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3. 9. 12. 12:07

66일 현충일이면 수원의 한 과수원에서 끝물 딸기 실컷 먹었던 70년대 말, 2학기 기말고사를 마치면 일단의 젊은이들은 서울 노원구의 불암산을 향했다. 하산할 때 근처 과수원에 들려 가지에 매달린 마지막 배를 실컷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딸기는 겨울이 들어서기 전부터 식탁에 오른다. 5월 딸기는 자취를 감췄는가. 하늘이 구만리로 넓어진 늦가을에 출하되던 배도 거의 보기 어렵다. 계절을 잃은 배는 추석 전에 선보인다.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라는 소박한 환경단체가 있다. 추석이 다가오는 9, 새삼 과수원으로 농사를 시작한 초보농부가 생각난다.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그 환경단체에 회원이 된 그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고위 공무원으로 일하다 장기 휴가를 내고 인도를 여행하던 그는 며칠 자원봉사하려는 요량으로 테레사 수녀의 선교회를 들렸다. 하지만 그는 선교회에서 6개월 동안 중증 환자를 돌보게 되었고, 귀국하자마자 귀농을 결심했다. 태어나 도시를 떠나 생활하지 않은 그는 연고가 없는 지역의 과수원을 덥석 구입했다. 삽자루 쥐고 땅을 판 적 한 번 없지만 텔레비전에 비치는 과수원이 낭만적으로 보였기에 망설이지 않았는데, 오산이었다. 그래도 땅을 죽이는 화학농업은 피하기로 했다.


그가 구입한 과수원은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해 하마다 3천 상자의 배를 생산해왔지만 유기농으로 바꾸자 소출은 10분의1에 미치지 못했다. 초보 농부이므로 만족하고 중간상인에 넘기려 하니, 이런! 백화점에서 파는 유기농 배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게 아닌가. 자존심이 상한 그는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 노크했다. 중간상인에게 파느니 자연에 대한 존경심 회복을 위해 행동하는 회원에게 자신의 수확물을 싸게 제공하려 한 것이다. 화학농업으로 재배한 배보다 높지 않은 가격으로 추석 전에 공급할 테니 선불로 예약을 부탁했다.


중간상인 이외에 어디에 배를 팔아야 할지 막막했던 그의 글이 풀꽃세상을 위함 모임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가자 여러 회원이 응했다. 한데 약속한 추석이 다가와 시장에 커다란 배가 쌓이고 있건만 그는 배를 공급할 수 없었다. 이윽고 게시판에 해명이 올라왔다. 자신이 생산하는 배는 11월 중순 이후에 제대로 익는다는 걸 늦게 알았다면서 추석 전에 공급할 수 없게 되었으니 원한다면 환불하겠다는 거였다.


시중에 나온 커다란 배는 지베렐린이라는 식물성장호르몬을 처리한 것인데 자신은 그럴 수 없었노라고 했다. 지베렐린을 바르면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를 뿌리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는데, 그의 글 아래 댓글이 쏟아졌다. 주문한 한 상자의 배를 당장 취소하겠다고, 대신 처가에, 친정에 보낼 테니 두 상자로 바꿔달라고, 제사야 시중의 배 몇 개로 지낼 수 있지만 믿을 수 있는 농부는 자주 만날 수 없다며 상자 수를 늘려달라는 주문이 쇄도하기에 이른 것이다. 회원들의 뜨거운 반응에 가슴이 벅찼던 초보 농군은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 즉각 가입했고, 해마다 유기농 배를 흔쾌히 내놓았다.


지베렐린을 처리한 과일이 사람에게 해롭다는 보고는 없다. 하지만 호르몬의 신호에 충실하기 위해 나무와 농부는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리는 과일을 제철보다 빨리 커다랗게 열려야 하므로 광합성이 벅차고, 영양분을 과하게 빨아올리는 뿌리는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런 나무는 병충해에 약하다. 그러니 화학비료와 살충제가 필수일 뿐 아니라 자주 뿌려야 하고, 제초제로 수시로 살포해야 한다. 화학비료를 탐하는 잡초는 성가시기 이를 데 없지 않은가. 이래저래 들어가는 비용을 감수하고도 수익을 보장받으려면 넓은 과수원에 나무를 빼곡히 심어야하는데 이웃의 과수원도 사정이 비슷해 서로 경쟁해야 한다. 농부와 더불어 땅과 나무도 농약에 취하지만 도무지 쉴 틈이 없다.


