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1. 10. 12. 01:03

 

어스름 저녁, 나비처럼 너풀거리다 불빛에 모여드는 곤충을 커다란 날개로 휘감아 입에 물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박쥐. 이솝은 박쥐를 교활한 기회주의자로 몰아붙였지만 이솝이 누군지 관심이 없는 박쥐는 천적이 드문 밤에 동굴에서 나와 동트기 전, 뱀이 접근할 수 없는 동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잠을 청할 뿐이다. 가늘고 긴 손마디 사이의 얇은 피부를 부채처럼 펼치며 요리조리 나뭇가지 사이를 펄럭이는 건, 동굴에서 기다리는 젖먹이를 거뜬히 먹이려는 어미의 본성이다.

 

박쥐는 박쥐일 뿐, 밤 말을 듣는 쥐도 낮 말을 엿듣는 새도 아닌데, ‘황금박쥐는 사람의 말을 듣는가. 1960년대가 저물 무렵의 꼬마들은 일본 만화영화 <황금박쥐>가 방영될 때면 부잣집 툇마루에 옹기종기 앉아 조용해졌다. 우주 괴물에게 어려움을 처한 지구 어린이들을 어김없이 구해주는 황금박쥐! 황금 망토의 얼굴은 빛나는 황금 해골이었다. “어디 어디 어디에서 오는가? 황금박쥐!”로 시작하는 주제가는 박쥐만은 알고 있다.”로 끝났다.

 

아무에게 팔지 않는 약국의 독약에 붙인 해적의 상징인 해골은 아이들의 접근을 일체 불허하는데, 황금박쥐가 해골이라니. 아무리 황금이라도 해골은 해골이다. 그 만화영화는 해골 박쥐를 정의의 용사라 했다. 역설이다. 하지만 악당보다 더 무섭게 생긴 주인공이 우리 편이라면? 아이들은 비로소 마음을 놓을지 모른다. 어른들이 박쥐를 기회주의자로 몰아붙이고 해골을 해적과 독약의 상징으로 저주할지언정, 꼬마들은 <황금박쥐>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온통 황금박쥐 이야기뿐인 학교에서 소외되기 싫은 아이는 텔레비전을 사달라고 엄마를 졸랐지만 어림없었고, 아버지 몰래 친구네 갔다 들키기 싫으면 만홧가게 흑백텔레비전에서 갈망을 채워야했다. 그 시절, 동네 극장에서 <황금박쥐>를 상영했고, 아이는 엄마를 다시 졸랐다. 영화는 칼라였고, 과연 황금박쥐는 황금색이었다. 더 보자며 떼쓰는 아이 때문에 엄마들이 유치한 내용을 외웠던 시절, 꼬마들은 황금색이 아니라도 좋았다. 붉거나 노란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고 작대기 하나씩 움켜쥔 채, 골목을 뛰어다녔다. 목이 터져라, “어디 어디 어디에서 오는가? 황금박쥐! 박쥐만은 알고 있다!”

 

황금박쥐가 나타났다고? 컴퓨터 게임에 빠진 요즘의 아이들은 조용하기만 한데, 어른들이 30년 만에 목청을 높인다. 천연기념물 452호이자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동물인 황금박쥐가 부산 북구의 버섯 재배용 비닐하우스에서, 충남 태안군의 한 농가에서, 전남 함평군의 폐금광에서, 강원도 동해시의 동굴에서, 충북 진천군과 충주시의 동굴에서 나타났다고, 경사가 났다고,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고, 소리 소문을 낸다. 도대체 얼마만인가. 텔레비전에서 사라진 뒤 어디에 있는지 통 몰랐던 우리의 천연기념물, 황금박쥐를 이제야 알현하게 되다니! 하지만 이 땅의 황금박쥐는 멸종을 강요당한다.

 

황금박쥐는 학자들이 오렌지윗수염박쥐라고 이름붙인 붉은박쥐를 말한다. 집안으로 날아들어 깜짝 놀랐다는 태안의 주민은 몸에 난 털과 골격 부분은 오렌지색이며 날개 부분은 검은색을 띄고 있다.”면서 가슴 벅차했다. 비닐하우스에 들어온 황금박쥐를 다치지 않게 집에서 보호한 뒤 구청에 알렸다.”는 부산의 주민은 황금빛을 강조했다. 발견된 황금박쥐들이 천만다행으로 주민들에게 보호를 받았는데, 왜 멸종 위기라는 겐가.

