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10. 12. 10:33

200810월에 열린 제10차 람사르총회를 이어 올 10월에도 경상남도 창원에서 유엔사막화방지협약 제10차 총회가 10일부터 2주일 일정으로 열린다. ‘소중한 대지, 생명의 땅이라는 주제로 유엔사막화방지협약 사무총장과 우리 산림청장을 비롯해 각국 정부 대표와 비정부기구에서 3천 여 명이 참석하는 이번 회의는 1992년 브라질 환경정상회담에서 거론된 뒤 1996년 발효되었다. 기후변화협약 생물다양성협약과 더불어 유엔 3대 환경협약의 하나인 사막화방지협약에 현재 194개국이 회원으로 있으며 우리나라는 1999년 참여국에 동참했다.

 

2년마다 열리는 당사국총회를 아시아 최초로 유치하는 데 성공한 우리나라는 사막화의 위협에서 벗어난 지역이다. 9차 총회를 잇는 이번 회의에서 토지 황폐화를 막기 위한 재원 확보 방안, 국가와 유엔기구와 민간기업 사이의 파트너십 강화, 그리고 사막화 방지 우수 실행사례 공유와 같은 내용들을 담은 창원 이니셔티브를 마련해 논의한다는데, ‘탄소중립 친환경회의로 진행되는 이번 총회는 전기차로 이동한다고 홍보한다. 아울러 당사국 대표에서 태블릿PC를 제공할 뿐 아니라 재활용품을 에코 로봇이 수거하고, 회의 기간에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산림 조성과 신재생에너지 설비투자로 상쇄할 것이라고 담당자는 밝혔다. 하지만 전기와 전자기기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상쇄 방안은 밝히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산림 녹화성공 사례는 이미 세계사막화방지의 모범사례로 자화자찬한 의장 자격의 이돈구 산림청장은 역대 최대 규모인 이번 총회를 통해 우리나라는 유엔사막화방지협약 내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해 나가는 선두국가로 확실히 나설것이라고 대외적으로 천명했다. 사막화가 전국에서 심각하게 진전되는 몽골에 나무 심기를 지원하고 있는 산림청이 꺼낼 수 있는 고마운 이야기다. 산림청뿐이 아니다. 산림청장은 밝히지 않았지만, ‘푸른 아시아라는 비정부기구는 일찌감치 몽골에 사람을 파견해 나무를 심고 있으며 인천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비정부기구에서 벌써 여러 해 푸른 아시아와 연대하고 있다.

 

수 천 년 방목을 해온 몽골은 최근 더욱 심화되는 사막화로 당혹스럽다. 습지가 메마르자마자 모래 날리는 사막으로 변하는 현상은 몽골의 책임이 아니다. 넓은 국토에 흩어진 인구는 그들의 오랜 문화 그대로 초원에 가축들을 풀어놓지만, 지구가 온실가스 농축으로 더워지면서 뜯을 풀은 급격히 사라지기만 한다. 국가의 경제 사정상 나무심기에 중국처럼 몰두하지 못하는데, 목축문화에 젖은 국민들은 초원에 심는 나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황사의 진원지가 된 사막이 방목이 어려워질 정도로 확장되면서 몽골 국민들도 사막화방지에 절박해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국의 나무 심기 지원에 점차 고마워하는데, 사실 이산화탄소 주요 배출국의 하나인 우리나라도 몽골 사막화에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 몽골의 사막화 방지로 황사가 줄면 우리도 좋지 않은가.

 