겨울철에 파는 딸기는 크다. 어찌나 큰지 한입에 쏙 들어가지 못한다. 반을 잘라보면 속이 텅 비었다. 딸기는 참외와 달리 속이 비는 농작물이 아니다. 역시 지베렐린을 처리했기 때문이다. 한 상자에 몇 개 담기지도 않는 배는 얼마나 큰가. 하나 깎으면 온 가족이 먹고 남는다. 두 개를 플라스틱 파이프로 이으면 이두박근을 키우는 바벨로 충분히 활용할 정도다. 배 뿐이랴. 사과와 복숭아도 전에 없이 크다. 봄철, 꽃집 앞에 진열돼 텃밭 가꾸는 도시인을 유혹하는 채소 종묘들도 크다. 한결같이 지베렐린 덕분이다. 성묘 다녀오다 꽃집에 들린 도시인은 아무래도 커다란 종묘에 눈이 가겠지만 지베렐린을 처리했다는 사실은 모를 텐데, 그런 종묘, 유기적으로 가꾸려는 텃밭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해마다 거액의 특허료를 해외에 지불해야하는 겨울철 딸기는 재배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에 빼곡히 심는데, 비닐하우스는 사막농법이다. 내리는 빗물을 활용할 수 없으니 지하수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뿐인가. 무덥고 환기가 원활하지 못하니 농작물은 물론이고 사람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토양이 척박해 적지 않은 비료를 뿌리는 까닭에 공기질도 나쁘지만 문제는 꿀벌이 접근할 수 없다는 거다. 벌이 없는 계절, 다시 말해 자연스럽지 않은 계절에 꽃이 피기 않던가. 겨울철 비닐하우스 딸기의 가루수정을 위해 특별한 꿀벌을 주문해 풀어주어야 하는데, 그 꿀벌은 일회용이다. 물론 다년생 풀인 딸기도 비닐하우스에 들어오면 일회용일 따름인데, 유전적 다양성이 거의 없다보니 열매를 따야하는 시기가 무척 짧다. 그때 쭈그리고 진종일 일해야 하는 품삯 농사꾼은 건강 망치기 십상이다.


계절을 앞당기거나 무시하는 비닐하우스는 딸기와 더불어 참외, 토마토, 오이, 호박, 수박, 깻잎과 같은 채소류에 국한하지 않는다. 포도와 복숭아, 심지어 사과와 배와 같은 과일나무도 비닐하우스 안에 심는다. 그를 위해 나무는 더욱 작아지는데, 어린 나무라는 의미다. 열매를 가득 달아야 하는 어린 나무는 천수를 누리지 못한다. 사다리 필요 없이, 손으로 가루수정 하고 열매 따는 과수원을 위해 일찍 시들고 마는 생물이 되고 말았다. 비록 식물이지만 가혹하게 본성이 억압됐다. 그런 과일도 겉보기 탐스럽다. 베어물면 단맛이 혀를 말초적으로 자극하겠지만 영양분까지 충실할까. 사람의 탐욕은 동물을 넘어 식물의 수명과 다양성마저 위축시켰다. 자연스럽던 채소와 과일을 저버린 사람은 정녕 괜찮을까.


