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8. 7. 1. 21:44


 

이번 지방선거는 사전투표로 유권자의 도리를 지켰다. 선거일을 지켰던 지난 총선이나 대선과 달랐던 것은 여야 정당의 적극적인 홍보와 무관했다. 1980년대 이전의 군부대에서 겪은 강압적 분위기가 내상을 남겨 망설이게 했는데, 이번 선거부터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다.


동사무소 4층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들어서니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젊은이가 동춘3동 거주자는 오른쪽 줄에서 투표용지를 받으라고 안내를 했다. “동춘3? ! 내가 사는 곳이지?” 오랜만에 듣는 동네 이름이었다. 주민의 의지를 전혀 묻지 않은 정권에 의해 바뀐 도로명주소에 어렵싸리 익숙해지면서 동네의 이름이 뇌리에서 점점 희미해진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이웃은 젊은이의 안내를 바로 이해했을까? 유권자 어리둥절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다음 사전투표부터 도로명 주소로 안내해야 하는 건 아닐까?


지금 강화에 큰집의 사촌형은 살지 않는다. 물려받은 땅에서 농사짓던 사촌형이 경상도 어딘가로 거처를 옮겼다는 말을 들은 지 오래되었다. 생각해보니, 그간 참 무심했다. 사촌이면 참 가까운 사인데, 이리 연락 없이 살아도 되나? 그러고 보니 가끔 연락하는 사촌누이에게 소식도 묻지 않았다. 누이도 왕래를 끊은 제 오빠 소식을 언급한 적이 없다. 왜 정든 마을을 떠난 걸까? 정 떨어지게 만든 사연은 무엇일까?


언제였던가? 수원청개구리를 채집하던 대학원 시절이니, 1980년대 중반이겠지. 귀띔도 없이 불쑥 찾아간 강화의 시골 마을은 참 야심했다. 멀리 개구리 소리만 들렸는데, 잠자리에 들려던 사촌형은 장독대에 오르더니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인천에서 사촌동생이 왔으니 모이라는 거였다. 그 시간에? 웬걸! 안줏감을 챙긴 젊은 농부 예닐곱이 모였고 우리는 거나한 밤을 지낼 수 있었는데, 그때 농부들, 지금 그 마을에 없다. 뜻 모를 이름의 펜션이 줄을 잇는 요즘, 마을은 옛 모습을 잃은 지 오래다.


초등학교 다니는 두 녀석이 무척 활발하던 위층이 조용해졌다. 친구들 초대할 적이면 준비한 음식 일부를 담아와 양해를 구하곤 했는데, 이사한 걸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던 아래층은 이사했다. 낡은 난방 파이프에서 새어나온 물이 아래층 천장을 적신 이후 가까워졌지만 집을 자주 비우니 배웅할 기회가 없었다. 10년 넘게 한 아파트를 지키지만 앞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두 차례 이상 바뀌었는데, 아무도 신문을 구독하지 않았다는 걸 알 따름이다.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기 이전 동촌3동은 갯벌에서 조개를 캐던 어촌 겸 농촌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아파트에 남아 갯일을 잠시 이어갔지만, 지금 동촌3동에 갯일과 농사는 없다. 남동공단으로 매립된 이후에도 남은 갯벌이 송도신도시 아래 대부분 매립되면서 어촌의 냄새는 전혀 느낄 수 없다. 조개 캘 때 입는 옷을 버렸을 주민들은 요즘 왕래할까? 갯일에서 떠난 마당이라 같은 단지의 아파트에 살지라도 도우며 지낼 거리를 찾기 어려울 거 같다. 그러다 이사하면 소식이 끊어지겠지. 아파트에 익숙해지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이른바 비닐 대란으로 환경부장관이 교체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중국에서 재활용 명분으로 수입하던 외국의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를 더는 받지 않겠다고 이미 6개월 전에 선언했지만 대비 없이 허송하다 대란을 맞게 했다는 국무총리의 지적은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그게 장관이 책임질 일인가? 무사안일에 길든 관료주의와 무관할까? 뿌리 깊은 관료주의는 시민운동가 출신인 환경운동가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귀찮았을 텐데, 관료주의가 환경부에 없다면 비닐 대란은 일어날 리 없었을까?


비닐 대란은 명분일 뿐이고 사실상 다른 이유가 있다는 설도 유력해 보인다. 국립공원인 흑산도에 비행장을 조성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반대한다는 게 아닌가. 감히 환경부장관 주제에 그것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항 신설을 반대하다니! 환경부보다 예산이 막대할 뿐 아니라 권력이 막강하다고 자부하는 건설이나 경제부서에서 눈을 부라렸을 게 분명하다. 얌전하길 기대했을 여성 환경부장관을 국무총리는 경질 대상으로 주목했을지 모르지만 비닐 대란은 환경부의 책임일 수 없다. 생각해보라. 비닐을 마구 사용하는 분위기는 결코 환경부가 만들지 않았다. 만류하기도 벅찼을 게 틀림없다.



