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20. 10. 19. 18:03

 

시화호에 수달이 산다. 1990년대 중반, 11km의 방조제가 바닷물을 막았을 때 끔찍한 악취를 풍기던 시화호는 요즘 깨끗해졌다. 조력발전소에서 하루 두 차례 바닷물을 받고 내보내면서 시커먼 물속에서 썩어가던 어선도 말끔히 치워졌고 그 자리에 낚시꾼이 모인다.

 

원래 갯벌과 바다였던 시화호 자리를 방조제로 막아 담수를 모아두면 인근 시화공단의 공업용수와 주변 농촌의 농업용수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개발자들은 홍보했다. 아니 그런 기대를 앞세우고 방조제를 막았지만 허사였다. 공장 폐수는 물론이고 농약에 찌든 오염수가 모이면서 불과 2년 만에 저주받은 호수로 전락했다. 시화 방조제를 강행했던 사람들은 그런 결과를 애초 짐작하지 못했을까? 환경단체마다 진작 예견했는데?

 

정부에서 시화호 수질을 개선하려고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소용없었다. 시화호 일부는 개발되었다. 대부도를 잇는 도로로 활용되는 상황이므로 기왕 완성된 방조제는 돌이킬 수 없다고 합리화한 정부는 공업단지를 조성했다. 한술 더 떴다. 시화호 일부 구간에 조력발전소를 끼워 넣은 것인다. 그러자 수질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방조제 안쪽 물이 나가면서 한동안 바다 생태계가 뒤죽박죽 교란되었지만, 자연의 완충력으로 이내 회복되었고 담수 섞인 호수 안쪽 물 색깔이 바다와 같을 정도로 개선되었다. 그러자 수달이 나타났다.

 

시화호에서 수달을 볼 수 있다는 소문은 일본의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우리보다 먼저 강둑 대부분을 콘크리트로 싸바른 일본의 주요 하천은 자연성을 상실했고, 터전 잃은 수달은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나라처럼 일본도 조끼와 목도리를 위한 사냥으로 수달 수를 크게 잃었어도 명맥은 유지했는데, 콘크리트가 강의 생명력을 거세하자 멸종된 것이리라. 많은 일본인은 수달에 대한 추억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나 보다. 코로나19로 방문을 자제하지만, 시화호를 찾은 일본인들은 우리나라를 무척 부러워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새만금 방조제는 시화호보다 3배 넘게 길다. 수많은 축사와 드넓은 농경지에서 배출하는 오염수가 섞이는 동진강과 만경강은 방조제 안에 하구를 열어 놓는다. 바닷물 흐름이 차단된 거대한 호수로 두 하천에서 토해낸 물이 10년 넘게 모이면서 시화호보다 훨씬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도 새만금의 수질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그 예산은 누가 어떻게 탕진했는지 예서 따지지 말자. 견딜 수 없었는지, 새만금도 결국 방조제를 개방해 살려내자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당연한 일이다.

 

새만금 이전에 기네스북에 올랐을 네덜란드 압술루트 방조제는 현재 바닷물이 자유롭게 왕래한다. 애초 그렇게 설계한 건 아니었다.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 아래에 있는 국가에서 거액의 예산을 들인 방조제 안에 바닷물을 드나들게 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오염과 악취를 버림받던 방조제를 관광용으로 전환한 것인데, 기대 이상의 효과가 나타났다. 낚시와 야영, 먹을거리 관련 산업이 들어섰고 어업이 되살아나면서 관광 명소로 거듭나는 게 아닌가. 예산을 축내며 나락을 헤매는 새만금은 어떤 길을 모색해야 할까?

 

그림: 여러 차례 덧칠하는 새만금 개발 계획도. 애초 계획했던 농경지는 보이지 않고 신기루 같은 청사진을 마구잡이로 늘어놓았지만 실현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전북지역의 시민단체와 종교계가 해수유통을 요구하며 민관협의회 구성을 제안하고 나셨다. 지금까지 퍼부은 예산과 노력이 소용없었다는 걸 30년 만에 인정한 환경부가 해수유통 발상을 꺼낸 이후의 일이다. 시민단체와 종교계는 경쟁력 있는 새만금을 만들기 위해서 수질이 1~2등급은 돼야 한다.”라며 환영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은 모양이다. “스마트 수변도시와 관광레저용지 특성을 고려할 때 현재 3등급인 목표 수질의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 덧붙였다고 언론이 보도했는데, 본질은 개발보다 회복이어야 한다.

