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6. 12. 17:14

 

휴가철을 맞아 서남해안의 크고 작은 섬들은 관광객들을 모여들게 할 테고, 붉게 타오르는 해변을 고즈넉이 걷는 관광객의 모습은 멋진 달력의 그림을 연상케 할 것이다. 아직도 고산준령을 빠른 시간 안에 주파하거나 유명한 해안을 두루 섭력하려는 이가 적지 않지만, 요즘 들어 휴가를 말 그대로 휴식을 즐기는 기회로 삼는 이가 부쩍 많아졌다.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려면 서해안의 작은 섬들을 권해본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 조용한 시간을 누리기에 적격인 곳이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스치는 언덕의 그늘에 돗자리 펴고 비스듬히 앉아 고기잡이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미루고 미뤘던 소설책을 들춰보거나 파도 소리 들으며 한숨 푹 잘 여유를 만끽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나라의 섬 지방은 그물에서 갓 올라온 온갖 생선을 관광객에게 여전히 싱싱하고 풍요롭게 내주는데, 같은 우럭이라도 먹는 멋과 맛, 그리고 그 기분은 육지와 차원이 다르다. 회를 담아낸 접시가 올라오기 전부터 바다 내음이 사방에서 물씬 풍겨오지 않던가. 웬만한 섬은 육지의 부두에서 쾌속선으로 연결되니 전에 비해 훨씬 가깝게 다녀올 수 있다. 태풍과 같이 거센 풍랑이 예고되는 시기를 피한다면 얼마든지 도전해볼 만한 휴양지로 손색이 없다. 간혹 예기치 못한 폭풍우가 휘몰아치지만 그런 기상은 금방 가라앉을 게고, 조용해진 바다에 쾌속선은 이내 섬을 이어줄 테니, 지레 겁먹고 섬 지방의 맛과 정취를 포기할 필요는 이제 없어졌다 하겠다.

 

아침에 섬의 해변을 걷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땐 눈을 멀리 두는 게 좋겠다. 조수가 발아래까지 밀고온 온갖 쓰레기가 외지인의 눈을 사정없이 성가시게 만드는 까닭이다. 크고 작은 플라스틱 부표, 부서진 스티로폼이 아무렇게 나뒹굴고 그 사이로 육지에서 버린 게 분명한 라면과 과자봉투, 유산균발효유 병들, 심지어 북한과 중국에서 떠밀려온 쓰레기도 만만치 않다. 모처럼 휴식을 즐기려 찾아와 지갑을 열려는 도시인들은 발에 치이는 쓰레기에 눈살을 찌푸리겠지만 젊은 인구가 드문 섬에서 그때그때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데 쓰레기는 바로 앞 바다에서 발생한 쓰레기가 압도적이고, 대개 양식장이 그 진원이다.

 

흑산도 인근 바다에는 우럭 양식장이 많고 보길도 주변 바다에는 전복 양식장이 빼곡하다. 그래서 흑산도에 가면 우럭을 실컷 먹을 수 있고 보길도에 내리면 싱싱한 전복이 눈길과 발길을 사로잡는다. 인근의 바다에서 캐내는 미역과 다시마를 사료로 먹이는 전복 양식장은 바다를 심하게 오염시키지 않지만 양식장이라는 걸 알리는 부표가 넓은 바다에 워낙 촘촘해 여객선이 길을 잡기 어려울 정도다. 그물망으로 가둬 우럭을 양식하는 흑산도는 사료와 배설물로 바닥에 쌓이면서 난데없는 해파리가 양식장 주변을 배회하곤 한다. 오염된 바다에 몰려드는 플랑크톤을 노리는 것이겠지만 양식장의 일꾼은 물론이고 해안에서 첨벙이는 관광객의 손과 다리가 퉁퉁 붓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자신도 모르게 건드렸다 독을 가진 침에 잔뜩 쏘이기 때문이다. 쏘인 손으로 눈을 비비면 일이 커진다.

