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8. 1. 5. 15:05

유전자가위 시대에 더욱 오그라드는 생명윤리

 

DNA 혁명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전방욱 지음, 이상북스, 2017.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 김응빈 외 지음, 동아시아, 2017.

 

 

 

 

 

지난해 1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 주체로 제9회 바이오경제포럼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생명윤리와 기술은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문을 연 담당 과장은 제가 되면 처벌하게끔 조항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처럼 허용할 것은 허용하고 관리를 철저히 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주문했다고 언론은 밝혔다.


최근 2개월간 생화학분자생물학회를 비롯해 생명공학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의견을 두루 수렵한 과기부는 생명윤리법을 국제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생명공학 연구자 대부분은 연구비를 제공하는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과학기술은 진흥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과기부는 생명윤리법의 주무부서가 아니다. 다만 과학자에 제공하는 연구비의 크기가 많은 과기부는 생명윤리법 개정 건의를 보건복지부에 전달키로 다짐한 모양인데, 국제경쟁력의 강화를 생명윤리가 발목을 잡는다는 의미인가 보다. 많이 듣던 말이다.


생명과학의 연구와 기술개발 과정에서 생명윤리와 안전을 확보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자는 취지로 2005년 시행된 생명윤리법 때문에 누가 왜 분통 터지는 걸까? “생명현상의 이해 및 치료제 개발의 단서 확보 등을 위해 배아·생식세포 대상 기초연구를 허용해야 한다는 과학자들이 주장은 여전히 타당한가? 배아와 생식세포의 연구가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가? 그 실체가 궁금한데, 유전자 조작이나 배아복제를 타고 넘어 유전자가위기술이 등장한 요즘, 생명윤리는 국제 돈벌이의 걸림돌인가?


체내 생체시계 연구에 돌아간 2017년에 실패했지만 그만큼 올 가을 이후 노벨생리의학상을 획득할 확률이 더욱 커진 것으로 평가하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연구는 무엇인가? 과학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이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해로운 유전자를 정확하게 제거하거나 유용한 유전자를 제 자리에 끼워 넣을 수 있으므로 치료가 어려웠던 질병은 물론 증산이나 신품종 개발에 한계에 부딪힌 농업에 획기적 효과를 거둘 거라고 장담한다. 도사리는 위험이 생태계와 사람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따라 붙지만, 우리 대부분은 유전자가위 기술의 실상이 무엇인지 모른다. 어려운 용어가 난무하는 과학기술이 대개 그렇듯, 이익은 투자자와 연구자에 돌아가지만 그 피해는 대중과 생태계에 전가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헥발전소의 유지 또는 확대를 바라는 사람들이 축소와 대안을 요구하는 사람과 논란을 벌일 때 기껍게 기획하는 행사가 있다. 해외 어느 특정 인사를 초대해놓고 핵 포기를 비판하는 환경운동가라고 우호적인 언론에 소개하는 일이다. 하지만 소개된 이는 환경운동 분야의 극히 예외적인 인물이라 일과성 보도로 그치고 만다. 반면 생명공학은 달랐다. 2005년 황우석 박사의 연구부정 행위가 드러났을 때 우리 사회는 생명윤리를 배척했다. 98%의 열광적 지지로 황우석 전 교수를 옹호하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극소수는 매장하고 나섰는데, 요즘 비슷한 일이 벌어질 분위기가 재현되려고 한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이 그 첨병이다.


유전자 질환을 극복하게 할 기술인데 우리나라는 생명윤리법이 가로막으니 다른 나라에서 연구할 수밖에 없다! 수십만의 불치병 환자들의 요구가 빗발치는데, 연구를 못하니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연구에 제한이 없는 국가에서 특허를 선점하면 우리는 경쟁력을 잃을 것이다! 연구자의 하소연이 연이어 불거지자 생명윤리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언론에서, 국회에서, 그리고 과학기술 증진을 독려하는 정부와 관련 학회가 나팔을 들었다. 거액의 연구비 흐름을 거머쥔 그들 앞에서 감히 아니요!”를 외치는 이 매우 드물다.


