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1. 3. 14:07

 

올해는 토끼띠의 해. 돼지나 소띠 해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한 해를 상징하는 십이지까지 소독약 세례 받다 살처분돼 매몰될 뻔했다. 토끼는 지혜와 풍요의 상징이라는데, 지혜는 모르겠고, 토끼는 다산을 하니 풍요는 가능하겠는데, 지금 우리 산하에 토끼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겨울철이면 조릿대와 칡넝쿨을 뜯던 토끼가 드물어지면서 양지바른 산비탈을 조릿대가 차지하고 칡넝쿨이 크고 작은 나무들을 마구 휘감아 생태계가 단순해지고 있다. 대신 사람과 가축, 탐욕과 질병이 전에 없이 늘었는데, 그게 탈을 만들 줄이야.

 

새해는 구제역에 대한 긴장감으로 열렸다. 작년 말 50만 마리의 돼지와 소를 살처분했다더니 어느새 60만 마리를 훨씬 넘어섰다. 새해백두부터 청정지역의 안전망이 뚫렸다는 소식만 들리는 듯하다. 그 뿐인가. 진작 걱정했던 흉측한 사고, 다시 말해 매몰된 가축 사체의 침출수가 흘러든 지하수와 그 악취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고병원성 조류독감까지 가세하니, 소독약이 얼어붙는 엄동설한에서 현장 공무원들은 과로사에 사고사까지 감내하며 살처분의 아비규환 속에서 환청과 악몽에 시달린다.

 

다짜고짜 죽이겠다는 살처분은 잔혹한 수단이다. 아무리 도축을 전제로 사육하는 가축이라고 해도 분명한 생명이다. 살려두는 것보다 이익이라는 영악한 계산으로 죽어 파묻는 처사는 당하는 동물의 처지에서 감당할 수 없이 억울할 게 분명하다. 처지를 바꿔보라. 전파력이 매우 높은 가축 1급 전염병이지만 인체에 거의 무해한 구제역은 잘 보살피기만 하면 감염된 가축의 대부분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면역이 약한 송아지나 새끼 돼지는 절반 가까이 죽을 수 있다지만 다자란 가축은 95퍼센트 이상 살아남고, 회복되면 면역이 생겨 더는 감염되지 않는다는데, 저토록 무참하게 죽여 하는 걸까.

 

살처분은 안락사로 규정돼 있다. 신체 뿐 아니라 심리까지 고려해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소는 다른 소들 앞에서 독극물을 주사해 죽였다. 우리가 표정을 읽지 못해 그렇지, 기다리는 소들은 얼마나 공포에 떨어야 했겠는가. 돼지는 더욱 끔찍했다. 얇은 비닐이 깔린 구덩이에 몽둥이로 우르르 몰아넣고 굴삭기 삽날로 찍어 죽인 뒤 매몰하지 않았던가. 닭은 다짜고짜 자루에 넣은 뒤 생매장했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비용과 시간을 줄이려니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살처분되는 가축 앞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

 

살처분이 남용되는 국가가 우리 말고 더 있는지 모른다. 구제역의 경우 특히. 농경사회에서 없었거나 위험하지 않던 질병이 요즘 무서워진 건 가축을 생명으로 여기려 하지 않은 자본이 산업축산을 지배한 결과다. 오래 같이 살던 가축을 오로지 고기나 유제품이나 계란을 남보다 빨리 그리고 많이 생산해야 하는 도구로 취급해, 좁은 공간에 밀집시킨 뒤, 공장처럼 사육하자 질병의 전파가 쉬워졌다. 또한 돈벌이에 적합한 품종으로 극단적으로 육종하는 과정에서 조상이 가진 유전자의 대부분을 잃자, 환경변화와 질병에 무력해지고 말았다. 구제역은 결국 인간의 탐욕이 던진 부메랑인 셈이다.

 

구제역의 대책 또한 탐욕과 무관하지 않다. 백신투여를 망설인 것도 청정지역 취소로 수출에 지장이 생길까 걱정했기 때문이고 수출과 거리가 먼 소를 죽이느라 들어가는 돈이 많아 소에 한정해 백신을 주사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무엇을 뜻하는가. 탐욕스런 경제논리가 아닌가. 가축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길 때 구제역은 통제되지 않는다. 구제역을 몰랐던 시절의 조상처럼 가축을 사육하지 않는다면 고생스레 이번 구제역을 퇴치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더 무서운 구제역, 더 큰 부메랑이 날아올 것이다.

 

산업축산이 힘을 잃게 하려면 외양간에 가축을 맡기고, 우리들은 암이나 순환계질환을 유발하는 기름진 살코기와 유가공식품을 멀리해야 한다. 발 딛고 사는 땅과 생태계, 나와 이웃과 후손의 건강, 그리고 에너지 위기와 지구온난화도 개선할 수 있는 유기적인 밥상을 회복해야 한다. 바로 조상이 차리던 자연스런 밥상이다. 토끼처럼 채식 위주라면 더욱 좋다. (요즘세상, 2011.1.16)

 

정말 그러네요. 지금까지 구제역으로 인해 소나 돼지가 죽었다는 말을 못들은것 같습니다. 그렇게 마구마구 살처분을 해야 할지... 각 도로마다 방역소를 설치하고 무차별 소독약을 뿌려대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