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6. 3. 25. 20:08

다채로움이 약진하는 계절

 

유래 없이 추운 겨울이 며칠 이어졌지만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려도 난방이 넉넉한 사람은 별 탈 없었는데, 여름철새들은 어떻게 견뎠을까? 겨우내 물 흐르는 하천에 남은 백로와 왜가리 뿐 아니라 저어새도 드물게 남녘에 머물던데, 혹독했겠다.


물이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 대부분의 생명체는 겨울에 움츠러든다. 혹독하든 아니든, 그래야 정상이다. 체표면을 최대한 좁혀야 체온을 유지하기 쉽기에 동글동글하게 움츠린다. 따뜻한 곳으로 떠나지 않은 여름철새나 오리털 파커로 겹겹이 감싼 사람이나 모두 동글동글해진다.


지난 가을 무성한 나뭇잎을 우수수 떨어뜨린 가로수들은 예외인가? 미세먼지가 없는 날, 파란 하늘아래 가지들이 앙상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가지 끝의 잎눈은 앙상하지 않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도톰해지며 봄을 준비하는 게 분명하다. 근린공원 산수유의 꽃눈도 노란 꽃잎을 드러낼 태세다. 곧 경칩이 지나겠지.


산간계곡과 이어진 논에 고인 물은 겨우내 꽝꽝 얼지만 봄이 다가오면 가장자리부터 얇아진다. 경칩 무렵 살얼음은 한낮에 녹는다는 걸 북방산개구리는 안다. 계곡의 바위 아래에서 겨울잠을 자면서 북방산개구리는 그때를 기다렸다. 가을에 충분히 챙긴 영양분을 총동원해 뱃속 가득 알을 준비해왔다.


살얼음을 깨고 한밤중에 기지개를 편 북방산개구리 수컷이 천적이 눈치 채거나 말거나 목청을 가다듬으면 뱃속의 알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암컷이 주춤주춤 다가올 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수컷이 냉큼 암컷의 등에 오를 것이고, 양쪽 엄지로 토실토실한 배를 온 힘을 다해 누르며 알을 밖으로 밀어내면서 춘정을 이기지 못하면 알 덩어리 하나가 살얼음 아래 소복하게 놓일 것이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끼를 뜯는 북방산개구리와 한국산개구리의 올챙이들이 통통하게 성장한다는 소식을 들은 걸까? 겨우내 양지바른 산록에서 말라붙은 열매를 찾다 지친 산새들이 부지런히 계곡을 기웃거린다. 잔설을 뚫고 복수초가 올라와 노란 꽃잎을 펼치더니 어느새 산수유는 꽃눈을 펼치기 시작했다. 산새들이 짝을 찾을 계절로 들어선다.


4대강 사업 이전, 남한강 주위의 작은 나무 꼭대기는 딱새와 노랑턱멧새의 경연무대였다. 단순하도 귀담으려면 복잡한 노래들. 교교하게 지저귀는 새들은 새매에 들키기 십상이다. 새매에 대한 공포를 이겨낸 수컷은 머지않아 짝을 만나 둥지를 치겠지. 알을 낳고 품을 때 누룩뱀을 조심해야 한다. 새매도 누룩뱀도 곧 알을 낳을 것이다.


자연의 동물들은 제 새끼들이 무럭무럭 자랄 때 먹을거리가 풍성해야 한다.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의 새끼가 태어날 즈음 태기를 느끼고 초식동물은 나무마다 새잎이 펼쳐지길 기다려 새끼를 낳는다. 잎사귀가 말랑말랑할 때, 다시 말해 잔설 속의 산록이 연두색으로 번질 때, 낙엽 깊숙한 곳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가느다란 애벌레들이 줄기와 가지를 타고 오를 것이다. 산새들도 앙증맞은 새끼를 맞겠지.


눈을 뜨지 않아도 어미의 온기를 느끼면 노란 입을 활짝 열며 보채는 새끼들은 예쁘기만 한 게 아니다. 무시무시하게 먹어대니 어미는 여간 바쁜 게 아니다. 나뭇잎이 두툼해질 즈음 잎사귀를 갉는 애벌레들이 커지듯, 애벌레를 먹는 어린 산새들도 부쩍부쩍 자랄 것이다. 이른 여름에 들어가며 애벌레가 나비나 나방이 된다면? 어린 산새들은 드디어 둥지를 떠나 스스로 먹이를 해결하겠지.


