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3. 8. 22:20

 

좀 엽기적으로 보이는 가을철 우리나라의 술안주 메뚜기. 눈 딱 감고 먹으면 제법 고소한데, 적어도 메뚜기는 우리나라에서 공포의 대상은 아니다. 먼 산등성이에서 한 줄기 연기 피어오르듯 날아와 곡식이 익어갈 즈음의 드넓은 농장을 일거에 덮친 뒤, 이파리와 여린 줄기는 물론 뿌리까지 거덜내고 똥만 남긴 채 삽시간에 사라지는 재앙. 오래 전 할리우드가 흑백영화로 각색한 펄 벅의 소설 《대지》에서 실감나게 표현한 메뚜기 떼의 습격은 부유한 농가를 한순간에 가난뱅이로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우리나라와 같이 농장이 아기자기한 시골에서 메뚜기 떼는 좀처럼 출현하지 않는다. 메뚜기가 떼로 알을 낳아야 한꺼번에 부화한 메뚜기가 떼로 움직이는데, 우리나라에 그런 규모의 농장은 존재하지 않고, 농토에 다양한 씨앗을 오래 전부터 뿌려왔기에 다양한 곤충이 깃들어 메뚜기만 알을 낳고 성장할 환경이 조성될 수 없었다. 메뚜기 떼는 《대지》의 무대인 중국의 광활한 들이나 서구의 플랜트 농업으로 가난이 심화되는 아프리카, 한 가지 품종의 씨앗을 끝없이 심는 미국의 평야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재앙이다. 그런데 미국의 저명한 문명비평가 제레미 리프킨은 미국의 소를 ‘발굽 달린 메뚜기 떼’라고 했다.

 

미국의 소는 떼를 지었지만 모여 있을 뿐,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케빈 코스트너가 주인공으로 분한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의 배경이던 19세기 중반까지 미 대륙 중심부를 주름잡던 들소는 떼로 지축을 흔들며 이동했지만, 들소의 자리를 차지한 오늘날의 소 떼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 그런데도 제레미 리프킨은 메뚜기 떼에 비유했다. 그가 주목한 미국의 소 떼는 막대한 옥수수를 축내지만 그렇다고 옥수수 농장주가 가난뱅이로 전락하는 건 아니다. 똥만 남기고 사라지는 메뚜기와 달리 도축되기까지 제 똥으로 뒤덮인 자리에 맥없이 머물 뿐이다.

 

소는 풀을 뜯는다. 앞니가 오로지 아래턱에만 나오는 이빨 구조는 그 습성을 잘 반영한다. 긴 혀로 풀을 휘감아 입에 넣은 뒤, 아래턱의 앞니를 위턱으로 밀며 뜯어낸다. 그리곤 어금니로 대충 몇 차례 갈고 커다란 첫 번째 위로 넘긴다. 목초의 뿌리까지 오물거리며 뜯는 양이나 발로 뿌리까지 파내 먹어치우는 염소와 달리 더 뜯을 풀이 없으면 다른 초원으로 이동하니 아무리 많은 소가 풀을 뜯어도 움직일 초원만 보장된다면 메뚜기 떼처럼 뿌리까지 거덜내지 않는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소 떼의 몸무게에 짓이겨진 목초는 이듬해에도 잎을 내지 못할지 모른다. 소똥에 덮이는 목초는 탄소동화작용에 방해받을 것이다.

