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20. 12. 1. 14:29

 

작년과 달리 올겨울은 쌀쌀할 거라는 예보가 나왔다. 그래서 그런가? 11월에 들어서니 찬 바람이 인다. 거리에 오리털외투로 무장한 시민들이 종종걸음이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닐 성싶은데, 추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 아무리 추워도 만보를 쉬지 않고 걸으면 등에 땀이 밴다. 뺨에 스치는 바람이 차도 몸이 더우면 답답하다. 그렇다고 외투 벗으면 느닷없는 한기가 엄습한다. 코로나19가 여전하다. 감기는 피해야 하니, 얇은 옷 한 벌 더 입고 밖에 나선다.

 

코로나19 이후 동네병원에 감기 환자가 무척 줄었다고 한다. 손 씻기가 강조되고 어디를 가나 손 세정제가 비치돼 있으니 그럴 만하겠다. 기침 일으키고 콧물 흘리게 만드는 감기는 코로나19처럼 재채기보다 손으로 쉽게 감염되는 바이러스 질병이라지 않던가. 실내는 물론, 걷는 사람이 드문 거리라 해도 마스크를 습관처럼 착용하는 분위기에서 동네 의원의 수입도 줄었겠지. 추위로 곱은 손이 떼에 찌들 때까지 동네방네 누볐던 1960년대, 누런 콧물을 줄줄 흘릴지언정 조무래기들은 감기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21세기 아이들은 건강할까?.

 

찬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긴 외투로 몸을 돌돌 마는 아이들은 털모자와 목도리로 빈틈이 없는데, 감기를 달고 산다. 손을 유별나게 세척하는 요즘은 예외겠지만, 피부가 새하얀 도시 아이들은 걸핏하면 병원행이다. 바지춤에 흙을 묻히고 집에 들어서면 목욕탕에 순순히 끌려가는 요즘 아이들이 손 씻기를 거부할 리 없는데, 고기를 원 없이 먹어도 면역력이 떨어진 걸까? 할아버지는 물론 아버지보다 키와 허우대가 부쩍 커졌지만, 자라는 동안 여름이 겨울 같고 겨울이 여름 같은 실내공간에 머물며 허약해졌는지 모른다.

 

시골에 사는 아이들은 어떨까? 요즘 어느 시골이든 아이가 드무니 그 여부를 짐작하기 어려운데, 도시 어린이도 자연에서 흙을 만지며 놀면 짧은 시간 안에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핀란드의 연구를 최근 한 신문이 전했다. 서너 살 어린이 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학자는 어린이집 마당을 숲과 비슷하게 바꿨고, 흙에 작은 나무와 이끼 종류를 심으면서 하루 한 시간 반, 한 달 정도 놀도록 유도했더니 뚜렷하게 건강해진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핀란드 학자는 생물 다양성을 주목했다. 토양 미생물을 만난 도시 어린이에게 사람 피부에 분포하는 프로테오박테리아가 다양해지면서 면역력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날마다 숲을 돌아다니는 시골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높아졌다는데, 핀란드 숲이 특별할 리 없다. 우리도 다양한 토양 미생물이 분포할 게 틀림없다. 위도가 높은 핀란드의 겨울은 무척 매서울 텐데, 감기 잘 걸리는 어린이는 어느 나라가 더 많을까?

 

사진: 수원 드림봉사단 어린이들이 텃밭을 체험하는 모습(인터넷에서)

 

자연을 체험하지 못하는 현대 도시의 생활환경이 어린이의 면역체계를 약화한다고 주장한 핀란드 학자는 도시에 자연의 다양한 요소를 추가한다면 아이들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자연이 박탈당한 도시에서 아토피, 알레르기, 당뇨, 만성 소화장애, 그리고 면역력이 떨어진 현상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강화 유기농 마을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아토피로 피부가 거칠게 부어오른 도시 아이는 가려움을 이기지 못해 짜증이 심했지만, 6개월 만에 피부가 깨끗해지면서 상냥해졌다. 온갖 치료가 소용없자 강화의 유기농단지를 찾았고, 제철 유기농산물을 먹으며 산과 들을 뛰어놀자 생긴 효과였다.

 

분교 대부분이 통폐합된 읍면 단위의 아이들은 건강할까? 흙을 만질 기회가 있을까? 입시를 위한 선행학습에 주력할수록 산과 들로 돌아다닐 틈이 없는 건 어디나 비슷할 텐데, 주변에서 자연을 찾기 어려운 도시는 말해 뭐랄까. 놀이보다 학과 성적에 치중하는 도시에 텃밭이 있는 학교가 더러 있지만, 모든 학생이 한 시간 이상 놀 규모는 아니다. 없는 것보다 낫더라도 흙 묻기 무섭게 비누로 씻어낼 테니, 피부 박테리아가 늘어나기는커녕 붙어있기도 어렵다.

 

개구리를 보려고 관광버스를 타야 하는 아이의 눈에 흙은 물론, 모래도 가깝지 않다. 아파트단지의 어린이놀이터는 흙을 철저하게 치웠다. 화학 포장재로 푹신한 바닥 위의 조합놀이대는 천편일률이고, 그네 아래 모래를 깔렸지만 좁고 위험하다. 모래 놀이터는 민원의 대상이다. 주머니에 들어간 모래가 세탁기에 쏟아지지 않나!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젖은 모래 속에 쑥 넣은 주먹 위를 두드리며 부르던 전래동요를 기억하는 어린이가 있을 거라 기대할 수 없다.

 

도시 변두리였던 인천의 주안 일원은 논밭이 넓었지만, 지금 흙은 찾기 어렵다. 대신 다닥다닥 다세대주택으로 어지럽고 좁은 골목에 주차된 자동차가 걷기조차 방해하지만, 얼굴을 그럭저럭 기억하는 주민들이 지나치면서 안부를 묻는 공간이 되었다. 한데,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10여 지구의 재개발로 시방 몹시 어수선하다. 재개발 조합은 초고층 아파트단지로 솟아오를 단꿈에 젖었지만, 정든 주민들은 헤어져야 한다. 다시 만날 기약은 없다.

 

40층을 넘나드는 초고층 아파트단지에 주민을 위한 주차장은 보이지 않는다. 건물 사이의 녹지는 커다란 나무와 아기자기한 조경수목, 그리고 다양한 풀꽃으로 근사하게 장식되지만, 자연을 흉내 내지 못한다. 지하를 파내 챙긴 흙으로 조성한 녹지가 빗물을 머금지 못하는 탓이다. 주민들은 지하의 넓은 콘크리트 공간에 차를 두는데, 큰비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주차장이 자칫 물바다로 변한다. 그뿐인가? 제초제 뿌리는 녹지라면 위험할 수 있다.

