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2. 5. 3. 13:33

 

봄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셨다. 근린공원의 나무들은 꽃잎을 접고 겨우내 준비해왔던 연초록 잎사귀를 조심스레 펼친다. 이맘때면 산록이 아름답다. 나뭇가지마다 펼쳐지는 초록의 숨결에 햇살이 비치면 삼라만상이 깨어나는 느낌이다. 일 년 동안 광합성하며 나무를 키워낼 잎사귀가 펼쳐질 무렵, 땅에는 작은 풀이 싹을 내놓는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을 일으켜 가까운 시골로 나서는 아낙들은 봄나물 캐기에 여념이 없는데, 때를 놓치면 억세져 먹기 어렵다. 하지만 도시 근린공원과 아스팔트 도로 언저리는 피했으면 좋겠다. 자동차에서 배출한 중금속을 흠뻑 빨아들였을지 모르므로.

 

봄나물은 저장식품에 물린 사람에게 활력을 준다. 나물 캐러 다니며 가벼운 운동을 할 뿐 아니라, 쌉싸름한 나물은 입맛을 돌아오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봄나물은 양이 많지 않으니 저장된 농산물을 더 먹어야 하고, 그 농산물이 떨어지기 전에 씨앗을 뿌려야 한다. 땅을 뚫고 올라온 풀들을 뽑아낸 뒤 사람이 먹을 잎사귀나 열매를 맺는 농산물을 심어야 한다. 그를 위해 대부분의 농촌은 석유를 사용하는 농기계를 쓴다. 얼마 안 남은 농부가 수많은 도시인들을 먹이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농산물의 가격이 낮으니 농부도 많이 심어야 하고, 그러자니 화학농업을 거부하기 어렵다. 곤충도 좋아하는 농작물이 다른 풀과 경쟁하도록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 농기계, 그리고 석유로 가공하는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를 농부들이 피하려면 획기적 전환이 여러모로 필요하다. 농기계나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으니 땀을 많이 흘려야 하고, 생산량이 줄어든 볼품없는 농작물을 도시의 소비자들이 흔쾌히 사주어야 한다. 영농비와 인건비를 충분히 보상할 정도로 공정하게. 바로 신뢰를 협동조합으로 이어주는 생활협동조합이 추구하는 공정거래. 한데 많은 농부들은 아직 기계와 석유를 화학물질에 의존하는 관행농업을 거부하지 못한다. 농협 대출금에 몸과 의지가 구속된 탓이다. 유기적인 농업으로 전환한 이웃 농부가 생활협동조합의 생산자조합원이 되면서 지친 몸과 마음도 추스르며 경제적 여유를 찾는 모습을 보고 농사법을 바꿔보려 해도 대출금 상환이 발목을 잡지 않던가. 그래서 유기농산물은 여태 도시의 소비자 협동조합원에게 충분히 돌아갈 정도로 재배되지 못한다.

 

도시의 소비자 협동조합원이 관행농업으로 지친 농부들을 유기농업으로 인도하려면 생활협동조합에서 유기농업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할 수 있을 때까지 지원하는 금융 장치를 만드는 걸 긍정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는데, 당장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도시의 생활협동조합 소비자조합원들은 아쉬움을 더 달래야 한다. 달랠 수 없다면 농사를 직접 지으면 된다. ‘도시 농업이 그 길을 안내해준다. 봄비가 촉촉이 적신 도시에 농사지을 땅이 없는 건 아니다. 찾아보자. 도시화되기 오래 전부터 농사를 지었던 나이 든 농부가 시민들에게 텃밭으로 제공하려는 땅이 더러 있다. 의식이 깬 지방자치단체장이 주민을 위해 개방하려는 텃밭도 있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상자에 흙을 담아 아파트 베란다에서 농산물을 재배할 수도 있다. 이른바 상자 텃밭이다. 그런 텃밭은 대개 유기농일 테고, 도시인은 그 텃밭에서 농부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농산물을 보탤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강변에 시민 텃밭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분양하려 했으나 정부가 거부해 계획을 거두어야 했다. 우리가 먹는 식량의 4분의3을 수입하는 국가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미국과 유럽과 중국과 FTA협상을 밀어붙이며 농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부다웠다. 농부들만 괴롭힌 게 아니라 시민들이 내 나라 땅에서 제철 농작물을 유기적으로 재배해 먹겠다는 걸 방해한 셈인데, 박원순 시장은 호화찬란한 오페라하우스와 부속 건물과 아스팔트로 뒤덮일 뻔했던 한강의 노들섬을 텃밭으로 개간해 시민에게 제공했다. 좁지만 시작이 반이므로 더욱 확장되리라. 그렇다면 인천에서 텃밭은 불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텃밭으로 일굴 땅은 인천이 서울보다 넓다.

