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8. 2. 1. 17:20
 

독일의 아우토반은 속도 무제한이라고 믿지만 모든 차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버스는 시속 100킬로미터, 트럭은 80킬로미터가 제한속도다. 반드시 좌측 차선으로 추월한다. 우리 고속도로처럼 꽈배기처럼 돌아다니는 차를 거의 볼 수 없다. 감시카메라와 교통경찰이 보이지 않는 아우토반에서 독일 자동차들은 왜 규정을 잘 지킬까.

 

독일의 교통위반 벌금은 우리보다 월등하다. 감시카메라나 경찰도 없이 위반한 운전자를 어떻게 알까. 시민의 고발이다. 독일인은 야박해서 이웃을 고발하는 게 아니다. 선량한 운전자의 피해를 예방하려는 차원이지만 무엇보다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교포는 말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시민들의 참여와 동의로 만든 법규를 지키지 않았기에 고발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적 합의’가 갖는 힘이다.

 

집행자나 똑똑한 사람이 잘 판단해서 만드는 규정은 이해당사자에게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하거나 힘이 약하다. 규정 자체를 무시하거나 집행하려는 자에게 저항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공평무사하게 참여한 이해당사자들이 민주적으로 논의해 투명하게 합의해 만든 규정은 집행할 때 힘을 갖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가진 이해당사자가 모두 참여하여 규정을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이해당사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대신할 수 있는 대의원을 선출하고 그들에게 합의를 맡긴다.

 

대의원은 이해당사자가 납득할 수 있게 선출되어야 하고 대의원은 자신을 선출한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먼저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대의제는 힘을 잃는다.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다양하거나 첨예할 경우 대의원 사이에 합의가 어렵다. 그럴 경우 대의제는 위원회를 설치해 합의를 위임하기도 한다. 그런 위원회는 다수결을 배제해야 한다. 다수결이 불가피하다면 다수결 처리 여부를 먼저 합의한 다음 임해야 한다. 논의가 충분하다면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만일 강압적 다수결로 규정을 만든다면 그 규정은 사회적 힘을 잃는다.

 

독일의 교통법규는 그런 방식으로 제정되었으므로 힘을 가진다. 한데, 우리는 어떤가. 대의원은 자신을 선출한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먼저 청취하고 충분한 논의로 합의했던가. 각종 위원회는 다수결을 강행하지 않았던가. 어렵게 합의한 제도를 집행기구에서 파기하는 일은 발생되지 않았던가. 예가 수두룩하지만, 새만금 간척사업과 경부고속전철이 그랬다. 논의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의 의견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문제 제기가 빗발치는 가운데 다수결로 밀어붙였다. 우리 시민들이 교통법규를 쉽게 위반하는 이유는 뭘까.

 

두고 보아야 할 테지만,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로 치장된 경부운하는 어떤 방식으로 결정될까. 세간에 알려졌듯, “반대 의견은 듣겠지만 반드시 진행”하는 방식이라면 결코 사회적 합의가 아니다. 국민이 선출한 정권이므로 선출자의 의견은 곧 국민의 의견이라고 착각한다면, 국민은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전체주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히틀러나 무솔리니도 투표로 선출되었다. 국민들은 자신의 의견을 잘 수렴해달라고 선거에 임한다. 선출자의 의지에 굴종하려고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

 

사회적 합의는 시간이 오래 걸려 번거롭지만 합의된 결과는 힘을 갖는다. 사회적 합의가 거듭된다면 사회 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구축된다. 확립된 신뢰는 합의 과정을 점차 순조롭게 이끈다. 번거롭다고 사회적 합의를 회피한다면 민주주의는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고 집행하는 제도에 대한 이해당사자가 저항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생계비 지원을 놓고 분출되는 태안 주민들의 항의는 어디어서 비롯되었을까. 숱한 노사분규와 재개발 지역의 세입자 집단행동은 사회적 합의를 외면한 데 기인하는 건 아닐까.

 

인천에 추진되는 경인운하와 계양산 골프장은 사회적 합의가 생략된 대표 사례 중의 하나다. 주민 찬성을 들먹이지만 설악산 개발을 지역에 맡길 수 없듯, 역사와 문화에 영향을 주는 시설의 이해는 지역에 국한하지 않는다. 새 정권의 출범을 앞두고 사회적 합의를 다시 생각해본다. (인천신문, 2008.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