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9. 10. 1. 23:09

 

모처럼 제주도에 가면 저녁 자리가 민망해진다. 육식을 피하려는데 명품 돼지고기를 내놓는 호의를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한 곡물로 키운 가축의 살코기를 외면하려 노력해도 어쩌지 못하고 엉거주춤 자리에 앉지만 눈치 살피며 고기를 피한다. 간혹 잘 익은 고기를 친절하게 담아주는 이가 있다. 그럴 때 겨우 맛보는 제주도 특산 돼지고기는 육지와 다른가? 잘 모른다, 하지만 다르다고 제주도 사람들은 동의한다. 품종이 다르니 맛에 차이가 있다는 거다.


육지에서 압도적으로 사육하는 허연 돼지는 지역과 관계없이 품종이 한결같다. 경제성이 높기 때문일 텐데, 그건 우리뿐 아니라 세계가 공통이다. 품종만 같은 게 아니다. 사료와 사육조건이 비슷하니 맛도 거의 같다. 가격이 올라 수입하는 유럽산 삼겹살이 우리나라 삼겹살과 맛이 다르다고 말하는 미식가는 드물다. 그러니 돼지에 치명적인 질병의 목록도 세계가 공통이다. 경제성을 위해 최대로 밀집시키는 공장식 사육환경도 같으니 이웃 국가에서 질병이 돌면 바싹 긴장해야 한다.


구제역이 돌면 확산을 막으려 당국은 반경 300미터에서 500미터 이내의 돼지를 살처분한다. 확산 속도가 빠르면 반경을 늘려 죽는 돼지의 수가 크게 늘어나는데, 그건 발굽이 있는 소와 양의 사정도 비슷하다. 구제역이 창궐해도 살처분을 미적거리거나 회피한다면? 피해반경 이내의 돼지와 소는 결국 모두 감염돼 죽고 마는 걸까? 그 방면에 아는 바 없지만 수의사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죽는 가축도 있지만 시름시름 앓다 회복하거나 잠시 증세를 보이다 이내 낫는 개체도 많다고 한다. 어쩌면 대부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감염으로 죽지 않는 개체가 많아도 반드시 살처분하는 이유는 확산 방지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감염된 축사의 가축, 피해반경 이내에서 사육한 가축은 어떤 도축업자도 받으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제역에 감염되었던 가축의 살코기라고 해도 먹는 이의 건강에 피해를 주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축산업자는 좋던 싫던 살처분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개인이나 개별 식당에서 살아 있는 상태로 구입해 식구나 이웃, 동료가 나누어 먹는 시절이 아니지 않는가. 같은 크기의 가축을 한꺼번에 도축해 포장한 뒤 대형 식품매장에 넘기는 요즘, 공장식 축산업자는 질병에 예민하게 대응해야 손해를 피할 뿐, 대안이 없다.


4만에 가까운 강화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하게 만든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치사율이 100%라고 한다. 먼저 감염된 중국은 근 1억 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했다고 언론이 보도하는 가운데, 북한 평안북도의 돼지는 전멸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멸이라. 살처분이 늦어 모두 감염돼 죽었다는 걸까? 분명치 않은데, 방역이 철저한 우리는 피해지역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견한다. 다만 강화를 비롯해 피해반경 이내에 포함돼 사육하던 돼지들은 죽을 수밖에 없고 사육업자는 보상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다행일까? 감염과 관계없이 죽어야 하는 돼지는 얼마나 억울할까?



사진: 구제역 감염구역과 가깝다는 이유로 살처분되는 같은 크기의 돼지들.(출처는 인터넷)


영국 에든버러에 구제역이 돌았을 때 복제 양 돌리도 피해반경이 가까워지면서 살처분될 위기에 있었다. 살처분 광풍이 지나간 뒤, 그 지역에서 살아 있는 어린 양이 발견돼 과학자들이 환호한 적 있었다. 구제역을 이길 품종을 개발할 기회로 여겼기 때문이라는데, 이후 연구의 성공 여부는 알지 못한다. 구 성패를 떠나,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실제로 감염된 돼지를 모두 죽일까? 일부라도 살아남은 개체가 여태 모든 국가에 없었을까? 모두 살처분하지 않았다면 찾을 수 있었던 거 아닐까? 혹 평안북도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내성 돼지가 발견되는 거 아닐까? 희망의 열쇠가 될 수 있는데.


바나나는 세계가 한 그루를 재배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유전적 다양성이 없는 품종이다. 창궐하는 질병에 매우 치명적이므로 자칫 멸종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해왔다. 곰팡이가 돌면 피해반경 이내의 바나나 밭을 모조리 불태우지만 바나나 씨앗은 극도로 안전하게 관리한다. 바나나 껍질 속에 유리파편처럼 박힌 씨앗은 따로 모아서 새로운 품종을 찾는데 이용한다고 한다. 1960년대 그로미셀 품종을 이은 캐번디시 품종을 그렇게 찾았고, 다시 새 품종을 찾으려 바나나 재배업자들은 사활을 걸고 있다는데,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더 퍼지기 전에 누구라도 이겨낼 품종을 찾아야 하지 않나?