빙하에서 마실 물을 의존하지 않는 우리나라는 북태평양과 황해, 그리고 남중국에서 여름철 충분한 수분이 공급되어 강수량이 유사 이래 넉넉했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부러워한다. 지리적 특성으로 여름 한철 비가 집중되고 국토의 65퍼센트가 경사가 급한 산악이지만, 상류 지역에 나무가 풍부하고 굽이쳐 흐르는 강에 화강암 모래가 충만하니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른다. 아니 흘렀다. 인구가 많아도 마실 물과 생활용수, 그리고 농업과 공업용수가 모자라지 않았던 건, 산록과 강에서 스펀지처럼 물을 맑게 머금으며 조금씩 흘리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인구가 몰려 사는 도시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사막으로 뒤덮였어도 덕분에 시민들은 목마르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모른다. 5억 톤의 모래를 퍼올린 4대강을 거대한 보로 틀어막았으므로 앞으로 식수원이 썩어들 것이라고 관련학자들이 걱정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유엔사막화총회를 유치했다고 자랑한 경상남도는 습지 매립을 검토하면서 습지 보호와 지속 가능한 이용에 관한 람사협약 총회도 개최했다. 모순이었는데, 경상남도는 사막화에서 자유로운가. 사실 경상남도만의 사정은 아니다. 전국 16군데에서 완공을 서두르는 ‘4대강 사업은 분명한 사막화 사업이다. 맑은 물을 머금고 흐르던 강을 오염시켜 사람도 땅도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할 것이므로 사막화를 역설적으로 유발시킨다. 물론 전기를 펑펑 소비하는 고도설비를 가동하면 마실 수야 있겠지만 그만큼 사막화를 진전시키는 온실가스가 배출될 것이다. 물론 모래를 퍼올리고 10미터 높이로 억겁의 흐름을 16군데에서 틀어막는 대형 보를 세우는 과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도 사막화의 원인이었다.

 

4대강 사업 구간만이 아니다. 오염된 낙동강을 피해 지리산에 식수용 댐을 추진하려는 부산도 마찬가지다. 민족의 어머니인 지리산도 일부 수몰될지 모른다. 최근 심화되는 지구온난화의 여파로 장마철 전후 몰려드는 국지성호우는 물길이 차단된 4대강에 홍수와 가뭄 피해를 격화시킬 가능성도 크다. 역시 역설적 사막화다. 전문가들이 “4대강 사업은 완공시킬지 몰라도 결코 완성될 수 없다주장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여름 한 철 집중되는 강우에 의존해왔던 좁은 국토의 많은 사람들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갈증으로 고통스러울 게 틀림없다.

 

이번 창원에서 열리는 제10차 유엔사막화방지협약에 참여하는 정부기구는 외면하더라도, 적어도 비정부기구는 시방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막화를 직시해야 한다. 국제 사막화 방지에 찬물을 끼얹는 4대강 사업의 근본 실상을 파악한 뒤 돌이킬 수 있는 행동을 다짐하지 않는다면, 3년 전 람사르총회가 그랬듯이, 이번 유엔사막화방지협약도 강제력 없는 창원 이니셔티브처럼 공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여기, 20111011)

 
 
 

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4. 27. 07:40

봄비가 지난 뒤 황사가 덮었다. 올 들어 벌써 아홉 번째다. 이번 황사는 몽골에서 기원하는데, 강수량이 적은 만큼 초원이 발달한 몽골에 사막화가 최근 더욱 거세지고 있다고 마침 현장을 방문한 방송기자는 마른 모래를 날리며 실감나게 보도한다. 강수량은 줄어드는데 증발량이 오히려 늘어나면서 이맘 때 우리나라로 날아드는 황사가 더욱 심각해진 거라는데, 기자는 그리 된 이유를 특별히 밝히지 않았지만 당연한 노릇이다. 지구온난화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황사는 몽골의 고비사막과 중국의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기원하는 게 전부는 아닌 모양이다. ‘4대강 사업’의 현장에서 막대하게 퍼낸 모래와 자갈을 강 주변에 높게 쌓아올렸는데, 건조한 봄바람이 거셀 때마다 황사에 휩싸인 듯 동네에 흙먼지가 인다고 주민들은 하소연한다. 한데 그 황사는 강물 속에서 더욱 무서운가 보다. 흙탕물 확산을 막으려 가물막이 공사장의 하류를 2중 3중으로 가로막은 오탁방지막 너머에서 잉어와 누치가 꾸구리와 더불어 떼로 죽어가기 때문이다.

 

