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05. 8. 9. 01:39
 

1996년 양에서 시작하여 1998년 소, 1998년 생쥐, 2000년 염소, 2002년 돼지와 고양이와 토끼, 2003년 노새와 사슴, 2005년 개에 이르기까지 복제동물의 명단은 계속 추가되고 있다. 그런데, 발표 당시 크게 주목받은 그 동물들, 이 시간 안녕한가.


지난 8월 4일, 서울대학교 수의대학의 황우석 팀은 스너피라 이름붙인 아프칸하운드 품종의 복제 개를 태어난 지 100일 만에 발표했다. 그러자 우리와 세계 사회는 찬사를 거듭했고 생명윤리 논쟁도 조금 불 지펴졌다. 공식출범을 앞둔 생명공학감시연대는 개 복제와 줄기세포연구를 통한 난치병 치료는 구분해야 한다는 논평을 발표했고 민주노동당은 연구 성과의 실제 내용을 냉철하게 검토해 보자는 논평을 냈다. 이번 연구를 인간의 불치병과 난치병 치료로 확대 해석하려는 의도에 자제를 촉구한 것이다.


스너피 복제에 참여한 연구자가 은연중에 경쟁의식을 피력했듯이, 이번 성과는 황우석 교수 팀의 우수성과 더불어 세계최초라는 수식어에 방점이 찍혔을 뿐, 인간의 질병치료 연구와 그리 관련이 없다. 사람과 개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질병은 복제하지 않은 개로 충분히 연구할 수 있다. 세대가 짧아야 결과분석이 용이한 질병모델동물을 개로 선택할 연구자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늑대나 여우와 같이 멸종 위기 개과 동물의 복원도 현 단계에서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다. 복원해도 풀어놓을 생태계가 없지 않은가. 상업용 개 복제가 아니라면 스너피는 세계최초에 만족해야 옳다.


1999년 태어난 복제 젖소 영롱이는 우유를 3배나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태어난 복제 한우 진이는 다른 소보다 몸무게가 두 배 이상 나간다고 자랑했다. 가난한 축산농가를 위해 복제했다는 두 소는 이제 6살인데, 영롱이와 진이는 제 장점을 여전히 과시하고 있을까. 복제 소를 보급할 경우 우리나라 축산 경쟁력은 세계를 휘어잡을 것처럼 떠들썩했건만 제2 제3의 영롱이와 진이가 보급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거액이 들어가는 복제기술을 영세 축산농가에 적용할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세계최초로 복제한 양, 돌리는 생후 6년 만에 노화되어 안락사 시켰다고 2002년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는 발표했다. 한창 번식하며 활동할 6살에 늙은 이유로 연구자들은 이식된 체세포 핵의 나이를 추산한다. 체세포 핵을 기증한 양의 나이가 당시 6살이었으므로, 돌리는 6살로 태어났고 6년이 지나자 12살로 늙어버렸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아직 강아지인 스너피는 이미 3살이다. 목장에 은둔하는 영롱이와 진이도 벌써 늙은 건 아닐까. 수명이 다 된 애완동물을 복제해도, 희귀동물 복원해도 소용없는 게 아닐까.


“인간과 가장 유사한 원숭이 복제를 시도해왔으나 현재의 연구 결과로는 원숭이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그 대안으로 인간과 생리학적으로 많은 유사성이 있는 개를 복제하게 됐다”고 밝힌 황우석 교수는 원숭이 복제연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데 이 땅의 언론들은 아쉬움을 표한다. 원숭이가 개보다 사람에 더 가깝기 때문이라지만, 그런 성화는 복제인간을 염려하게 한다. 동물보다 사람 복제가 더 쉽다고 주장한 바 있는 황우석 교수는 개도 인간 배아도 복제했다. 복제한 배아를 자궁에 착상하면 복제인간이 태어날 수 있는데, 원숭이 복제 이후에 주목받을 세계최초의 복제 목록은 과연 무엇일까.