5월은 청소년의 달이고 55일은 어린이날이다. 근린공원은 봄꽃들이 파스텔 톤으로 만개했고 한낮의 나른한 햇살은 따사롭다. 꽃잎 사이에 호랑나비가 찾기 시작했으니 아이 손잡고 산책하기 안성맞춤이다. 한낮 햇살을 피해 잠시 나무그늘로 가면 잎사귀를 갉는 애벌레가 보이고 새의 날카로운 부리를 피하다 잎사귀에서 떨어진 애벌레는 아기 발 아래에서 오물거리겠지.


아니, 아닐지 모른다. 며칠 전 방제차량이 작업을 벌였지 참! 그 때문에 애벌레들이 속절없이 떨어져 바닥에서 몸을 뒤트는 게 맞겠다. 아교를 섞어 끈적끈적한 살충제를 뿌린다던데, 그러고 보니 일제히 새들이 사라졌네. 근린공원의 터줏대감이던 참새와 박새를 몰아내며 시끄럽게 나뭇가지를 맴돌던 직박구리도 얼씬 하지 않는다. 봄비가 내리자 지렁이가 올라왔지? 유기물 많은 지하로 살충제가 스며든 모양이군.


봄이 무르익으면 여름이 다가오는 법. 가벼운 옷차림으로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산책에 나선 엄마는 햇살에 눈부신지 선글라스를 썼다. 엄마가 농구화 신고 허우적대는 강아지에 신경 쓰는 사이, 엄마 손을 놓고 나무 아래로 쪼르르 달려간 아기가 무언가를 꽁꽁 서툴게 밟아댄다. 다가온 엄마. “벌레잖아? 아이, 더러워!” 아이 손을 낚아챈다.


더러웠을까? 꿈틀대던 애벌레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귀여운 아기 신에 애벌레가 터져 붙는 게 싫었던 걸까? “아이 불쌍해라. 나무에서 떨어졌구나. 더 자라면 예쁜 나비가 될 애벌레인데하고 살포시 잡아 나뭇잎 위에 올려주었다면? 순자의 성악설이 맹자의 성선설로 바뀌는 순간일 텐데, 아이의 심성이 고와질 기회였는데, 아쉬웠다.


애벌레가 나뭇잎을 갉으면 근린공원의 값비싼 나무들은 말라죽을까? 그럴 거 같지 않다. 나무는 벌레에 양보할 걸 감안하고 충분한 잎사귀를 겨우내 준비해두었다. 잎사귀에 벌레가 붙으면 새들이 날아온다. 숲을 건강하게 할 씨앗을 새들이 가지고 올 거라는 사실을 제자리에 있는 나무들은 경험으로 잘 안다.


벌레 때문에 살충제를 뿌리기보다 민원을 의식해 뿌린다고 핑계를 대지만, 사실 방제예산이 진작 잡혀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책정된 예산을 소진하지 않아 해당부서의 역할이 위축되는 걸 바라지 않으니 관례처럼 뿌리는지 모르는데, 그 때문에 새들이 한동안 공원에 얼씬거리지 않게 된다. 금세 내성을 갖추는 벌레는 거듭 강력해지는 살충제에도 끄떡 않고, 근린공원의 나무들은 잎을 모조리 잃는다.


봄볕은 나뭇잎에 묻은 살충제를 바싹 말리고 아기들 아장아장 걷는 보도블록에 떨어뜨려 봄바람에 나풀거리게 하겠지. 입 벌리고 세발자전거 타는 아이, 활짝 웃으며 아빠와 배드민턴하는 아이의 코 높이로 흩날리겠지. 생활협동조합에서 유기농산물 구입하고 가공식품을 외면하며 생과자를 구워줘도 아토피가 가라앉지 않은 이유의 설명이기도 하겠다.


봄은 다채로운 생명이 찬란하게 약진하는 계절이다. 잔뜩 움츠렸던 개구리와 메뚜기가 몸을 펴고 멀리 그리고 높이 비약하듯, 다양한 생명들이 봄에 모습을 드러내며 여름을 준비한다. 그래야 여름이 활발하고 가을이 넉넉하다. 삼라만상은 늘 그래왔는데, 어느 순간 헝클어졌다. 과학과 자본이라는 무기가 남용되면서 계절은 다채로움을 잃었고 변화는 단조로워졌다.


