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1. 7. 12:11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1970년대 어느 후반, 강원도 강릉시를 관통해 동해로 빠져나가는 남대천 하구의 기억이다. 우리는 연구에 필요한 담수어류를 종류 별로 충분히 채집했건만 투망을 쥔 이는 어둑해지도록 좀처럼 떠날 채비를 하지 않았다. 떠나려하기는커녕 어깨에 걸친 투망을 하시라도 던질 자세를 취하고 물속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한발 한발 옮기더니, 이윽고 움츠렸던 허리와 어깨를 뒤틀며 투망을 쥔 양팔을 허공으로 힘차게 뻗었다. 막차 시간이 다가와 조바심이 날 즈음, 활짝 펼쳐져 내려간 투망에 휘둥그레 걸려든 가늘고 흰 물고기는 수백 마리의 빙어였다.

 

겨우내 꽝꽝 얼어붙은 호수에서 흔히 견지낚시로 잡는 빙어(氷魚)는 차디찬 물에서 사는 깨끗한 물고기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동해 북부 연안에 주로 살던 빙어는 수온이 낮은 겨울에 깊은 곳에 머물다 해안의 얼음이 녹는 봄에 올라와 해질녘 하구에서 상류로 무리지어 오르며 동물성플랑크톤이나 물속의 작은 곤충을 먹는 회귀성 어류다. 겨울에만 나타나는 물고기도, 민물에만 사는 종류도 아니다. 그런데 왜 빙어일까. 얼음으로 덮인 호수에서 잡히기 때문이라기보다 작고 가냘픈 15센티미터 정도의 몸이 얼음처럼 하얘 조상이 그렇게 이름 붙인 건 아닐지. 이름과 관계없이, 빙어 낚는 재미를 가진 사람이야 겨울을 기다리겠지만 정작 빙어는 겨울이 그리 반가울 것 같지 않다.

 

은어와 더불어 학자들이 바다빙어목 바다빙어과로 분류하는 우리나라의 빙어는 사실상 바다와 멀다. 봄이면 바다에서 일제히 강으로 몰려가는 은어와 달리 빙어는 바다를 아예 잊었다. 하구언이나 보가 자연스런 물길을 차단했고 어쩌다 방해가 없는 강은 지나치게 오염되어 몰려다니는 습성을 어지럽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다로 돌아갈 길을 잃고 강과 연결된 호수에 주저앉은 무리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농사를 위한 골짜기의 작은 저수지에도 터 잡은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다. 동해 연안을 몰려다닐 적에 가끔 마주쳤을 빙어 떼는 이제 전국의 호수에 고립되었다.

 

동지가 지나 단단하게 얼어붙은 강원도의 호수들은 빙어들을 물 밖으로 꺼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넓은 얼음이 견디는 게 용할 정도로 빼곡한 호수의 인파는 10여 센티미터 두께로 30센티미터 정도 둥글게 뚫은 구멍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곱은 손 놀리기 분주한데, 겨울을 맞은 빙어는 초보자도 쉽게 끌어낼 수 있다. 견지낚싯대와 구더기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다. 은백색인 등과 배 사이에 옆구리가 연노란 빙어는 떠들썩한 사람들의 시선에 놀랐는지 올라오자마자 가는 몸을 퍼덕거리다 물속보다 차디찬 얼음바닥 위에서 이내 체념할 것이다.

 

수온이 섭씨 6도가 되는 이른 봄, 일제히 강으로 올라가 수심 20여 센티미터의 모래나 자갈바닥에 알을 낳는 빙어는 우리의 동해안을 비롯하여 일본과 중국, 러시아와 미국 연안에 분포해 왔는데, 전국의 얼음 덮인 호수에서 모습을 쉬 드러내는 연유는 짐작하듯 순전히 사람 때문이다. 1925년 부산 수산진흥원이 함경남도 용흥강에서 채취한 알을 전국의 큰 저수지에 양식을 위해 분양했고, 점차 퍼져나갔다는 거다. 그렇다면 빙어축제로 시끌벅적한 소양호의 빙어는 가장 늦게 옮겨졌을 가능성이 높겠다.