모기장처럼 고운 망을 수면에서 바닥 가까이까지 내려놓는 오탁방지막은 아무리 겹겹이 설치해도 미세한 흙까지 막아내지 못한다. 그런데 물고기를 괴롭히는 건 오탁방지막을 통과하는 미세한 흙이다. 표피 사이로 물을 통과시키며 산소를 교환하는 아가미의 좁은 통로를 틀어막지 않던가. 여주 신륵사 주변의 남한강에서 횡사한 천 여 마리의 누치가 그랬다. 비교적 깨끗하고 물살이 거센 하천의 중류를 빠르게 오르내리는 만큼 아가미를 바삐 여닫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데, 눈앞을 뿌옇게 가리며 퍼지는 물속의 황사는 마스크를 사용할 수 없는 누치에게 회피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민물고기가 그렇듯, 강물이 따뜻해지는 5월이면 짝짓기에 들어가는 누치는 겨울이 유난히 길었던 올해가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온난화로 번식기는 조금씩 빨라지는데 얼음이 늦게 녹으니 봄이 짧아지리란 걸 직감했고 그러니 서둘러 모래와 자갈바닥을 선점하려 애를 썼을 텐데, 아뿔싸. 어느 날부터 삽차가 다가오며 모래를 퍼올리더니 감당할 수 없는 흙탕이 이는 게 아닌가. 물이 차가울 때에는 움직임이 둔한 만큼 호흡량이 작아 견딜만했는데, 물이 따뜻해지면서 점점 숨이 막혀왔을 것이다. 밤을 새우는 삽차들이 모래와 자갈을 연실 퍼갈 때마다 삶터와 산란터를 빼앗긴 채 숨을 헐떡여야했던 누치들은 공사장의 시멘트가 하천으로 스며들면서 그만 목숨을 한꺼번에 내놓아야 했을지 모른다.

 

5월의 산란장에 암컷이 들어서면 먼저 차지하려는 수컷들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특징을 가진 누치는 성장 속도가 빠르고 그만큼 덩치도 크다. 첫해 7센티미터 성장한 몸은 2년이면 12센티미터에서 3년이면 17센티미터로 자라는데, 여름철 거센 물살을 순식간에 통과하는 녀석들이 30센티미터 가까우니 자연에서 5년 이상을 생존할 거로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남한강의 ‘4대강 사업’ 현장에서 죽은 누치들은 대개 30센티미터를 훌쩍 넘겼다. 50센티미터에 달하는 녀석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의 기억에 황사가 그토록 심한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옅은 갈색 등에 하얀 배를 가진 커다란 몸은 유선형이지만 한 쌍의 작은 수염을 가진 뾰족한 주둥이가 배 쪽에 가까운 누치는 모래와 자갈이 깔린 하천에 깨끗한 물이 흘러야 활기차게 활동할 수 있다. 하긴 모래와 자갈 바닥에서 꾸물대는 수서곤충의 애벌레나 다슬기를 걷어먹거나 자갈과 모래에 붙은 조류를 훑어먹으니 그럴 만하다. 그러니 누치에게 흙탕은 치명적이다. 홍수로 큰물이 들 때 잠깐 이는 흙탕은 비가 그치자마자 가라앉지만 물길을 차단한 상태에서 이는 흙탕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남한강 일원에서 모니터링에 나선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의 젊은 활동가들은 카메라로 질식해 죽어가는 누치들을 촬영할 수 있었다. 그들의 헌신적인 활동에 감동한 지역주민이 제보한 덕분인데, 뒤늦게 소식을 들은 건설업체는 죽어가는 누치들 위에 서둘러 흙을 덮었다. 매장하려는 몸짓이었을 리 없다. 누치와 잉어, 그리고 멸종위기종이자 한국특산종인 꾸구리가 현장에서 죽어가는 건 할당된 공사를 기일 내에 마쳐야 하는 시공업체가 책임질 일이 아니건만, 누군가의 지시로 참혹한 실상을 은폐하려든 것이리라.

 

언론 보도로 문제가 커지자 시공업체는 흙탕이 아니라 양수기로 물을 빼내 질식사한 것으로 왜곡했지만, 10미터가 넘는 보로 유구했던 흐름을 차단할 뿐 아니라 강바닥을 6미터 이상 긁어내는 ‘4대강 공사’가 벌써부터 숱한 생명들을 죽이기 시작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으리라. 한데, 고작 30여 마리가 죽었을 뿐이라고 당장 드러날 거짓말을 늘어놓은 정부에게 한 여당 국회의원은 누치가 들을 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질타를 쏟아냈다고 뉴스는 전한다. “과로로 쓰러질지라도 공무원이 활동가보다 먼저 현장을 점검하라!”며 증거 인멸을 부채질하는 발언을 했다는 게 아닌가. 그의 눈에 생명은 보이지 않는 것인가.