자연은 약육강식의 사각 링이 아니다. 서로 돕는다. 사슴을 잡는 늑대를 없애자 미국 옐로스톤국립공원은 얼마 안 가 사슴 사체로 덮였다. 쥐가 들끓으며 먹이를 고갈시켰기 때문인데, 사실 사슴보다 느린 늑대는 병들고 다친 사슴을 솎아낼 따름이었다. 애벌레와 나뭇잎과 산새들의 관계가 그렇다. 덕분에 생태계에 가장 늦게 동참한 사람도 건강할 수 있었다.


움츠리던 뭇 생명이 약진하는 봄이 왔다. 생태계에서 피어오르는 다채로움은 우열이 아니다. 하나하나 개성 있는 생명가치들이다. (가스공사 사보, KOGAS, 20163월호)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3. 1. 22. 16:27

   겨울은 봄을 준비하는 계절

 

날씨가 모처럼 갰다. 파란 하늘에 도드라지는 가로수의 앙상한 가지는 겨울을 더욱 시리게 하는데, 북극해가 얼지 않자 삼한사온이 실종됐다. 제트기류에 막히던 북극권의 한파가 일찌감치 우리나라와 같은 중위도 국가로 내려간 몰아쳤고, 감기환자들이 순간 급증했다. 지구온난화의 여파는 그렇듯 사람들에게 예기치 않은 건강 이상을 불러들이는데, 자연의 생물들은 안녕할 수 있을까.


겨울잠 자는 동물은 산록과 들판의 열매로 체지방을 충분히 늘려야 하는데, 지난 가을에 유난히 비가 많았다. 아니 올해만 아니라 근 20년 가까이 우리 가을은 이상스레 덥고 축축했다. 체지방이 충분치 못한 동물은 겨울잠에서 일찍 깨어날 수 있으니 봄을 건강하게 맞지 못할 것이다. 겨울잠 자지 않는 동물은 먹이를 찾아야하는데, 혹독한 겨울은 시련을 안긴다. 눈 덮인 산록에서 먹이를 찾지 못하고 민가를 기웃거리는 멧돼지는 충동하는 소방대원의 총구를 조심해야 한다.


대기에 농축되는 온실가스로 빚는 지구온난화는 냉난방 조절되는 실내공간으로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웃에게 전에 없던 혼란을 강요하지만, 가을이 지났으니 온대지방은 겨울을 맞는다. 23.5도 기운 지구가 하루에 한 번 자전하고, 1년에 태양을 한 차례 공전하는 한, 태양광의 각도가 변하기 때문이다. 삼한사온이 실종되고 한파가 일찍 찾아오더라도 가을보다 겨울이 춥고 겨울이 지나면 틀림없이 봄은 찾아온다. 겨울을 맞은 자연의 이웃들은 봄을 조용히 기다릴 것이다.


겨울은 고요하지만 휴식의 계절로 그치는 건 아니다. 휴식하며 내일을 준비한다. 앙상한 가지는 무성했던 나뭇잎을 떨어뜨린 자리에 잎눈을 마련하고 개구리는 봄에 낳을 알을 몸속에서 키운다. 도시 공무원들은 가로수마다 짚을 뒤집어씌웠지만 나방은 줄기에 알을 낳았다. 내년 봄 잎눈이 펼쳐지면 애벌레들이 알을 깨고 나올 것이다. 가는 가지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나무껍질 속의 나방 알을 용케 꺼내 먹는 쇠딱따구리도 봄을 준비한다. 내년 봄 일가를 이뤄야 한다.