2006수상한 과학을 펴낸 이후 한동안 연구비 중단을 감수해야 했던 전방욱 교수가 다시 나섰다. DNA 혁명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펴낸 것이다. 생명공학을 수상하다고 주장한 뒤 생명윤리로 관심사를 돌린 전방욱은 생명윤리학회 활동에 적극이고 현재 아시아생명윤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식물생리학이 전공이지만 현역 교수인 관계로 눈에 가시였어도 잘라낼 수 없었던 생명공학계는 DNA 혁명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어떻게 찾아냈는지, 유전자가위 기술을 옹호하는 생명윤리학자라는 어떤 이의 글을 생명윤리 학자 앞에 들이밀던 우리나라의 한 생명공학자는 그 책을 읽었을 텐데.


양손으로 퍼올리는 바닷물에 지구상 존재한 인류의 총수보다 많은 박테리오파지가 있다면 상상이 가는가? 박테리오파지는 바이러스를 잡아먹는 바이러스를 뜻한다. 박테리오파지는 매일 모든 박테리아의 3분의2를 죽일 정도라는데, 이틀이면 사라질 박테리아가 어제도 오늘도 존재하며 사람 사이에 여전히 질병을 퍼뜨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아남아 번식하는 박테리아가 그만큼 많고 박테리오파지를 물리치는 박테리아도 상당하다는 의미일 텐데, 박테리아는 무슨 수로 침입하는 바이러스를 막아낼까? 거기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의 비밀이 있다.


자연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신비하다. 그 사실을 연구하려는 사람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제 길을 스스로 흘러간다.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박테리아는 그 바이러스의 핵심 유전자 서열을 구성하는 염기 서열을 파악해 자신의 유전자 일부(RNA)에 기록해둔다. 이후 기록해둔 서열과 염기를 가진 유전자가 나타나면 지체 없이 파괴해(잘라내) 같은 바이러스의 감염과 확산을 차단하는데, 그 사실을 사람이 알아챈 것이다. 먼저 유산균 발효 연구자가 우연히 그 현상을 발견하자 과학자들이 연구에 나섰다. 온갖 실용 가능성을 앞세우며.


이제까지 등장한 어떤 유전자 파괴(염기서열을 잘라내 유전자의 기능을 없애므로 전문가는 녹아웃이라고 한다)와 유전자 끼워 넣기(전문가는 편집 또는 교정이라고 미화한다) 기술보다 정교하기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은 각광을 받는다. 가능성을 확인한지 불과 5년 여 만에 다양한 연구결과를 낳고 있다. 일주일이면 수백편의 달하는 논문은 아직은 사람보다 실험동물과 식물에 집중되고 사람을 연구하는 경우 가능성을 탐색으로 시도되지만 예나 지금이나 유망한 연구일수록 탐색에서 그칠 리 없다. 사람에게 적용해야 연구자는 유명해지고 연구비도 늘어나는 법인데, 생식세포에 적용하는 유전자가위 기술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자제하고 있다. 극히 제한적으로 중국 일원에서 시도했지만 실험에서 그쳤고, 그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를 다른 종의 장기를 대신 이식하며 살려낼 수 있을까? 돼지와 같은 동물의 장기로 대체하려면 돼지 유전자 사이에 존재하는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 진화 이전부터 침입해 유전자 사이에 공생하는 레트로바이러스는 돼지보다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개인에게 치명적인 면역거부보다 인류 사이로 창궐하는 질병으로 변할 수 있는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이 레트로바이러스를 모조리 처치할 수 있을까? 돼지의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가 무엇이고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데? 단 하나의 레트로바이러스를 제거하지 못해도 위험할 수 있다. 전방욱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표적이탈을 걱정한다. 엉뚱한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목표 유전자를 놓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사람의 질병을 가진 실험동물을 쉽게 창조할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자랑한다. 이른바 질병모델동물이다. 생쥐가 대부분인데, 무슨 운명의 저주를 받았기에 사람의 질병을 안고 태어나야 했는지, 여기서 애도하지 말자. 질병모델동물이 가진 질병은 대개 사람의 노환인데 어린 생쥐로 얻은 연구 결과를 사람에 적용해도 무방할까? 동물권 운동가들이 궁금해 할 사항인데, 손상되었거나 변형된 특정 체세포 속의 유전자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로 얼마나 치료할 수 있을까? 치료? 일반적인 치료와 성격이 다르다. 다른 방법을 도저히 찾지 못할 경우 실패를 무릅쓰고 시도할 수 있지만 보편적 치료는 상상할 수 없다.