6개 동물보호단체들은 서울대학교 수의대학 입구에서 1인 시위하겠다고 선언했다. “황우석 교수에게 동물학대를 반대하는 뜻을 전달”하고, “학생과 동물보호단체의 감시와 참여가 가능한 동물보호윤리위원회를 구성하여 윤리적인 연구를 하여 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사람의 배아 단계 생명을 희생시키는 줄기세포 연구 못지않게 동물의 초기 생명을 무수히 희생시켜야 하는 복제연구도 생명경시 풍조를 낳을 수 있다. 숭고한 목적을 유난히 앞세울수록 수단이 정당화되지 않던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을 다루는 연구는 신중해야 한다. 필요성은 물론, 과정과 결과가 미칠 사회적 윤리적 생태적 영향을 철저히 검토한 후 실행되어야 한다. 그를 위해, 생명연구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전문가의 의견은 물론이지만, 생명윤리와 생태계와 사회를 연구하는 전문가, 그리고 후손의 생명을 옹호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다른 나라처럼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관련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엄격하며 투명하게 집행해야 한다.


그런데 전망은 밝지 않다. 스너피 복제를 계기로 이 땅에 생명윤리의 기반이 단단해진다면 세계 최초 이외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텐데, 파시즘 냄새나는 환호 분위기에서 윤리문제를 지적하는 작은 목소리는 쏟아지는 욕설과 저주로 파묻히므로. (시민의신문, 2005년 8월 3째 주)

황우석 교수님의 업적을 대놓고 폄하 시키는군요. 당장에 불치병치료나 의학에 적용할수는 없더라도 축적된 세계 최고의 기술력 기반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활용될수 있는 것입니다. 정 그렇게 불만이 많다면 직접 황교수께 아니 사람들 앞에서 개복제는 쓸떼 없는 일이였다고 한번 말해 보시죠? 생명의 중요성 따지기 전에 본인은 얼마나 생명을 중시하는지 참 궁금하군요? 면으로 된옷입으면서, 가죽으로 된 물건 사용하고 고기도 먹을텐데? 소중한 생명을 어떻게 그렇게 경시하나요?

 
 
 

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05. 8. 5. 01:23

 

서울대학교 수의대학 황우석 석좌교수가 세계 최초의 복제 개 ‘스너피’를 발표하기 한나절 전, 한 텔레비전 방송국 과학담당 기자가 전화를 했다. 엠바고에 걸린 개 복제 사실을 알려주고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은 기자의 전화 내용은 여의도의 방송국으로 나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한데 시간 없다고 거절했다. 평소에도 많은 기자들을 몰고 다니는 황우석 교수의 성공사례는 틀림없이 찬양 일변도로 조명되겠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장신구처럼 처리될 게 뻔하지 않은가. 인천의 집에서 일부러 찾아가기 싫었다. 이번엔 다른 방송사에서 인천까지 찾아오겠다고 전화했다. 그래서 인터뷰에 응했는데, 웬걸, 쾌거 선언은 물론,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성공담과 애환은 대여섯 명의 기자를 동원하며 소상하게 알리면서, 공영임을 강조하는 그 방송사의 종합뉴스는 알량한 장신구마저 외면하고 말았다.


개 한 마리 세계 최초로 복제하면 이리 소란해야 하나. 우리나라의 다른 연구자가 복제했어도 이렇게 시끄러울까 의아심이 든다. 가장 어려운 동물인 개를 복제했다니 대견하긴 하다. 하지만, 전 세계가 뒤집힌 것처럼 호들갑떨어야 할 정도인가. 연구자는 다른 연구기관의 성과를 의식했다고 솔직히 토로했는데, 세계 최초라는 방점을 선사받고 싶은 연구자의 선명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한 마디의 우려 목소리마저 외면해야 할 정도로 생명윤리에 한 점의 문제도 없는 그리 대단한 연구결과였던가.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대한 작은 지적에도 눈을 흘기고 욕설을 퍼부으며 저주하는 이 땅의 사회분위기는 과연 정상일까. 어째 파시즘 냄새가 난다.


세계 최초의 체세포 핵이식 복제동물인 양 ‘돌리’ 탄생이 발표되자 당시 미국의 바람둥이 대통령은 저명한 생명윤리학자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윤리위원회를 즉각 소집했다. 인간복제와 연결될 가능성과 더불어 장차 생명윤리에 미칠 사회적 파장을 우려한 처사였다. 황우석 교수의 복제 한우에 손수 이름을 붙여준 준비된 대통령에 이어, “과학이 아니라 마술!”이라며 몸소 방문하면서까지 경탄해 마지않은 준비 덜 된 대통령이 법 테두리를 무시하며 지원을 철석같이 약속하는 이 나라의 생명윤리는 어느 수준일까. 생명을 다루는 과학기술이 발생시킬 예상 가능한 윤리문제를 다각도로 논의 분석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민주적으로 노력해온 다른 나라의 사례가 전혀 부각되지 않는 분위기는 사람과 동물의 수많은 초기 생명들이 물건처럼 취급되고 파괴되어도 찬사만을 강요한다. 검증되지 않은 숭고한 목적을 일방적으로 내세우자 모든 윤리적 의혹은 잠재워진다.


