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9. 8. 15. 22:36

 

예년과 달리 뚜렷하지 않은 장마가 지나가자 몸도 마음도 꼼짝하기 싫게 만드는 무더위가 한동안 엄습했다. 한낮 폭염의 열기는 녹지와 습지가 사라진 회색도시에 눌어붙어 그늘에 들어가도 숨이 턱턱 막혔다. 입추가 지났지만 열대야가 아침을 여전히 힘겹게 일으킨다. 이런 날 무얼 먹고 집을 나서야 하나.


지중해 주변 국가들은 대체로 점심시간이 길다고 한다. 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늦게 회사로 돌아오는데, 열기가 심한 여름이면 식후에 낮잠으로 시간을 보내는 시에스타가 이어진다고 한다. 오랜 습관일 텐데, 여름 열기가 폭염으로 변해가는 우리나라도 삼복더위 기간에 참고하면 어떨까? 복날 점심은 삼계탕? 흔히 이열치열이라 말하지만, 국물 뜨거운 음식으로 더위를 이기는 것은 아니다. 여름에는 그저 몸속 열기를 식히는 음식이 좋다.


복날이면 우리는 으레 삼계탕을 즐긴다. 국물 뜨거운 음식을 먹고 밖에 나서면 복날 무더위도 시시하게 느끼는 걸까? 그냥 습관일 뿐, 몸은 더 데워지니 냉방한 공간으로 피해야 한다. 더위는 고기가 책임지지 않는다. 무엇이 좋을까?


농경사회에서 고된 모내기를 마쳤을 때 더위가 엄습했다. 꽁보리밥에 지친 농군은 고기를 먹고 싶지만 잡아먹을 가축은 많지 않았겠지. 계란이 귀한 시절에 씨암탉도 엄감생심이니 동네의 늙은 개를 희생시켰을지 모르지만, 요즘은 아니다. 회색도시가 농경사회를 압도하는 요즘, 고기가 흔하고 계란도 닭도 널렸다. 그런 상황에서 개까지? 환경이 바뀌면 습관도 바꿔야 옳다.


최근 영국의 한 유명한 대학에서 쇠고기를 메뉴에서 퇴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영국은 여름철에 고기를 더욱 즐기는 국가는 아니다. 축산업이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기 때문이라고 언론은 밝혔다. 전문가들이 강조해왔듯, 식물 기반의 음식과 지속가능한 동물성 식품이 이산화탄소의 발생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한다. 석유를 가공해 만드는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재배하는 농산물을 되도록 회피하고 그런 농작물을 사료로 먹이는 공장식 축산을 외면해야 지구온난화를 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대학은 주목했으리라.


말복과 입추가 지났으니 우리나라의 개와 닭도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으려나. 곧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질 텐데, 우리의 이번 여름은 작년에 비해 참을만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른다. 올해 유럽의 여름은 호되게 더웠다. 인도는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감당해야 했는데, 내년 이후 우리나라는 안전하리라 장담할 수 없다. 푹푹 찌는 더위는 당장 에어컨으로 숨길 수 있지만 이산화탄소 증가로 심화되는 폭염은 미리미리 대비해야만 한다.


아직은 아침부터 덥다. 이럴 때 고기는 피하고 싶다. 아침은 오이지 곁들인 간단한 비빔밥이 좋다. 특이체질이라 그런지 몸을 데우는 고기는 점심으로 어울리지 않기에 콩국수를 찾거나 집이라면 시원한 오이냉채에 소면으로 열기를 피한다. 언뜻 둘러보니 대부분 채식이다. 유기농산물이라면 더욱 좋겠지. 예전 우리 조상이 즐기던 여름식단이다. 한여름에 가장 자연스러운 음식이다. 여름폭염을 이렇게 보내는데, 내년은 어떨지. (인천in, 2019.8.15.)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2. 8. 25. 12:55