육지와 연결된 다리 두 곳을 잘 차단하면 전파를 최선으로 억제할 수 있는 강화에서 모든 돼지의 살처분은 아쉽기 그지없다. 가축 감염 전문가는 공기로 전파되는 구제역과 달리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철저한 방역으로 전파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강화는 완전 살처분 대상지에서 제외해야 옳지 않았을까? 이미 살처분이 결정된 마당이므로 무척 아쉽다. 죽어가는 돼지에게 아쉽다는 표현은 온당치 않은데,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이기는 개체를 찾는 기회를 우리는 놓쳤다. 충분한 보상으로 사육하는 축산업자의 양해를 구해 찾을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치사율 100% 감염병? 그런 질병이 가당할까? 숙주를 100% 죽이는 바이러스라면 머지않아 숙주와 더불어 사라진다. 그런 질병은 생태계에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전 세계의 사육장에서 돼지가 같은 질병으로 모두 죽었다면 우리는 사육환경을 돌아보아야 한다. 공장식 돼지 축산의 참혹한 현실을 보라. 위생적일 뿐 아니라 동물복지에 맞게 바꾼다면 그런 치사율은 있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한다. 배설물과 사료가 뒤엉켜 썩으며 악취가 진동하는 축사에 꾸역꾸역 밀어넣고 사육하는 관행을 고집하는 한 돼지 뿐 아니라 소와 닭도 살처분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사람은 아니 그럴까? (인천in, 2019.10.2.)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6. 12. 19. 11:55


민간이 운영하는 교도소에 들어가는 예산을 감당할 수 없자 미 정부의 옛 유력인사가 훈수를 두었다고 한다. 흑인을 거세하면 예산을 줄일 수 있다고. 농담이었을까? 농담이라 해도 어처구니없는데, 백인보다 인구가 훨씬 적은 흑인이 교도소 입소자의 절반에 달한다는 걸 이유로 든 그 유력인사는 평소 흑인이 살아가는 사회의 환경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전혀 관심이 없었을 게 분명하다.


얼마 전까지 대학은 기말고사 시즌이었다. 칠판에 한 문제를 써놓고 자신의 생각을 답안지에 써넣는 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군데군데 기침과 훌쩍이는 소리가 난다. 독감이 유행이라고 언론이 보도하더니 젊은이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조류독감으로 한 달 만에 근 2천 만 마리가 죽었다는데, 대부분 조류독감에 감염되지 않았지만 살처분되었다. 조류독감 원인균이 발생한 지역과 가까운 것에서 사육된다는 이유로.


독감에 걸린 사람은 옆 사람에게 닭이나 오리나 메추리보다 쉽게 감염시킬 테지만 우리는 훌쩍이고 콜록거리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경계하지 않는다. 걸려도 금방 나아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걸 확신하기 때문인데, 한 방송사는 촛불집회 때문에 독감이 늘어난 것으로 뉴스 시간에 추정한 모양이다. 하긴 어렸을 때, 감기가 유행하면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라고 선생님이 당부하곤 했지.


주말을 빼앗은 촛불집회는 우리에게 독감을 얼마나 안겼던가? 그 뉴스를 듣지 않았으니 전문가가 합당한 근거를 제시했는지 알지 못한다. 뜻밖의 독감 증가와 촛불집회의 상관관계를 의심하는 건 합리적인가? 그 방면 문외한이니 알 수 없지만, 수업 시간에 20분 이상 늦은 학생이 지하철 파업 때문이라는 핑계를 댈 때, 합리적이 아니라고 핀잔을 준 적 있다. 기관사의 파업 때문에 출퇴근 이외 시간에 배차 시간이 길어지는 점 죄송하다고 정거장마다 방송했지만 그건 현상이었다. 근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성과급제를 반대하는 파업을 주목해야 했다. 경영진과 달리, 주어지는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에게 성과급은 합리적인가?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면 수당을 더 주겠다는 유혹은 자칫 작업장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취업준비생들은 그만큼 한숨이 길어질 것이다. 그런 성과급제를 노동자들이 반대하는 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지각은 기관사들의 파업이 아니라 지하철 경영자의 성과급제 고집 때문이었다. 점점 추워지는 주말마다 광장을 메우게 만드는 촛불집회가 독감환자를 늘였는가?