 

해마다 한겨울에 빙어축제를 벌이는 인제군은 올해도 어김없이 손님 끌기에 바쁘다. “끝없는 얼음벌판, 끝나지 않은 즐거움”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1월 30일부터 나흘간 소양호 선착장에서 ‘제12회 빙어축제’를 여는 인제군은 상투적인 낚시대회와 시식회는 물론이고 얼음을 주제로 하는 빙상 래프팅을 비롯해 빙어 볼링, 컬링 경기를 부대행사로 기획하고 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눈썰매타기, 설피 체험, 이글루와 눈 조각 경연대회, 댄스 경연대회, 미니 콘서트, 쥐불놀이 쇼, 폭죽 쇼, 빙상 미니골프, 빙상 훌라후프와 같은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돼 있으니 만장하게 찾아오라 외치는데, 빙어는 어디로 가고 놀이판만 떠들썩하게 생겼다.

 

삭풍이 거세더라도 사람이 많으면 축제의 재미는 쏠쏠하겠지만 굳이 막히는 길을 뚫고 소양호까지 가지 않아도 겨울철 빙어는 전국 곳곳의 저수지에서 낚시꾼을 기다릴 터. 겨울에 월동하지 않는 빙어는 먹이가 그리울 것이다. 용흥강 빙어의 자손이 여전히 지키는 제천 의림지를 비롯해 강화군, 춘천시, 합천군, 장수군의 저수지와 그밖에 크고 작은 저수지 가운데 집에서 곳을 찾아가 가까운 가게에서 구더기와 견지낚싯대를 각 3000원에 사고, 구더기 끼운 낚싯바늘을 호수 바닥까지 내리면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준다. 추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다 반응이 와 낚아채면 얼음 구멍 옆에 고소하고 담백할 뿐 아니라 영양가가 풍부한 빙어를 수북이 쌓아놓을 수 있다.

 

얼음 아래 맑은 호수에서 내장을 비운 한겨울의 빙어는 이른 봄에 낳을 알을 잔뜩 품고 있다. 이때 맛이 가장 좋다. 연한 육질에 비린내가 없고 칼슘과 단백질이 풍부한 빙어는 껍질이 얇아 통째로 먹는데, 회나 튀김, 조림이나 무침으로 먹어도 좋고, 국에 그대로 넣거나 훈제해도 맛이 그만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잡자마자 초고추장에 찍어 통째로 먹는 건 말리고 싶다. 겉보기 깨끗하고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해도 민물어류의 기생충이 겨울철이므로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강원도 축제장의 빙어 고향이 충청도라고? 한 네티즌은 서산간척지의 간월호에서 잡은 빙어를 강원도 축제 현장에 퍼붓는 실상을 고발한다. 문제는 서산시의 쓰레기매립장을 비롯하여 음식물처리장, 분뇨처리장, 하수종말처리장에서 방류되는 오폐수가 모여드는 간월호에 녹조가 심각하고 악취가 진동할 뿐 아니라 중금속 오염까지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기형 물고기가 많이 나타나는 간월호가 고향인 빙어를 날로 먹는다면? 아무리 깨끗해 보여도 위험하다고 고개를 흔드는 전문가는 수온 20도 이하에 살아가는 빙어는 사실상 수질과 관계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봄철에 부화해 1년이 지나면 8센티미터 이상 자라는 빙어는 몸이 3센티미터가 될 무렵 바다로 나갔다 10센티미터가 넘으면 강으로 올라가 알을 낳는다고 한다. 그런 자연스런 삶을 잊지 않은 빙어가 아직 우리 연안에 남았다. 하구를 가로막은 하구언과 보가 사라진다면 먼 친척인 은어처럼 강을 다시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테니, 거듭되는 매립과 개발로 고통스럽더라도 그때까지 연안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다만 저수지에 갇혀 바다 구경 한번 못하는 빙어들은 겨울철이 몹시 두렵고 성가실 수밖에 없겠다. (물푸레골에서, 2009년 2월호)

정부에서는 4대강죽이기(?)사업으로 하천바닥을 깊게 준설하고 보를 설치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더 걱정되는 요즘입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