 

민물고기들은 공사할 때 물이 깨끗한 상류나 지류로 옮겨갔다 공사를 마쳐 깨끗해지면 되돌아올 것으로 정부는 환경영향평가서에서 호도했다. 서식지가 훼손되면 대체서식지를 만들어주면 될 게 아니냐고 강변하기도 했다. 한데 그 과정에서 어떤 민물고기의 생태적 특징도 조사한 바 없다. 다채롭게 어우러진 생태계의 연결고리를 아는 바 없이 얼렁뚱땅 예단했지만, 누치든 잉어든 꾸구리든, 여간해서 적응된 환경을 떠나지 않는다. 정든 마을을 버리고 경쟁이 치열한 새로운 동네로 옮기고 싶지 않은 건 사람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서해안과 남해안으로 빠져나가는 강에 주로 분포하는 누치는 언젠가부터 낙동강에 모습을 드러낸다. 플라이나 루어 낚시를 즐기고 싶은 누군가가 오래 전에 낙동강 물줄기에 풀어준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사촌 간인 참마자보다 덩치가 큰 만큼 힘이 좋으니 손맛이 여간 아니겠지. 한데 모래무지 종류가 대개 그렇듯이 맛은 그리 탐탁하지 않을 거다. 물론 누치의 탓이 아니지만 기름기가 작아 퍽퍽한데, 민물고기는 양념 맛이니 파, 마늘과 고추장을 듬뿍 넣고 보글보글 끓여대면 한층 그럴싸해질 것이다. 한데, ‘4대강 사업’으로 급감하면 어쩌나. 중국과 북한에서 누치마저 들여와야 하나. (물푸레골에서, 2010년 6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5. 18. 01:33

 

재작년 황사 발원지의 실상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인천환경원탁회의 일원으로 찾은 이래 올해가 두 번째 몽골 방문이다. 유기질을 거의 잃어 모래나 다름없는 땅에 뿌리가 들뜬 풀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모습, 그 땅으로 몰려가 발로 모래를 긁어 풀을 뿌리까지 먹어대는 양과 염소 떼를 재작년에 보았다. 이윽고 작년, 재작년 방문을 계기로 인천환경원탁회의는 노도와 같은 물줄기가 모래땅을 뒤엎듯 초원을 파헤치며 종으로 횡으로 사람의 삶터까지 파고드는 사막화를 어떡해든 막아보자는 행동에 인천시민도 동참하게 되었다. 이른바 ‘몽골 인천 희망의 숲 식림행사’였다.

 

나무를 심는 첫해는 참석하지 못했다. 시간강사 주제에 수업을 도저히 뺄 수 없었던 건데 이번 학기에는 학생들의 양해를 얻어 다녀올 수 있었다. 다만 빠듯한 일정이 방문 전에 더 촘촘해졌고 집에 돌아오자 마감을 기다리는 원고가 꼬리를 물고 있다는 사실을 통감해야 했다. 일상에서 비웠던 일주일은 내일의 생각과 행동을 풍부하게 할 게 분명한데, 성큼 앞당겨진 마감시간으로 몸과 마음이 당장 조급해진 것이다. 적막 속에서 천천히 흐르던 몽골의 시간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잠들 틈 주지 않으며 물수건과 땅콩과 기내식과 커피를 종용하고, 비행기 바퀴 내리기 직전까지 면세품 팔던 승무원들은 새벽에 내려 며칠 푹 쉴 틈이 보장되겠지. 공항에서 첫 지하철로 집에 도착해 아침 먹고, 쌓인 우편물 정리하고, 메일 확인한 후 답장 보내고, 씻자마자 오밤중까지 편집회의에 참석해 지쳤어도 몸을 추슬러 책방에 들려야 했다. 황사의 원인을 분석하기보다 몽골 사막을 몸으로 체험한 이의 감성을 호흡하고 싶었다. 이틀 나무심고 하루 시내를 돌아다닌 우리가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몽골의 진면목을 늦게라도 공유하고 싶었다.

 

2007년 여름, 오후에 당도한 울란바타르는 우리의 완연한 봄처럼 싱그러웠는데,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코를 자극하는 매캐한 공기는 화력발전소가 원인이었다. 이번엔 그 정도가 더 심해진 느낌이다.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중고 트럭과 버스는 여전히 한국산이 대부분이지만 승용차는 2년 전과 달리 일제가 훨씬 많아 보인다.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도 눈에 띄게 늘었다. 해외 송금이 아무리 많아도 아직 그답지 않을 텐데, 말 타던 사람에게 자동차에 대한 욕구는 어쩔 수 없는 건가. 가축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시내는 언제나 막힌다.