 

주택 보급률이 100% 넘어섰다는데, 아파트 가격은 왜 오르는 걸까? 동네의 이야기와 정체성을 훼손하는 초고층 아파트단지가 진정 필요한 걸까? 주택이 낡았더라도, 이웃의 숨결이 유지되는 마을로 가꿀 방안은 없었을까? 일부 자본의 이권보다 훨씬 소중한 다음세대의 행복을 위해, 어릴 적 삶터를 고향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꾸며야 옳지 않을까? 한때 대구시는 담 없는 마을을 만들면서 주민을 지원했는데, 그 사업은 확산되지 않았다. 담과 더불어 주차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텃밭을 조성했다면 달랐을지 모른다.

 

비타민A가 풍부하지만, 달지 않아 그런지, 아이들은 좀처럼 당근을 먹지 않는다. 좋아하는 카레나 갈비찜에 넣어도 쏙 빼내 엄마 속상하게 하지만, 텃밭에서 가족과 재배했다면 다르다. 당근만이 아니다. 땀 흘리며 심은 씨앗에서 자라오르는 농작물을 주말마다 호기심으로 바라보다 수확하는 기쁨은 기다린 보람을 안겨준다.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유치원이나 학교에 텃밭이 필요한 이유가 그렇다. 자연이 아니라도 텃밭을 경험하는 아이들은 건강하다. 피부 박테리아와 비타민A가 풍부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성도 커진다.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의 시민은 출퇴근 시간에 자동차가 빠르게 달리는 도로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건물의 높이를 자랑하지 않는다. 텃밭이 얼마나 가까운 곳에 조성돼 있는지 관심이 크다. 원하는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크지만, 가족과 이웃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인 까닭이다. 텃밭이 부족한 도시는 스트레스가 많다. 시민들은 다른 도시로 떠나고 싶다. 다음 선거에서 시장 자리를 지키려면 어떻게든 텃밭을 확보해야 한다. 독일 뮌헨은 시내의 낡은 아파트단지를 더 높게 재개발하지 않았다. 텃밭으로 바꿨다.

 

흙은 도시를 건강하게 만든다. 빗물을 땅으로 스며들게 하는 텃밭과 생태공간이 보전되는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코로나19에 움츠러들 리 없다. 예로부터 아이와 간장독은 겨우내 밖에 내놓아도 얼지 않는다고 했다. 다채로운 토양 미생물을 보전하는 흙이 있기 때문이리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생물 다양성을 제거한 도시는 겉보기 휘황찬란해도 허약하기 짝이 없다. 코로나19에 속수무책인 이유가 그렇다.

 

온난화되는 영구동토에 얼어붙었던 바이러스들이 깨어날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생물 다양성을 잃은 회색도시는 바이러스의 창궐을 차단하지 못한다. 추위가 예고된 올겨울에도 콧물 흘리지 않고 뛰어놀 아이를 위해 흙이 건강한 놀이터를 도시 곳곳에 마련하면 어떨까? 기후변화가 심해지는 시대, 코로나19보다 무서운 질병에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작은책, 202012월호)

 

 
 
 

도시·인천

디딤돌 2011. 9. 5. 09:15

품이 넓은 계양산을 꿈꾸며

 

 

들어가면서

 

부평구청 주변에서 모임이 있을 때면 조금 일찍 출발해 부평역부터 걷는다. 길 양편의 볼품없는 건물과 특색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는 거리의 상가들은 눈을 피곤하게 하고 북적이는 인파를 가로막는 노점상들은 버스 정거장과 횡단보도마다 거치적거리며 아스팔트에서 연실 내뿜는 자동차 매연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지만, 지하철 두 정거장의 거리를 기꺼이 걷는다. 스모그가 지독하지 않다면 멀리 계양산의 푸른색이 눈에 띄어 참을만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계양산에 오른 지 꽤 오래되었다. 서울시민들이 북한산에 자주 오르지 않듯, 언제든 찾아갈 수 있다고 믿는 계양산. 개발의 소용돌이에서 잠잠해졌으니 이제 자신의 면모를 되찾으려나.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처럼 높거나 품이 넓지 않아도 명색이 진산인데, 기슭까지 파고든 주택과 공공시설에 자락을 빼앗긴 계양산은 여기저기 상처가 많다. 숲이 거의 없는 계양구와 부평구민들이 등 떠밀려 오르다보니 기존 등산로는 패였고 새로 뚫리는 등산로는 거미줄 같다. 그뿐인가. 기슭 여기저기를 파헤친 군부대와 산허리를 긁은 송전탑도 떠날 생각이 없다. 계양산은 진산의 위엄을 이미 잃었다.

 

예비군복을 헐렁하게 입고 캘빈소총 영점사격 훈련을 위해 찾았던 계양산. 그 이후 자락을 한 움큼 파헤친 대학에 시간강의를 하러 몇 년 다녔지만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오른 적은 거의 없었다. 부평에 잠시 주소를 둘 적에, 지역의 진산을 찾지 않으면 죄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스쳐 올랐을 때가 벌써 20년 전이다. 그때 대양건설에서 계양산 기슭에 골프장을 만들겠다고 해 인천의 시민사회가 들썩였는데, 요 몇 년 사이, 더욱 집요한 일이 발생했다. 전국 여러 곳에 번뜻한 골프장을 몇 개나 소유하고 있는 굴지의 대기업에서 하필 계양산에 골프장을 더 만들겠다고 밀어붙여 갈등이 심각했던 거다. 그 대기업의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과 몇 차례 오른 건 최근의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계양산은 진산다웠다. 넓은 자락을 지역에 아낌없이 내주고 지금 초라해졌지만 진산이 게 있기에 부평의 여러 주민들은 삶을 기댈 수 있었을 게다.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아 계양산이라 했다는 주장은 생태학자의 체계적인 연구로 의심스러워졌어도 백두대간에서 이어진 한남정맥의 끝자리에서 황해를 굽어본 만큼 나무는 많았을 것이다. 민족상잔인 625에서 어렵사리 살아남아 정착한 시민들에게 목재와 땔감과 물을 무모하게 제공하다 그만 헐벗고 타들어갔고 인근 갯벌이 공단으로 매립되면서 들이닥치는 주민들에게 제 자락을 저렴하게 나누어주면서 전에 없이 초라해졌지만, 덕분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던 시민들에게 계양산은 진산 중의 진산일지 모른다.

 

향도이촌. 다시 말해 농촌의 인력을 도시로 끌어들인 공업화 물결은 서울과 가까운 인천부터 회색 공단으로 물들였고 그 과정에서 확장되는 도시는 계양산 자락만으로 모자라 김포평야까지 마구 잠식했다. 결국 늘어난 인구를 행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 부평구는 경인고속도로를 사이로 계양구와 나누었지만 부평구든 계양구든, 시민들은 북풍한설을 막으며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계양산을 언제나 바라볼 수 있다. 서울의 남산보다 고작 150여 미터 높은 해발 394미터에 불과하고 습기가 모자라 자라오르는 어린 참나무 숲을 가끔 산불로 그을리지만 북측사면은 울창한 숲과 다양한 생물이 긷든 시내를 나름대로 보전한다. 그래서 찾는 이가 많다.