 

미국에 1억 마리 이상, 세계적으로 15억 마리 정도 사육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 있겠으나 학자들이 먼저 지적하는 요인은 트림이다. 이산화탄소의 25배나 지구온난화를 심화시키는 메탄가스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먹이의 최대 7퍼센트까지 메탄으로 바꿔 한 마리가 해마다 100킬로그램 가까이 분출한다니, 지구촌의 소가 배출하는 메탄가스를 모두 합하면 온난화 효과는 실로 막대할 거로 추산할 수 있겠다. 교토협약으로 국가마다 온실가스 배출을 의무적으로 줄여야 할 때, 목축을 기간산업으로 유지하는 국가는 골치 아프게 생겼다. 유용한 소화제를 개발하는 것으로 모자랐는지 트림의 양과 횟수가 줄어들거나 트림 속 메탄가스를 줄인 소를 육종하자는 제안까지 나온다. 뉴질랜드 정부에서 시민들이 ‘소 방귀세’라고 비아냥거리는 세금을 축산업자에 추징하려고 진지하게 고려했다고 하니, 그 고충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가 뜯은 목초는 바로 소화와 흡수되는 건 아니다. 거대한 되새김위의 첫 관문인 혹위에서 미생물이 적당히 분해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메탄이 배출된다. 소에 목초 대신 옥수수를 갈아서 주면 어떨까. 뜯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뜯은 목초를 분해하느라 시간을 지체할 필요도 없다. 옥수수는 어금니로 갈기도 전에 꿀떡 넘어가 되새김질도 없이 소화와 분해돼 빠른 시간 내에 흡수되지 않던가. 옥수수를 먹이면 목초보다 메탄가스 발생양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지구온난화에 도움 주는 건 아닐까. 배출하는 메탄가스의 양은 줄어들어도 사육하는 소가 늘어나면 소용없는 일이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사람의 편의적 발상으로 소의 본성이 무시되었다는 점이다. 생태계의 산물인 소는 적당한 메탄가스가 발생되어야 위가 원활하게 기능하도록 진화돼 있다는 사실이 부정되는 게 아닌가. 지나친 옥수수 사료가 위장 내의 발효와 메탄가스 발생과 되새김을 방해한다면 소는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미국 소떼의 대부분은 흔히 ‘대평원’이라 일컫는 미 대륙 중심부의 광활한 초원지대에 걸쳐 사육된다. 들소 떼가 이동하던 대평원의 아래에는 오갈랄라 대수층이 막대한 지하수를 머금고 있다. 초원이 오랫동안 광활하게 유지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덩달아 ‘인디안’이라 칭하는 이른바 ‘북미 원주민’도 사냥감의 서식을 위해 때때로 불을 지폈다지만 확인할 길은 없는데, 분명한 것은 로키산맥 동쪽의 건조한 초원지대는 예전에도 쉽사리 불이 번졌고 빗물을 땅속에 무진장 저장해왔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풀을 뜯고 똥을 떨어뜨리며 이동한 들소 떼 덕분에 백인 들어오기 이전 미 대륙의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었던 울울창창한 숲과 달리 초원과 대수층이 형성되었고 할리우드는 그 지역에서 서부영화를 촬영했을 것이다. 막강한 힘을 얻은 축산업자는 미국의 농업부문을 좌지우지하게 되었을 테고.

 

무자비한 총질로 들소의 씨를 말린 백인에 의해 사냥감을 잃은 북미원주민이 떠나자 대평원은 소를 방목하는 목초가 되었지만 녹색혁명은 소가 드문드문 풀을 뜯던 드넓은 목초지대를 바글바글한 소떼로 채웠다. 이른바 비프벨트(beef belt)다. 녹색혁명 이후, 사람들이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남는 옥수수의 처리로 골치 아팠던 곡물자본은 사료로 전용하자고 제안했을 텐데, 축산자본은 그 제안을 처음 부담스러워했을지 모른다. 한데 옥수수를 먹여 부드러워진 살코기가 훨씬 잘 팔려나가자 축산업자들은 열광했고 결국 옥수수는 축산업을 지배하게 되었다. 사람이 옥수수 사료를 항상 먹이자 소는 그만 본성을 잃었고, 울타리 안에서 꼼짝 없이 몸집만 불리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옥수수 사료를 외부에서 충분히 구입할 수 있는 한, 소떼가 대평원에 빼곡해도 걱정할 일은 없었다. 물이 많이 필요했지만 오갈랄라 대수층이 있으니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들어오는 양에 비해 나가는 양이 많으면 언젠가 고갈되는 법. 뉴스위크지가 “무게 1000파운드의 소 한 마리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물의 양은 구축함 한 대를 띄울 수 있는 양”이라고 지적했듯, 1억 마리의 소는 오갈랄라 대수층을 급속하게 고갈시키고 있다. 소떼가 배출하는 배설물은 주변 생태계를 견딜 수 없게 오염시킨다. “미국 축산업이 배출하는 폐기물은 인간이 배출하는 것의 130배에 달한다.”고 적시한 타임지가 “미국의 경우 한가구당 떠안아야 할 축산 폐기물의 양이 무려 20t에 이른다.”고 경고할 정도다.