 

80명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아무래도 복잡했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공항과 호텔과 게르와 식당과 상점을 들고나거나 버스를 오르내릴 때마다 반복하는 인원파악은 베테랑 가이드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일행의 절반 이상은 마음보다 몸이 먼저인 중고등학생이 아닌가. 여비를 감당한 집안 덕을 본 그들은 애초 높은 자원봉사 점수에 마음이 빼앗겼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몽골 또래와 벅차고 뿌듯했던 작년의 체험을 돌이키고 싶었고, 몽골 다녀온 뒤 한층 진지해진 자녀가 제 성적을 쑥쑥 끌어올리는 걸 본 부모도 선뜻 동의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행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재작년에 묵었던 한국 자본의 선진호텔은 여러모로 안정된 느낌이었다. 규모도 투숙객도 늘었고 늦은 시간의 스낵바에 손님이 남아 있었지만 무엇보다 특급호텔답게 눈과 코를 찌르던 새집증후군이 사라져 좋았다. 피곤한 가운데 회의실에 모여 인사 나누고 잠자리에 든 시간이 새벽 2시. 행사 주체인 인천환경원탁회의를 비롯해 진행을 맡은 인천지역환경기술센터, 그리고 인천시 공무원과 연관 연구기관, 또한 언론사에서 30여 명의 어른이 참여했는데 한나라당 조진형 의원도 시간을 냈다. 아무래도 어른보다 수원과 광명에서 온 학생과 40여 명의 인천 중고등학생이 많은 나무를 심을 것이다.

 

회랑처럼 좁다란 3500킬로미터의 숲으로 진전되는 사막화를 차단하려는 그린벨트 사업은 몽골 정부에서 능동적으로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다. 부족한 건 정부예산만이 아니다. 나무를 심으려는 의지가 유목에 익숙한 몽골인에게 그리 절박하지 않고 무엇보다 동원할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유목문화를 수천년 지켜온 몽골인에게 더욱 심각해지는 최근의 황사는 재앙에 가깝다. 목축에 방해가 되더라도 이제 사막화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데 동의할 정도가 되었지만 인구 280만 중에 120만이 수도 울란바타르에 몰려 있는 몽골은 그린벨트가 필요한 지역에 사람이 몹시 드물다.

 

울란바타르 인근 성긴 지역과 서쪽으로 2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바양노르솜의 ‘한몽 희망의 숲’은 희망대로 숲이 완연해져도 그린벨트 3500킬로미터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겠지만, 시작은 반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2만 그루 심고 내년에도 행사가 이어진다면 제법 우거진 숲을 보게 될지 모른다. 사막화는 그 숲을 뚫지 못할 것이다. 인천에서 분 나무심기 바람이 인천 이외의 지역을 넘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면 몽골 그린벨트의 녹색 띠는 더욱 길고 두툼해져 그냥 두면 국토의 90퍼센트 이상 사막으로 변할지 모를 몽골의 초원을 푸르게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시작을 열었는데, 아주 반갑고 다행인 것은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행사가 시민들의 모금 덕분에 힘을 입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무를 심는다고 숲이 저절로 조성되는 건 아니다. 일교차가 심할 뿐 아니라 건조한 몽골 사막에서 뿌리가 깊게 내리기 전까지 보살피지 않으면 나무는 말라죽고 만다. 적어도 3년 동안 1주일에 두 차례 물을 주어야하고 양이나 염소와 같은 가축이 나무를 갉아먹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몽골의 시민들, 그 중에 학생들의 관심과 역할이 중요하다. 사실 사막화의 책임은 몽골과 거의 무관하다. 지구온난화의 원인과 같은 맥락으로 상당 부분 우리와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와 세계가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우리의 나무심기는 그런 반성의 자세로 비롯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행사를 계기로 몽골과 진한 우정이 이어지기를 희망해야한다.

 

이번 행사를 인천환경원탁회의와 공동으로 주관하는 ‘푸른아시아’는 몽골에 나무 심는 시민운동의 시원을 마련했고, 어렵사리 노하우를 개척한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다. 몽골 정부에서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푸른아시아가 나무를 심는 노하우를 우리에게 아낌없이 전수했기에 ‘인천 희망의 숲’은 나무를 건강하게 채워나갈 수 있었다. 더구나 푸른아시아는 우리에게 묘목을 알선하고 장비를 마련해주었을 뿐 아니라 몽골과 우리 학생들이 함께 나무를 심도록 주선해주었다. 그 또한 두 나라의 내일을 위한 나무심기가 아닐 수 없었다.