 

찾는 이가 많아 그런가. 1991년 대양개발에서 골프장을 개설하겠다고 해 인천사회의 종교인과 학계, 그리고 맹아기에 있던 시민단체에서 앞장서 반대운동에 돌입한 적 있다. 당시 10만이 넘는 시민들이 반대를 주장하는 서명을 해 저지할 수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자 운동의 효과가 기운을 잃은 것일까. 20066월 대기업 롯데그룹에서 골프장을 다시 추진해 시민사회에 회오리를 일으켰다. 이미 한 차례 시민들이 마음을 모아 반대하자 행정에서 동조해 폐기되었던 중소기업의 골프장 계획이었는데 추진 주체가 대기업으로 바뀌자 인천시와 계양구는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나섰고, 도시계획위원회도 선뜻 통과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뜨거웠던 반대운동은 2010년 지방선거 이후까지 이어졌고, 골프장 반대 공약을 들고 나선 시장이 당선되면서 결국 계획이 폐지되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과정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다행히 이번에는 성공적으로 골프장이 철회된다 해도, 두더지 뿅망치 게임처럼 다시 불거져나올지 모른다. 계양산의 위상이 시방 그렇다.

 

 

존재가치를 잃은 진산의 지위

 

어느 시골 마을에 주민들이 모였다. 대소사도 없는 날인데도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마을의 흉사를 막아야 한다는 발로였다. 그 동안 탈 없이 건강하기만 하던 이웃이 원인도 모르게 사망하는 일이 계속되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낀 주민들은 마을에 닥친 횡액의 이유를 살폈고, 주민 누구도 대처하기 전에 정수리를 밟고 하늘을 찌르는 송전탑이 하필 진산 들어섰다는 걸 알아냈다. 이후 마을이 불길해졌다는 점을 되새기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조상의 영택(靈宅)을 모신 진산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데에 흉사의 원인이 있었다는 데 의견이 모은 주민들이 모였다. 부셔 버리던지 옮겨가던지 진산을 짓밟은 저 송전탑을 없애고 상처를 치유하라는 요구를 해야 했기 때문인데, 그 뒤 한국전력이 문제의 송전탑을 옮겼을 리 없는데, 송전탑이 산꼭대기를 지나가는 그림의 광고가 신문 하단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역이기주의를 탓하는 그 광고의 후원자는 한국전력이었다.

 

진산은 우리 풍수의 소산이다. 땅의 형세로 인간의 길흉화복을 설명하는 풍수사상은 우리의 오랜 역사요 문화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차이는 농작물의 종류를 달리하고, 농작물의 차이는 음식과 언어의 차이로 이어지면서 문화의 다양한 차이로 나타났을 것이다. 국토의 65%가 경사가 급한 산악지대고 비가 여름 한 철에 60% 가까이 집중되지만 적지 않은 인구가 오랫동안 한 지역마다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진산을 섬기는 풍수에서 잘 찾을 수 있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모래와 자갈을 강 여기저기에 내려놓아 다채로운 생물이 어우러지는 다양한 생태계를 만들어냈고, 바다까지 내려간 고운 흙은 갯벌이 되어 수많은 어패류의 산란장이 되었다.

 

풍수는 사람을 위한 과학이기도 하다. 100년도 못 가 이론이 허물어지는 서양 과학과 차원이 다르다. 마을 뒤편에 자리하는 진산은 겨울의 북풍한설을 막아 준다. 울창한 숲은 강바닥의 모래와 마찬가지로 여름 한철 집중된 비를 조금씩 개울로 흘려보내 마을 주민에게 사시사철 맑은 물과 물고기를 공급해 주고 농사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개울을 경계로 마당과 개울 사이의 충적토에는 밭농사를, 개울 건너의 땅에는 논농사를 허락해 주었으며 수많은 어패류의 산란장이 되는 갯벌은 오랜 단백질원이었다.

 

진산을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였다. 마을이 내려 보이는 양지바른 진산의 기슭은 조상을 모실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해 주었고 산 뒤편 발길 닿기 어려운 곳에서 약초와 목재를 제공하였다. 나막신을 딱딱 신고 돌아다니는 아이는 동네 어르신에게 야단맞곤 했다. 조상이 잠들어 계신 진산에서 나막신을 신고 뛰다니, 얼마나 불경한 노릇인가. 미신에서 비롯된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마을의 상징이요 터전이고 조상의 얼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먼 길에 지친 몸을 끌고 마을 어귀에 다다르면 보이는 낯익은 진산. 비로소 몸과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었던 우리에게 랜드 마크인 진산은 이 시대의 가치 기준으로 평가해도 분명한 과학이다.

 

지역의 문화요 역사인 진산,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진산을 주민들은 경외했는데 언젠가부터 곤혹을 치루고 있다. 서구 합리주의라는 주술에 빠져 존재가치보다 이용가치를 앞세우는 자의 배타적인 돈벌이를 위해 포클레인이 춤을 춘다. 송전탑이 전자파를 내뿜는 것은 애교에 불과하다. 목표와 속도를 위한 아스팔트 도로는 산허리를 이리저리 뚫거나 통째로 절개한다. 기슭과 산록까지 파고드는 아파트와 골프장은 진산의 생태적 균형을 교란한다. 계양산만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서울의 북한산도 부산의 금정산도 광주의 무등산도 처지가 비슷하다. 진산이 파괴되면 백성의 삶은 온전할 수 없다. 송전탑이 돋자 마을에 괴질이 도는 현상은 주술이 빚는 억지가 아니다. 숲과 지하수의 결이 교란돼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면 그 영향은 마을에 미칠 수밖에 없다.

 

진산의 품에 맞게 크고 작은 마을을 형성했던 시절의 주민들은 목재와 약초를 지나치게 뜯어내지 않았지만 자락과 기슭을 파고드는 걸 넘어 들과 내까지 매립하며 거듭 확장되면서 진산은 그만큼 만신창이가 되었다. 연탄에 이은 석유가 난방을 대신하고 그로 인해 대기오염이 극심해지면서 도시에 몰려든 사람들은 산과 녹지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산을 오르며 기력을 찾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산이 가진 문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적 존재가치보다 이용가치로 재단해, 목재를 베고 약초를 뜯다 이제 녹지로 이용한다. 그 틈을 타고 골프장은 들어선다. 하루에 많아야 3백 명 놀자고 다채로운 생물들이 어우러진 생태계를 외국산 잔디로 획일적으로 바꾸는 골프장은 부평의 진산, 인천시의 자부심인 계양산의 생태계마저 노리고 있다.