이번 결과는 사람의 불치병과 난치병의 치료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고 연구자들과 주류 언론들은 확신한다. 개와 사람의 질병이 많은 경우에서 비슷하고, 질병모델동물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개와 사람 질병이 65가지나 비슷한 것은 부대끼며 사는 환경이 그만큼 가까워 질병을 공유하게 된 까닭인 것이다. 유전적으로 개보다 영장류를 비롯한 원숭이 종류가 사람에 더 가깝다. 개와 관련된 인간의 질병은 굳이 복제하지 않아도 기존 실험용 개로 충분히 연구할 수 있다. 질병모델동물은 보통 체구가 작고 세대가 짧은 쥐를 선호한다. 비용과 관리에 유리할 뿐 아니라 연구결과가 그만큼 축적되었고, 조작된 유전자가 섞인 배설물이나 사체의 안전 처리가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개는 애완동물이므로 유전자조작은 생각하지 않겠다고 황우석 교수가 밝힌 이상, 질병모델용 개는 더욱 생뚱맞을 수밖에 없다.


이번 연구를 계기로 늑대나 여유 같은 희귀 개과 동물의 복원이 가능하다는 부언설명이 연구자와 언론에 의해 시민들에게 거침없이 전파되지만, 가능성을 넘어 그럴 필요가 왜 있는지 우린 먼저 반성해야 한다. 동물원에 길든 늑대 한 마리가 울타리를 빠져나가도 수백 군경들이 실탄 들고 포위망 좁혀야 하는 우리네 생태환경에서 복제한 희귀 야생동물을 도대체 어디에 풀어준다는 것인가. 백두대간에서 등산객이나 심마니를 공격하면 어쩌나. 그저 동물원에 가두어야 시민들이 안심할 텐데, 그게 진정한 생태계 복원이겠는가. 공연히 우려하는 자세도 취하는 언론은 애완동물 복제회사의 출현을 언급한다. 하지만, 6년생 돌리가 늙어 죽은 현상을 미루어보자. 복제된 생물체의 수명이 체세포를 제공한 개체의 여생 이상으로 보전되지 못한다는 학자들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희귀동물 복제는 생태계 보전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가. 도대체 개 복제가 인류복지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주류 언론들은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영장류 복제를 거의 충동한다. 하지만 황우석 교수는 복제가 아니라 영장류의 배아줄기세포만 연구하겠다고 선언하여 김이 새고 말았다. 기술적인 어려움 때문이라는데, 개도 어려웠다고 누차 강조했다. 더구나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는 국가가 정보를 보호해준다. 영장류 복제연구를 누가 관리하며 감독할 수 있나. 세금 내는 우리는 그저 스타 과학자의 약속을 무작정 신뢰해야 하는 운명이다. 그런데 우울하게도 황우석 교수는 납득할만한 사유 없이 자신의 약속을 번복한 적이 있다. 생명윤리가 확보되기까지 배아복제연구를 중단하겠다던 약속이 그것이다. 주류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아서 그렇지 국내는 물론 해외의 숫한 과학자와 윤리학자와 시민들이 제기한 절차의 정당성과 생명윤리에 대한 의혹은 어느 것 하나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불치병과 난치병 치료라는 애드벌룬에 가려있을 따름이다.


황우석 교수는 한 미국 언론과 만나 핵을 제거한 난자와 체세포 핵을 사용해 배아를 복제했으므로 생명을 죽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같은 방식으로 복제한 스너피는 개일까 무생물일까. 같은 방식으로 복제할 영장류의 배아는 줄기세포로 갈 운명이므로 무생물일까. 스너피처럼 자궁에 착상시켜 세계 최초로 태어나면 텔레비전 전파를 타고 세계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을 텐데. 인간의 복제된 배아와 복제인간의 차이는 복제배아를 자궁에 착상하는가의 차이에 불과하다. 쇠젖가락으로 콩을 골라먹는 우리의 손재주는 월화수목금금금의 가혹한 노력에 힘입어 결국 유인원을 복제할 것으로 언론을 확신하는데, 양보다 훨씬 쉽다고 황우석 교수가 전부터 강조한 인간은 절대 복제되지 않을 수 있을 것으로 믿어도 좋을까. 상업적 사용을 막고자 연구결과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황우석 교수는 천명하지만, 공개 여부와 관련 없이 우리는 국정원에서 관리하는 정보에 도무지 접근할 수 없다.