비닐하우스까지 거부하는 한 유기농업 농부는 시간이 많다. 귀농 희망자를 위한 강연을 마다하지 않는 그는 책도 여러 권 냈다. 비닐 없는 유기농업은 땅은 물론 농부 자신에게 겨울철 충분한 휴식을 보장한다. 비닐 없는 유기농으로 땅이 힘을 되찾으면 잡초도 많지 않다. 무더운 여름에 김매려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풀밭에 벌레가 많으면 까치와 까마귀는 설익은 과수원의 과일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땅도 사람도 계절을 거스르지 않을 때 건강하다. 자연에서 태어난 생명이므로. (푸른두레생협, 20139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3. 29. 12:27

 

6월 6일 현충일을 수원의 한 과수원에서 끝물 딸기 먹으며 보냈던 70년대 말, 기말고사를 마치면 우리는 불암산에 올랐다. 하산하며 근처의 과수원에 들려 떨이로 파는 배를 실컷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딸기는 겨울이 들어서기 전부터 식탁에 오른다. 5월 딸기는 자취를 감췄는가. 하늘이 구만리로 넓어진 늦가을에 출하되던 배도 거의 보기 어렵다. 계절을 잃은 배는 추석 전에 선보인다.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라는 소박한 환경단체가 있다.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그 단체는 해마다 ‘풀꽃상’을 선정해 발표하는데 대상자는 자연이다. 날을 잡아 전국에서 모이는 회원은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전해야 할 자연을 저마다 천거하고, 서로 존중하면서도 격렬한 밤샘 토론을 화기애애하게 펼쳐 하나의 자연을 만장일치로 선정해왔는데, 그동안 동강의 비오리, 보길도의 갯돌, 민둥산의 억새, 인사동의 골목길, 새만금의 백합, 지리산의 물봉선, 그리고 지렁이, 자전거, 논, 간이역, 비무장지대, 우리 씨앗, 작년에 칡소를 선정했다. 그 선정회의에 자주 참석하게 된 한 회원의 동기를 들어보자.

 

서울에서 고위 공무원으로 일하던 그는 어떤 계기로 인도를 여행하다 며칠 자원봉사하려는 요량으로 들린 테레사 수녀의 선교회에서 무려 6개월 동안 중증 환자를 돌본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십수년 이상을 근무한 직장을 정리하고 귀농을 결심했다. 하지만 삽자루 한 번 쥐어본 적 없는 처지에 막막했는데, 어느 날 텔레비전에 비치는 배 과수원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연고도 없는 전라도의 한 시골로 내려가 매물로 나온 과수원을 덥석 계약하는 데까지 좋았는데, 당장 배를 어디에 어떻게 팔아야 할지 막연했다.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해 하마다 3천 상자의 배를 생산하던 과수원이었지만 그는 유기농으로 바꾸기로 작정했고 10분의1에 못 미치는 소출에 만족하기로 했는데 중간상인에 넘기는 가격을 알아보니 백화점의 유기농 배와 비교할 때 터무니없이 낮았다. 그래서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 노크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하는 배보다 높지 않은 가격으로 추석 전에 공급할 테니 선불로 예약을 부탁한다고.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그의 제안에 여러 회원이 응했는데 약속한 날이 다가오도록 배는 공급되지 않았다. 이윽고 게시판에 올라온 그의 해명 글. 자신이 생산하는 배는 11월 중순 이후에 잘 익는다는 걸 늦게 알았다면서 요사이 시중에 나온 커다란 배는 지베렐린이라는 식물성장호르몬을 처리한 것인데 자신은 그럴 수 없었노라고, 추석 전에 공급할 수 없게 되어 원한다면 환불하겠다는 거였다. 그이의 글 아래 댓글이 쏟아졌다. 당장 한 상자 주문한 배를 취소하겠다고, 대신 처가에, 친정에도 보낼 테니 두 상자로, 세 상자로 주문을 바꿔달라는 요구가 빗발친 것이다. 회원들의 뜨거운 반응에 가슴이 벅찼던 초보 농군은 이후 풀꽃상 선정회의에 개근했던 거다.