 

 

골프장은 다양성을 부정한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추웠던 겨울이 지나니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메마른 봄이 왔다. 또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를 뿌린 뒤 기장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늦여름과 가을을 맞이했다. 이런 일은 벌써 여러 해 반복된다. 예전에 볼 수 없던 기상이변에 산과 들의 생물들은 제 자리를 온전히 지키고 있을지 궁금한데, 기상이변의 원인은 지구온난화고,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온실가스를 내뿜는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이며,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의 원인은 다분히 인간의 탐욕인데, 지난 100년 동안 평균 0.7도 기온이 상승한 세계와 달리 우리나라는 1.4도 상승했다. 예기치 않은 기상이변이 닥칠 가능성은 그만큼 농후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특히 심한 온난화는 우리 뿐 아니라 최근 급속하게 성장하는 중국의 산업화를 원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데, 황사는 물론이고 국경을 넘어오는 대기오염물질은 대부분 중국에서 기원한다. 그럼에도 중국 오염의 방패라고 하는 우리가 세울 대책은 신통할 게 없으니 답답하다. 자본이 축적된 만큼 의지가 뚜렷한 중국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공장과 화력발전소에 오염저감장치를 부착하고 사막화되는 지역에 나무를 심는다지만 개발돼 사라지는 녹지에 비교하면 심는 나무는 실상 내세울 게 못되는데, 몽골은 사정이 훨씬 열악하다. 외부 지원에 의존하는 몽골은 열심히 나무를 심어도 타들어가는 면적에 비해 사막화방지 효과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아닌가. 그 와중에 우리 땅에 떨어지는 산성비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 원인이 있다는 과학자의 보고가 나왔다.

 

소득 증가 속도에 비례해 늘어나는 중국의 화력발전소와 공장 굴뚝은 일본의 10, 태평양의 40배에 이르는 오염물질을 우리 땅에 떨어뜨린다는데, 중국에서 불어오는 편서풍 지대의 서편에 위치한 우리는 내 땅에 미칠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나. 먼저 경험한 국제사회가 그랬듯, 중국이 알아서 배상할 리도, 우리 정부가 보상을 요구할 리가 없으니 스스로 해결해야 할 텐데,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 대책은 녹지다. 시민들이 숨 쉬는 공간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조금이라도 정화할 수 있도록 충분한 나무를 도시에 심는 일인데, 과연 골프장이 녹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까. 롯데그룹의 계양산 골프장 추진을 두둔한 인천시는 골프장을 녹지라 주장했다.

 

생태적 다양성을 보전해야 가치를 갖는 녹지는 단순한 녹색에서 그치지 않는다. 생태학자는 도시의 공원에 근사하게 심은 커다란 나무들을 녹색 말뚝이라 칭한다. 생태계가 단순하다는 의미로, 주변에 크고 작은 나무와 풀과 공존하지 않는 녹색말뚝이 수명을 다해 쓰러지면 다음을 이을 녹색 유전자원은 즉각 고갈된다. 사람이 다시 심어야 공원의 녹색이 드문드문 말뚝처럼 유지될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골프장의 잔디는 녹색 융단이라고 말한다. 잔디밭에서 잔디 이외의 생물은 전부 제거해야 할 잡초와 해충이다. 그뿐인가. 골프장에 심는 잔디는 우리 산하에서 자생하는 종류가 아니다. 영국의 스코틀랜드에 분포하는 목초의 일종인 골프장의 잔디는 스코틀랜드의 기후 조건을 억지로 만들어주지 않으면 녹색을 유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겨울에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여름이 그리 뜨겁지 않으며 비가 일 년 내내 조금씩 내리는 스코틀랜드를 흉내내기 위해 골프장 운영자는 일정 온도의 물에 농약을 적당히 섞어 사시사철 흥건히 뿌려야 한다. 계양산 골프장의 잔디는 기존 생태계를 허물고 들어서는 녹색융단인 만큼 생태계 단순화 정도가 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군사정권의 압제가 힘을 잃어가던 1992, 파주시에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크고 작은 군대가 주둔하는 법원리에 위치한 건국대학교의 목장부지였다. 시민단체가 막 맹아를 터뜨렸지만 당시는 행동반경이 좁았고 군사정권이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회와 시위가 극히 조심스러웠던 시절, 군대 차량이 질주하는 거리에 머리띠와 피켓을 들고 나온 주민들의 의지는 결연했다. 농토를 오염시키는 골프장은 절대 반대라는 거였다.

 

막 태동한 환경단체의 부탁으로 골프장 예정지의 동물 분포를 조사했다. 물이 졸졸 흐르는 작은 계곡의 넓적한 돌을 들추자 이런! 꼬리치레도롱뇽이 무리지어 나타났다. 저 돌은? 뒤집으니 갑자기 햇빛을 받은 꼬리치레도롱뇽 서너 마리가 달아나느라 부산을 떨었다. 상류로 오르며 들춘 돌에는 어김없이 꼬리치레도롱뇽이 숨었고, 깊은 산중에 가야 어쩌다 들을 수 있는 새소리가 숲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깊은 계곡에 분포하는 꼬리치레도롱뇽은 그때에도 멸종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드물어지던 야생동물이다. 산에 임도(林道)가 부설되면서 계곡에 흙탕물이 들어오고, 도로를 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흘리는 유기물질로 오염되면 자취를 감췄기에 환경부에서 일찌감치 보호야생동물로 지정했는데, 그 꼬리치레도롱뇽이 나타나다니! 생태학적으로 볼 때, 그 지역은 재론의 여지가 없이 골프장은 들어설 수 없었다.

 

이후 더욱 자취를 감춰갔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환경부는 보호야생동물 명단에서 꼬리치레도롱뇽을 제외했다. 물론 짐작 가는 구석은 있다. 지율스님의 거듭된 단식으로 경부고속전철 천성산 터널 구간의 공사가 착공을 미루던 시절에 보호야생동물을 재조정하던 환경부는 어떤 세력의 압력에 고개를 숙였는지, 환경단체와 생태학자의 강력한 주장을 백안시한 것이리라. 1992, 주민들의 결연한 의지 덕분인지 건국대학교는 골프장을 포기했지만 이후 파주의 다른 지역 서너 곳에 골프장이 들어섰고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중단돼 곳도 두어 군데 있으며 아직도 10여 곳은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파주시의 환경단체는 시방 걱정이 태산이다. 골프장마다 산기슭과 허리를 움푹 파헤치기 때문만이 아니다. 아스팔트로 이어지는 도로와 그 도로를 달리는 승용차로 인해 생태계가 겹겹이 절단되는 탓이다. 골프장마다 풍기는 아스팔트와 석유와 화장품 냄새, 그리고 인간의 소음은 백두대간에서 13개 정맥을 넘나들던 생물의 발길을 오그리는 까닭이다.