조류독감은 왜 2003년 이후 폭발했는가? 2003년 이전에 조류독감은 없었을까? 그럴 리 없다. 조류독감을 철새들이 옮기는 경우가 많다는데, 2003년 훨씬 이전 겨울에도 철새들이 어김없이 날아왔는데, 조류독감은 왜 요즘에 와서 난리를 부를까? 관료들의 안일한 대처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일본보다 우리 관료가 치밀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어왔는데, 일본도 올겨울 100만 마리 가까운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일본과 우리의 차이는 무엇일까? 관료의 안일함 이외의 무엇, 죽인 닭, 오리, 메추리의 마릿수와 다른 무엇이 더 있는 건 아닐까?


2003년 이전과 이후, 우리 가금류 사육방식의 변화는 없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세계 각국의 모든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점보다 조금 더 많다는 우리 치킨 체인점에서 해마다 소비하는 치맥용 닭은 8억 마리에 가깝다고 한다. 전에 없던 현상인데, 8억 마리라, 하루에 200만 마리가 넘는다. 그런 닭은 기계로 처리할 테고, 기계는 크기와 무게에서 오차범위 이내의 닭을 요구할 것이다. 기계의 요구에 응답하는 양계장마다 더 많은 이익을 경쟁적으로 남기려면 닭의 복지 따위는 살필 겨를이 없겠지. 그런 환경에 조류독감이 전파된다면?


수천 킬로미터 날아온 철새들은 기력이 쇠했다. 몇날 며칠 쉬지 못하고 일한 사람처럼, 충분히 먹으며 휴식을 취해야 면역력을 회복할 수 있다. 2003년 이전에도 그랬을 텐데, 2003년 언저리부터 철새들이 쉬던 갯벌이 크게 위축되었다. 새만금 일원의 갯벌도 인천공항 주변의 갯벌도 송도신도시의 갯벌처럼 사라졌다. 갯벌에서 쉽게 먹던 먹이도 일거에 자취를 감췄다. 그뿐이 아니다. 낙곡도 사라졌다. 고기와 우유를 남보다 빨리 많이 생산해야 하는 목장의 사료용으로 철새들이 오기 전부터 둘둘 말렸다. 커다란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비닐 포장으로 잔뜩 쌓아놓은 들판의 건포 사일리지가 그것이다.


사람의 독감은 머지않아 물러날 것이다. 살처분 인부의 과로사를 부르는 조류독감도 둔화될 테지만 내년 이후에는 어떨지. 내년 겨울에 주말마다 촛불집회를 위해 광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없을 거라 믿는다. 노동자에게 부과되는 성과급제가 철회되었으니 지각하는 학생은 줄어들 텐데, 독감 환자도 줄겠지. 한데 조류독감은 반복될지 모른다. 우리가 쇠고기와 치맥 소비를 자제하지 않으니. (지금여기, 2016.12.19.)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3. 7. 21:20


! ! 후드득!’ 인적 드문 산록에서 가끔 듣는 소리다. 꿩의 과시행동이라고 조류학자는 설명한다. 주변 낙엽과 비슷한 깃을 가진 갈색 암컷을 까투리, 눈 주변이 선홍색이고 화려한 꼬리 깃을 가진 수컷을 장끼로 구별하는 꿩은 암수의 생김새가 완연하게 다르다. 수컷인 장끼가 요란스레 자신을 과시하는데, 뭘 믿고 저러나.


화려한 깃을 드러내며 꿩! ! 소리치고 후드득 날갯짓하면 자신의 위치를 천적에게 드러내는 꼴인데, 위험하지 않을까? 얌전해야 천적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분명히 낮지만 암컷에게 용기 없는 수컷으로 보일 것이다. 설사 천적이 노릴지라도 능히 피할 자신이 있다는 식의 과시행동은 암컷을 믿음직스럽게 여기게 할 테고, 까투리는 과시행동을 견주며 장끼에게 접근한다고 동물행동학자는 해석한다. 그런 꿩은 닭과 가까운 종이다.


암수 구별이 뚜렷한 닭도 과시행동을 한다. 어스름 새벽부터 온 동네 수탉이 경쟁적으로 꼬끼오울어대는 통에 잠을 깨곤 했다. 닭은 서열이 정해지기 전까지 서로 매섭게 쪼며 싸우지만 정해지면 평화가 깃든다. 짝짓기는 물론 사료 접근에 우선권이 생기는데, 만일 새 닭이 끼어들면 한동안 시끌벅적하다 이내 조용해진다. 그런 닭은 건강했다. 불과 50년 전에 대부분의 닭이 그랬는데, 그때 닭과 꿩에 조류독감이 있었을까? 알 수 없지만, 누구도 그런 걸 따지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병이었을 터.