 

사육 규모가 더욱 커지면서 자금 부족으로 경영을 포기하는 지역의 작은 축산업을 거듭 흡수한 거대자본이 사료에서 사육, 도축에서 포장에 이르기까지 축산업을 수직 계열화하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탄생한 거대한 축산자본은 미국은 물론 세계의 농업과 축산업을 쥐락펴락할 정도로 막강해졌다. 자금력을 동원해 정치권을 주무르는 미국의 축산자본은 자신의 이익에 충성하는 법을 끌어내는데 성공,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받게 되었지만 더욱 사나워진 욕심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해외 판매망 확장을 위해 자국 정부는 물론, 수입국 정부를 압박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적대적 기업합병이 횡행하는 기업 풍토에서 축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생사가 달린 경쟁은 온갖 부조리를 양산한다. 남보다 빠른 시간에 몸무게가 늘어나는 소를 더 많이 사육한 뒤 신속하게 도축해서 포장해 팔아야 주식가격이 오르고, 주식가격이 올라야 최고경영자의 지위가 보장되고 연봉도 오른다. 그를 위해 다방면에서 원가 절감 요인을 찾아야 한다. 컨베이어 빠르게 움직이면 도축과 포장의 속도가 빨라진다. 미국의 도축업체는 시간 당 400마리를 도축해 포장한다. 소 한 마리를 부위 별로 해체해 상자에 담아 운반트럭에 싣는 데까지 7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원가를 더 줄이려면 인건비도 낮춰야 한다. 축산자본은 비숙련 비정규직을 채용할 뿐 아니라, 불평등한 대우에도 불평 한 마디 있을 수 없는 불법 이민자를 선호한다.

 

과학기술을 동원한 축산자본은 거듭된 육종으로 덩치가 큰 송아지를 개발했지만 사료비는 절감되지 않는다. 이때 과학자는 공업용 원자재로 헐값으로 처리해야 했던 도축 부산물을 활용하는 방법을 착안한다. 17세기 목양 산업에 시도했던 영국에서 자국의 소에 도축 부산물을 가공한 사료를 진작부터 먹이지 않았던가. 되새김위를 가진 초식동물이더라도 사료에 도축부산물을 섞으니 잘 먹었고, 그러자 사육비가 절감돼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이다. 같은 종의 도축 부산물을 먹은 영국의 목양에서 스크래피라는 질병이 발생된 적 있지만 그건 옛날 일이다. 목양 산업이 호주로 넘어간 뒤 본성을 찾은 양에 스크래피는 발생되지 않았다. 한데, 확립된 기술이 퍼져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짧은 법이다. 양에서 얻은 결과를 소에 적용하는데 일찍이 거부감은 없었고 이번에도 영국에서 물꼬를 텄다.