 

파주는 차라리 약과다. 대도시와 이어지는 경기도 일원의 산하는 가히 골프장 천국이다. 경기도에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이미 41개의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는 강원도는 지역주민의 강력한 반대와 관계없이 다시 41개의 골프장이 공사 중이거나 공사 예정에 들어갔다. 들일하는 농부 사이로 무리 짓는 고급 승용차가 위화감을 뿌리는 건 이제 일상이 되었다. 골프장이 들어설 때마다 들썩이는 땅값으로 오랜 공동체가 해체되기 일쑤인데, 3년 전, 건국대학교는 다시 자신의 목장 터에 골프장을 짓겠다며 나섰다. 비즈니스프렌들리 정권이 들어서자 기회를 잡아 냉큼 추진했을지 모른다. 뒤통수를 맞은 주민들은 격앙돼 있었지만 찬성하는 주민도 적지 않게 등장했다. 골프장이 들어서면 저수지 주변의 식당이 더 잘 될 거라는 감언이설에 넘어가 오랜 공동체에 금이 가고 만 것이다.

 

17년 만에 다시 찾은 파주시 법원리 건국대학교 목장부지의 꼬리치레도롱뇽은 고맙게도 그대로였다.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와 솔부엉이가 여전히 분포했고, 2005년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한 무산쇠족제비나 대륙목도리담비로 추정되는 동물이 출현한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다른 지역에 몹시 드물어진 그런 야생동물이 분포하는 게 사실이라면 필시 다른 생태 공간에서 찾아왔을 텐데, 오래 훼손돼 방치되던 목장에 희귀 야생동물이 모여드는 데에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다. 소를 보호하려고 목장 외곽의 숲을 철저히 보전했다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냄새를 극도로 경계하는 야생동물이 모여들지 않는다. 어쩌면 주위 여기저기의 골프장 때문에 길이 끊긴 야생동물에게 그 목장부지 이외에 달리 대안이 없었는지 모른다.

 

거듭된 개발로 대도시의 녹색 섬신세가 되어 주변 생태계에서 고립된 계양산은 물론 경기도와 강원도의 산록과 유사한 생물다양성을 보전하지 못한다. 하지만 도롱뇽과 맹꽁이가 분포하고 반딧불이가 서식한다는 의미는 생태계가 아직 건강하다는 걸 반증한다. 육상의 달팽이를 비롯해 맑은 물의 다슬기에 알을 낳는 반딧불이가 서식하려면 생태적 다양성이 보전된 산에서 흐르는 물은 차고 맑아야 한다. 커다란 나무 아래의 관목들, 그 그늘 아래의 풀이 풍성해야 달팽이가 건강하게 생육할 수 있고 바위나 자갈에 물이끼가 피어야 다슬기가 붙기 때문이다. 그런 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기에 도롱뇽이 봄에 알을 낳고, 장마철에 맹꽁이가 운다. 바로 롯데그룹의 골프장이 예정된 기슭이다. 다양한 나무와 풀이 보전된 숲이 안정화되었다는 증거다.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을 그만둘 수밖에

 

도저히 그 순간, 도시계획위원회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진산에 골프장을 허가하려 표결을 감행하다니. 북한산이나 금정산에 골프장을 만들자고 어떤 기업이 제안할 수 있고, 어떤 도시계획위원회의 위원이 감히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공업단지가 유난히 많은 인천은 녹지가 부족하기로 타 도시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계 최대의 공항과 인접한 계양산에 명맥을 겨우 유지하는 녹지마저 일부 계층의 놀이를 위해 파괴하려 들다니. 인천시민의 자격으로 참여한 마당에, 역사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을 잠시라도 공유할 수 없었다.

 

롯데그룹을 대신해 롯데건설이 골프장 조성을 위해 시에 제출한 개발제한구역관리계획 입지계획은 보도된 자료만으로도 부실과 왜곡의 흔적이 농후했다. 신빙성 확인 없이 도시계획위원회에 진위가 의심되는 자료를 거의 그대로 제출한 시 당국은 공정한 심의를 방해했으므로 시민사회는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 상태였다. 도시계획위원회에 참석한 공무원들은 롯데건설 사원처럼 문제를 제기하는 위원의 질의에 일사분란하게 대처하는 기민함을 보였으며, 현장에서 왜곡된 자료를 두둔하더니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를 연출했다. 법적 하자가 없다며 감사 청구된 사안을 표결로 강행 처리하려는 행정부시장의 행태도 결코 합리적이지 않았다.

 

민의를 제대로 파악해 행정에 임해야 하는 민주주의 체제라 해도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모두 들으며 논의하기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할 수 없이 대의제를 채택했지만 대의제 역시 충분한 논의가 불가능해 산하에 위원회를 둔다. 따라서 충분한 논의를 위한 위원회는 섣부른 다수결을 배제해야 한다. 공정하고 충분한 논의 이후에도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에 한해 표결에 들어가더라도, 표결에 대한 합의가 마땅히 전제되어야 한다. 한데 이번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는 그런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되었다. 감사 대상인 자가 해명을 주도하고, 즉각적 표결로 다수의 횡포를 결행했다.

 

2007823,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직전에 있었던 위원회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보란 듯, 계양산의 골프장 건설에 문제를 제기하던 위원들이 어떤 모종의 조치가 사전에 있었는지 찬성으로 선회했고, 표결을 강행하기 전 위원장인 행정부시장은 소수의견을 달자고 느닷없이 제안했다. 반대하는 자는 소수의견으로 만족하라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이번에 가결되지 않으면 5년이 지나야 다시 심의하게 된다는 급박함을 생뚱맞게 내세웠지만, 그런 걱정은 인천시의 몫이 아니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시 공무원들은 롯데건설의 처지를 옹호하며 민의를 짓밟았고, 시의원 한 명과 시민을 대표한 다른 위원 한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위원들은 역사에 범죄를 저지를 게 분명한 표결에 순순히 응했다.

 

도시계획위원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위원회는 행정의 들러리가 아니다. 로비나 압력의 대상일 수 없는 위원은 권력을 쥔 양 위선을 떨 필요도 없다. 그를 위해 위원회는 위상만이 아니라 위원의 인선 과정도 중시해야 한다. 인선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편중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도시개발에 관련된 전문가와 관련 공무원과 시의원이 장악하는 당시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사정은 끔찍했다. 이명박 시장 당시, 서울의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장이 뇌물수수로 구속되는 걸 보아 인천시에 제한된 문제는 아니겠으나, 영향력이 강할수록 많은 위원회에 공정성을 확신하기 어려운 것이 안타깝지만 사실이었다.