 

문제는 태풍이다. 태풍이 불어야 바다가 뒤집히고, 바다가 뒤집혀야 가라앉았던 영양분이 일어 그걸 먹으려는 물고기가 늘며, 어부들이 신난다고 흔히 이야기하는데, 양식장 업자들에게 태풍은 재앙으로 이어진다. 가두리양식장이 파괴되어 다 자란 물고기와 전복들이 찢어진 그물 사이로 탈출해버리고 쓰레기가 섬 해안을 뒤덮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면 양식장은 언제 그랬나 싶게 다시 바다를 채운다. 손해 입은 만큼 보상을 받으려면 전보다 규모를 줄일 수 없지 않은가. 늘어나는 은행 융자금의 이자라도 제때 갚아야 하고, 일꾼의 월급과 자녀의 학자금은 미룰 수 없다. 양식장이 많아지면서 물고기의 가격은 떨어지는데 사료 값은 오르기만 한다. 대안은 양식 규모를 키우는 것 이외에 생각할 게 없는데, 부셔진 양식장을 추스르기보다 새로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적으니 쓰레기는 방치될 수밖에 없다.

 

섬 지방을 오염시킬 정도로 밀집된 양식장에서 사용하는 사료는 대개 항생제를 포함한다. 유전자가 다양하지 않은 물고기들이 바글거리는 양식장의 그물 사이로 플랑크톤은 자유롭게 이동할 텐데 전염병이 돌면 양식하던 물고기들이 순식간에 배를 하늘로 내밀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지 않던가. 이럴 때를 대비해 미리 항생제를 배합사료에 섞는 것인데, 얼마나 심각했던지 최근 정부는 양식장에서 사용해선 안 되는 항생제의 목록을 공개했다. 정부의 권고가 현장에서 얼마나 지켜지는지와 별도로, 양식장의 문제는 섬 지방에 한정되는 건 아니다. 해안의 갯벌을 파놓고 양식하는 새우도 마찬가지다. 항생제와 배설물들이 방류되면서 주변 바다 생태계가 심각하게 오염된다. 수많은 철새들이 봄가을과 겨울에 날아와 갯벌에서 먹이를 찾는 강화 주변의 갯벌이 그렇다. 오염만이 양식장의 문제는 아니다. 천혜의 제주도 해안 경관을 가로막는 것도 양식장이다.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바꿔 남획을 막고 바다의 생태계를 보전하자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지나친 양식이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육지에서 막대한 영양염류가 쏟아져 들어가는 해안은 오래 전부터 특유의 생태계를 형성해왔고, 수많은 어패류들이 해안에 알을 낳으며 번성할 수 있었다. 한데 해안의 개발과 매립에 이은 양식장은 산란장을 없애거나 심각하게 오염시켰다. 이제 조기와 황복은 어디에 알을 낳아야 할까. 그나마 치어를 양식해 어장에 방생하는 사업을 정부에서 활발하게 펼치고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좁아 환경변화에 이겨낼 힘이 부족하지만 안정된 양식장에서 자란 치어는 오염된 바다에서 견디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어패류들이 스스로 알을 낳고 자랄 수 있었던 생태계를 다시 회복시켜야 하겠지만 아직은 먼 이야기라고 한다면, 우선적인 대안은 바다 생태계가 보전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양식장의 규모를 유지하는 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제를 모르지 않는 업자와 당국은 적정 규모를 처음부터 무시하거나 눈감아왔다. 규모가 작으면 수입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적정 규모가 쉽게 무시되는 원인은 양식업자 사이의 생존을 건 경쟁이고 경쟁의 근본 원인은 육지의 소비자들이 값싼 횟감을 찾기 때문이라면서 남부터 탓한다. 그래서 한국인의 항생제 내성은 시방 위험 수준이다.

 

양식 횟감을 찾는 분은 예외고, 자연산이라고 파는 비싼 횟감이 진정 자연산인지 모르는 소비자에게 팁 하나! 회를 즐긴 후 식당은 뼛국물이 우러난 얼큰한 매운탕이나 고춧가루를 뺀 지리를 내온다. 매운탕보다 맑은 지리를 권하는 식당이라면 자연산이라고 믿어도 된다고 관련 업무에 오래 종사한 이는 귀띔했다. 듬뿍 들어간 고춧가루는 국물에서 항생제를 느끼는 민감한 사람의 미각을 방해한다는 게 아닌가. 하지만 회를 마다할 수 없는 풍토에서, 지리보다 더 바람직한 팁은 활어회보다 선어회를 가끔 즐기는 거다. 그 편이 생태계는 물론, 자신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사이언스올, 2009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