황우석 교수의 손끝만 스치면 쾌거로 평가되는 사회에서 이 땅의 주류 언론들이 주목하지 않는다 해도 문제점을 지적하는 생명윤리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존재한다. 그들은 불치병과 난치병 환자의 치료를 막으려하는 반생명적 단체거나 차세대 국가부가가치 확보를 방해하는 매국노가 아니다. 일방적으로 환호작약하는 가운데 희생되는 여성, 생태계, 다음세대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안타까운 행동세력이다. 생명윤리를 앞세운다고 돈도 명예도 보장되지 않는다. 천박한 논리에 휘둘리는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양심의 작은 목소리다. 그들의 가녀린 목소리마저 외면하고 따돌리는 사회는 과연 건강할 수 있을까.


복제 대상인 개의 생명권을 염두에 두지 않은 연구자에 의해 스너피는 태어났을 것이다. 개는 사람이 아니라고 함부로 다루어도 될 생명체가 아니건만 아무도 연구 과정에서 희생된 초기 개 생명을 애도하지 않았다. 동물의 생명을 우습게 생각하는 풍토는 결국 사람의 생명도 하찮게 취급할 것이다. 기득권을 위해 소외되는 계층의 생명이 부자들이 애지중지하는 애완동물보다 고귀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사회다윈주의에 감염된 무수한 제국주의 역사는 무엇을 웅변하는가. 질병보다 질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고 시급하듯, 우리 사회는 생명윤리 회복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한 무리 국내외 스타 과학자의 언설에 따라 생명윤리가 좌지우지되는 현실에서, 숭고한 의도만 앞세워 성공하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후손의 생명이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과학의 성취는 한 사람의 숭고한 노력으로 이룩되지 않는다. 숫한 과학 업적의 결과가 축적돼 나타나는 것은 물론, 인문과 사회적 검증이 기반된 뒤에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 연구비의 높낮이에 연구자들이 몰려다니는 요즘,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이 아니다. 이익을 도모하는 자본과 승리를 노리는 패권에 종속돼 있다. 생명공학을 비롯한 현대의 거대 과학기술은 자칫 위험사회로 연결될 수 있다. 소비자인 시민이 소외된 일방 논리에 의해 밀실에서 정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은 그럴싸한 그림을 그리는 과학자나, 그 그림에 비판 없이 현혹되는 당국자의 의지에 맡길 수 없다. 과학자가 그린 그림을 광고하는 자본의 선동을 액면대로 믿을 수 없다. 거대할수록 위험성이 높은 현대 과학기술은 시민사회의 민주적인 관리와 감독을 받아 투명하고 공정하게 연구 개발되고 이용되어야 한다.


이번 개 복제 사건은 지나치게 과장 포장되었다. 스너피는 쾌거도 인류복지도 아니다. 생명공학감시연대에서 긴급 작성한 논평으로 적절히 문제제기했듯이 난치병 치유에 대한 환상도 아니다. 환상이 깨졌을 때 오는 낭패감이나 사회적 패닉 현상을 예방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좀 차분해야 한다. 과학기술과 생명윤리의 수준이 우리보다 높은 나라들은 왜 생명공학 연구에 신중한 것인지 두고두고 새겨보아야 한다. 실용주의를 분별없이 앞세웠던 생명공학의 실패는 장차 사회적으로나 생태적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늦기 전에 인식해야 한다. (프레시안, 2005년 8월 5일)

목숨을 우스이 여기는 풍토는 언제나 나를 노엽게 합디다.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쉽게 다루어져도 좋다고는, 더구나 사람의 욕심을 위해서 마구 다루어져도 좋다고 누가 허락했답디까?
사람끼리도...다만 살짝 포장을 했을 뿐이지, 자기를, 혹은 자기 가족을 제외한 모두를 오로지 자기를 위해서만 도는 위성 정도로만 취급하는 그 사고가 무섭습니다.
태어나서 죽어갈 모든 목숨은 하나하나 특별한 존재일 것입니다.
어느 것도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의 질병을 위해 실험실에서 사라지는 숱한 작은 목숨들에게도 늘 미안한데...
황교수님 연구에 배아가 희생된다고?? 그럼 황교수님이 그 배아를 받지 않았다면 그 배아가 모두 사람으로 환생되냐?? 글 쓰더라도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