 

보도되지 않아 그럴 뿐, 뇌물수수와 같은 범죄로 위원이 구속되는 보도가 드물지 않는 현실에서 도시계획위원회의 혁신이 필요하다. 다음 세대 시민의 행복권을 침해하지 않으려면 위원회에 개발 관련 전문가 위주의 포진은 곤란하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 헌법에 보장된 환경권이 개발로 희생되지 않으려면 인문사회 전문가를 포함하여 다음 세대 시민의 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인사가 구속력 있게 참여해야 한다. 공정한 논의를 충분히 보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표결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행태는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인천시 행정수장이 바뀌고 개편된 도시계획위원회는 롯데건설이 추진하려던 계양산의 골프장 계획을 폐기했다. 하지만 그리 흔쾌한 것만은 아니다. 그 위원회의 논의 과정에서 위원회와 행정 집행부만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납득할 만큼 충분한 논의가 전제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예에서 볼 수 있듯, 시민사회의 납득과 성원이 생략된 위원회의 결의는 힘이 없다. 갈등요인이 두드러진 사안은 시민사회의 논의를 충분히 거쳐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숱한 예에서 볼 수 있듯, 시민사회의 담보 없이 결의된 위원회의 결정은 바뀐 행정부에 의해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고, 시민사회의 갈등은 재현될 수 있다.

 

현 인천시의 행정부는 개발독재의 구태와 거리가 멀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개발을 멈추지 않는 상황에서 시민사회 논의를 담보하지 않는 도시계획위원회는 행정의 들러리에 서거나 오히려 행정의 책임회피를 위한 방패의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계양산 골프장의 사례만이 아니다.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아 가만히 있지만, 지난 선출직 수장이 자리를 지키던 인천시는 남촌동과 서운동 그린벨트의 골프장도 반대의견을 억압한 채 도시계획위원회의 표결을 유도해 허가했다. 당시 인천시의 도시계획위원회는 개발하려는 시와 보전을 원하는 시민들의 의견이 첨예할수록 공정한 논의를 외면했고, 그때마다 표결 처리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임에도 도시계획위원회에 남아 있다면 위원으로 추천해준 시민에 대한 기만이므로, 위원을 계속 수행할 이유가 없었다. 자식 키우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역사의 죄인으로 남아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불매운동은 시민의 소중한 권리

 

19957, A급 태풍 페이가 휘몰아칠 당시, 호남정유 소속의 145천 톤급 유조선 시프린스호가 전남 여수 소리도 인근의 바다를 무리하게 운항하다 벙커C5천 톤을 흘렸다. 그 사고로 다도해 해상국립공원과 인근 양식장은 검은 파도가 넘실대는 죽음의 바다로 돌변했고, 아직도 생태계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당시 환경단체는 호남정유 간판을 단 주유소 이용을 자제하자고 결의했지만, GS칼텍스로 회사 이름을 슬그머니 바꾼 호남정유는 환경단체의 불매운동 때문에 심각한 영업 손실을 입지 않았다. 물론 바다를 오염시킨 정유회사라는 오명도 오래가지 않았다. 호남정유가 소속된 대기업은 수도권외곽순환고속도로의 사패산 구간을 고치 꿰든 터널로 파괴하기에 환경단체의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어떤 환경단체와 원만한 관계를 갖기 시작했다. 그 그룹이 이익의 일정 비율을 환경단체에 제공하겠다는 신용카드를 보급한 이후의 일이었는데, 호남정유 불매운동이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 되었던 것도 당시의 일이었다.

 

국정감사에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도마에 올랐던 적이 있다. 1999년의 일이다. 소비자들 모르게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은근슬쩍 식탁으로 올라온 모양이었는지, 국회의원들이 아우성치며 모처럼 제 역할을 잊지 않았던 시절이다. 현재 우리 국회의원들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대해 얼마나 경악심을 갖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인데, 적어도 당시나 지금이나 유럽에서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식탁에 오를 수 없다. 국회 때문이 아니다. 소비자의 힘이 막강한 까닭이다. 그 사실을 서울에서 열린 2000년 아셈회의의 NGO포럼에 참석한 유럽 그린피스 대원이 밝혔다. 독일 출신의 식품공학 박사인 그는 유럽에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식탁에 오르지 못한다고 단정했다. 600만 회원을 가진 그린피스에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재료로 사용한 의혹을 공개하며 질의하자 마지못해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던 해당 식품회사는 문제의 기공식품을 시장에서 모조리 철수, 불태워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유럽 그린피스의 질문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어떤 식품에 사용한 무슨 재료는 언제 어느 항구에 입항한 어떤 화물선에서 하역했고, 그 배에 실린 농산물은 언제,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재배한 것이므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몇 퍼센트 혼합되었다는 걸 정확하게 지적, 인정하느냐고 물은 것이다. 당황한 식품회사는 문제의 식품을 몽땅 폐기하여 소비자의 신뢰를 얻었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한 기업이 결행한 유전자 조작 식품의 시장 철수는 도미노로 이어졌다. 소비자가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는데, 싫든 좋든, 다른 기업도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린피스의 정확한 질문 때문이 아니다. 600만 유럽 소비자의 불매운동으로 이어질 게 두려웠기에 취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1995년 환경단체들은 단순히 유조선 침몰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호남정유를 불매하자고 결의한 게 아니었다. 해양오염에 이후 보여준 기업의 태도에서 반성의 기미를 전혀 느낄 수 없기에 행동을 약속한 것인데, 이후 그 기업의 태도는 잠시 바뀌었다. 환경보전을 위한 기업인 양, ‘친환경 경영을 대외적으로 천명했다. 환경단체 회원의 보잘것없는 석유 소비량 감소보다 기업의 이미지 손상이 두려웠을 것이다. 지금 회사 이름을 바꾼 그 석유회사의 이렇다 할 환경보전 행동은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당시 환경단체에 일정 비율로 기부하겠다고 제안했던 신용카드 보급도 어느 틈에 중단되었다. 소비자들이 의식이 둔화된 분위기를 간파한 이후의 일인지 모른다.

 

국산 유기농산물만을 취급한다는 모 식품회사는 자사 제품에서 유전자 조작 농산물 사용이 의심된다는 소비자보호원의 발표에 발끈, 법정 대응에 나섰다. 때를 같이해 소비자 단체는 불매운동을 선언했지만 그 식품회사도 구매량 감소보다 기업 이미지를 걱정했다. 그런데 소비자 목소리가 잠잠해지자 국산을 포기하고 유기농산물을 수입해 쓴다. 그린피스의 질문에 유럽에서 민감하게 반응했던 외국계 식품회사들은 우리 소비자 단체의 비슷한 질문에 시큰둥했다. 이 땅의 소비자 행동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직 불매운동을 보장하는 소비자운동에 관한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한국 소비자의 열기는 냄비 같다는 걸 파악했을지 모른다. 기업이 국가에 로비하면 제도 정비에 소비자의 의견이 수렵되지 않는다는 것도 간파했던 것일까.

 

하필 부평의 진산인 계양산에 골프장을 건설하려는 대기업 롯데는 어린이들이 먹는 과자와 음료를 팔아 성장한 만큼 회사의 이미지를 중시할 것이다. 소비자들이 직접 구매하는 제품을 다른 기업과 경쟁하며 시장에 내놓는 기업이라면 시민 행동에 민감해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비자인 시민들이 힘을 모아 꾸준하게 행동한다면 기업은 결국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시민단체는 행동이 선명해야 한다. 기업 이익을 위해 지역의 문화와 역사와 가녀린 생태계를 말살하는 기업의 제품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는데 그치면 안 된다. 소비자들이 들고 일어설 수 있도록 시민단체가 먼저 행동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성하는 시민들과 함께 집요하게 불매운동 이상으로 행동해야 한다.

