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2. 4. 14:33
 

그 산엔 뱀이 없나? 낙엽 쌓인 산기슭에 둥지를 틀게.

 

한 네티즌은 가파른 능선에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느꼈다. 자신의 알을 지키려는 작은 새의 진한 모성애를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덩치 큰 저 사람이 알을 해치지 않을까, 카메라 앞에서 시끄럽게 울며 절뚝거리는 어미였다. 너무 어려 날지 못하는지, 다친 건 아닌지 걱정하며 사진을 찰칵찰칵 찍던 그는 하마터면 6개의 알이 오롯하게 담긴 둥지를 밟을 뻔 했고, 황급히 자리를 뜨면서 새끼들을 잘 키우기를 바랐다. 그 새는 노랑턱멧새였다.

 

노랑턱멧새는 말 그대로 턱이 노랗다. 영국의 축구선수 베컴처럼 봉긋이 올린 검은 머리 깃의 뒤도 샛노란데, 부리 아래, 검은 가슴 위의 노란 깃이 두드려져 노랑턱멧새라는 이름을 얻었을 게다. 한데 그건 뺨이 검은 수컷이다. 뺨과 가슴이 갈색인 암컷은 수컷에 비해 수수하다. 뚜렷하지 않아도 암컷의 턱도 노랗긴 하다. 한데 등에서 꼬리로 이어지는 깃은 암수 모두 인척인 멧새 종류와 비슷한 갈색이고 배는 희다. 멧새 무리는 옷보다 얼굴을 드러내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너그러운 네티즌을 만난 노랑턱멧새는 왜 자신의 둥지를 덤불이나 나뭇가지 사이에 붙이지 않았을까. 뱀이 없다는 걸 학습한 걸까. 뱀그물이 웬만한 산허리를 빙 두르긴 하지만 노랑턱멧새가 그 사실을 각인할 정도로 뱀이 이 땅을 모조리 떠난 건 아니다. 뱀그물만 보면 잡아 뜯는 자연보호단체 회원도 있다. 제 새끼를 보호하려 짐짓 날지 못하는 몸짓을 감행한 어미. 그런 식으로 천적을 따돌리는 내리사랑은 지극한데, 위험천만했다. 사람이 뱀보다 성가시다는 걸 아직 눈치채지 못했으니.

 

5월 중순 경, 눈에 잘 띄는 가지에 앉아 짝을 찾는 노랑턱멧새는 한껏 차려입은 수컷이다. 눈에 잘 띄는 만큼 천적에게 노출되기 쉽지만 짝을 찾는데 유리하다. 천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범함을 보이는 수컷을 암컷이 미더워하는가. 하여간 번식기마다 신방 꾸밀 노랑턱멧새 수컷들의 경쟁은 뜨거운데, 요즘은 혼란스러워졌다. 나비 애벌레가 많은 5월 하순에 새끼들을 부화시켜야 하므로 5월 초부터 둥지를 틀고 짝을 찾았는데, 요즘은 4월부터 더워지는 게 아닌가.

 

몸이 16센티미터에 불과한 노랑턱멧새는 높은 나무로 울창한 숲보다 덤불이 가득한 냇가의 키 작은 숲을 좋아한다. 덤불은 덩치 큰 천적이 헤쳐 들어오는 걸 막거나 방해하니 달아날 시간 여유가 생긴다. 키 작은 나무들은 바투 붙어있어 솔개나 올빼미가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준다. 그런 곳에 마른 가지를 엮어 둥지를 트는 노랑턱멧새의 가족생활은 새끼를 보살피는 늦여름까지다. 새끼들이 떠나면 시나브로 날씨가 추워지고 홀몸이 된다. 이때부터 노랑턱멧새는 따뜻한 곳으로 거처를 옮기는데, 겨울철새처럼 먼 여행을 계획하는 건 아니다.