체세포에 생긴 유전자의 질환을 치료하려면 치료가 필요한 부위로 교정? 편집? 아무튼 정상이라 믿는 유전자를 정확하게 보내서 교체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 방법이 신통치 않다고 한다. 연구가 진행되면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아직 희망사항인데, 과정에 부작용은 없을까? 교체용으로 체내로 투입한 유전자가 환자가 회복돼 생존하는 기간 동안 자리에 가만히 있을까? 생식세포로 전이된다면 다음세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은 환자가 감당할 수 있을까? 유럽에서 20174월 승인된 최초의 유전자 치료제 글리베라는 일인당 100만 달러,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승인한 암세포 치료제는 47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추정한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로 치료하리라 믿는 질병은 사람마다 특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로 치료할 보편적인 질병은 그리 많지 않고, 보편적인 질병은 이미 치료법이 존재한다. 앞으로 충분한 연구비를 동원해 유전자가위 치료 효과를 더욱 확실하게 확보하더라도 환자 개인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로 다음세대의 유전자를 증강하자고? 정자나 난자, 또는 초기 수정란의 유전자를 교체해 다음세대 이후에 우월한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자는 제안은 무론 아니겠지만,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연구하는 과학자는 증강, 또는 교정이라고 주장한다. 유전병을 사라지게 하자는 제안이더라도 무모하다. 현 환경에 유리 또는 불리한 유전자가 바뀐 환경에 어떻게 발현할지 미리 짐작할 수 없지 않은가. 유전자가위 기술이 아니라도 태어날 아이의 유전자 질환은 줄일 방법은 이미 확보돼 있다. 윤리적 부담을 감수한다면 양수검사가 간단하다. 부작용도 없고 의료비 부담도 작다. “유전자 증강이나 유전자 교정은 공상과학이거나 망상에 불과하다.


가축의 품종을 획기적으로 개량하고 멸종위기종의 복원도 꿈꾸는데, 극도로 거듭된 육종으로 타고난 유전다양성이 사라진 가축과 농산물은 지금도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어렵다. 유전다양성을 잃은 가축을 공장처럼 통제하여 집단 밀식하는 현재 축산업에서 구제역과 조류독감은 일상인데, 공장식 축산을 전제로 도입하는 유전자가위 기술은 가축의 유전다양성을 더욱 위축시킬 게 분명하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은 문제를 증폭시킬 수 있는데, 멸종위기종 복원이라고? 터무니없다. 서식환경 복원 없는 멸종위기중의 복원은 장난에 불과하다, 동물원에서 호랑이 보여주기와 다르지 않다. 녹색혁명이 실패한 증산과 신품종 개발은 어떨까? 유전다양성을 위축하는 기술이라면 가당치 않다. 유전자가위 기술로 유전다양성을 증진하는 품종을 개발할 리 없다. 돈벌이와 무관한 분야에 아무도 연구비를 지불하지 않을 것이므로.


유전자를 구성하는 염기는 왜 5가지에 불과할까? 이론적으로 무궁한데, 고도의 과학기술을 동원해 하나 더 추가하면 얼마나 다양한 생물을 창조할 수 있을까? 그런 생물을 인간이 창조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미 사람의 인슐린을 대신 생산하는 미생물이 태어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뇨병에 대한 경각심이 무뎌졌는데, 사람의 성장호르몬과 소 성장호르몬, 성호르몬을 미생물이 양산하면서 인간 사회에 성조숙증이 증가한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은 곰팡이에 감염되지 않는 바나나를 구상한다. 인간이 동식물을 합성 통제하는 세상이 도래한다. 바야흐로 생명과학이 신에게 도전하기 시작했다.


생명체를 디자인하는 시대를 직시한 연세대학교 생명과학자와 신학자들은 섬뜩했나 보다. 유전자조작을 넘어 유전자를 편집하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시대를 맞아 다가오는 우생학의 유혹에 반기를 들었다. 생명윤리와 생태계의 다양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과학자가 저지르는 편견으로 유전자가 함부로 편집되고 돈벌이를 염두에 둔 동식물로 디자인되어 유전자와 형태가 변형된다면 그 재앙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사람 뿐 아니라 생태계에 치명적일 텐데, 우리는 합성생물학의 산업 측면을 부각하며 덮어놓고 열광한다. 생화학을 전공하는 송기원 교수를 중심으로 5명이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를 써야 할 이유였다.