 

아쉽게도 계양산 골프장의 문제점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주최한 시민단체는 고의는 아니겠지만 발표자와 청중에게 롯데에서 생산하는 생수를 제공한 적 있다. 불매운동을 선언해놓았지만 시민단체는 어떤 상품이 롯데에서 생산해 판매하는 제품인지 관심을 진작 갖지 않았고, 어찌 보면 토론에 참석한 이가 지적하지 않았다면 인식하지 못했을 실수를 자행한 셈인데, 그래서 그랬는지, 롯데그룹은 시민사회 대다수의 분명한 반대 표명에도 계양산 골프장에 집착했다. 계양산의 골프장 계획이 공식 폐기된 롯데그룹은 현 인천시 당국의 조치에 과연 순응할까.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행정소송과 같은 움직임우로 나설 때 시민사회는 어떤 대응으로 롯데 그룹을 긴장시킬 수 있을까. 불매운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소비자의 권리이자 자신을 위한 의무다. 시민단체는 그 사실을 염두에 둔 행동에 머뭇거림이 없어야 한다.

 

 

 

한숨 돌렸다며 손 털 수 없는 일

 

김영삼 정권 말기, 막 태동한 정보통신에 관한 시민단체는 전자주민등록증 도입을 반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종이에 인쇄해 위변조가 손쉬운 기존 주민등록증 대신 플라스틱 안에 IC칩을 넣어 겉으로 드러나는 주민등록번호와 지문과 개인정보들을 암호화해 저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은행계좌와 의료보험 정보, 그리고 인감 정보를 담아 정부의 행정전산망과 연계하겠다고 공언한 정부는 전자주민등록증 하나만 소지하면 동사무소는 물론이고 병원이나 은행 업무를 볼 수 있고, 집을 사고파는 일도 간편해질 것이라 시민들에게 가부장적으로 홍보했다.

 

전자주민등록증으로 행정과 의료와 금융 업무가 손쉬워진다지만 정부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떤 빅브라더에 의해 시민 개개인이 얼마든지 감시될 수 있기에 시민단체가 기를 쓰고 막으려 한 것인데, 시민단체의 노력에 힘입어 그 계획은 김대중 행정부에 들어서면서 폐기되었다. 시민들의 신용과 건강 정보가 기업이나 보험회사에 흘러들어가면 사회적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고,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정부의 차별이나 감시가 자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이미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에 익숙해진 우리 사회는 주소나 전화번호의 유출로 원치 않은 광고 공세에 시달린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는 요즘, 우리는 신용카드나 인터넷 해킹으로 개인정보가 떠돌아다니는 걸 새삼스러워하지 않는다. 이럴 때 전자주민등록증이 다시 추진된다면 15년 전처럼 반대운동에 나설 시민단체가 있을까. 시민단체의 반대 목소리는 시민들의 공감으로 전처럼 이어질 수 있을까. 회의적인데, 현 정권의 행정안전부는 작년 10월 전자주민등록증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고, 시민사회의 문제 표명은 미약하기만 했다. 길들어진 언론의 고의적인 외면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발표하면서 정부는 공청회로 국민의견을 청취하겠다는 의견을 냈지만 시민사회의 경각심이 담보되지 않는데, 투명하고 충분한 논의를 민주적으로 현 정부가 진행할지, 경험상 회의적이다.

 

영월군을 흐르는 동강을 가로막으려던 수자원공사의 영월댐은 열화와 같은 시민사회의 반대운동에 힘입어 좌절되었다. 좌절된 이후 반대하던 환경단체는 승리를 만끽한 뒤 영월에서 일제히 철수했다. 미뤄두었던 일이 많았기 때문일 텐데, 장엄한 경관을 오래 감췄던 동강은 반대운동 이후 유명세를 탔고, 현재 난장판이 되었다. 비경을 팔아 돈벌이에 나서려는 장사치에 관도 민도 구별되지 않았던 건, 탐욕만이 아니다. 댐을 막는데 전력투구한 환경단체가 경관과 생태계 보전까지 행동을 이어가지 못했던 데에도 이유가 있다. 언론과 권력기관을 교묘하게 통제하는 현 정권에서 ‘4대강 사업강 살리기라며 강행하지만 시민사회는 뻔한 거짓말과 돌이킬 수 없는 개발에 저항하지 못한다. 여론의 지지와 시민들의 동력을 모으지 못하는 환경단체는 절박한 마음으로 행동에 나서지만 지지부진하다. 모래강의 신비를 보여주는 낙동강 내성천을 바싹 말려 오염시킬 영주댐을 상류에 만들고 있지만 대부분의 시민은 그 사실조차 모른다. 알아도 반대운동에 나설 이는 많을 것 같지 않다.

 

시민운동의 역사가 깊은 국가와 달리 번번이 실패하는 불매운동은 절박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지속성이 없었던 탓이 크다. 돈과 권력과 시간을 쥔 정부와 대응하는 전자주민등록증 반대운동에서 승리했다고 믿은 시민단체는 도취돼 그만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사안에 끈덕지게 대비하지 못했지만, 무엇보다 전자주민등록증의 폐해를 시민사회에 각인시키는데 실패했다. 그 결과 차근차근 전자주민등록증으로 가는 사회를 준비한 정부의 의도에 시민단체는 문제제기조차 기회를 찾지 못했고, 정부가 다시 추진하려고 들자 속수무책이 되고 말았다. 댐 반대운동도 그랬다. 안면도와 굴업도에서 위도까지 핵폐기장을 힘겹게 막아냈던 환경단체는 경주에서 실패했다. 계양산은 앞으로 어떨까.

 

꼭 골프장만일 리 없다. 기업이든 정부든, 시민과 환경단체에서 그렇게 지키려 애쓴 계양산의 생태계를 무너뜨릴 시설을 다시 도입하려고 감언이설을 앞세운다면 그때에도 당연히 시민단체는 시민사회의 지원을 받아 막아낼 수 있을까. 확신하기 어렵다. 보전의 당위성을 얼마나 시민사회에 각인시키는가에 달렸다. 눈앞의 승부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명분을 잃지 않고 시민사회에 다가가야 한다. 1991년 계양산 골프장을 막겠다는 인천시민들의 밀물 같은 지지서명도 각성이 동반되지 않다보니 20년 뒤 같은 성격의 사안이 발생되었는데 시민사회는 동요하지 않았다. 반대운동에 힘겹게 나선 시민단체들도 그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1991년 이래 시민사회의 각성이 뿌리내렸다면 소비자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롯데그룹이 감히 골프장 계획을 세웠을 리 없다. 2007년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그 계획안을 통과시켰을 리 만무하다.