 

새끼가 자라는 여름철이면 애벌레가 많은 물가를 찾다 숲이 바싹 마르는 겨울이 되면 햇살이 따사로운 산기슭에 모여드는 노랑턱멧새는 대여섯 마리 씩 무리를 짓지만 처지가 비슷한 새들은 경계하지 않는다. 친척인 멧새와 쑥새, 그리고 딱새들과 어울려 마른 풀의 씨앗을 고른다. 눈이 밤새 내려앉은 날, 산기슭에 먹이를 뿌려놓고 조금 덜어진 나무 뒤에 숨어보자. 조금만 기다리면 나뭇가지를 부지런히 오가던 작은 새들이 모여들 거고, 노랑턱멧새도 망원렌즈로 맞을 수 있다.

 

1980년대 중순, 광릉수목원 근처 평화원에서 한 떼의 노랑턱멧새를 만났다. 625 때 사람들로 북적이던 고아원의 양지바른 뜰이었다. 사람이 떠나자 자라오른 작은 나무에서 “치칫, 치칫, 츄-이, 츄-이” 짝을 찾던 노랑턱멧새는 건너편에서 카메라와 마이크를 겨눈 대학원생의 인기척에도 흔들림이 없었는데, 다시 노랑턱멧새를 만났다. 실로 20년 만에, 대도시의 약수터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계곡. 잔설 사이 가는 물이 흐르는 곳에 잠시 자태를 드러내는 게 아닌가. 봄이 다가오면서 더욱 뚜렷해진 턱 아래 노란 깃, 반가웠다.

 

나뭇가지에 새순을 달던 4월, 다시 그 계곡을 찾았다. 진박새와 오목눈이, 딱새와 멧새 사이로 노랑턱멧새가 운다. 가슴이 벅차다. 왁자지껄한 약수터의 쓰레기통에 까치가 기웃거리는 사이로 어쩌다 박새가 지나치지만 사람의 소음과 냄새가 약한 계곡은 달랐다. 물이 졸졸 흐르자 봄의 전령, 노랑턱멧새가 찾아온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노랑턱멧새와 더불어 십여 종류의 새들이 쌍안경에 제 모습을 선보인다. 사람만 없으면, 물만 흐르면, 저렇듯 자연의 친구들은 해방을 만끽한다.

 

도시의 산에 물이 고이면 어김없이 파이프를 박아 약수터를 만드는 사람들. 한데 그런 물은 약수가 아니다. 모름지기 약수는 가물 때나 비 내린 뒤나, 땅 밑에서 일정하게 솟아 나와야 한다. 물통 든 시민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약수터의 물은 지하수다. 비 내린 후 철철 넘친다. 그런 물은 끓여야 안심할 수 있다. 그렇거늘, 흐르는 물은 그냥 놔두면 어떨까. 모조리 약수라며 독점하지 않으면 새들이 날아와 반가울 텐데. 새가 모여야 그들이 전해주는 씨앗으로 숲이 더 풍성해질 텐데.

 

서울에 사는 노랑턱멧새는 좋겠다. 48억 원의 예산으로 서울시 185군데에 개구리와 노랑턱멧새를 위한 생물서식공간을 만들겠다고 얼마 전에 발표했기 때문이다. 물론 2010년까지는 참아야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폐쇄된 약수터 주변에 우리 산과 들에 자생하는 식물을 심어, 새와 곤충의 먹이를 제공할 뿐 아니라 돌무더기와 나무더미를 더해 사람의 발길을 차단하겠다는 계획. 그 소식을 다른 도시의 노랑턱멧새는 풍문으로 들었을지 알 수 없지만 “도심지의 생물종 다양성을 증진시키고,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푸른도시”를 만들려는 서울시의 의지에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으리.

 

회색도시의 일상에 지친 시민들은 약수라 이름붙인 빗물보다 자연과 자연의 소리에서 활력을 찾는다. 뱀보다 성가신 사람이 북적이는 도시의 숲을 운 사납게 찾아온 노랑턱멧새는 오늘도 약수터를 기웃거리고 싶을 텐데, 그들을 위한 배려는 한 뼘의 공간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도시를 피한 이 땅의 노랑턱멧새는 온난화 시대에도 내내 안녕할 수 있을지. 올 겨울은 유난히 눈도 적다. (전원생활, 2008년 3월호)

삼성산에서 만난 어느 작은새는 사람의 손에 올려진 과자를 쪼아먹더군요. 사람을 어느정도 믿기는 하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