹지가 드리워진 공원이 조성된다는데 고개를 흔들 시민은 그리 흔하지 않을 텐데, 문제는 그런 공원의 조성을 성마르게 ‘복원’으로 치장한다는 데 있다. 복원은 고증을 통해서 이루어져야지 창조적 조경으로 꾸며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수십만의 시민이 즐겨 찾는 청계천도 복원이 아니다. 복원이라면 복개 이전의 생태계와 주변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천 생물들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주민의 접근을 막아야 했다. 그를 위한 검토와 고민 없이 그저 멋지게 꾸민 청계천은 빌딩 숲 사이에서 지친 시민들에게 숨 쉴 공간을 제공하는 하천공원으로 가치를 가질 뿐이다.

 

계양산과 천마산의 연결을 깊숙하게 끊은 징매이고개에 ‘생태통로’를 놓은 인천시는 만월산과 만수산, 문학산과 청량산을 연결하는 교량을 아치형으로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천시에서 끊어진 녹지축을 연결하려는 사업의 일환이다. 그런데 그 사업은 청계천이나 당현천과 달리 동물의 이동을 고려하고 있어도 생태계 연결과 거리가 있으니 아쉽다. 인천시는 애써 생태육교와 생태통로라고 주장하지만 “생태는 없고 사람만이 있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처럼 “성급하고 주먹구구식”이라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진정으로 생태계를 이으려한다면 어떤 동물이 생태통로로 이동할 수 있는지 충분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했다. 그래야 동물의 생태 특성에 맞는 설계가 가능한 까닭이다.

 

녹지축을 제대로 이으려면 절단되기 이전에 분포했던 동식물이 무엇이었으며 그 생물들이 현재 어떻게 존재하는지 연구해야 한다. 사람들의 지나친 이용으로 동식물의 분포가 위축되었다면 그 대책부터 수립하고 생태통로가 계획되어야 앞뒤가 맞다. 그런 생태통로로 인천의 녹지축이 연결된다면 시민들은 주변의 공원으로 찾아오는 때까치와 청설모를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산에 오르지 않아도 자연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시민들의 체력증진과 정서함양”에 도움이 될 거로 기대하는 생태통로는 동물의 접근을 차단해 위축시킬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등산객을 위한 연결도로는 생태통로와 설계가 달라야 하지만 위치도 신중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사람과 동물이 함께 이동하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면 동물들의 눈높이에서 생태통로는 물론, 통로로 이어지는 공간에서 사람이 내는 소음은 물론 빛과 냄새도 완벽히 차단되어야 하는데, 이번에 인천시가 구상한 생태통로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할 거로 보인다. 그렇다면 시민단체에서 지적하듯 “국제행사를 앞둔 전시용” 예산낭비에 불과할 것이다. (기호일보, 2010년 2월 12일)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10. 14. 00:42

 

참 단순한 놀이였다. 가을걷이 마친 들판에서 아이들은 전승된 노래를 불렀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술래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잠잔다”, “잠꾸러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세수한다”, “멋쟁이!”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 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죽었니, 살았니?” 한 다음, 술래가 “죽었다!” 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살았다!” 하며 휙 뒤돌면 술래에게 잡히지 않게 우르르 달아나야 했다.

 

그때도 본 적 없는 여우의 이야기와 속담은 많았다. 여우가 마을을 향해 울면 초상이 난다거나 백년 묵은 여우는 변신술이 능하다 했고 제아무리 교활한 여우도 시내를 건너 뛸 때 꼬리에 물이 묻는 법, 같은 죄를 계속 저지르면 결국 들통나기 마련이라고 했다. 간사스러움이 여성의 특징이 아니건만, 남성이 퍼뜨려서 그런지,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늙은 여성을 여우에 비유하면서도 “여우하고는 살아도 곰하고는 못 산다.”고 했다. 앙큼한 여성과는 살 수 있어도 미련한 여성은 싫다는 속담이란다. 이런, 곰에게 미안할 노릇이다.

 