사진: 배곶 신도시를 알리는 광고의 한 페이지 사진(인터넷에서 찾음)


요즘 플라스틱과 비닐봉투가 없으면 두부를 구입할 수 없다. 아파트에서 나온 승용차들이 밀려들어가는 양판점을 보자. 양판점의 지하 식품매장에서 구입하는 두부는 비닐 덮개를 씌운 작은 플라스틱 상자에 담겼다. 양판점뿐이 아니다. 생활협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유기농업 콩으로 생산한 두부도 플라스틱과 비닐이 없으면 유통이 불가능하다. 콩을 직접 갈아 만든 두부를 파는 가게나 두부 전문점이 드물게 동네 어귀에 있지만 거기도 비닐로 포장해서 내놓는다. 예전처럼 신문지에 싸서 파는 가게는 동네에 없다. 포장에 쓸 신문지도 없다.


예전, 적어도 1960년대 이전의 마을은 달랐다. 두부를 파는 가게 주인은 밭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밭에서 생산한 콩이 모자라면 이웃의 밭에서 구입해 두부를 만들었다. 가게 주인은 누가 자신의 두부를 많이 사는지 잘 알았고 신문지가 모자라면 단골인 이웃에게 얻었다. 어떤 콩으로 누가 언제 어떻게 두부를 만들었는지 잘 아는 고객은 이웃을 신뢰했다. 냉장고가 없었어도 두부의 신선도를 믿었다, 어느 정도 준비해야 할지 잘 아는 가게에서 남아 버리는 두부는 없었다. 요즘 양판점보다 낭비하지 않았다.


이웃이 생산한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이웃에게 팔던 1960년대 마을이 확장되는 도시에 편입되면서 살가운 이웃은 정들었던 마을을 떠났다. 다세대주택이 다닥다닥한 동네로 변하면서 주민이 들어오고 살가움은 사라졌다.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긴장감이 살가움을 대신했다, 다세대주택이 고층아파트로, 개선된 기술에 힙 입어 30층 이상의 초고층아파트 바뀌자, 우리는 마을과 이웃을 잃었다. 살가움이 사라졌다. 주위에 사람은 늘었지만 얼굴을 기억하는 이 드물다. 얼굴을 기억해도 서먹하다, 아파트와 자동차 크기로 비교하는 주민은 음식 나누기 흔쾌하지 않다. 장애인 학교의 건립을 반대할 거라면 모를까.


다세대주택마저 드문 골목도 도시에 존재한다. 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이 대개 그런데, 다소 헝클어진 듯 보이는 골목에서 주민들은 지나치며 인사를 나눈다. 양판점이 멀고 편의점이 드문 지역의 가게 앞은 주민이 음료수를 나누는 공간이다. 잠시 살가운데, 그 살가움은 초고층아파트가 들어와 거리가 번듯해지면 사라질 것이다. 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범위를 동네라고 한다던데, 요즘 동네에서 소리 지르면 고발당한다. 마음이 오고가는 마을은 휴대전화 속의 가상공동체, ‘커뮤니티에 묶였다.


아파트로 점철되는 도시에서 시민들은 외롭다. 살가운 이웃이 그립다. 휘발성이 강한 휴대전화 속의 이웃은 살갑지 않다. 인천 연수구의 어떤 고급 아파트에 사는 10대 소녀는 휴대전화 커뮤니티에 빠져 어린 소녀를 사냥했다. 소리 지른다고 두부안주를 들고 친구가 찾아오지 않는 회색도시에서 살가운 이웃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웃의 손길이 다정했던 논밭이 다세대주택으로, 다세대주택이 초고층아파트로 바뀌니 언감생심이다.


가능성이 전혀 없을까? 아파트를 논밭으로 환원할 수 없다면 주변에 텃밭을 확보해보자. 사는 아파트가 달라도 텃밭 농사를 함께 짓는 주민은 씨앗과 수확한 농작물을 나눈다. 살가운 이웃으로 잠시 만나는 거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작은책, 20187월호)

항암치료중인 한 자원봉사자가 원적산 자락의 텃밭을 빌려 이웃과 함께 야채를 키우고 그 소출로 저소득노인에게 밑반찬을 만들어드리고 있었요 5년 넘게... 동네를 살갑게 만드는 분들이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