   개고기 없이 무더위 견디기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른다. 찾아간 회의실에는 에어컨이 없어 장소를 바꿨다는데, 선풍기로 식힌 땀을 다시 흘리며 들어간 찻집. 과연 시원했지만 이내 더워졌다. 공기마저 답답해 얼음물을 연실 마셔도 소용이 없었다. 선풍기가 돌아가는 그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잘 견디므로, 외부인을 위한 에어컨 배려는 없어도 그만이었다. 모두 더우니 땀 흘리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회의에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회의장. 에어컨이 훌륭한 실내를 나와 예약한 삼계탕 집으로 나갔다. 낮은 온도로 에어컨을 켜도 펄펄 끓는 삼계탕 도가니를 끊임없이 내오는 식당은 더웠다. 먹는 이는 말할 것도 없을 텐데, 비 오듯 땀을 쏟는 일행은 차라리 밖이 더 시원할 거라 생각했다. 이열치열인가. 삼계탕 먹은 일행은 늦은 시간까지 회의를 강행했는데, 삼계탕 효과는 아니었다. 일행은 삼계탕과 관계없이 긴 회의 시간을 견뎌냈다. 에어컨은 몰라도 평소 고기를 많이 먹기 때문은 아니었다. 과한 육식으로 몸이 부푼 이가 적지 않았으므로.


삼계탕이나 개고기를 먹지 않고 무더위를 보내면 몸이 허해질까. 에어컨 없는 공간에서 삼계탕과 개고기를 피해도 몸이 허하지 않은 처지라서 뭐라 할 말이 없는데, 복날과 관계없이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더 더워졌다. 체온 가까운 기온이 계속되므로 일을 집중하기 어렵다. 원고를 쓰거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회의장에서 특히 버겁다. 그러므로 에어컨은 필수일까. 그런 것 같지 않다. 에어컨 없던 시절, 중요한 결정이 여름이면 미루어지고 문사의 집필은 중단되었다는 말은 일찍이 듣지 못했다. 다만 더위 피한 밤을 기다렸겠지.


비교적 잘 먹고, 대낮에 쉴 수 있는 도회지의 문사들이야 그렇다 치고, 장마가 와야 천수답에 물이 고이니 삼복더위에 모내기했던 농부들은 몸이 허해졌을지 모른다. 저장해둔 잡곡까지 바닥을 보이던 시기에 몸을 잔뜩 구부리며 며칠을 일해야 했으니 오죽했으랴. 그때 닭을 잡고 싶지만 내 논일을 같이 한 이웃에게 두루 대접할 정도로 덩치가 큰 건 아니다. 소나 돼지는 살림밑천이니 참고, 비슷한 처지의 농부들은 자기 집의 개를 번갈아 내놓았을 테지. 강아지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므로.


지금은 고기가 지천이다. 닭고기는 물론 쇠고기와 돼지고기도 널렸다. 해산물은 또 얼마나 많은가. 농민들의 몸도 삼복더위에 허해지지 않는다. 이양기 때문만이 아니다. 양수기와 보온 못자리 덕분에 장마철 이전에 대부분의 논은 모내기를 마친다. 천수답도 거의 사라졌다. 지독한 가뭄이 아니라면 양수기가 불필요한데, 온갖 농기계 덕분에 농번기에도 일손이 전처럼 많아야 하는 게 아니다. 초고령화된 농촌에 일 부탁할 이웃이 드문 까닭에 주로 도시의 아들이나 친지와 농사를 짓는데, 저녁마다 고기반찬이 올라왔으니 남의 집 개를 잡을 일도 없다.


도시나 농촌이나 허할 기회조차 없지만, 삼복더위가 오면 반가운 듯 개고기와 닭고기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저 의례적이거나 맛과 재미 때문이다. 손님이 북적이는 식당의 수와 크기로 볼 때, 개고기보다 닭고기 먹는 이가 훨씬 많을 텐데, 개와 달리, 지금은 시장에서 닭을 구하는 시대가 아니다. 누가 무슨 사료를 주고 어떻게 키웠는지 전혀 알 수 없고, 알려고 들지 않는 대기업 제품의 닭고기를 먹는다. 손님 대부분은 얼마나 위생적으로 처리했는지 모르면서 대기업 제품이므로 막연히 믿는다. 하지만 개의 경우는 확신하지 못한다.


