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0. 11. 30. 15:20

 

2006년 12월 18일,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의 한 농촌마을 아이들이 집단으로 불소중독증에 걸려 충격을 주었다고 MBC 뉴스데스크는 보도했다. 마을의 모든 어린이 치아가 노랗게 변색되더니 내려앉고, 구멍나면서 부서져 치료가 불가능했다는 것으로, 11.4ppm 농도의 불소가 녹은 지하수에 원인이 있었다. 태풍 매미가 휩쓴 뒤 급격히 불소 농도가 늘어난 지하수를 2년 넘게 마신 것이다. 당시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는 불소가 뼈에 침착되면 잘 깨질 수 있다고 증언했다.

 

11.4ppm이라면 수돗물에 넣겠다는 불소 농도의 15배가 못된다. 불소는 몸에 축적되므로 불소화된 수돗물을 30년 이상 마시면 민감한 시민의 경우 이가 부서지고 뼈가 깨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수돗물이 불소화된 지역의 노인에게 골절이 발생하고, 불소로 약해지고 딱딱해진 노인의 뼈는 수술로도 붙지 않아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간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소화의 치명적 부작용이 속속 드러난 것이다.

 

주기율표 17족의 할로겐 원소인 불소는 반응성이 가장 커 화합물 상태로 존재하는데 수돗물에 넣는 불소화합물은 알루미늄제련공장이나 인산비료공장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이다. 그 화합물은 지하수에 들어 있는 불소보다 훨씬 불안정해 물에 닿으면 격렬한 반응을 보이므로 몸을 위험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194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제철공장에서 도노라 계곡으로 불소화합물이 배출되자 하루 사이에 천여 명의 주민이 사망하고 훨씬 많은 시민이 평생 불구로 지낸 사건은 낮은 농도의 불소도 얼마나 위험한지 잘 웅변한다.

 

지난 달 말, 인천연대 협동사무처장 김유성은 <건강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수돗물불소화’>라는 글을 본지에 기고했다. 같은 달 23일 필자가 본지에 기고한 <건강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돗물불소화>의 제목을 패러디한 김유성은 인천에서 16년 동안 수돗물 불소화 사업이 제기되었고 60여개 시민단체가 ‘인천불소시민모임’을 만들어 인천시와 시의회에 청원하며 알릴만큼 알렸으니 이제 여론조사를 거쳐 수돗물 불소화를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소수 때문에 대다수 의견이 묵살되면 민주주의가 아니라면서 미국을 비롯한 58개 국가 3억6천만 명이 불소화된 수돗물을 마신다고 주장했다.

 

김유성은 필자에 지상 논쟁을 제안한 것으로 본다. 공개된 논쟁은 바람직하다. 논의가 충분했고 대다수 시민들이 수돗물 불소화를 찬성한다고 김유성은 주장했지만 안타깝게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65년 동안 세계에서 수돗물 불소화 사업을 진행했지만 반대 논의도 그 역사를 가진다. 주둔 미군을 제외하고, 58개 국가 중 시민 대다수가 불소화된 수돗물을 마시는 국가는 얼마나 되나. 수돗물을 공급하는 국가 중 고작 3억6천만 명이 수돗물로 불소를 마시지만 불소의 실상을 나중에 안 시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왔다. 그 결과 불소화 사업이 곳곳에서 취소되지 않은가.

 

불소의 치명적 위험성 때문에 수돗물 불소화를 반대하는 거다. 스치며 이를 단단하게 하는 독극물을 왜 굳이 마셔야하는가. 사람에 따라 0.8ppm 농도라도 위험할 수 있다는 논문은 무시하면 안 된다. 논문은 양보다 질이다. 김유성은 미 보건당국은 수돗물 불소화 반대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있으며 양심 있는 과학자의 반론이 만만치 않다는 소식은 전하지 않았다. 장담하지만 불소의 위험성을 명명백백하게 밝힌 뒤 투명한 논의를 민주적으로 진행하고 결정한다면 미국의 수돗물 불소화 사업도 속속 취소될 것이다.

 

민감한 사항일수록 불편부당하며 투명한 논의를 충실하게 펼친 후 참여자가 모두 납득할 수 있도록 결정해야 올바른 민주주의다. 이제까지 수돗물 불소화 과정은 전혀 투명하지 않았다. 여론조사도 왜곡된 문구로 일방적으로 실시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시 여론조사 문구를 공개해야 한다. 시민단체 대표답게 김유성은 민주주의를 언급했는데, 민주주의는 전체주의가 아니다. 왜곡된 사실을 근거로 하는 다수결이 아니다. 수돗물 불소화 찬성 단체를 압도하는 시민의 의견을 소수로 몰 수 없다.