 

의제21추진위원회의 주관으로 작년 유기질 비료가 섞인 흙을 담은 상자 텃밭’ 2000개를 노인정, 학교, 어린이집, 그리고 원하는 주민에게 분양했던 연수구는 올해 도시 텃밭을 분양하고 도시 농업 아카데미로 도시 농업의 활성화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를 위해 조례를 제정한 연수구는 도시농업위원회까지 가동하기 시작했다. ‘학교 텃밭옥상 텃밭을 지원해 주민들이 신선하고 청정한 채소 재배를 통해 공기 질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어린이들에게는 식물 성장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체험교육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연수구는 텃밭으로 노인들에게는 소일거리를, 주부들에게는 건강한 여가와 웰빙 식재료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 기대했다.

 

연수구 관계자가 주민의 여가선용뿐만 아니라 정서 순화와 이웃과의 소통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한 도시 농업은 이미 많은 국가에서 일반화되어 있다. 가까운 일본도 그렇지만,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확보한 대규모의 땅에 시민들을 위한 텃밭을 조성한다. 원하는 시민에게 가구 당 100제곱미터의 텃밭을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독일은 텃밭이 가족과 이웃의 소통공간이 되었다. 주말마다 농사를 짓거나 정원을 가꾸는 텃밭은 도시의 중요한 녹지축이 된다. 따라서 독일의 도시 당국은 텃밭을 도심지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련하고, 주말이면 재배한 농작물을 교환하는 장터를 시내의 광장에서 열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구소련이 시세의 5배로 설탕과 담배를 구입해 식량을 수입해 해결해오던 쿠바는 소련 붕괴 이후 한동안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미국이 경제봉쇄를 즉시 단행하자 식량을 수입할 수 없기 때문이었는데, 도시 텃밭이 성공적으로 확산된 지금, 미국의 경제봉쇄는 힘을 잃었다. 수입할 화학비료와 농기계가 없어 시작한 도시농업이었어도 현재 아바나를 비롯한 주요 도시의 텃밭에서 식량을 자급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량이 늘어난 까닭이다. 그뿐 아니다. 약품마저 제 때 수입하지 못해 걱정스러워했던 민중들의 건강도 크게 향상되었다. 신선한 농산물을 제철에 먹고, 텃밭을 가꾸며 시민들이 적당한 운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적극적 지원으로 도시농업이 정착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생하는 식물에서 의약품을 찾으면서 의료비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도시 텃밭의 용지로 개발을 앞둔 빈 터나 자투리땅을 활용하는 임시방편도 있지만 앞서가는 국가처럼 안정적으로 텃밭을 제공하려면 넓은 농토를 사전에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로해 농사를 계속 짓기 어려워하는 농부와 장기 임대 계약을 맺거나 경우에 따라 농토를 구입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되도록 주민들의 주요 주거지역과 멀지 않아야 좋은데, 가까운 곳에서 넓은 농지를 확보할 수 없다면 셔틀버스를 제공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옥상도 물론 활용할 수 있다. 쿠바는 허리 높이에 흙을 담은 용기를 여럿 마련한 도시 농장에서 신선한 채소를 생산한다. 퇴비를 잘 활용하면 뿌리가 내리는 흙의 깊이가 깊지 않아도 대부분의 채소는 기를 수 있다. 허리 높이라면 초보자도 쉽게 농사에 접근한다.

 

한 때 대구시는 학교나 관공서 마당에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열도록 지원해 주말마다 모인 농부와 소비자들로 활기를 띈 적 있다. 쿠바는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가져와 판매하는 장소를 도시 곳곳에 마련한다. 전업 농부가 중간상인의 손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신선한 농작물을 판매한다면 서로 도움이 되고, 오래 거래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나 종교단체가 제공하는 광장에서 도시텃밭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이웃과 나눌 수 있다면, 시민들은 서로 돈독해질 수 있다. 우정이 쌓이는 주민들은 주민등록을 둔 지역에 애정을 느낄 테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삶이 지역에 뿌리내리면서 이른바 정주의식이 높아질 것이다.

 

도시의 어린이들은 밥이 어떻게 식탁에 올라오게 되는지 거의 관심이 없다. 김치와 된장, 깻잎과 채소들이 어떻게 재배되어 대형 마트에 쌓이는지 볼 기회가 없다. 농산물의 실상을 모르는 많은 도시 어린이들은 지나치게 달거나 짠 가공식품에 길들여졌거나 고기 위주의 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학교와 학원을 왕복하면서 적당한 운동조차 하지 못해 비만이 많고 성인병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아이 손을 잡고 분양받은 텃밭에서 채소를 재배한다면 아이는 제가 기른 채소를 먹으며 편식에서 벗어날 수 있고 몸을 움직이면서 건강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땅의 가치를 인식하면서 잃어버린 고향 정취를 뇌리에 남길 수 있다.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농촌이 소외되지 않는다. 곡식과 축산물을 생산하는 농촌은 도시 텃밭에서 부족할 수밖에 없는 채소와 과일과 같은 농산물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도시 소비자에게 농사법을 알려주며 신뢰가 쌓이면 일손 바쁜 농번기에 도시의 소비자는 농촌을 도울 수 있다. 그렇듯 도시의 텃밭은 시민과 시민, 농촌과 도시, 생산자와 소비자, 주민과 지역,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를 돈독하게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생활협동조합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충분하다. (푸른두레생협, 2012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