 

지베렐린을 처리한 과일이 사람에게 해롭다는 보고는 없다. 하지만 호르몬의 신호에 충실하기 위해 나무와 농부는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가는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리는 과일을 제철보다 빨리 커다랗게 열게 해야 하므로 광합성이 벅차고, 영양분을 과하게 빨아올리려고 뿌리는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런 나무는 병충해에 약하다. 화학비료와 살충제가 필수일 뿐 아니라 자주 뿌려야 하고, 제초제로 수시로 살포해야 한다. 화학비료를 탐하는 잡초는 성가시기 이를 데 없지 않은가. 이래저래 들어가는 비용을 감수하고도 수익을 보장받으려면 넓은 과수원에 나무를 빼곡히 심어야하는데 일일이 손으로 뽑을 수 없는 노릇이다. 지베렐린 처리하는 과수원의 농군은 일이 하도 많아 지치고 걸핏하면 농약에 취해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겨울철에 파는 딸기는 크다. 어찌나 큰지 한입에 쏙 들어가지 못한다. 반을 잘라보면 속이 텅 비었다. 딸기는 참외와 달리 속이 비는 채소가 아니다. 역시 지베렐린을 처리했기 때문이다. 한 상자에 몇 개 담기지도 않는 배는 얼마나 큰가. 하나 깎으면 온 가족이 먹고 남는다. 두 개를 플라스틱 파이프로 이으면 이두박근을 키우는 바벨로 충분히 활용할 정도다. 배 뿐이랴. 사과와 복숭아도 전에 없이 크다. 봄철, 꽃집 앞에 진열돼 텃밭 가꾸는 도시인을 유혹하는 채소 종묘들도 크다. 한결같이 지베렐린 덕분이다. 성묘 다녀오다 꽃집에 들린 도시인은 아무래도 커다란 종묘에 눈이 가겠지만 지베렐린을 처리했다는 사실은 모를 텐데, 그런 종묘, 유기적으로 가꾸려는 텃밭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해마다 거액의 특허료를 해외에 지불해야하는 겨울철 딸기는 재배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에 빼곡히 심는데, 비닐하우스는 사막농법이다. 내리는 빗물을 활용할 수 없으니 지하수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 그뿐인가. 무덥고 환기가 원활하지 못한 실내 환경은 농작물은 물론이고 사람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토양이 척박해 적지 않은 비료를 뿌리는 까닭에 공기질도 나쁘지만 문제는 꿀벌이 접근할 수 없다는 거다. 벌이 없는 계절, 다시 말해 자연스럽지 않은 계절에 꽃이 피기 않던가. 겨울철 비닐하우스 내 딸기의 가루수정을 위해 특별한 꿀벌을 주문해 풀어주어야 하는데, 그 꿀벌은 일회용이다. 물론 다년생 풀인 딸기도 비닐하우스에 들어오면 일회용일 따름인데, 유전적 다양성이 거의 없다보니 꽃 피는 시기와 열매를 따야하는 시기가 한정되어 쭈그리고 종일 일해야 하는 품삯 농사꾼은 건강을 망치기 십상이다.

 