 

이제까지 새만금 개발청에서 화려하게 덧칠해온 도시개발은 가당치 않다. 인구 300만 대도시인 인천도 유지에 힘겨워하는 송도신도시보다 훨씬 휘황찬란한 그림들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어떤 투자가를 속일 수 있겠나?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면서 태풍과 해일이 전에 없이 거세지는 마당에 해수면보다 낮은 지반에 조성하겠다는 비행장도 터무니없다. 핵발전소 3기를 능가할 거라는 태양광발전 계획도 터무니없기는 마찬가지다. 숱한 사례를 돌아보라. 태양광 발전은 가정과 마을 단위가 적절하지 않은가?

 

34km가 넘는 방조제 일부를 뜯어내 해수유통이 자유롭게 개조한다면 바깥 바다가 오염되더라도 고통의 시간을 잠시 견디면 회복될 것이다. 방조제 내부에 해수가 하루 두 차례 밀고 썬다면 갯벌이 살아나면서 어패류를 맨손으로 수확하던 문화와 역사를 틀림없이 되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를 위한 연구는 조급하면 안 된다. 살아날 새만금 일원에 터 잡을 주민과 후손이 흔쾌히 받아들일 만큼 합리적이어야 한다. 투명하고 독립적이어야 할 뿐 아니라 심층적이어야 한다.

 

갯벌도 영토다. 철근콘크리트 건물들이 하늘을 찌르고 아스팔트 도로가 종횡으로 달리는 개발은 신기루다. 코로나 19를 불러들이며 확산시켰다. 내일을 생각하며 차분해야 한다. 자본의 이윤보다 후손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먼저 생각한다면 콘크리트보다 생태계를 보전해야 한다. 해양생태계를 보듬으며 지구온난화를 예방하고 해양재난을 완충하는 해안은 예나 지금이나 전북의 자산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애써 무시해왔던 시화호와 네덜란드의 경험을 상기하면서 마땅히 달라져야 한다. (지금여기, 2020.10.19)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8. 11. 30. 10:39


현 정국은 예산 공방이라고 언론이 전한다. 일자리 예산이 그 핵심인데, 일자리 확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정부는 녹록치 않은 현실에 곤혹스러워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당장 늘릴 수 없는 현실에서 정부 예산안은 임시 일자리에 치중한다는 야당의 질책이 이어진다. 양질의 일자리는 민간에서 다채롭게 마련해야 옳은데, 효율성을 지향하는 기업은 일자리의 확충에 대체로 역행한다. 촛불이 탄생시킨 정부는 기업을 견인할 수 있을까?


농토 확보 명분으로 국민의 정부에서 시작한 새만금 간척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바닷물 흐름을 차단한 2006년 이후 12년이 지났건만 어떤 농업도 안착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사업 내용이 오락가락한 탓도 있지만 방조제 내부 공사에 진전이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한때 국내 굴지의 기업이 컴퓨터 기반의 첨단농업을 거론했다. 농업이 최첨단일수록 농촌과 농민은 배제된다. 투자 기업의 이익에 충성하는 최첨단 농업은 농민의 일자리와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전통 농촌을 조롱한다.


최근 정부는 2022년까지 새만금 일대에 핵발전소 4기 규모에 맞먹는 태양광과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 규모로 일자리 10만 개를 창출할 거로 추산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선포식에 대통령이 참여했지만 주민도 모르는 정책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주권자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대통령은 선포식에 앞서 주민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정책이라는 걸 몰랐을까? 어업에 종사해온 주민들도 생뚱맞은 정책에 반기를 든다. 천혜의 갯벌이 사라지면서 황폐화된 어장에서 일거리를 잃었는데, 태양광이라니? 지금은 방조제를 터야 할 때가 아닌가? 반문한다.


주민의 의견과 달리 재앙적 탈원전 대책특위 위원장직함을 가진 어떤 국회의원은 특이했다. “지역 주민들이 30년 기다린 새만금 개발이 고작 태양광이냐빈정대며 일조량 부족으로 사업 효율과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를 들어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반대했다. 그렇다면 새만금 간척사업 부지에 무엇을 들여야 한다는 걸까? 설마 핵발전소는 아니겠지.