전방욱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접근하고 있는 분야를 다각도로 추적하면서 그 가능성과 위험성을 두루 평가했다. 돈벌이 가능성이 없는 연구에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도 연구비를 지불하지 않는 세상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는 가능성을 타진할 뿐이다. 부작용을 거론하면 연구비는 제한될 것이다. 성공하면 파급 경제 효과가 얼마나 되고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한 불치병과 난치병 환자, 그리고 그 가족에게 얼마나 큰 희망이 될지 연구자들은 강조하지만 무책임하다. 사실 생명을 다루는 연구자이므로 본능적으로 부작용을 염려할지 모른다. 하지만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 연구비 때문이 아닐까?

 



유전자를 교정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많은 미국을 비롯한 많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연구자들은 차분하다. 섣부른 임상연구를 경계하며 1975년 아실로마 회의처럼 유전자 조작이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염려했던 경험을 기억하는데, 그들 중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의 창시자 격인 버클리대학교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는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인체에 적용하지 말자는 제안에 찬성했다. 하지만 아실로마 회의가 그랬듯 실효성은 의문이다.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저술에 참여한 신학자는 연구자를 향해 양심의 소리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이고 진지함이 인도하는 오솔길을 함께 걷기 위해 잠시 멈추어보자고 제안하지만 국제 경쟁력 운운하는 과학자들이 귀 기울여줄까? 생명윤리를 연구하는 생물학자 전방욱은 시민숙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시민은 새로운 과학기술의 방향에 대한 의사결정의 들러리가 아니라 주인이므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의 규제와 통제에 대한 결정권이 있어야한다고 덧붙인다. 백번 타당한 주장인데, 우리 사회는 황우석 사태의 쓴 기억을 잊었는지 열광을 준비할 뿐이다. 언론과 국회의 지원사격을 믿는 과기부는 보건복지부에 선전포고를 했다. 어떤 화답이 나올까? 신고리 5,6호기의 경우처럼 공론조사에 나서자고 제안할까?


불과 5년 전 출현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새로운 생명윤리를 우리 사회에 요구하면서 전방욱 교수는 일단의 생물학자, 시민단체 일원과 근 1년 가까이 매달 모여서 공부를 해왔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은 진정 인간의 불치병과 난치병을 치료해줄까? 특정 인물의 특이적 암을 말끔하게 정밀치료해줄까? 공부할수록 회의가 든다. 오히려 특정 유전자를 가진 인류 집단을 효과적으로 정밀하게 공격할 수단을 제공하는 게 아닐까? 그 방면이라면 실패가 손해는 아니다. 정밀의료? 그게 무서워진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데, 폭발사고가 핵발전소의 퇴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욱 극성스런 과학주의가 자본을 등에 업고 등장한다. 자본의 후원으로 거대해진 과학기술은 과학기술의 과실을 편취하지만 손해는 외부로 돌린다. 황우석 사태의 교훈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성찰하지 않는다. 인문적 사고를 생략한 과학기술이 경쟁력을 약속하자 과학적 사고를 모르는 인문사회가 덮어놓고 열광하기 때문이리라.


마음이 조급할 때 목마르게 기다리던 크리스퍼 유전자의 비판적 해설서가 나왔다. 다행스럽게 생물학자의 주도로 펴냈다. 고마운 일이다. 자신의 내일을 걱정하며 새로운 인문주의자가 될 젊은이가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DNA 혁명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열독했으면 좋겠다. 생명윤리에 새롭게 투신할 수 있도록. (녹색평론, 20181-2월호)

 
 
 

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09. 2. 11. 19:22

 

지난 1월 1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는 상영한지 19일이 지나 관객 10만 명을 넘어서더니 25일 만에 30만 명을 돌파해 영화인 스스로 놀라고 있다는 소식이다. 극장가에서 조심스레 100만 관객을 점친다는데, 규모가 작은 개봉관 7군데에서 시작한 독립영화가 입소문을 타더니 상영관수를 10배 이상 확대하며 관객을 끌어들이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 방면에 문외한이라 분석할 능력이 없는데, 영화를 본 이웃은 속도와 경쟁에 치어 삭막해진 가슴에 뭔가 울컥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고 소감을 전한다.

 

늙어 빠진 소와 그 소를 마지막까지 지켜주는 8순의 노인의 정과 배려를 담아낸 아름다운 영상을 바라보다 눈가가 촉촉해진 도시인들도 고향의 아련한 정취를 기억한다. 고물상도 외면할 트랜지스터라디오처럼 바싹 늙어버린 그들은 요즘의 도시 사람들과 달리 돈 앞에 영악하지 않았다. 늙은 소의 상주가 되겠다는 아버지에게 40년을 함께 지낸 소를 팔아치우라는 노인의 자식들은 시골을 떠나 산다. 자식들의 성화에 마지못해 우시장으로 간 노인은 500만원을 불렀고, 10만원이라도 팔 수 없을 거라며 손사래치는 소장수를 뒤로 노인은 자기처럼 절뚝거리는 소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뒤, 마지막 숨을 편히 쉬도록 코뚜레와 워낭을 풀어주었다.

