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1. 1. 21:45
 


10여 년 전, 여의도 주변 한강둔치. 마침 ‘환경의 날’이어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관에서 주도하는 행사가 그렇듯, 억지로 참석한 공무원과 학생들로 어수선한데, 행사장 가까운 곳에 한 무리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인천의 환경단체 회원들이 펼침막을 편 곳이었다. ‘지구의 날’이라면 모를까, 환경단체는 ‘환경의 날’ 행사를 대체로 외면한다. 경각심 없는 일과성 행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구할 수 없다고 여기는 까닭인데, 인천의 환경단체는 왜 행사장을 찾아 왔을까.


온갖 생물로 가득한 강변은 원래 굽이치고 축축하건만 반듯한 한강둔치는 바싹 말랐다. 한강종합개발로 물줄기를 직선으로 바꿀 때 토목은 콘크리트로 호안을 싸발랐기 때문이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한강둔치에 사람 이외의 동물은 평소 눈에 띄지 않는데, 그날은 달랐다. 펼침막 앞에 상괭이 한 마리가 반듯하게 누어있었던 것이다. 인천 앞바다의 실상을 서울시민에게 알려주기 위해 한강이 토해낸 생활쓰레기를 잔뜩 가져온 인천의 환경단체는 쓰레기 먹고 죽은 상괭이를 굳이 보여주어야 했다.


“내가 버린 휴지 하나 서해바다 다 죽인다!”, “떠다니는 쓰레기장, 인천 앞바다를 살립시다!” 인천 환경단체 회원이 든 손 팻말은 그리 외쳤다. 상괭이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서울시민들은 “한강 쓰레기 먹고 죽은 물고기는 때깔이 곱다?”고 쓴 팻말을 보아야 했는데, 죽은 상괭이도 그리 외치고 싶었을까. 그럴지 모르지만 상괭이는 물고기가 아니다.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국제거래조약(CITES)’에서 국제거래를 금지하는 돌고래로 세계자연보전협회(IUCN)에서 우리에게 생태조사를 권고하는 멸종 위기종이다.


장마철은 물론이고, 인천 앞바다를 오염시키는 쓰레기는 직선으로 뚫린 한강을 타고 걷잡을 수 없게 바다로 밀려든다. 참다못한 인천 환경단체는 상괭이까지 트럭에 실어야 했지만, 정작 어민에게 상괭이는 귀찮은 존재다. 서해안에 3만 마리가 넘게 서식하고, 해마다 300마리 이상 그물에 걸리는 상괭이는 잡히는 족족 바다로 던졌다. 상품가치와 볼품이 없어 관심 갖는 이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시민에게 경각심을 유발시키는데 그만이었다.


상괭이는 등지느러미가 없다. 그래서 물고기로 오해되기도 한다. 다 자라면 2미터 남짓한 상괭이는 10개월 여 임신기간을 거쳐 4월에서 6월에 70센티미터 정도의 새끼를 낳는데, 처음 흑색이지만 자라면서 흑갈색에서 회백색으로 변하고, 죽으면 흑색으로 돌아간다고 도감은 밝힌다. 한강둔치에 전시된 그 상괭이도 흑색이었다. 우리와 일본, 멀리 대만에서 인도네시아와 페르시아에 이르는 낮은 바다에서 살며, 하구에 자주 나타나는 상괭이는 물고기와 오징어와 새우와 해조류 들을 먹는데, 별식으로 해파리를 즐기는 모양이다.


그게 문제였을까. 하구 주변 해역에 쳐놓은 그물에 다채로운 비닐 쓰레기가 달라붙을 게고, 밀물과 썰물로 흐려진 바다에서 쓰레기는 상괭이가 보기에 맛난 해파리였을지 모른다. 냉큼 삼켰는데, 비닐일 줄이야. 장으로 넘어가는 통로를 막고 소화를 방해하는 비닐을 정신없이 먹다 헛배 부른 상태에서 기운이 빠진 상괭이는 그만 그물에 걸려들어 죽고 말았을지 모른다.


국제 조약을 거론하는 해양학자들은 그물 앞에 경보기를 달라고 권고한다. 하지만 상괭이를 ‘물돼지’라며 무시하는 어부들은 그 권고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알더라도 소용이 없다. 쓰레기로 넘치는 바다에 그물을 아무리 쳐놓아도 먹고살아가기 점점 어려워지는 요즘, 값비싼 경보기는 어민의 처지에서 언감생심이 아닌가. 정작 상괭이를 보호해야 할 당국도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어부에게 경보기를 지원하지 않는 거를 보면.


이른 여름이면 상괭이는 상어의 밥이 되곤 한다. 밀물과 썰물이 드센 한사리가 되면 서해안은 개흙으로 흐려지는데 이때 잠수부는 조심해야 한다. 상괭이로 착각한 상어가 잠수부 다리를 법석 베어 물 수 있다. 실제 잠수부 몇 명이 그 때문에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하지만 대대적인 소탕령으로 상어는 떼죽음을 면치 못했다.


2007년 12월 초,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 해안에서 7마리의 상괭이 사체가 잇따라 발견되었다. 겨울바다에 상어는 나타나지 않는데 무슨 변고일까. 상처가 없는 걸로 보아 상어는 아니다. 그물도 아니었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부검을 실시하겠다고 별렀다는데, 원인은 원유다. 태안 앞바다에 정박하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 호에서 흘러나온 원유를 뒤집어쓴 채 죽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상괭이의 폐가 시커멓게 오염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원유를 먹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걸쭉한 원유로 덮인 바다에서 상괭이는 숨을 쉬어야 했을 텐데, 그때 비등점이 다른 여러 독성물질이 폐로 들어갔을 것이다. 수면을 올려볼 때 떠도는 물체는 수천 년 이상 물고기였다. 냄새가 좀 고약하더라도 덥석 삼켰는데 아뿔싸 타르였다. 태안에서 죽은 상괭이는 사람의 탐욕 때문에 죽었다. 돈을 더 벌어들이려는 석유재벌이 단일선체의 유조선을 빌린 것 때문만이 아니다. 대량 폐기물을 낳을 수밖에 없는 대량소비는 대량 운송이 매개하는데, 원유가 그렇지 않나. 상괭이의 위를 오염시키는 비닐도 원유로 만들었다.


“인간 띠가 기름띠를 이겨냈다!” 언론은 시민들의 눈물겨운 자원활동으로 원유가 제거되고 있다는 소식을 최근 전했다. 백만에 가까운 인파의 정성은 외국의 방제 전문가를 감동시키고, 자원활동 지원자가 몰리는 환경운동 단체에 회원도 늘어난다. 희망을 주는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12년 전 전남 소리도 앞바다를 오염시킨 시프린스 호의 피해는 1989년 미국 알라스카 해역을 오염시킨 엑손 발데스 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태 진행 중이다. 어민 대부분은 터전을 떠났고 해양생태계의 복원은 아직 멀었다. 언제 복원될지 전문가도 모른다.


살아남은 상괭이는 태안을 떠났을 것이나 우리는 태안을 버릴 수 없다. 상괭이를 다시 불러들이려면 기후변화 시대에 우리의 삶을 먼저 반성해야 한다. 이번에 희생된 상괭이는 우리의 반성을 절박하게 당부한 것인지 모른다. (전원생활, 2008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