 

성긴에서 첫날 나무 심는 일은 쉬웠다. 누구였을까. 구덩이도 미리 파놓았고 모래땅에 부을 물과 거름이 벌써 준비해두었다. 몽골과 우리 학생들은 비록 말이 통하지 않아도 손짓발짓과 즐거운 표정으로 의사소통이 활발했고, 손잡고 나무를 심었다. 가는 나무를 50센티미터 깊이의 구덩이에 넣고 흙과 거름을 덮어 발로 밟고 그 위에 두 양동이의 물을 붓는 일련의 과정을 뙤약볕에서 함께 해나가며 우정을 나눴다. 그 와중에 이름을 교환한 학생들은 간단한 말은 물론이고 춤과 노래까지 서로 배워, 준비한 나무를 다 심도록 격이 없이 가까워졌다.

 

좁은 포장도로와 초원을 이리저리 누비는 비포장도로를 먼지 일으키는 좁은 버스에서 6시간이나 견뎌야 도착하는 바양노르에서 학생들은 처음 잡는 삽으로 땅을 파면서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몽골학생들과 어찌나 잘 어울리며 나무를 심는지 뒤에서 어정대던 어른 중의 한 사람이던 내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뙤약볕에서 어울려 땀 흘리다 헤어질 때 미리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면서 서로 주소를 적는 모습에서 희망을 느꼈다. 작년에 참석한 학생은 다시 만난 몽골 학생과 반가움을 나누고, 처음 만났어도 기념사진 찍고 헤어지면서 눈물을 머금었다. 집에서 정성껏 준비한 장신구를 남몰래 가지고와 버스 앞에서 전하는 몽골 학생들의 눈매에서 진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몽골에 나무를 성공적으로 심은 것이다. 몽골 학생들은 나무들을 잘 보살필 것이다. 1주일에 두 번 물을 주고 한국 학생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것이다.

 

이틀 동안 나무를 심은 일행은 울란바타르 인근의 테를지국립공원을 다녀온 뒤 시내에서 자연사박물관과 수흐바타르 혁명광장을 둘러보고 국립민속극단의 수준 높은 공연을 보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테를지국립공원에 한국인의 흔적은 완연했다. 골프장도 한국인 소유였지만 자질구레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한국어를 알아듣고 호객에 여념이 없었다. 관광버스가 서자마자 어디선가 나타나는 몽골인들은 매사냥용 매를 잡아들거나 쌍봉낙타를 타라며 조르고 있었다. 물론 2달러를 반드시 받았고. 토끼를 잡던 매와 고비사막에 사는 쌍봉낙타가 앵벌이가 된 셈이었다.

 

울란바타르 시내는 재작년에 없던 건물이 속속 들어섰고, 또 올라가고 있었다. 일본과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구소련에 의해 고유 키릴문자와 존댓말과 젓가락 문화를 잃은 젊은 몽골인들은 행동과 표정이 자유분방했지만, 소련 멸망 후 자리 잡은 자본주의는 빈부격차를 벌려놓았고 시민들의 마음에 자신의 국가가 후진국이라는 인식이 스며들고 말았다. 그래서 외국인 소유의 빌딩이 솟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수입한 고물차로 거리가 막혀 매연이 매캐해도 참아내는 것 같았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사막화되는 초원은 아직 그대로인데 몽골 수도의 강산은 변했다. 이미 우리가 겪었고 앞으로 피할 수 없을 환경재난이 몽골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건만 확신하기 어렵다.

 

‘몽골’은 용감하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아름답고 순박하며 자신의 문화에 자존심을 잃지 않던 모습을 보전하길 바란다고 당부한다면, 그들은 우리의 당부를 어떻게 생각할까. 알 수 없지만,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일찍이 이윤을 앞세우는 개발은 내일을 어둡게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만이 내일에 대한 걱정의 전부가 아니다. 지각없는 개발로 식량기지를 없애버린 오늘, 내일을 기준으로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버림받지 않았던가. 우리는 앞으로 몽골의 도움을 애타게 청하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

 

작년부터 ‘희망의 숲’을 몽골에 가꾸고 있는 우리는 후손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두 나라의 우정이 지금보다 깊어져야 한다는 인식에 동의할 필요가 있다. 이제 그 시작의 큰 걸음은 내딛었다. (작가들, 2009년 여름호)

큰 일 하고 오셨군요, 심은 나무가 울창한 숲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