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3. 3. 15. 10:52

2033 미래 세계사, 비르지니 레송 지음, 권지현, 남윤지 옮김, 휴머니스트, 2013.

 

 

대략 한 세대 전, 지금처럼 편리해질 세상을 예견할 수 있었을까. 미래학자들이 10년 단위로 얼핏 비슷한 세상을 그려내 보이기도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정확하지 않다. 앞으로 한 세대 후에는 어떤 세상이 열릴까. 1930년대 소설은 자가용 비행기의 보급을 예견하기도 했는데, 그럴까. 코미디언의 어설픈 연기처럼 암도 약 한 알로 해결할 수 있을까. 약 한 알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요즘 걱정하는 암을 쉽게 치료할지 모르지만, 30년 뒤에는 지금보다 훨씬 고약한 암이 수두룩하게 나타나는 건 아닐까.


한 세대 전보다 분명히 생활은 편리해졌는데, 몸과 마음까지 편안해진 것은 아니다. 불안은 더욱 커졌다. 평균수명은 늘었지만 건강수명은 오히려 줄었다. 약에 의존해 골골해 산다는 건데, 그게 다 편리해진 대가로 환경이 엉망 되어 생긴 부메랑일 게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한 세대 전, 환경이 요즘처럼 나빠질 것으로 예견한 사람은 있었을까. 요즘처럼 아토피와 자살이 증가하고, 안심하고 마실 물과 공기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 세대 후는 어떻게 될까. 편리한 생활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소비했던 자원이 바닥을 드러내는데, 지금보다 훨씬 불안하게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역사는 지난 과거를 반추하는 일인데, 미래를 미리 기록한 역사책이 발간되었다. 지금부터 30년 뒤, 그러니까 앞으로 한 세대 이후의 세계사를 점친 책이다. 사료를 바탕으로 건조한 사실이나 논쟁 여지가 많은 편견을 나열한 책은 아니다. 저자 비르지나 레송은 국제 분쟁지역의 지정학적 역사와 상환변화를 바탕으로 갈등과 위기를 분석해온 전문가다. 그는 20세기 이후 이제까지 지구촌에서 이어진 추이를 근거로 앞으로 한 세대 이후 나타날 세계적 환경을 다양한 각도에서 예측 분석해, 약간의 관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도표와 그림을 제시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도해에 가까운데, 환상에 치우치는 미래학자와 달리 우울하다.


기원 후 1세기에 25천만이었던 인구는 최근 70억을 돌파했는데, 앞으로 몇 명이 될까. 현재 출생률이 계속된다면 300년 후 유럽과 미국의 인구는 9억을 넘지 않지만 아프리카는 115조 명이 된다는 예측한다. 115? 하지만 그런 예측은 별 의미가 없다. 그만한 음식과 생활공간이 보장될 리 없고, 그렇게 늘어나는 인구를 방치할 리 없으므로. 2025년에 76, 205079억에서 서서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저자는 두 번째, 세 번째 시나리오로 2050년에 104, 또는 90억에서 진정될 것으로 예견한다. 저자의 분석이 아니라 기존 예측 자료가 그렇다는 거다. 문제는 지역 편차인데, 우리는 안심해도 좋을까. 저자는 한반도에 대해 별 말이 없다.


책 제목은 한 세대 후. 2033년을 예상하지만 정작 내용에서 제시하는 자료는 30년 뒤로 제한하지 않는다. 2050년 뒤 중국이 미국을 크게 앞질러 최대 소득을 자랑하는 국가가 될 테고, 우리는 여러 단계 내려온 일본의 뒤에 위치할 것으로 예측하는데, 그 부작용이 없을 리 없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 그리 단선적이 아니므로. 돈을 찾아 이민이 속출하겠고, 인구 변화에 따라 분쟁지역이 독립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이민을 무턱대고 받지 않을 게 분명하다. 저자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이래저래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인종과 종교보다 절박한 이유로.


도시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커지는 도시에 인구는 여전히 집중될 테지만 얼마 못가 주춤될 것으로 예견한다. 저자는 연계해서 분석하지 않았지만, 석유위기 식량위기가 계속 심화될 테니 도시 농촌으로 돌아가려는 이가 어디나 늘 수밖에 없지 않겠나. 저자는 녹색도시가 정책되리라 예측했는데, 오류도 있다. 서울의 광교와 인천의 송도신도시를 생태도시의 예로 든 것인데,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의 현 중앙과 지방을 끌어가는 자들이 생태에 관심이 없는데, 저자는 기대가 장했다. 필수불가결한 생태정의에 대해 상식도 의지도 없지 않은가. 왜곡된 자료만 의존하면 대가도 실수를 한다.


식량은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경작이 가능한 농토는 한계에 부딪히고 표토층이 사라진다. 부자 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농작물을 가져올 테지만, 저자 예측처럼 순조롭게 이동할 리 없다. 석유를 동원하는 약탈적 농업으로 생산한 곡물이 자동차 연료로 사라지는 현상을 잡지 못하면 분쟁은 멈추지 않을 텐데, 녹색농업이 정착되리라는 저자의 전망은 한가롭게 들린다. 하기야 녹색농업 이외의 대안은 존재할 리 없지만. 지구온난화 원인인 개발이 진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뭄은 더욱 혹독해질 것이다. 풍요의 종말은 가난한 국가에서 원죄를 물을 수 없는 주민들의 고통으로 시작되고, 불평등은 지금보다 훨씬 깊어질 것이다.


이미 시작된 에너지 위기는 태양이나 바람과 같은 자연에너지로 눈을 돌리게 된다. 산림이 소중한 자원이라는 거 모르는 이 없지만 역시나 잘 사는 국가에서 보전될 것인데, 그 과정 험난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삼림이 없는 국가는 어찌될까. 아프리카처럼 삼림을 빼앗긴 나라는? 산림자원을 팔아야 했던 나라들은 자연재해에 쑥대밭이 될 가능성을 점친다. 위험의 불평등이다. 환경 난민도 선별돼 안전지대에 수용될 것이다. 하지만 자본과 과학기술이 창안할 안전지대는 안전할 수 있을까.


     지금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는 한 지역, 개별 국가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일본의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세계정부를 제안한다. 세계정부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해결 의지도 능력도 없는 유엔을 좌지우지하는 몇 개 국가가 방해하면 세계정부라는 이상은 멀어진다. 하지만 이런 추이로 계속될 수 없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눈앞에 펼쳐진다면 달라질 수 있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비르지니 레송이 2033 미래 세계사를 펴냈을 터. 여러 징후를 제시하느라 깊이는 부족하지만, 다음 세대의 환경을 염두에 두는 환경운동가들이 상식의 범위를 넓히려 2033 미래 세계사를 주목하는 건 당연하다. (우리와다음, 2013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