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2. 9. 11. 16:50

    암을 부르는 필연의 환경

먹고 마시고 숨 쉬는 것들의 반란, 샌드라 스타인그래버 지음, 이지윤 옮김, 아카이브, 2012.

 

 

한 의사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자신은 암으로 죽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 3대 사망 원인에서 심혈관 질환, 다시 말해 심장마비는 가족에게 유언도 하지 못하고, 뇌혈관 질환, 다시 말해 중풍은 가족들에게 지나친 고생을 시키다 사망할 테니 암이 낫다는 거다. 진단을 받고 세상을 뜰 때까지 자신의 삶을 정리할 시간이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한데 그 의사는 유언을 들을 가족이 있다. 청춘인 20세에 암에 걸린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 의사의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최적의 환경이 지속되면 대장균은 대략 20분에 한 번 분열한다. 그 대장균이 36시간 동안 한 마리도 죽지 않고 계속 분열하면 사람 무릎 높이로 올라오는데, 한 시간 더 분열한다면? 무릎 높이의 8배가 될 것이다. 사람은 대장균의 바다에 빠지고 말 텐데, 그리 분열될 환경은 지속될 리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 충분히 얽히고설킨 세상만사는 대장균의 수를 너끈히 조절한다. 사람 몸속의 세포들도 마찬가지다. 엄마 몸속에서 부지런히 분열하던 세포들은 태어나면서 속도를 줄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안정된다. 하지만 암세포는 예외다.


고유의 일을 다 하고 물러날 즈음 분열해야 정상 세포인데, 뱃속의 태아나 배양액 속의 미생물처럼 분열만 계속하는 세포가 있다면 대개 암이다. 그런 세포들로 인해 개체도 제 수명을 누리지 못한다. 한 생명체의 일생에서 대부분의 세포들은 연쇄 분열을 피할 수 있도록 조절된다. 호르몬이 대개 그 역할을 담당하는데 무슨 이유로 호르몬의 분비나 기능에 장애가 생긴다면 세포는 쉬지 않고 분열할 수 있고, 결국 암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강의하는 샌드라 스타인그래버는 20세에 방광암이 온 환자이자 문필가다. 50세가 지나 생긴 유방암과 싸우며 침묵의 봄을 쓰고 사망한 레이첼 카슨처럼, 농약이나 유기화학제품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50세 중반의 나이에 이르렀다. 과학 지식과 문장력이 빼어나 2의 레이첼 카슨이라는 평가를 받는 샌드라는 실제 레이켈 카슨 리더십 상을 받기도 했다. 재발할 수 있는 암과 여전히 싸우며 생태계에 퍼진 유기화학물질과 암의 관계를 연구하는 그의 글은 따라서 남다르다.


소변에 비치던 피가 자주, 그것도 진하게 나오면서 감지된 증상. 결국 수술했고 회복 중인데, 찾아온 젊은 의사는 이것저것을 물었다. “타이어 공장에서 일한 적 있나요?”, “섬유 염색약에 노출된 적 있어요?”, “알루미늄 공장에 일한 적 있나요?” 시를 좋아하던 20세 장학생은 퇴원 후 도서관으로 직행했고, 자신이 오염된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논문이 있건만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샌드라. 자신의 집안에 암환자가 많다는 걸 돌이킨 그는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붙잡는다. 생물학자가 된 샌드라는 이후 30, 암과 환경의 관계를 추궁해야 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8만 종류의 합성유기화학물질 중에 2퍼센트가 발암성 검사를 받았고 고작 5종류만 금지되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옥수수와 콩밭. 샌드라의 고향 풍경이다. 다른 생명을 제거한 획일적 단작은 제초제 없이 아예 불가능하니, 포도나무를 말려 죽이는 아트라진이 지하수에 스며드는 건 당연하다. 그 뿐인가. 수십 년 전 사용이 금지된 DDT가 아직 잔존하고 드라이크리닝에 사용하는 물질과 공장 폐수에 섞인 화학물질은 샌드라가 사는 일리노이에 널렸다.


레이첼 카슨은 세 가지 침묵, 농장에 살포하는 화학물질이 새들을 침묵시켰다는 것, 그 사실이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거, 그리고 그 상관관계를 아는 과학자들이 입을 꽉 다물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고 먹고 마시고 숨 쉬는 것들의 반란의 저자 샌드라 스타인그래버는 말한다. 그는 비슷한 이유로 암에 걸린 친구의 두려움 섞인 수다를 받아준다. 56에 세상을 뜬 레이첼 카슨이 친구에게 그랬듯. 샌드라도 결국 친구를 잃는다. 우연의 일치일까. 침묵 속의 수다를 떤 이든, 그 수다를 받아준 이든, 전부 여성이다. 성적 특징인가. 아니면 생활습관의 차이일까.


