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6. 12. 26. 11:00
 


마냥 따뜻하기만 해, 오히려 감기 걸리게 만들기 십상인 아파트. 아무리 추위가 혹독해도 얇은 홑겹 속내의 차림으로 머물게 한다. 밖에 나가려면 그 위에 여러 겹의 옷을 걸쳐야 하는데, 집안 먼지를 밤새 들이마신 폐는 시린 공기를 갑자기 흡수하고, 옷깃을 바싹 여미며 지하철에 몸을 맡기면 외투의 단추를 전부 풀어야 한다. 그날 아침도 제법 쌀쌀했다. 지하철과 가까운 쪽문으로 발길 급히 옮기는데 한 무리의 비둘기가 후드득 날아올라 19층 아파트 건물 사이를 휘돌아 횅하니 사라진다. 어디로 날아간 걸까.


삭막한 회색 아파트 단지에서 비둘기가 날았다. 아, 놀이터가 있지. 학원과 과외로 바쁜 어린이보다 어둑할 때 일단의 청소년들이 몰려 일감 벌리곤 하는 놀이터엔 모래와 놀이시설 외에 작은 정자와 마루가 있고 과자 봉투가 늘 뒹굴고 있다. 과자 부스러기도 흩어졌을 테지. 빠른 걸음에 놀라 일제히 날아오른 비둘기들은 다른 아파트 단지의 후미진 놀이터로 내렸을지 모른다. 거기에도 비둘기의 주전부리가 널렸을 것이다. 모이주머니에 개똥 묻은 모래라도 보충할 필요도 있겠지.


인천항 곡물부두 야적장은 도시 비둘기의 천국이다. 산더미처럼 야적된 옥수수와 콩은 그 위를 뒤덮은 비둘기에게 그야말로 산해진미다. 인부들은 비둘기의 접근을 막으려 거대한 비닐을 덮곤 하지만 그리 완벽하지 않고, 곡물을 쌓고 옮기는 과정에서 벗겨낸 덮개를 방치하기 일쑤다. 그땐 비둘기가 영락없는 덮개다. 항만 측은 공포탄을 터뜨리지만 그때뿐이다. 총소리에 높이 날던 비둘기들은 덮개가 없는 곳으로 새카맣게 날아들어 유전자가 조작되었을 수입 옥수수와 콩을 신나게 쪼아 먹는다. 곡물 위에는 비둘기 똥도 수북하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라지. 미 행정부의 매파가 비둘기파를 압도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략했다나 뭐라나. 총소리가 나면 일제히 날아오르니 옛사람들이 그리 여길 수 있었겠다. 전국체전 개막식에서 팡파르가 퍼지면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비둘기를 보고 만장한 입장객은 환희를 느끼는데, 정작 도시의 비둘기는 평화나 환희와 무관하다. 요즘 사람들은 비둘기에 질색을 한다. 주위를 지저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차한 승용차를 먼저 알고 반기는 건 언제나 비둘기 똥이고, 오후의 교실 가까이에서 교사 목소리보다 열성적으로 구구구 울어대지 않던가.


흔히 집비둘기라고 칭하는 도시의 비둘기는 재래종이 아니다. 오래 전에 길들인 양비둘기가 그 원조로, 서양에서는 양비둘기와 잘 섞이며 가끔 교배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비둘기는 섬이나 해안의 농경지, 내륙 산간의 절벽이나 강가에 서식하는 양비둘기와 교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야생 유전자가 보충되지 않는 것인데, 그래도 먹성과 번식력이 왕성해 도시 공원은 비둘기로 넘친다. 길들인 종류는 공원용에 그치지 않는다. 소식을 긴하게 전하는 전서구도 있다. 그만큼 비둘기는 방향감각이 뛰어난 모양이다. 간혹 애완용이나 식용도 있다.