사육에서 도축과 포장까지, 하루 수십 만 마리를 처리하는 대기업 제품의 닭이 과연 위생적인지 여부는 예서 따지지 말자. 근교 허름한 곳에서 고기용으로 사육하는 개 농장은 겉보기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농장 주인은 그런 지적에 펄쩍 뛴다. 의심스러우면 와서 보라고 강변한다. 과일장수에게 파는 사과 맛있느냐 물을 수 없는 법. 개 농장 주인의 말을 신뢰할 수 없는 이는 대체로 소비자가 아니다. 소비자보다 행정가, 언론인, 시의원이나 국회의원 들은 삼복 시기가 되면 개고기 도축 합법화를 논의하자고 나선다. 펄쩍 뛰던 개 농장 주인은 떳떳해질 테니 반대하지 않는 눈치다.


생각해보자. 사위 와야 잡는 닭이야말로 가장 위생적이다. 자신의 딸과 사위,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손주들이 먹을 고기가 아닌가. 내 집 일 도와준 이웃과 같이 먹으려고 시장에서 서너 마리 사거나 닭장에서 가져온 닭도 위생적이다. 하지만 누가 키웠는지 모르는 닭을 시장에서 잡아서 팔 때 문제가 된다. 식중독이 발생한 거다. 그렇다면 비교해보자. 손님 보는 앞에서 한두 마리 잡던 예전과 대기업에서 한꺼번에 처리해 냉동하는 요즘, 식중독은 언제 더 발생했는가. 마찬가지 맥락인데, 개의 사육과 도축을 제도화하면 안심할 수 있을까. 공장식으로 사육해 냉동한 개를 대형 상가의 식품매장에서 팔면 위생적이 될까.


위생만이 쟁점의 전부일 수 없다. 밀집 사육하는 닭은 서로 쪼아 상처를 입히므로, 상품성을 위해 부리 끝을 미리 자른다. 닭고기가 그렇듯, 개고기도 이윤의 극대화를 노리는 대기업에서 독점할 텐데, 두 마리만 가둬도 무섭게 으르렁거리며 죽어라 물어뜯는 개는 어떻게 사육하려 들까. 지금도 귀청을 미리 뚫고 이 몇 개를 뽑는다던데, 혹시 양처럼 순하고 돼지처럼 살찌는 개를 육종하는 건 아닐까. 수육과 전골로 구별해 부위별로 포장하거나, 핫도그가 아닌 도그버거가 떠들썩한 광고를 등에 업고 출현하는 건 아닐까. 합법화가 되면 ‘3분 보신탕을 내놓겠다고 벼르는 업자가 있는 마당이다.


문화상대주의는 온당치 않으니 개고기 조롱하는 이에 대항해 그네의 음식문화를 비난하지 말자. 한데 개고기가 지켜야 할 우리의 고유 식문화는 아니다. 그러므로 고기가 지천인 세상에서, 사람과 눈 맞추며 정 나누는 개까지 고기용으로 사육할 당위성은 없다. 입맛을 위해 생명을 끊을 명분도 약하다. 소와 돼지도, 닭과 오리도, 심지어 연어도 유전자를 조작한 옥수수와 콩을 먹인다는데, 개는 아니 그럴까. 소비자의 눈을 피해 미국산 쇠고기의 도축부산물은 수입하는 건 아닐까.


     에어컨 때문에 여름 감기가 흔한 요즘, 사육과 도축 합법화로 얻는 고기가 지나치게 많다. 그래서 지구온난화는 심해진다. 그렇다면 견과류나 제발 제철 제고장의 콩 단백질을 먹으면 어떨까. 고깃살도 절로 줄 텐데. (작은책, 20129월호)

태풍피해 없으 셨나요?
또 온다는데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