 

수돗물 불소화 논의는 다시 제대로 진행해야 한다. 일방적인 여론조사로 수돗물에 독극물을 넣는 행위는 민주주의에 반하므로 공개적인 논의를 제안한다. 따라서 인천시는 수돗물 불소화 사업예산을 서둘러 책정하면 안 된다. 유권자가 두렵다면 자식을 키우는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논의를 위한 예산부터 마련하라. (인천신문, 2010.12.7)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11. 21. 01:50

 

대부분의 시민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수돗물에 불소를 넣겠다는 소문이 인천시 주변에서 새어나온다. 시의회나 시민단체 일부에서 잊을만하면 제기했던 수돗물불소화가 시에서 불거져 나오는 건 시장의 공약이기 때문이라는 풍문이지만, 대부분의 시민은 현 시장이 후보일 때 수돗물불소화 공약을 이야기했는지 모른다. 만일 그걸 알았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박빙일 때, 수돗물불소화 공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력했다면 후보는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점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생각해보라. 수돗물에 넣으려는 불소화합물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실상을 정확히 알았다면 과연 그 공약이 채택되었겠는가. 만일 그 공약이 선거기간에 공론화되어 유권자 사이에서 토론이 벌어졌다면 어찌 되었겠는가. 불소화합물의 위험성이 만천하에 속속 드러나는데 후보가 공약을 사수했겠는가. 즉각 철회하고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지지율 상승을 간절히 원하는 후보에 어떤 단체가 다가가 은밀히 요구했는지 짐작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방법이 치졸했다. 이제까지 수돗물불소화 제안이 나올 때마다 시민단체 사이에 격렬했던 논의가 벌어졌고, 이어 민주적 공론화를 투명하게 거치면 어느 지역이든 제안된 수돗물불소화는 없었던 일이 되었다. 심지어 수돗물불소화가 행해지던 지역도 논란 이후 속속 포기했다. 그런데 소문의 근원에 있는 인천시 최고위 공직자 중의 한 이는 얼마 전까지 수돗물불소화를 추진해왔던 단체의 대표였다. 그의 독선으로 수돗물불소화가 은밀히 추진되는 거라면, 인천의 민주주의는 시방 독살되는 것이다.

 

불소가 치아를 단단하게 해 충치 발생을 줄인다는 철지난 경험적 사실은 아직 유효한가. 현재 반론도 만만치 않다. 맞벌이 가정 7살 이하 어린이의 충치를 예방한다는 일부의 주장도 역학조사로 번복된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 7살 이하 어린이도 양치를 제대로 하면 수돗물불소화는 불필요하다. 당분이 많이 들어간 과자나 사탕을 줄인다면 더욱 불필요하다. 문제는 불소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독극물이고 비소보다 강력한 발암물질이라는 점이다. 1948년 미 펜실베이니아 주 도노라 계곡에 퍼진 제련공장 굴뚝의 불소가 하룻밤 사이에 천여 명의 주민을 사망케 하고 훨씬 많은 이를 암과 질병으로 평생 고통스럽게 한 사례를 잊으면 안 된다.

 

백보 양보하여 불소가 이를 단단하게 한다고 치자. 그 효과는 불소를 마셔서 얻는 게 아니라 이를 스쳐서 생긴다. 농도를 낮추므로 안전하다는 주장 역시 위험하다. 불소 민감성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은가. 면역이 약한 아기는 이도 없는데 불소를 마셔야 한다. 임산부, 노인, 병약자도 그렇다. 게다가 수돗물에 넣겠다는 불소는 더 무섭다. 자연계의 불소화합물도 위험한데 비철금속 제련공장에서 나오는 폐기물인 불소화합물은 물과 격렬하게 반응하므로 몸에 치명적일 뿐 아니라 축적되므로 더욱 위험하다. 치료가 불가능한 골절이 나이 든 뒤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수돗물은 최대한 순수해야 한다. 아무리 몸에 좋은 물질이라도 모든 시민이 마셔야 하는 물에 넣으면 안 된다. 수돗물불소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중을 위한 보건의료인 양 주장하지만, 생각해보라. 민주사회에서 비타민이든 영양제든, 원하는 이가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해한다. 정확한 정보도 알려주지 않으며 먹을 걸 강요해야 하는가. 더구나 아무리 희석해도 독극물일 따름인 불소를 무차별적으로 마셔야 하는가. 수돗물의 불소가 이런 문제를 일으킨다는 걸 아는 순간 시민들은 이번 소문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해보라.

 

불소가 이를 단단하게 해준다는 철지난 경험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몸의 건강이다. 독극물이기에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불소를 넣은 수돗물을 피피티 병에 담아 원하는 가정에 제공하는 방법도 있다. 한데 인천시는 왜 피할 수 없는 공포를 시민에게 강요하려 하는가. 논의가 치열할수록 과정이 투명하고 결과가 누구나 납득할 수 있어야 민주사회다. 한데 요사이 인천시 주변에서 들리는 소문은 시민의 건강과 민주주의에 흉흉하기만 하다. (인천신문, 2010.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