 

노인이 땅에 묻기 귀찮다고 10만 원에 흥정해 늙은 소를 팔아넘기고 고급 라디오 하나 장만했다면, 구름 같은 관객은커녕 개봉관 찾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남은 숨을 몰아쉬며 노인을 위해 숙명과 같은 역할을 다한 늙은 소는 노인에 의해 자기 생명의 존엄을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었다. 그래서 늙은 소도 노인도 관객에게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젊고 튼튼한 소를 새로 들여놓았어도 늙은 소를 끝까지 보듬은 노인은 소를 인간 편의로 상찬하는 이른바 ‘아낌없이 주는 존재’로 취급하지 않았다. 고기와 가죽이 아닌, 천수를 누려야 할 생명으로 여겼다. 광우병을 일으킨 오늘날의 축산자본과 달라도 한참 달랐다.

 

1990년 4월,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사는 메리 아얄라는 40을 훌쩍 넘긴 나이에 막내 딸 멜리사를 낳았다. 출산 전 진단을 받은 메리는 배속의 아기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아니사와 골수조직의 형질이 맞는다는 걸 알았다. 맞지 않았다면 낙태하고 아기를 다시 임신하려했다. 멜리사의 언니 아니사는 골수성백혈병이었다. 부모와 형제의 골수가 모두 맞지 않아 친지에서 물색했지만 소용없었다. 2년 동안 전국을 백방으로 뒤져도 이식할 수 있는 골수 가진 이를 만날 수 없었던 아니사의 부모는 최후의 수단을 모색하기로 했다. 수술한 지 10년이 넘은 정관을 복원한 45세의 아버지와 아이 낳기 부담스러운 42세의 엄마는 추가 임신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정관을 다시 잇는다고 임신이 가능할 만큼 정자가 생산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다시 가진 아이의 골수가 아니사와 맞을 확률은 25퍼센트에 불과했으며, 골수가 맞는다 해도 아니사가 치유될 확률은 70퍼센트에 지나지 않았지만, 천만다행으로 부부는 멜리사를 잉태했고, 생후 14개월이 된 멜리사의 척추에 주사바늘을 넣은 의료진은 아니사에 골수를 이식할 수 있었다. 1996년 멜리사가 6살이 되었을 때 마침내 해피엔딩을 만들어낸 아얄라 가족을 미국의 CNN은 주목했지만, 그 소식을 들은 이 모두 흔쾌해한 건 아니었다. 시간과 비용을 둘째 치고, 권장할만한 처방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실패가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치료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생명을 잉태한 게 아닌가.

 

과문한 탓에 아얄라 가족과 같은 사례가 더 발생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만일 앞뒤 가리지 않는 국가와 자본이 연구비를 충분히 제공한 덕택에 맞춤형 배아복제줄기세포 기술이 확립되고, 그 줄기세포로 안정적인 골수조직을 적절하게 확보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아얄라 가족과 같은 해피엔딩은 재현될 필요가 없을 것인가. 말로야 참으로 간단하지만, 그 가정이 이루어진다면 줄기세포가 약속하는 치료의 범위는 아니사와 같은 불치병이나 난치병 환자의 치료에서 머물러 있으려하지 않을 것이다. 생명공학이 수백억 달러에서 수백조 달러의 부가가치 창출을 장담하는 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과 패권을 노리는 권력이 줄기세포 치료에 적용하려는 분야는 가당치 않게 늘어날 것이다. 치료의 범위를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으므로.

 

지하철 출입문 가까이에 부착된 ‘미고성형외과’ 광고는 “1000번 고민하고 1001번째 미고에서 했다!”며 승객들을 유혹한다. 그 성형외과의 이름은 한자로 ‘美高’일 테지.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의 미모 수준은 과연 높아 보인다. 미고라, 그 용례가 한문의 어법에 맞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 성형외과 원장은 미의 개념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까. 의학도 시절, 어렵다는 미학을 남 못지않게 공부했을까. 외모가 근사한 젊은이를 염두에 두는 거라면 광고를 보고 병원 문을 노크하는 남녀노소는 고객인가 환자인가. 가끔 텔레비전에 비치는 성형외과 의사는 제 병원을 찾은 이를 환자라고 칭한다. 환자란 정상에서 벗어나 치료를 요하는 대상일 텐데, 성형외과 의사는 상담하려는 환자에게 어떤 모습을 ‘정상’으로 제시할까.