2007년 말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양당 후보는 두바이를 거론했는데, 거품 빠진 개발의 실패작으로 평가되는 두바이가 새만금의 모델일 수 없다. 하도 넓어 해수면보다 1.5미터 낮게 성토할 수밖에 없는 새만금 간척지는 자연재해에 매우 취약하다. 300밀리 이상의 호우와 태풍, 그리고 해일과 쓰나미, 다시 말해, 심각해진 지구온난화가 일상으로 만든 기상이변은 새만금 방조제 내부를 물로 채울 텐데 어떤 사업이 전도유망할까?


납과 카드뮴 같은 중금속을 함유하는 태양광 패널을 대거 폐기할 시점이면 발암물질이 넘쳐난다는 점을 부각한 어떤 언론은 궤변을 늘어놓았다. 국민 부담이 늘어날 거라면서 억지 중단한 월성핵발전소의 재가동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 핵산업계 광고를 얼마나 수주하는지 모를 그 언론사는 핵발전이 필연적으로 배출하는 최악의 독극물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과학기술을 최선으로 동원한다면 태양광 패널이 쏟아낼 중금속은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겠지만 핵폐기물은 다르다. 영원히 해결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거늘, 정설을 애써 무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의도의 13배 넘는 부지의 태양광 발전소는 어떤 일자리를 창출할까? 주민은 만족스러울까? 벌써부터 신재생에너지 관련주가 들썩인다는 소문이 들린다. 국내 전기 소비의 10% 이상을 책임진다는 태양광 발전에 제법 많은 기업이 동원될 텐데, 4차산업을 지향하는 기업은 어떤 일자리를 늘릴까? 정부도 지원하는 4차산업은 자동화를 추구하는데, 10만 일자리는 비약이 아닐까? 패널 설치할 때 현장 인력이 잠시 필요하고 발전소 가동할 때 유지보수와 경비인력을 약간 요구하겠지.


태양 일조량은 우리나라가 유럽 최대 산업국인 독일보다 훨씬 우수하다. 그럼에도 독일은 자국 소비전력의 절반을 태양과 바람으로 충당하려 노력한다. 그뿐이 아니다. 향후 30년 이내에 모든 전력을 재생 가능한 자원에서 찾을 것이라 다짐한다. 국민과 호응하기에 허풍이 아니다. 심화되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절박함도 있다. 후손의 생존을 생각한다면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완전히 자제해야 한다고 최근 국제 전문가들이 기후변화에 관한 국가 간 협의회(IPCC)’에 모여 비장하게 결의하지 않았던가. 새만금의 세계 최대 태양광과 풍력발전 단지는 지구온난화 예방에 얼마나 기여할까?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국가는 흐린 날이 많아도 국토가 넓고 편평하므로 산지가 많은 우리와 달리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기 쉽다. 산비탈을 넓게 허물어서 산사태를 걱정하게 만들거나 멀쩡한 농경지와 호수를 뒤덮은 우리와 다르게 그들은 크고 작은 지붕을 폭넓게 활용한다. 시민들의 적극 호응하기 때문이지만 지역 자급을 유도하는 국가의 전력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마을에서 자급할수록 전기의 효율은 높아지고 불필요한 소비는 줄어든다. 지붕의 전기를 함께 사용하는 주민은 이웃과 돈독하지만 대량으로 공급하는 전력은 지역에 관심 갖기 어렵다. 기업 이익에 민감한 만큼 소비자는 소외되기 십상이다.


이명박 정권은 일정 규모 이상의 전력회사에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를 강요했다. 2024년까지 생산 전기의 10%를 신재생에너지로 감당해야 하니 전력회사는 산비탈을 무리하게 허물고 호수를 뒤덮을 궁리를 한다. 심지어 태양광 패널로 덮은 것이 이익이라고 농민을 유혹하려 든다. 그런 무모함으로 농민이 줄고 산사태가 늘지만, 그런다고 전력회사가 의무량을 채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한데 대규모 공급 정책만 유효한 건 아니다.


독일은 마을단위 또는 소비자 개개인에게 전력 생산의 기회를 준다. 지붕에서 생산해 소비하고, 남는 전기를 전력회사에 팔 수 있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가 그것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일본도 발전차액제도 실시했다. 그러자 태양광 전력이 대폭 늘어나면서 관련 일자리도 늘었다. 재생 가능한 전기는 핵이나 석탄화력보다 일자리를 최소 10배 이상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전력을 분산해 생산할수록 일자리는 늘어나는데, 우리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2012년 발전차액제도를 폐지했다.