 

1991년 계양산 골프장 반대운동은 그러므로 실패한 걸까. 그렇지 않다. 그때의 반대운동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몸은 미록 움직이지 않았어도 관심을 갖고 시민단체를 마음으로 지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맥락으로 천성산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요구한 단식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려한 지율스님도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그 행동이 담았던 뜻을 이해하는 시민들은 같은 사안이 발생했을 때 지율스님이 보여준 문제의식을 공유할 게 틀림없다. 계양산 보전의 가치를 인식하는 인천시민들이 1991년처럼 즉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은 건, 여러 가지 이유로 계양산의 가치를 알리는 일에 소홀했던 세월과 무관하지 않다는데 동의한다면, 계양산의 생태계를 보존하려는 시민단체는 앞으로 이어가야 할 운동의 방향을 충분히 설정할 수 있으리라.

 

국방부를 움직여 서울 잠실에 초고층빌딩을 성사시킨 롯데그룹은 돈으로 법과 권력과 시간을 내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을지 모른다. 따라서 계양산 골프장은 완벽히 물 건너간 게 아닐 수 있다. 행정적으로 남은 절차에 철저히 대비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기업은 소비자가 제대로 굴복시킬 수 있다. 소비자인 시민들이 계양산의 생태적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면 보전을 위해 필요할 경우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시민운동이 앞으로 이어져야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딧불이 축제는 바람직하겠으나 찾는 이에게 반딧불이를 보여주는 수준에서 그칠 수 없다. 반딧불이가 분포할 뿐 아니라 안정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생태계를 보전해야 한다는 인식을 시민들에게 지속적으로 각인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같은 맥락으로 골프장 대신 시민단체에서 추진하려는 시민공원 역시 계양산 본연의 생태계를 보전하는 차원으로 조성해야 한다. ‘생태를 표방하는 놀이공원이라면 의미를 잃는다.

 

벡두대간에서 생태계의 축을 이어온 계양산은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도 부평 일원의 진산이라는 면모를 이제까지 잃지 않고 있어 천만다행이다. 개발이 하도 집요하고 막무가내라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삭막하고 답답해진 회색도시 인천에서 우리 뿐 아니라 후손에 더 없이 중요한 계양산은 다시 품이 넓어져야 한다. 기품 있는 부평 일원의 고마운 진산으로 시민에 의해 보전될 수 있도록 시민단체가 할 일은 참으로 많다. (계양산 골프장 백서 예정)

 
 
 

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3. 29. 01:20

봄 날씨가 꽤 변덕스럽다. 산불을 걱정해야 할 만큼 건조한 게 이맘때의 특징인데 요즘처럼 눈과 비가 많았던 봄은 무척 드물었을 것 같다. 남쪽 지방은 맑은 날이 거의 없을 정도라던데, 아직도 아침저녁으로 늦겨울처럼 쌀쌀하니 예년이라면 벌써 만개했을 봄꽃들은 아직 망울도 터뜨리지 않았다. 꿀을 빠는 벌과 나비도, 봄에 물이 고인 논에 나와 우는 개구리도, 작은 나무 꼭대기에 앉아 울며 짝을 찾는 산새들도 이 봄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짝짓기가 순조롭지 못하면 내일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올해는 유엔이 지정한 ‘생물다양성의 해’다. “생물다양성은 생명. 생물다양성은 우리의 삶”이라는 슬로건을 내민 정부는 국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기념행사와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을 밝히며 올해를 “생물다양성 증진과 국제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원년으로 만들어 나갈 예정”이라고 표명했다. 그를 계기로 ‘국격’ 향상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2012년 유엔 생물다양성 11차 총회를 비무장지대에서 남북 공동으로 유치하기 위한 민간위원회를 구성했다고 전한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정상회담의 주요 의제 중의 하나로 합의되었던 생물다양성 협약은 193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사람의 분별없는 생태계의 개발로 서식처를 잃은 생물종의 멸종 행진은 자연스러운 흐름의 천 배나 빠르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럴 추세가 진정되지 않는다면 50년 내에 현존하는 생물의 3분의1이 사라질 것으로 우려한다. 결국 사람의 생존에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생물의 목록이 줄어드는 까닭일 리 없다.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면 생태계의 한 종에 불과한 사람 역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생태계가 생산하는 산소에 의존하는 사람은 생태계의 다른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생태계에서 먹을거리와 안정된 삶터를 구하며 내일을 이어간다. 대형 슈퍼마켓의 선반에 올라온 많은 농산물과 가공식품은 생태계의 산물이고 철근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솟아오른 아파트도 생태계에서 구한 물질로 만들었다. 다만 다른 것은 사람은 생태계의 순환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태계에서 자신을 위한 의식주를 일방적으로 챙기면서 생태계의 보존에 좀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공기와 물과 대지와 우주공간에 순환을 방해하는 쓰레기를 버릴 뿐 아니라 자신의 이기적 목적으로 생태계를 단순하게 변형시킨다.

 

우리 생태계의 처지는 시방 어떤 모습인가. 오랜 세월 홍수와 가뭄을 해마다 반복하며 굽이치는 강은 모래와 자갈을 바닥과 가장자리에 남기면서 다채로운 생물에게 터전을 내주었지만 이제 강은 머지않아 흐름을 계단처럼 멈출지 모른다. 지구 어느 공간보다 다양하고 많은 생물종이 모여 있는 갯벌은 도시로, 공장으로, 비행장으로, 조력발전으로 매립되었거나 훼손될 예정이다. 국토의 65퍼센트를 차지하는 산은 수많은 골프장으로 긁혔을 뿐 아니라 격자형 고속도로로 연결이 차단당하고 있다.

 

요사이 뜬금없이 ‘국격’이라는 용어가 남발된다. 품격 있는 국가를 의미할 텐데, 유엔이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때, 자국의 생태 자원을 등한시하면서 국격을 논한다는 건 사치스러운 일일 것이다. 쓰레기매립장 근처에 생물자원관 하나 설치했을 뿐, 자국 생태계의 가치를 시민에게 알리고 그 보존을 연구하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은 아예 없다. 우리나라의 생태복지는 최하위권이라고 전문가들은 한탄하는데, 유엔 생물다양성 총회를 비무장지대에서 요란하게 개최하면 국격이 높아질 것인가.

 

불경인 유마경은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말한다. 삼라만상은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데, 사람의 개발로 순환 고리를 잃는 생태계는 위기를 맞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사막화, 신선한 강물이 차단되자 썩어가는 바다, 남획으로 사라지는 물고기만이 아니다. 다수확품종으로 획일화된 농업, 돈으로 재단된 문화, 영어로 잠식되는 언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양성을 잃는 생태계는 환경변화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변덕스러운 요즘 기후가 그래서 걱정이다. (기호일보, 201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