 

여성지 표지를 장식하는 “당신의 아들을 193센티미터로!” 광고는 딸은 170로 키워주겠단다. 성장판이 열렸는지 확인한 다음 성장호르몬을 처방하라는 유혹인데, 그 광고는 193센티미터와 170센티미터 이하의 아들과 딸은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고 규정한다. 일찍이 성장호르몬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치료가 아닐 수 없다. 10여 년 전,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 소속 의사들은 여성호르몬 처방을 남용하는 미국 의사들의 태도를 개탄했는데, 요즘 우리나라는 만연돼 있다. 주사하자마자 “용한 의사”가 되어 환자가 밀어닥치는데, 어찌 자기만 의연해할 수 있겠는가. 성호르몬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현상이다.

 

고혈압의 기준이 낮아진 이후 제약회사들의 수익은 급증했다. 주가도 솟구쳐 올랐다. 키가 작으면 질병인가. 성장호르몬을 개발한 회사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차별과 서러움을 받은 사람과 키가 큰 것 말고 특별할 게 없지만 승승장구한 이를 비교하며 그렇다고 주장한다. 그런 자료는 전문가들이 작성했을 텐데, 연구비는 보통 제약회사가 제공한다. 성장호르몬은 발육이 현저하게 왜소한 이른바 ‘난쟁이’에게 사용하기 위해 미국의 정부보조금을 받고 개발했지만 제약회사는 판매고를 높이고 싶었고 연구비를 제공했다. 그러자 전문가들은 100명 중 3퍼센트에 미치지 못하면 ‘저성장증후군’으로 규정하며 화답했고, 우리 여성지에 안내될 정도로 치료 대상이 확대된 것이다. 성장호르몬과 성호르몬은 생명공학 기술이 만들었다. 물론 남용을 위해 개발한 건 아니라고 강변할 테지.

 

지난 2월 5일, 차병원에서 신청한 연구를 심의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특별한 법적 하자가 없”지만 과도한 기대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연구제목을 변경을 비롯한 몇 가지 사항을 요구하면서 재심의를 결의했다고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차병원의 정확한 연구계획의 제목은 <파킨슨병, 뇌졸중, 척수손상, 당뇨병, 심근경색 및 근골격형성 이상을 치료하기 위한 면역적합성 인간체세포 복제배아줄기세포의 확립과 세포치료제 개발>이다.

 

한 언론은 황우석 박사가 시도한 방식과 동일한 그 연구가 승인된다면 “인간 난자의 무분별한 사용, 인간복제의 가능성 등을 둘러싸고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우려했지만 이번 재심의는 다음에 승인하려는 수순밟기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생명공학계는 전망한다. 문제는 공부하지 않은 언론의 호들갑이다. 체세포핵이식을 통한 배아복제만이 차병원에서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여러 가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아직도 생각하는 언론이라면, 어지간히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단정해도 좋을 듯하다. 연구비 자체가 탐이 난다면 모를까, 굳이 생명을 복제한 후 희생시키는 연구는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점, 수년 전부터 그리 강조되었건만 벌써 잊었다는 건가.

 

한 언론은 “우리나라가 윤리적, 규제적 역풍을 맞는 사이 선진국들은 오히려 관련 연구를 더욱 독려”한다고 주장하지만,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언론이 지적한 영국은 논란이 뜨거운 전문가 집단을 제외하더라도, 의회 역시 반대가 만만치 않다는 점을 몰랐던 걸까. 미국 오바마 정권이 당장 연구를 지원할 듯 주장하지만 그리 녹록치 않다. 체세포핵이식보다 실용가능성이 훨씬 높고 안전하며 안정적인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있는데 제 정신을 가진 연구자들이 왜 시대착오적인 연구에 매진하려 할 것인가. 미국의 정부에 사리분별이 있다면 성과가 부정적인 연구를 위해 거액의 연구비를 책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교수는 우리가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앞다투어 경쟁하는 국가의 목록으로 호주와 중국을 추가했지만 근거를 대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이외의 나라가 더 있는지 밝히지 못한다. 당연하다. 대부분의 나라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관심을 껐다. 배아가 아니라 환자의 성체줄기세포를 활용하는 연구에 사활을 건다. 해외 연구추이에 촉각을 세우는 연구자라면 그런 글을 감히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다.