새만금 방조제가 바닷물의 유통을 차단하면서 어민은 떠나고 어촌은 황폐해졌다. 사라진 갯벌만큼 지구온난화 예방효과는 중단되었고 우리는 천혜의 먹을거리를 잃었다. 새만금 일원의 태양광과 풍력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을 생각해보라. 방조제를 허물고 바다를 살리면 훨씬 많은 일자리가 보전될 것이라고 지역의 환경운동가는 외친다. 미세먼지와 온난화로 위기가 가중되는 후손에게 지속 가능하게 이어질 양질의 일자리가.


환경운동가가 방조제를 모조리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건 아니다. 바닷물 흐름이 원활할 정도로 방조제 여러 군데 터놓는다면 방조제 안 갯벌이 되살아날 것이다. 예전처럼 늘어난 플랑크톤이 활발하게 탄소동화작용을 하면 대기의 이산화탄소가 줄어드는 만큼 지구온난화를 예방하고 생물다양성은 회복될 것이다. 어업이 활성화되면서 어촌은 활기를 찾을 것이며 방조제를 이용해 찾아오는 관광객이 크게 증가할 게 틀림없다. 일자리? 자부심을 세계적으로 드높이는 일자리가 괄목하게 늘어나겠지! 세계 최대 태양광 발전단지는 결코 자랑일 수 없다. (작은책, 201811월호)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7. 6. 1. 15:55


1990년대 중반이었다.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이 시민의 승리로 마무리되는데 기여했던 인천의 한 환경단체가 본격적인 시민운동에 나설 즈음이었다. 활성단층이 지나가는 굴업도에 거주민이 적다는 이유로 밀어붙이던 핵폐기장을 막아내는데 기운을 다 바친 그 환경단체는 태동하자마자 전열을 다시 가다듬어야 했다. 핵발전소 규모에 버금가는 화력발전소를 영흥도에 세우려는 정부에 저항해야 하므로.


국책사업이라고 했다. 국책사업이므로 지방은 얌전히 있으라 했다. 시민들은 그저 던져주는 떡이나 받아먹으면 그만이라고 했다. 발전소만이 아니다. 강의 유구했던 흐름을 틀어막는 다목적댐과 4대강 사업, 갯벌을 막대하게 사라지게 한 새만금 간척과 인천공항도 국책사업이므로 반대는 불필요하다고 다그쳤다. 국가에 중앙과 지방이 나눠지는 게 아닌데 중앙정부가 계획하고 예산을 부담하니 지방은 참견 말라 했다. 시민 없는 정부가 없건만 가타부타하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고고도 방어체제라 일컫는 사드는 아니 그랬나?



사진: 당초 식량공급을 위한 농경지 개발이었으나 산업과 도시용지로 계획이 수정된 새만금 간척.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감강할 수 없는 예산이 들어가는 신기루가 될 것이 분명하다.



군사독재의 관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 뿅망치 게임처럼 지겹게 고개를 드는 국책사업은 하나 같이 개발독재였다. 누가 왜 계획하고 어떻게 실행하는지 지방이나 시민은 알 필요 없었다. 그저 반대하면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불순세력으로 몰아붙이며 공권력을 제멋대로 동원했다. “, 옛날이여하며 그때를 그리워하는 자들이 밀어붙이는 요사이의 국책사업도 납득할만한 설명을 함부로 생략하며 애국을 독점하려 든다.


반대는 물론이고 문제점을 제시하기만 해도 눈을 부라리는 개발독재 세력에 맞서는 일은 무척 고단하다. 온갖 제도가 막대한 자본과 권력을 독점하는 그들 편이다. 제도를 만든 이들이 군사독재 시절부터 개발독재 세력과 끈끈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제도를 내세우는 자에게 저항할 방법은 옹색하다. 개개인으로 불가능하다. 군사정권 이후 시민단체로 모였지만 약했다. 돈과 권력은 물론이고 시민단체에 허용된 시간마저 부족하니 믿는 건 오로지 양심인데, 시민의 환경과 행복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신념, 생태계와 다음세대의 지속 가능한 건강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정의감은 짓밟히기 일쑤였다.


발전소? 반대하면 어떻게? 전기 없으면 우리나라의 산업이 마비된다는데, 산업이 마비되면 직장이 사라지고 우리나라는 다시 예전처럼 가난한 시절로 돌아갈지 모르는데, 발전소는 있어야지!”