세계대전은 전쟁에 사용할 화학약품을 무제한 생산할 것을 국가가 기업에 독려했다. 그중 군인에게 대량 공급할 농작물을 위한 제초제와 살충제가 있었고 가공식품을 상하지 않게 하는 약품도 필요했다. 유대인을 몰살시킨 가스도 있었지만, 무기를 부지런히 만들기 위해 기계에 낀 윤활유 떼를 지우는 세제가 요구되었다. 그 물질들은 전정 뒤 사라졌을까. 아니다. 잘 팔리는 상품으로 시장을 휩쓸었다. 국방부에서 따지지 않고 사줄 때 공장들은 오염물질을 줄이려는데 신경을 끊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생산이 늘면 오염물질을 줄여도 소용없는 법. 경쟁우위를 위한 현란한 상품광고는 소비자에게 안전신화를 안겼고 소비는 폭발했다.


대부분 석유 제품인 유기화학물질은 소금을 가수분해해 얻은 염소를 첨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물질은 생물체에 들어와 호르몬처럼 작용한다. 분자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이지만, 지구상에 그런 물질이 없을 때 진화한 생물들은 당장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고, 사람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별 차이는 언뜻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사춘기 이전, 다시 말해 2차성징이 뚜렷해지기 전에 노출되면 암에 걸릴 확률이 그만큼 늘었다. 하지만 사회는 무관심했다. 남성이 사회를 지배하지 않던가.


해치우려는 곤충이 거듭 저항력을 갖추자 농약은 더욱 강력해졌다. 그런 농약들도 대부분 유기화학물질이다. 종류도 많다. 상품명은 더 많다. 소비자는 헷갈리는데, 곤충만 죽이므로 사람은 괜찮단다. 베어 먹을 과일과 입을 옷에 뿌려도 된단다. 그런가. 남성이 지배하는 석유화학자본은 덕분에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땅과 물과 공기는 사정없이 오염됐다. 레이첼 카슨이 경고했던 시절보다 수십만 배나 늘어난 생산력이 오염시킨 곳의 지도는 암 발생 지도와 거의 일치하지만, 인과관계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레이첼 카슨이 개탄했듯, 인과관계를 밝히는 과학도 남성의 자본이 주도한다.


암 발생과 유기화학물질 오염은 무관하지 않다는 객관적 사실 앞에 자본은 말한다. 개인의 생활습관이 문제라고. 조심했어야 했다고. 뭘 어떻게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물론 하지 않는다. 기업은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다. 증권회사에 주식이 상장된 대기업일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주가는 곤두박질할 테니, 최고경영자는 자리를 잃을 게 아닌가. 그러니 기업은 온갖 법과 제도를 준비해 놓았다.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판매하고, 드러나면 그때 해결하라실질적 동등성 원칙이 그것이다. 이제 자본은 소비자에게 호통한다. 부주의해 당했으니 인과관계를 스스로 밝히라는 거다.


기업의 부도덕을 콕 짚어 지적하지 않은 샌드라는 사전예방원칙을 제안한다. “안전하다는 사실이 증명되기 전까지 시장에 내놓지 말라는 건데, 기업이 그런 제안에 수긍할 리 없는데, 샌드라는 한술 더 떠, 암과 무관하다는 입증 책임을 기업이 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가. 무관하다는 인과관계를 밝혀내지 못했으므로 책임지겠다는 기업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소비자의 대안은 보이콧이다. 샌드라가 언급했지만 흥청거리던 석유시대가 머지않아 종말을 고할 테니, 미리 불매운동하자는 거다. 소극적인가?


마음 같아선 교활한 기업을 고발해 당장 상응하는 배상을 받아내고 싶지만 장벽은 높기만 하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직접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의 능동적 불매운동은 결코 물렁하지 않다. 자분주의 사회에서 어쩌면 가장 적극적일 수 있다. 불매운동 때문에 재고가 쌓이는 회사의 주가는 곤두박질할 게 아닌가. 그러면 기업은 얼굴 표정을 바꾸고 다가와 안전한 새 제품이라며 유혹하겠지만, 여전히 거부하면 된다. 불매운동은 생태계와 땅과 물과 하늘도 제 자리를 찾게 할 테니, 암은 그만큼 물러갈 게 틀림없다. 소아암도 줄어들겠지.


출판사는 먹고 마시고 숨 쉬는 것들의 반란으로 제목을 달았지만 Living Downstream이 원 제목이다. 제목을 눈의 띄게 붙여야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세상이 아쉽다. 그만큼 우리의 출판시장이 열악하다는 반증일 텐데, 책보다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젊은이들의 눈에 먹고 마시고 숨 쉬는 것들의 반란이 크게 띄길 희망한다. 그들이 건강해야 석유가 사라질 내일도 지속 가능할 것이므로. (반니, 201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