살처분, 아니 생매장될지 모르고 판자를 든 인부에 쫓기며 뒤뚱뒤뚱 구덩이로 들어가던 어린 오리들은 크기가 한결 같았다. 한날한시 부화되자마자 축사 안에 쏟아진 한 무리의 오리뿐이 아니다. 닭도 돼지도 소도 마찬가지다. 냉정한 과학축산은 죽어라고 새끼만 낳는 돼지와 암소, 암컷에 인공으로 수정시킬 정액만 죽어라고 뽑아내는 수퇘지와 황소의 품종을 용도 별고 육종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돼지와 소는 엄격한 조건에서 계산된 사료를 먹고 항생제가 주입되면서 똑같이 자란다.


값비싼 자동화 설비는 하루 100만 마리의 삼계용 닭을 포장해낸다. 사람은 고리에 한 마리 씩 다리를 걸면 끝난다. 다리가 걸려 몸이 뒤집힌 닭, 아니 병아리는 기계의 원심력에 목을 늘어뜨리며 전기가 통하는 물에 감전돼 정신을 잃고, 목숨을 잃고, 머리와 깃털과 내장을 잃는다. 배에 인삼과 대추와 찹쌀이 들어간 살코기가 낱개 포장돼 출하할 상자에 담기기까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들쭉날쭉한 병아리를 공급한 농장은 퇴출될 것이다.


유정난만 죽어라고 낳고 암탉과 죽어라고 교미하는 수탉들은 용도에 맞춰 동일하게 육종한 까닭에 기계의 오차범위를 만족시킨다. 과학축산은 극단적 선택 교배로 타고난 유전자를 크게 위축시켰다. 한꺼번에 부화기로 들어간 유정난이 동시에 부화하면 한 무리의 병아리를 공장처럼 착착 돌아가는 축사로 쏟아 넣는다. 이어 27일 동안 항생제 섞인 배합사료를 쉼 없이 먹이면 중복 점심에 전국의 식당과 군대에서 삼계탕 수백 만 그릇을 동시에 내놓을 수 있다.


닭은 공간이 좁아도 서열은 다투므로 자본은 미리 부리를 뭉툭하게 잘라놓았다. 쪼여도 상처가 크지 않아 상품성은 떨어지지 않겠지만, 그 어린 닭은 무척 아플 것이다. 같은 크기의 어린 돼지는 쑥쑥 자라면서 축사가 비좁아지니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앞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을 수 있다. 그래서 미리 꼬리를 바싹 자르고 이를 적당히 뽑아버린다. 살처분 구덩이에서 공포에 질린 돼지들이 들쭉날쭉하지 않은 이유가 그렇다. 오리도 닭도 마찬가지다. 크기가 한결 같은 만큼 유전자가 거의 같다.


생각해보자. 단일한 품종의 농작물을 넓게 심으면 벌레가 금세 모여든다. 화학비료를 주면 웃자라지만 뿌리는 깊게 내리지 못한다. 살충제를 뿌리면 농작물은 해충 내성을 잃지만 해충은 살충제의 내성을 갖고, 농작물은 새로운 해충과 병균에 시달리게 된다. 반면, 같은 농작물이라도 다양한 품종을 여기저기 심고 여러 농작물로 사이짓기를 하면 해충이 드물고 비료를 뿌리지 않아도 잘 자라 실한 알곡을 맺는다. 품이 많이 들어가고 돈벌이가 당장 줄지만, 땅도 농촌도 농부도 건강해지고, 먹는 이도 건강해진다.


타고난 유전자를 잃은 가금과 가축을 좁은 공간이 밀어놓으면 부대낄 수밖에 없다. 자라면서 배설물이 쌓이는 공간은 비좁아지며 스트레스가 커지고, 서로 상처를 입히면 질병에 쉽게 감염된다. 전염성 질병은 순식간에 퍼진다. 놓아서 기를 때 지나가는 질병이던 구제역도 조류독감도 치명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살아남는 개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대미문의 예방적 살처분은 수출시장의 신뢰를 핑계로 난폭한 살육을 서슴지 않는다. 처지를 바꿔 보면 천벌 받을 짓임에 틀림없다.


충북 음성군의 한 양계장은 멀쩡한 닭을 모조리 죽이는데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깨끗한 농장에서 닭의 본성을 최대한 배려해왔기에 조류독감에 대한 면역력이 큰데, 형평성 운운하는 당국이 예외 없는 살처분을 강요하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유전자와 면역력을 지우는 예방적 살육은 축산을 어둡게 한다. 본성을 보전하던 조상은 살처분은 물론, 가축이 떼로 죽는 참변을 알지 못했다. 낳은 알을 품는 암탉이 들쭉날쭉한 병아리와 마당이나 농장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건강을 되찾아야 농부와 땅과 먹는 이의 건강이 회복될 것이다. (기쁜소식, 2014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