계절을 앞당기는 비닐하우스는 딸기와 더불어 참외, 토마토, 오이, 호박, 수박, 깻잎과 같은 채소류에 국한하지 않는다. 포도와 복숭아, 심지어 사과와 배와 같은 과일나무도 비닐하우스 안에 심는다. 그를 위해 나무는 더욱 작아지는데, 나무가 작다는 건 어리다는 의미다. 열매를 가득 달아야 하는 어린 나무는 천수를 누리지 못한다. 사다리 필요 없이 고개를 쳐들지 않은 채로 가루수정을 하고 열매를 따는 농사를 위해 일찍 시들고 마는 생물이 되고 말았다. 비록 식물이지만 가혹하게 본성을 억압했다. 그런 채소와 과일이 겉보기 탐스럽고 베어물면 단맛이 혀를 말초적으로 자극하겠지만 영양분까지 충실할지. 사람의 탐욕은 동물을 넘어 식물의 수명과 다양성마저 위축시켰다. 자연스럽던 채소와 과일을 저버린 사람은 정녕 괜찮은 것일까.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지브롤터 해협은 신기루를 찾는 아프리카 난민들을 가로막는 최후의 유혹인지 모른다. 아프리카 모로코와 유럽 스페인 사이를 가르는 지브롤터 해협은 가장 가까운 거리가 14킬로미터에 미치지 못하지만 다리는 부설돼 있지 않다. 300미터에 이르는 수심이야 돈과 기술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지만 국제사회의 예민한 외교와 정치, 그리고 복잡다단한 국제적 경제 상황이 다리 건설에 장애가 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다리가 부설된다면 아프리카 난민의 유입 물결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지만, 지금도 물살이 거센 지브롤터 해협을 헤엄쳐 건너는 아프리카 난민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아프리카에 난민이 발생하는 원인은 불안한 정세에서 그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분쟁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 정세의 근본 원인도 유럽에서 기원한 제국주의와 무관하지 않은데, 목숨을 걸고라도 아프리카를 떠나려는 난민의 상당수는 환경 때문이다. 기름진 터전을 수출용 플랜트 농장에 빼앗긴 주민들은 밀렵과 화전에 한계를 느끼고 기후온난화로 인한 사막화를 피해 젖과 꿀이 흐른다고 믿는 유럽을 향해 한밤중에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는 것이다. 스페인은 자국으로 들어오는 아프리카 난민을 최대한 억제하지만 일단 국경을 넘어 들어오면 먹이고 재우는데 인색하지 않다고 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유럽에서 먹고 잘 때 잠시 살아남게 되었다는 안도감에 젖을 수 있지만 이내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자신의 신세에 처량해질 것이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들을 기다리는 노동시장이 한시적으로 열리기도 한다. 돈키호테가 누볐음직한 황량한 고원지대의 거대한 비닐하우스들이다.

 

둥근 지붕이 길게 이어지는 우리나라와 달리 스페인의 비닐하우스는 편평한 지붕이 드넓게 이어진다. 15세기 대항해시대의 제국주의가 범선 제작을 위해 울창했던 숲을 모조리 벌목하자 황량한 사막으로 변한 고원지대는 사시사철 도무지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이 됐지만 그 덕분에 해안에 햇살이 풍부해지니 지중해성 기후를 만끽하려 부유한 관광객이 운집했다. 한동안 방치해오던 고원지대의 일부에 올리브 나무를 절도 있게 심어 최대 올리브유 수출국이 된 스페인은 최근 막대한 면적에 비닐하우스 단지를 조성했다. 아직 빙하가 남아 있는 북부 피레네 산맥 주변의 풍부한 물을 끌어들일 수 있기에 가능했는데, 거기에 지브롤터 해협을 건넌 아프리카 난민이 저임금 계절 노동력으로 혹사당한다.

 

영양분이 포함된 수분이 방울방울 공급되는 비닐하우스 내의 유리섬유 뭉치에는 다국적 종자회사가 개발한 동일한 유전자의 농작물이 일제히 파종되었다. 따라서 일제히 싹터 일제히 꽃피고 일제히 열매를 맺는다. 짬짜미 고용되는 계절노동자가 수확하는 농작물은 일제히 상자에 실려 유럽과 세계 각국을 공습하듯 일제히 팔려나가는데, 그 농작물이 떨어지는 국가의 농업기반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거대한 인큐베이터와 같은 비닐하우스에서 공장에서 물건 나오듯 획일적으로 재배된 농작물은 공동체가 살아있는 지역의 아기자기한 전통 농산물보다 가격이 현저하게 낮기 때문으로, 노동자 착취와 막대한 보조금이 무역의 공정성과 지역의 농경문화를 훼손했기에 가능했다.

 

중국발 멜라민 파동이 세계를 흔든 이후, 조제분유와 식품 원자재에 멜라민은 이제 더는 집어넣을 것 같지 않다. 뜨거운 온도에 강하고 인체에 특별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어 식기의 원료로 사용하는 멜라민은 매우 안정적인 물질이다. 그런 멜라민이 아기의 콩팥을 파괴하리라 파악한 농부는 미처 없었을 것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관행처럼 우유에 물을 섞던 중국의 소규모 목장은 우유 단백질이 부족한 만큼 납품 가격이 낮게 책정되는 걸 아쉬워했을 터다. 어떤 약은 농부가 질소 함양이 많은 멜라민을 넣자 많은 돈을 받았고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을 것이다. 비닐하우스로 농작물을 재배하면 남보다 빨리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소문과 지베렐린을 처리하면 더 큰 과일을 더 빨리 수확할 수 있다는 소문처럼.