여우는 교활한가. 대개 깔끔한 오소리 굴을 차지하는 여우는 오소리가 나간 사이 일부러 자신의 배설물을 흩어놓는다는 걸 실증적 예로 든다. 지독한 냄새에 진저리를 치던 오소리가 떠나는 걸 알기 때문이라는데, 교활하기보다 영민한 게 아닐까. 둔갑술이 묘하다던데, 야음을 틈타 인가 근처 들판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며 들쥐나 토끼들을 잡아먹는 모습을 멀찍이 본 사람의 착각이 아닐지. 아무튼 인간이 붙인 부정적 상징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땅의 전설을 풍요롭게 만든 여우는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칠흑 같은 밤길, 굽이굽이 고개를 넘으면 보였던 불빛 희미한 오두막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천적이 사라진 강산에서 여우마저 사라진 현상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야생동물 학자도 있다. 심심산골까지 쫓아간 사냥 때문이라거나 1960년대 전국에서 일제히 놓은 쥐약이 원인이라고 분석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깊은 산골의 여유까지 자취를 감출 리 없다는 거다. 민족혼 말살을 위해 일제가 전멸시켰다는 호랑이처럼 덩치가 큰 표범과 늑대도 그때 사라졌지만 여우는 개보다도 작지 않던가. 수달피를 위해 전국의 포수들이 요란하게 잡아대던 수달은 요즘 웬만한 계곡마다 모습을 드러내 개발업자의 발목을 잡건만, 여우는 왜 아직도 자취를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가죽을 벗기기 위한 은여우 사냥이 끔찍한 사육으로 이어진 건 그만큼 털이 곱기 때문일 텐데 은여우와 사촌인 우리 토종도 그 못지않을 건 불문가지. 싸구려 수달피에 식상한 포수들은 눈을 밝히고 산골을 누볐을지 모른다. 다른 이유도 상상할 수 있겠다. 영국의 여우사냥을 보라. 동물보호단체에서 아무리 문제를 제기해도 최근까지 총을 쥔 부자들의 전통 스포츠 반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늑대나 승냥이처럼 툇마루에 엉금엉금 기어나온 아기를 물어가지 않았건만,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둔갑을 한다는 둥, 교활하다는 둥, 가진 이유를 붙이며 결국 모조리 사살한 게 아닐까. 돈도 돈이지만 총을 쥐어주자 손가락이 그만큼 근질근질했을지도 모른다.

 

교활하기보다 영민하니 꼭꼭 숨어있을지 모른다. 천연기념물 수달도 그랬다. 사냥꾼이 설칠 때 보이지 않더니 서식지를 보전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띈 갈색이지만 귀 뒤와 발등이 검고 목과 가슴이 희며 귀가 삼각형인 토종 여우도 마찬가지 아닐까. 더구나 여우는 아직 천연기념물도 아니다. 인적이 드문 1, 2월 산간에서 짝을 만나 두 달 가까운 인신 기간을 거쳐 초식동물이 동면에서 깨어나는 3, 4월 예닐곱 마리의 새끼를 낳는 여우는 전국의 산간 계곡을 수렵장으로 여기는 인간들이 엽총을 내려놓지 않는 한, 은둔을 멈추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토종 여우가 우리 산하에 나타났다고 한다. 2004년 3월 23일 강원도 양구군에서 입가에 피를 흘린 채 죽은 성체로 발견되었어도 노력하면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건졌다. 독극물에 중독된 동물을 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양구의 여우는 1978년 지리산에서 사체가 발견된 이래 26년 만이었다. 그에 고무된 환경부는 전문가를 동원, 전국에 100여 마리의 여우가 생존할 것으로 추정했다. 강원도 양구군은 물론, 경북 봉화와 문경군, 경남의 하동과 지리산에서 목격담이 이어진다는 거였다. 얼마 전에는 50년 동안 사람의 출입이 차단된 비무장지대에서 배설물이 발견되었다니 이제 수십 대의 감시 카메라에 살아 움직이는 여우가 잡히기만 하면 된다.

 

내 땅에서 찾지 못할지라도 수입해서 복원하면 소원을 이루는 걸까. 북한에서 15마리의 토종 여우를 수입한 서울대공원은 올해 5월 3마리의 새끼가 그것도 암컷으로 태어났다고 반가워했다. 앞으로 2, 3년 자연 번식을 시도한 뒤 방사할 것을 고려하는 연구자에게 경북 영양군이 자원을 했고, 올 8월 ‘토종 여우 증식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한다. 현재 개체수를 늘리기 위한 우리를 확보했다는데,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양해각서에 여우의 행복은 반영되지 않았다. 토종 여우로 생태관광 붐을 조성해 지역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영양군과 자연 번식이 어렵다면 복제나 인공수정도 고려할 예정임을 밝힌 연구진의 포부는 여우 눈높이의 보전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일본도 우리처럼 햇볕이 있는 날 잠깐 뿌리다 그치는 비를 ‘여우비’라 한다. 신출귀몰한 여우를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닐까. 중국과 일본의 전설은 꼬리가 9개인 여우 ‘구미호’를 표독스럽고 간사한 여성으로 그리는데 우리는 다르다. 인간이 되고 싶은 아리따운 여성이었다. 다만 여자로 둔갑해 결혼까지 성공하는데 인간이 되기 하루를 남기고 그만 정체가 드러나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고 마는 내용으로 마무리한다. 무섭지만 가련한 짝사랑이 아닐 수 없는데, 아스팔트와 골프장과 스키장으로 난폭하게 끊긴 산간벽지에 은둔하는 토종 여우는 인간의 빗나간 짝사랑을 알기나 할런지. 이 땅의 토종 여우여 어디에서 뭐하던 감시카메라에 걸리지 말고 제발 온전하기를…. (전원생활, 2009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