어디 발전소뿐인가? 그런 프레임은 예나 지금이나 국책사업을 관통하는 무소불위의 힘이다. 고치 꿰듯 산을 뚫어내는 고속도로와 철도, 갯벌을 광범위하게 매립하는 공항과 공단, 그리고 군사시설은 아니 그런가. 매국노가 될 수 없기에 시민들이 참여를 망설이니 행동은 언제나 힘겨웠다. 시민단체의 연륜과 역사가 어느 정도 축적된 지금도 여전하다.


어려운 여건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은 시민운동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넓은 의미로 시민운동의 영역을 독립운동, 민주화운동까지 포함해보자. 지금 참 암울한 세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예전처럼 목숨까지 내놓지 않았어도 핍박을 감수해야 했던 시민운동도 마찬가지다. 환경운동과 경제민주화운동, 여성운동, 노동운동, 문화운동 들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질서와 정의는 요즘보다 형편없을 게 분명하다.


우리 시민운동이 성숙했다 평가하기 아직 이르지만, 맹아기였던 시절, 세련되지 않았어도 활동가와 시민들의 헌신이 있기에 영흥도의 석탄화력발전소는 전국 최고 수준의 오염 저감장치를 부착할 수 있었다. 발전당국과 환경협정을 맺고 실천을 감시하는 민간조사단을 출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발전소 자체는 막지 못했다. 법과 제도의 허점 탓에 현재 6기로 늘어난 발전시설을 감내하고 있다. 막았다면 수도권의 미세먼지는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겠지.


발전소가 들어선 영흥도 해안은 어획고가 풍성할 뿐 아니라 경관이 빼어난 갯벌이었지만 건설업체는 무참하게 헐어낸 주변 녹지로 거침없이 매립했다. 후손들이 누려야할 생태적 풍요로움이 사라지는 현장을 방송사 다큐멘터리 팀과 접근할 기회가 있었다. 건설업체에 사전에 취재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구했다면 핵심을 고발하기 어려웠을 텐데, 방송 팀에 앞서 반대 주민과 낡은 소형차를 타고 현장으로 들어섰다 그만 폭력을 마주해야 했다. 건설업체가 고용한 듯 보이는 건장한 사내들이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으며 창을 꼭 닫은 차를 부수고 뒤집으려는 게 아닌가.



사진: 저녁 무렵 영흥화전 굴뚝에서 나오는 백연. 백연에 섞인 오염물질은 초미세먼지로 변해 대기로 확산된다. (출처: 대한뉴스, http://www.d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3427)


이윽고 방송 팀이 다가왔고 언론사 마크를 본 건설업체 간부의 만류로 폭력배들은 뒤로 물러섰지만 우리는 공포에 떨어야했는데, 그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사건이 최근 영종도 앞의 준설토 매립장에서 발생했다. 인천 환경단체의 중견 활동가 한 사람이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얼굴에 선혈이 낭자하게 폭행을 당한 사건이었는데, 그 폭력도 국책사업이 제공했다. 암모니아 악취가 진동하는 토양으로 매립한 현장을 고발하지 않았다면 갯벌을 잃은 인천 앞바다는 어떻게 버림받았을까?


수많은 희생이 있기에 우리나라는 독립했고 어느 정도 민주화를 이뤘지만 단단하지 못했다. 독재에 의해 사회정의가 왜곡되던 시절을 그리워한 세력의 발호는 끔찍했고 결국 민중의 촛불을 불렀다. 그 결과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7개월 빨리 실행되었지만 선거 이후가 촛불의 요구가 진정성 있게 반영될 것인가? 당선 전부터 주변에 운집한 사람 중에 미덥지 못한 이도 보이지만 공약으로 내놓은 국책사업의 규모와 내용이 탐탁한 건 아니다.


촛불은 국책사업의 개발독재를 바꿀 계기를 만들 수 있을까? 이권을 먼저 생각한 사람들의 요구를 피할 수 없어서 동의한 국책사업 공약을 폐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새로 구성된 정부는 사업 결정 과정에 폭넓은 논의를 생략하면 안 된다. 지방이 국가와 동떨어진 게 아니고 중앙정부의 관료가 시민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민원의 목소리는 판단 잣대가 아니다. 경제정의만이 아니라 사회정의와 환경정의를 살피며 사업의 성격과 범위를 투명하게 논의해야 하겠지만, 촛불의 명령은 그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음세대의 건강과 행복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후손 없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작은책, 2017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