 

예전처럼 대부분의 산모가 모유를 먹였다면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늘 그랬듯 간식이나 가공식품의 원료로 우유와 분유가 이따금 사용되었다면 모르고 지나갔거나 문제가 일부 나타나더라도 특이현상으로 무시되었을지 모른다. 60년대 우리나라가 그랬듯, 분유가 모유보다 영양이 많은 것처럼 인식되면서 젊은 부부들이 선호하고, 공급이 부족할 정도로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쓰나미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가능성도 높다. 그렇듯, 탐욕이 견인한 자연스럽지 못한 농산물과 축산물이 소비자의 신체나 세계 사회에 일으키는 부작용인데, 그런 현상은 초기에 눈에 띄지 않는다. 소비가 광범위하게 확산된 이후 걷잡을 수 없는 게 보통인데, 일단 커진 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가공 과정이 복잡할수록 부작용의 인과관계와 그에 따르는 책임소재는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다. 멜라민 파동처럼 작은 목장에서 비롯되었다면 그나마 쉽지만 규모가 큰 기업이 일으킨 사고라면 오리무중으로 유야무야되는 게 다반사다. 식품에 들어가는 수많은 첨가물이나 농산물에서 검출되는 농약의 경우가 대개 그렇지 않던가. 방사선 조사되거나 유전자가 조작된 농산물처럼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6년 초, 미국 뉴욕시는 2000년 로스앤젤레스시를 이어 급식 목록에서 우유를 제외시켰다. “지역 내 110만 학생 대부분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고 비만의 징후를 보이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불가피하다”고 이유를 밝힌 뉴욕시 담당자는 “이미 흰색 밀가루 빵이 급식 메뉴에서 제외한 것처럼 우유도 사라지게 될 것”으로 예견했다는데, 이미 일리노이와 뉴저지 주도 같은 결정을 내려 우유 급식 중단이 전역으로 파급될 것으로 당시 미 여론이 전망한 바 있다. 칼로리는 높지만 필수 영양분이 줄어든 요즘의 목장우유로 인해 비만이나 당뇨와 같은 성인병이 늘어나는 실태에서 어쩔 수 없는 조치였을 텐데, 결국 자연스럽지 못한 축산이 원인이었다.

 

엉겁결에 배 과수원을 인수했던 초보 농군은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회원의 성원에 기운을 얻고 똥지게 지는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서툴러 넘어지며 똥 무더기가 옷에 쏟아졌건만 더럽기보다 아깝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면서. 한 과수농부는 굳이 김을 매지 않는다. 과수원을 온통 둘러막은 망을 뚫고 덤벼드는 까치도 풀 속의 벌레가 있으면 익기 전에 시큼한 과일을 외면한다는 거였다. 최근 강화에 5월 딸기가 선풍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 인천 지역 언론은 소개한다. 옛 맛을 기억하는 장년층부터 아토피에 시달리던 아이들까지 소문을 듣고 밀려들어 예약 없으면 돌아가야 할 정도라고 한다. 경쟁적 탐욕이 부른 부작용에 대한 자연스러움의 역설이다.

 

스페인의 비닐하우스에 물을 공급하던 북부 산악지대의 빙하는 지구온난화로 점차 줄어들어간다. 2005년 1.6m 소실되더니 2008년에는 2미터나 줄었다고 UNEP는 전하는데, 알프스를 비롯한 유럽 빙하의 사정이 대개 그렇다. 빙하가 위축되는 건 지구촌이 마찬가지이므로 스페인은 물론이고, 스페인의 값싼 농작물에 의존하던 국가와 더불어 쌀을 뺀 식량의 95퍼센트를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도 자연스럽지 않은 밥상이 무서워지기 전에 서둘러야 할 일이 있다. 제철 제고장에서 자연스레 생산한 농산물로 자급자족하려는 행동이다. (사이언스올, 2009년 4월 첫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