이 겨울, 산록의 생명들도 지구온난화로 어수선해진 자연에서 나름대로 봄을 준비하는데, 도시 한복판을 장식하는 나무들은 새로운 시련을 겪는다. 아니 강요당한다. 지푸라기로 줄기와 가지가 휘감아진 가로수와 근린공원의 조경수는 가로등과 자동차의 불빛에서 사시사철 자유롭지 못하지만, 대형 건물과 상가 앞의 나무들은 형형색색의 꼬마전구를 이맘때 휘감아야 한다. 짧은 해가 기우면 광채를 발해야 한다. 수많은 전구는 거치대가 된 나무의 휴식을 방해한다. 대기오염과 빛으로 밤낮이 없는 스트레스를 받는 나무들은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다. 나무에 기대는 생물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물은 휴식 없이 건강할 수 없다. 하루의 적어도 3분의1을 쉬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피하지 못하는 사람도 건강을 잃는다. 왕성하게 분열하던 세포도 분열이 끝나면 쉰다. 학자들은 휴지기라고 이름 붙였지만, 세포가 쉬는 건 분명히 아니다. 필요한 물질을 생성하면서 새로운 분열을 준비한다.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것 같은 아기들의 몸은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세포가 있기에 무럭무럭 성장한다. 사춘기가 지나 성장이 멈추었더라도 항상 새로운 물질로 채워놓는 세포는 쉬면서 일한다. 휴식 없이 분열만 계속하는 세포는 암이다. 암은 그 생명체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가을걷이를 마친 들판은 조용해도 멈춘 건 아니다. 나락이 떨어진 볏단은 따뜻한 햇살을 받는 물속에서 썩으며 땅을 기름지게 하고, 겨울철새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한다. 짚을 걷어먹는 철새들은 배설물을 내놓아 새봄에 다시 내릴 벼이삭의 뿌리를 튼실하게 만들 텐데, 기계와 화학비료가 들판을 점령한 요즘은 아니다. 나락이 털어진 볏짚을 비닐로 둘둘 말아 커다란 목장으로 팔아치우면서 들판은 영양과 휴식을 잃었다. 볏짚을 먹은 가축의 배설물은 들판으로 오지 않는다. 정화조에서 처리되거나 시내로 마구 흘러들어 하천 생태계를 망쳐놓는다.


농기계로 다져진 농토는 개구리의 겨울잠을 방해하니 농약을 간신히 이긴 개구리는 봄을 준비하지 못하고, 개구리가 사라진 들판에 살충제가 없으면 방제는 불가능하다. 농약이 흥건한 들판에 뱀이나 쥐가 다가오기 못하니 봄을 준비해야 하는 매는 파란 하늘을 선회하지 않고, 들판은 적막해지고 말았다. 냉난방이 자동 조절되는 학원에서 겨울을 지내는 아이들은 달라진 학원 교재로 봄을 알고, 아기 울음소리는 도시나 농촌이나 냉난방 조절되는 산후조리원에 갇히고 말았다.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한다.


     겨울은 추워야 겨울답다. 간장독과 아이들은 겨울에 내놔도 얼지 않는다고 했다. 겨울을 지나치게 덥게 만들면서 휴식을 잃은 사람들은 지구를 거침없이 데웠고, 겨울철 빙원을 잃은 북극해는 그 냉기를 중위도 지방으로 사정없이 내려 보낸다. 그 때문에 북극곰은 터전을 잃고 멸종을 눈앞에 두었는데, 과학기술을 앞세우는 사람은 아직 멀쩡하다. 사람 역시 자연에 기댈 때 건강한 노릇인데, 언제까지 안녕할 수 있을까. 봄을 준비하지 못하는 겨울은 내일의 건강을 위협할 텐데. (야곱의우물, 2013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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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2005. 3. 23. 01:43
 

기상관측 이래 최대로 쌓인 눈이 빠르게 녹으며 봄이 성큼 다가왔다. 파도처럼 찾아드는 꽃샘추위가 점차 누그러지면서 남녘에선 매화가 만발하고 산기슭에는 복수초와 바람꽃들이 잔설 틈에서 봄을 알린다. 고마운 일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석유값 나 몰라라 하는 난방은 지율스님 살리자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내복을 껴입지 않아도 좋을 만큼 실내를 데웠고, 덕분에 굴뚝들은 부지런히 이산화탄소를 쏟아냈건만 계절은 민망하게도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우수, 경칩이 지나면 나무 심기 좋은 청명이 온다. 천성산에는 도롱뇽들이 여전히 알을 낳았고 청주 원흥이방죽에는 두꺼비들이 모여들었다. 위기의 순간에도 자연의 생명들은 봄을 늘 그렇게 맞이하고 있다. 한 인터넷 게시판은 살얼음 낀 계곡에 머리 내민 북방산개구리를 보여주며 방구석에 처박힌 네티즌들에게 봄을 전하는데, 천마산이 지척인 마석의 허름한 식당은 요즘도 ‘내 고장의 명물, 개구리탕’이라 써붙인 골판지로 뜨내기를 유혹하고 있을까. 천성산의 도롱뇽과 원흥이방죽의 두꺼비들은 이번 봄을 얼마나 만끽할 수 있을까.