먹성이 좋은 비둘기는 덩치가 의외로 크다. 70년대 고등학교 시절, 옆 여학교의 생물 선생님은 벽에 부딪혀 자살한 비둘기를 우리가 있던 생물반으로 가져왔다. 표본으로 만들려는 의도였는데, 친구는 들어낸 몸뚱이에 소금을 뿌려 알코올램프로 익혔다. 먹어보니 맛이 아주 그만이었다. 우리가 먹은 그 비둘기, 혹시 오염된 먹이를 먹고 특유의 방향감각을 잃은 건 아닐까. 공원에서 쫓겨난 비둘기는 전철역에 홈에 둥지를 틀어 승객의 원성을 유발하는데, 누가 독극물이 든 먹이를 던져 준 것은 아닐까.


도시 비둘기는 꾀죄죄하기 이를 데 없다. 트럭이 흘린 곡물을 도로 가장자리에서 쪼아 먹으니 매연에 찌들지 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고양이처럼 동맥경화에 시달린다. 고양이가 찢어놓은 쓰레기봉투에서 고양이가 외면한 과자 부스러기를 탐하는데, 그런 주전부리에 트랜스 지방이 넘쳐나지 않던가. 누군가 도시 비둘기를 ‘닭둘기’라 한다. 시궁쥐와 비교하는 이도 있다. 염분 많은 과자 부스러기는 갈증을 유발할 텐데 비둘기가 먹는 도시의 물은 얼마나 끔찍한가. 매연이 녹아든 도로 옆의 시커먼 물에 주둥이를 박는다.


공원과 근처 학교를 오가며 먹이를 받아먹는 비둘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절름발이가 꽤 많다. 성한 다리가 없는 녀석도 있다. 서열이 낮은 개체가 경쟁에서 밀린 흔적일까. 그 방면에 지식이 없지만, 발목이 싹둑! 잘린 이유는 얼추 짐작한다. 내기 연날리기가 공원에서 성행하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내기에 져 얼굴 붉어진 사람은 끊어진 연실을 회수하지 않고, 나무에 이리저리 얽힌 연실에 붙은 사금파리는 자동차 경적에 놀라 황급히 날아오르는 비둘기의 다리를 끊었을 것이다.


일본 황궁에는 흰 비둘기만 산다. 아주 호강하지만 열성 유전가가 발현된 흰 비둘기만 자격이 있다. 정상 비둘기는 보이는 족족 쫓아내는데, 황궁 밖의 비둘기는 어떤 대접을 받을까. 최근 한 조류학자는 도시 비둘기를 시골 비둘기와 비교한다. 서울과 부산에 둥지를 친 비둘기는 섬 비둘기에 비해 체내 중금속 농도가 평균 15배 이상 높다는 것이다. 연구자는 비둘기의 중금속 오염으로 사람의 오염을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평화의 상징이 어느새 오염지표동물로 개과천선한 셈인가.


“한 알은 새가, 한 알은 벌레가, 나머지 한 알만 싹트게 해 주소서” 기도하던 조상을 둔 요즘 농부들에게 비둘기는 유해조수다. 먹골배를 쪼아대는 까치처럼 심은 콩을 모조리 파먹는다는 것이다. 농부들은 멧비둘기가 나타나기 무섭게 공기총을 쏘아대는데, 생명을 나누던 농사가 농업으로 바뀐 이후 나타난 현상일지 모른다. 폭 2킬로미터에 길이 400킬로미터로 햇빛을 차단하며 여러 날, 한해 두 차례 낮게 이동하던 북미의 나그네비둘기는 1800년대에 멸종됐다. 개발과 남획 때문인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천덕꾸러기가 된 도시의 비둘기, 나그네비둘기 신세가 되는 건 아닐지.


한겨울 아침, 내 발걸음에 놀라 날아오른 아파트의 비둘기는 과자 부스러기가 있는 한 돌아올 것이다. 사람 이외에 애완견과 도둑고양이만 득시글거리는 회색 공간에서 하늘을 가르는 비둘기를 만나 기쁘다. 작은 숲에 제 모습 감추는 직박구리나 박새와 달리 거대한 콘크리트 사이를 보란 듯 날지 않던가. 도시의 비둘기가 건강하면 사람도 건강할 터, 방금 날아오른 비둘기는 그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물푸레골에서, 2007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