 

축산자본을 두둔하던 영국 정부는 소가 넘어질 때만 해도 드러나는 광우병의 실체를 덮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사람까지 희생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악화되었다. 진실을 알게 된 시민들의 분노로 영국은 30개월 이상의 소 수백만 마리를 모조리 도살해 소각했지만 엉뚱하게 소가 발생된 것이다. 광우병이 의심돼 도살된 소의 99퍼센트 이상이 영국에서 도살되었다. 광우병으로 사망한 환자의 90퍼센트가 영국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영국에서 광우병 환자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더욱 다행인 것은 광우병 소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다. 광우병에서 교훈을 얻은 대부분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소 사료에 어떤 육질도 섞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소에도 광우병이 나타났지만 그건 과거지사일 뿐, 이제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아쉽게 캐나다보다 안전을 확신하기 어려울 것이다. 도축 부산물을 먹은 소에서 광우병이 이따금 발생하는 캐나다도 얼마 전부터 철저히 배제한 육질 사료를 미국의 축산업자는 아직도 버젓이 먹이기 때문이다. 물론 광우병 사태 이후 소 도축 부산물을 바로 소에 주지 않는다. 다만 돼지와 닭에 사료로 제공하고, 돼지와 닭의 도축 부산물을 소에게 준다. 돼지와 닭은 잡식동물이므로 육질사료가 문제될 게 없지만, 광우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변성 프리온이 매우 적은 양이라도 섞인 소 도축 부산물을 먹었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사람에게 광우병이 발생하듯, 변성 프리온은 종 사이를 쉽게 넘나드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살코기용으로 판매되는 미국산 소는 대부분 생후 20개월 내외에 불과한 송아지다. 그 연령에 변성 프리온이 있어도 광우병으로 의심할 정도의 증상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처럼 도축하기 이전의 모든 소를 대상으로 검사를 해야 소비자는 안심할 수 있지만 경쟁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미국의 거대 축산업자들은 그와 같은 ‘전수검사’를 외면하고 미국 정부는 그런 축산업자를 두둔한다. 심지어 수입국 소비자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포장 이전에 전수검사 하겠다는 업체를 방해하기도 했다.

 

누군가 말한다. 사람에게 광우병이 전달될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하지만 불행이 닥친 이에게 확률론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확률론이 얼마나 정확한 과학적 사실에 근거했는가 여부일 것이다. 광우병에 크게 혼난 유럽연합은 일어서지 못해 도축하지 않는 소, 이른바 ‘다우너’(downer)의 경우, 1만 마리 중 30마리 이상에서 프리온이 발견되었다고 연구결과를 주목한다. 미국의 동물권보호단체가 도살장에 위장 취업해 공개한 많은 자료는 다우너의 도축이 빈번하다는 걸 줄기차게 증언한다. 다우너를 도살한 살코기는 햄버거용으로 활용된다고 해도 걱정이지만 폐쇄된 도살장을 소비자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 자식을 둔 시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20세기 초순, 파푸아뉴기니 동편 산림지대 포레족의 여인들은 죽은 자의 몸을 일상적으로 먹었다. 사냥감을 남성들이 독점하기에 그 대항으로 단백질을 보충한 것인데 그만 여인들이 ‘쿠루’라는 웃음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어가는 게 아닌가. 변성된 프리온에 의한 일종의 광우병이었다. 그 사실을 안 미국의 젊은 의사의 헌신적 노력으로 현재 포레 족에 쿠루는 발생하지 않는다. 대신 남성들은 사냥감을 나누어주었을 것이다. 광우병은 소의 본성을 왜곡시킨 인간의 탐욕 때문에 발생한 치명적 질병이다. 과밀한 축산을 부른 녹색혁명이 쇠고기 과식을 부추긴 결과 대장암과 유방암, 뇌혈관과 심혈관 질환, 그리고 고혈압과 당뇨와 같은 성인병이 나이에 관계없이 확산되었지만 광우병까지 유발한 것이다. 결국 사람의 욕심, 자학에 가까운 경쟁적 탐욕이 광우병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사이언스올, 2009년 3월 두 번째)

공부도 많이 되고 교육자료로 잘 쓰고 있습니다, 문제점을 바라보는데 정확한 시각을 갖게 해주는데 좋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