얼마 전, 한 신문은 농촌에 마을경사가 벌어졌다고 보도한다. 마지막 새댁이 도회지로 떠난 이후 끊어진 아기 울음소리를 17년 만에 듣는다며 활짝 웃는 노인들의 사진을 보여주는데, 신문을 읽으며 덩달아 기뻐할 기분은 들지 않았다. 시골만이 아니다. 도시는 아기 울음소리와 절연되었다. 힘주라는 의사의 성화 끝에 세상에 나온 아기는 기진맥진한 엄마와 대면하자마자 격리돼 분유에 길들여지고, 산바라지 해줄 친지를 찾을 길 없는 산모들이 산후조리원에 아기를 맡기는 까닭이다. 일손이 딸리는 어떤 산후조리원은 갓난아기 손에 분유통을 들렸던 모양인데, 한 아기가 그만 질식돼 죽었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을 통해, 봄이 와도 새가 울지 않는 풍경을 음울하게 전했다. 그런데, 레이첼 카슨 서거 30년, 미국의 한 유력지는 봄이 와도 새가 운다고 고마워한다. 레이첼 카슨이 틀렸다는 지적이 아니었다. 일찍이 레이첼 카슨의 경고가 없었다면 미국의 봄은 침묵으로 왔겠으나 농약 살포를 자제한 결과 자연의 생명 소리와 함께 찾아온다며 레이첼 카슨을 기리는 특집이었다. 『침묵의 봄』이 세상에 나온 직후 잠시 위축됐던 미국의 농약회사들은 망했을까. 아니다. 40년이 지난 매출고는 50만배 늘었고 농약은 이제 미국 이외 나라의 농토를 지배한다.


마지막 주 토요일마다 우리의 각급학교는 수업을 하지 않는다. 때를 맞춰 녹지가 절대 부족한 도시의 아이들은 부모 손잡고 산으로 들로 나갈 것이다. 주변에 녹지가 30퍼센트 이하일 때 사람들은 불안해지기 때문이라고 조경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래서인지 유럽 도시들은 하늘을 덮을 듯 나무가 우거진 녹지를 도심 곳곳에 조성하고, 그 나라 고속도로는 휴일이면 한산하다. 토요 휴무를 맞아 우리의 많은 시민단체들은 자연을 찾는 가족행사를 기획하는데, 농촌으로 가는 생태기행도 적지 않을 것이다. 유리창 넘어 눈에 들어오는 녹지! 하지만 차창을 함부로 열면 곤란하다. 농약냄새가 코 점막을 사정없이 자극할 테니까.


아기 울음소리가 끊어진 농촌은 봄이 와도 적막하다. 단위면적당 농약 살포량이 세계최대인 국가답게 개구리도 새도 감히 울지 못한다. 레이첼 카슨의 의도와 달리 우리가 적막강산으로 버림받은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휘하는 산업사회는 다양한 농작물을 나누던 공동체를 돈으로 오염시키며 해체했고, 고령사회로 치닫는 농촌은 남보다 많은 돈을 빨리 벌기 위해 농약 없이 재배가 불가능한 소품종 환금작물로 도배했는데, 적막강산의 인식론적 종말은 어떤 모습일까.


80퍼센트에 달하는 초등학생들에게 항생제 내성이 나타난다고 한다. 농약에 절은 농작물, 항생제 범벅인 양식 어패류와 육류와 낙농제품, 이들을 가공한 패스트푸드를 입에 달고 자란 탓이라고 한다. 나이를 불문하고 전에 없이 급증하는 아토피는 무엇을 웅변하는가. 봄을 아직 봄다울 때, 계절이 어김없이 찾아올 때, 정신 차리라는 경고가 아니겠는가. (요즘세상, 2005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