 

배아연구 재개를 요구하는 언론의 특징은 배아로 창출할 줄기세포가 ‘성장동력’이 될 거라는 기대다. 결국 돈벌이에 활용하자는 취지인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결정 이후 줄기세포 관련 주가가 춤을 춘 우리 사회에서 “복제 줄기세포를 여러 장기 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다면 병들거나 손상된 장기를 기계부품처럼 바꿔 끼우는 게 가능하다”고 언급한 유력 신문의 사설은 어처구니가 없다. 내용 자체도 틀렸지만 생명체를 돈벌이를 위한 기계로 본다는 게 아닌가. “지금이라도 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분야를 국가적인 기간 사업으로 선정, 모든 인재를 총 동원하여 21세기 대한민국 차세대 성장 동력원으로 만들어내는 역량”을 모으자는 ‘아이러브황우석’ 카페야 그렇다 치고, 어떤 교수의 “윤리적 문제를 최소화하면서 얻어지는 막대한 의학적 의료적 가치”는 무엇을 뜻하는가.

 

돈벌이를 앞세우는 순간, 생명은 존엄성을 잃는다는 점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우리 사회의 어떤 언론도 그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불행한 일인데, 우리는 더 나아가 세계가 경쟁하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는 진정 불치병 난치병 연구에 매진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어린이 당뇨병이나 젊은이의 백혈병과 마찬가지로 교통사고나 작업장사고나 전쟁으로 척수가 끊어진 환자를 치료하는데 국가의 성장동력은 창출되지 않는다. 환자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사회적 안정망에 먼저 노력하지 않으며 추진하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도 문제일 텐데, 설마 외모 수려한 젊은이를 기준으로 고객을 모집하고자 피부와 뼈 성형을 염두에 두는 줄기세포 연구에 매달리는 게 아닌지 살펴야 한다. (신앙세계, 2009년 3월호)

내가 썩 좋아하는 블로거가 아주 좋은 책 만났다며 적극 권장하길래 '친구'라고 했는데...무례했남요.
얼굴 한 번 못 본, 그러나 오래 전부터 맘 속에서 멋대로 '친구'로 매김한 닭친구, 잘 있지요?
그 블로거한테 요기로 오라고 소개를 해줬는데.^^
물론 무례했을 리 없지요. 오히려 고맙고 또 반가울 따름입니다. 저 또한 비바라기를(님 생략했음!) 오랜 친구로 생각하고 있구요. 온라인이라도 자주 만나 이야기나누길 희망합니다. 저 또한 한동안 격조했죠?

 
 
 

서평·추억

디딤돌 2007. 7. 31. 10:45

 

우리나라의 생명공학 운동은 비교적 늦은 편이었다. 1997년 복제양 돌리가 태어나 생명윤리 문제가 부각되었어도 대부분의 시민단체는 잠잠했다. 유럽에서 GMO논란이 거센 가운데 우리 정부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1998년 7월 경, 한겨레신문은 우리나라에 미국산 곡물을 실어오는 미국계 다국적기업 카길에 질의했고, 카길은 대답했다. 한국이 뭐 특별한 줄 아느냐고. 한국도 유전자조작과 조작하지 않은 농산물을 섞어 운송할 뿐이라고. 그래서 시민단체는 모였다. 파고다공원 정문에서 한바탕 집회도 가졌다. 휘둥그레지는 시민들. 벽 대고 소리쳤어도 효과는 있었다.

 

그 직전부터 시민단체들은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모였다. 생명공학이 무엇이고 왜 문제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자 2주일에 한 번씩 모여 자체 세미나를 가졌다. 그렇게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경각심을 누적할 무렵, 한겨레신문의 보도를 보고 집회를 가진 것인데, 의회는 어이없게 기존 생명공학육성법에 생명윤리와 안전 조항을 들러리 세우겠다는 개정안을 제출했고, 시민단체들은 급해졌다. 호랑이 이를 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는 법. 1998년 9월 11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기 바로 3년 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 모여 ‘생명공학육성법 개정 관련 시민단체 연대 모임’ 토론회를 개최한 것이다. 그 토론회를 계기로 생명안전ㆍ윤리연대모임(이후 연대모임)은 결성되었다.