 

사실 황금박쥐만이 멸종이 걱정되는 박쥐의 전부는 아니다. 해질녘 약수터나 근교에서 쉽게 눈에 띄던 관박쥐도 몹시 드물어졌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이따금 비쳐주는 동굴 속의 박쥐는 언뜻 많아 보여도 형편없이 줄어든 거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지금은 동굴 깊은 곳에 몰려 있지만 예전에는 입구부터 빼곡히 동굴 천장을 덮었다는 게 아닌가. 부잣집 흑백텔레비전에 <황금박쥐>가 방영될 적에 밤하늘을 펄럭이던 박쥐들은 시방 어디로 간 걸까. 우리사회가 그만큼 정의로워진 건 아닐 텐데.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한복판에서 만난 박쥐는 아마 황금박쥐가 아닐 게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황금박쥐는 아프가니스탄 동부에서 중국 남부, 대만과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발리에 두루 분포하고, 일본 대마도에서 발견된다는데, 몇 년 전 여름, 초저녁 주문진의 가로등 주위를 날던 박쥐는 황금박쥐였을까. 국제자연보전연맹에서 보전 목록에 올린 황금박쥐가 사람이 북적이는 해변을 찾을 가능성은 낮겠다. 하지만 동굴의 온도까지 끌어올리는 지구온난화는 은둔하던 황금박쥐를 내몰지 모른다. 새로운 터전을 찾으라고 강요할지 모른다. 한동안 자취를 감춘 황금박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여기저기에서 황금 몸체를 드러낸 건, 실수! 망가진 생태계에서 새로운 터전을 찾지 못해 허둥대다 그만 사람들의 눈에 띈 게 아닐까.

 

최근 충주의 한 환경단체는 황금박쥐를 원고로 환경소송을 냈다. 사람들의 분별없는 개발 행위로 터전이 망가지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하소연해야 하나. 결국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대신해서 보호해 줄 수밖에 없다. 방법은 많은 국가에서 활발한, ‘자연을 대리하는 환경소송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동물들은 그런 환경소송에서 거푸 패하기만 했다. 동물은 소송할 자격이 없다는 철지난 논리에서 법원이 벗어나지 못해서다. 그 한계를 잘 알지만 충주의 환경단체는 굳이 나섰다. 지구온난화를 모르던 1960년대의 생태계가 그랬듯, 황금박쥐가 잘 사는 환경에서 사람도 건강하다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되새기려 했을 것이다. 어릴 적에 <황금박쥐>를 기다렸을 법원의 판사는 황금박쥐의 손을 이번엔 들어줄까.

 

날개 편 길이가 4에서 5센티미터인 황금박쥐는 몸길이도 그 정도다. 황금빛 몸통에 오렌지색 털이 양털처럼 고은 황금박쥐는 다른 박쥐와 마찬가지로 야행성이고,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동굴에서 동면한다. 우거진 숲에서 곤충을 잡아먹으며 이른 여름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어떤 방송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쌍둥이를 낳고 한 마리를 포기하는 황금박쥐를 보여주었다. 비정하다고? 아니다. 두 마리를 동시에 키울 수 없는 까닭인데, 안타깝게 황금박쥐 어미와 선택된 새끼는 자신의 새끼들에게 줄 먹이가 필요한 솔부엉이에게 희생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솔부엉이를 원망할 수 없는 노릇.

 

황금박쥐 162마리를 발견한 함평군은 나비축제로 쌓은 명성을 끌어올리려 그랬는지, 순금 162킬로그램으로 거대한 황금박쥐 조형물을 만들었다. 27억 원이 들어간 조형물의 금값이 86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는데, 방탄 강화유리 속에서 삼중으로 보호되는 조형물을 황금박쥐가 부러워할까. 알 수 없는데, 황금박쥐 집단 서식을 확인한 진천군은 생태조사에 나섰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황금박쥐가 서식하는 동굴을 모범 보전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건데, 황금박쥐가 반겨할까. 공연히 불안하다. 사람이 버리고 떠난 광산에 은둔하던 황금박쥐는 떠들썩한 동굴 보전보다 주변 생태계를 온전히 남겨두길 부탁하고 싶을지 모르는데.

 

황금박쥐를 대신해 주변 생태계의 보전을 법에 호소한 충주의 환경단체는 대규모 도로공사가 걱정이다. 은둔하는 동굴 근처의 공사장에서 거듭되는 발파는 소음과 진동 뿐 아니라 자칫 동굴 붕괴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은가. 커다란 불빛을 번쩍이는 자동차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지만 얼마 안 남은 황금박쥐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터전을 잃은 황금박쥐는 안전한 동굴을 찾으려 위험한 세상을 두리번거리는데, 우리는 황금 조형을 세워 황금박쥐가 아니라 관광객을 맞이할 따름이다.

 

유엔환경계획은 올해와 내년을 '박쥐의 해'로 정해야 했다. 생물학자들이 지구에서 사라지면 안 되는 동식물 5종류 가운데 하나인 박쥐는 산림을 해치는 나방과 주택가의 모기를 먹어치울 뿐 아니라 과일나무의 꽃가루까지 옮겨 미국은 한해 25조 원의 신세를 지고 있다는데, 최근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나무 등걸에 알을 낳는 곤충을 잡아먹는 황금박쥐는 산림 생태계에 꼭 필요한데, 이제 어디 어디, 어디로 가야 하나. 박쥐만이 알고 있을까. (굴렁쇠, 201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