 

이후 연대모임은 생명공학 관련 시민운동의 선두에 섰다. 살이 에이는 듯 추운 겨울날, 농수산물유통공사 앞에서 카길을 상징하는 화물선 모형에 미국산 콩을 부어 놓고, 그 통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포퍼먼스를 벌이자 따뜻한 차 안에 몸을 녹이던 기자들이 몰려나와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북새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어 경희의료원에서 세계 최초라는 방점을 스스로 찍고 복제한 배아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개념 없는 행위를 과감히 벌이는 사건이 발생해, 연대모임은 기자를 경희의료원 앞으로 불러 모아 집회를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언론과 정부는 연대모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대모임은 소식지를 내기로 결의했다. 9월 11일, 9개 단체로 출발한 연대모임은 소식지 첫 준비호를 발간할 때 10개 단체로 늘었고, 이후 17개 단체가 연대했다. 연대한 단체는 그린훼밀리운동연합,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녹색소비자연대, 녹색연합, 불교인권위원회, 서울YMCA, 세민재단, 소비자문제를연구하는시민의모임, 지속가능개발네트워크한국본부(KSDN), 참여연대 과학기술민주화를위한모임, 청년생태주의자(KEY),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환경운동본부,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인권환경위원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시민연대였다.

 

출범 이후 연대모임의 초창기 역할과 노력은 실로 눈부셨다. 연대모임이 출범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생명공학 시민운동은 한동안 갈피를 잡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아무튼 경희의료원 불임클리닉의 복제배아 유기 사건을 놓고 벌인 대한의사협회의 실사 결과에 대한 성명서와 주한미국공보원의 유전자조작 농산물 표시제 반대에 대한 항의서한을 시작으로 연대모임은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녔다.

 

유전자조작 식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올바른 국제협약과 체계적인 국내법규의 마련을 요구하고 황우석 교수팀에 의해 당시 만들어졌다고 믿은, 실상은 속임수였던 복제 소, 영롱이에 대한 문제 제기 성명서를 즉각 발표했다. 1999년 전국 환경활동가 워크숍에 참석, 생명공학분야에 대한 시민단체의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과 생명공학기술의 무분별한 사용을 막고 환경윤리를 존중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노력했다. ‘생명공학안전성 의정서’ 체결 환영 논평, ASEM 2000 민간단체포럼 환경 분과 워크숍에 참가, 네슬레 한국 지사 앞에서 집회, 가축복제연구센터 반대 성명들로 정신없이 뛰어야 했다. 또한 농림부와 식품의약품안전정에서 논의한 GMO표시제에 적극 대응하기도 했다.

 

치열했던 연대모임도 2000년 후반부터 동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운동에 관심을 보였던 언론의 주목도 점점 시들해졌다. 거리 캠페인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고 소식지도 지지부진해졌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에 대한 특화된 활동을 하는 ‘유전자조작식품반대 생명운동연대’가 발족하고, 소비자운동쪽과 종교 사회단체 쪽에서 생명공학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연대모임이 유일한 생명공학 비판자로서 가졌던 한국사회에서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2001년 5월 “생명을 위협하는 유전자 조작 식품생산업체의 주장만을 옹호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을 후손의 이름으로 경고한다!”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이후 명맥을 유지하던 연대모임은 66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조속한 생명공학기본법 제정 공동 캠페인단’으로 위상을 변경, 2001년 9월부터 1차 실무위원회를 개최하며 활동을 이어갔으며 황우석 사태를 계기로 ‘생명공학감시연대’가 그 뒤를 이었다. 지금은 연대모임 이후 결성된 시민사회 연대체는 조용하지만 국내 생명공학계까지 조용해진 것도, 자성하는 것도 아니다. 제2 제3의 황우석 사태는 충분히 예견된다.

 

연대모임은 흐지부지 역할을 멈추어 생명공학운동에 치중하지 못하는 우리 시민사회단체의 한계를 드러냈어도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다시 연대체를 가동할 수 있는 힘이 되었고, 연대모임의 활동 덕분에 미진하나마 생명공학 윤리와 관련한 법제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황우석 사태가 백일하에 드러난 데에도 연대모임의 공력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한데 예서 멈출 수 없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많은 국가에서 생명공학으로 국가부가가치를 계획하며 거액을 투여하는 이 시점에, 초기 연대모임과 같은 시민운동이 요구된다. 더욱 현란하교 교묘한 논리의 수사로 연구와 개발이 계획되는 생명공학을 후손의 눈높이에서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다.(시민과학센터 10주년 기념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