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8. 10. 3. 16:54


생산인구는 무엇인가? 전문가는 14세부터 64세까지라고 정의하던데, 아이를 생산하는 인구의 폭을 의미하는 걸까? 하긴 정상이라면 14세 이하나 65세 이상의 연령의 여성이 아기를 낳지 않겠는데, 요즘은 예외가 적지 않다. 성장호르몬이 섞인 육류와 플라스틱 용기에서 비롯되는 환경호르몬이 어린이의 성조속증을 부추기는 현실만이 아니다. 가공음식에 섞인 각종 첨가물과 더불어 일상의 피로와 스트레스는 폐경을 앞당기고 이른 나이의 치매 현상을 전에 없이 높였다.


생산인구가 줄어 걱정이란다. 작년 우리나라의 가구 당 출산율이 사상 유래 없는 1.052명으로 줄었다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심각하게 출발한다는 게 아닌가. 세계 초유로 1.0명 이하로 곤두박질쳤다니 초비상을 넘어 국가의 존립이 걱정일 지경이라는 장탄식이 들린다. 정당 대표 연설에 나선 한 정치인은 국회에서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출산주도성장을 역설했다가 여성계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그 정치인은 여성계가 자신을 왜 질책 받았는지 궁금해 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건 생산인구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다. 신생아 수가 아무리 줄고 노인이 늘어나도 5천만이 넘는 남한에 생산인구는 충분하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낳기를 주저하기 때문일 텐데, 출산주도성정 정책을 펼치면 개선될까? 결혼 적령기에 접어드는 두 아들에게 물으니 코웃음이다. 이성친구가 있어도 결혼을 엄두에 두지 못하는 건 태어날 아이에 대한 걱정이 아니란다. 결혼 이후 자신들의 삶을 먼저 걱정한다. 번듯한 직장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다행인가? 아이들은 연봉 높은 기업을 노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추구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끌 자신이 없다.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생산인구는 그런 뜻이 아니라고? 아이가 아니라 물건을 생산할 인구, 다시 말해 노동 가능한 인구를 뜻하는가? 고등학생보다 어린 소년을 착취하는 사회를 우리는 비난하는데, 65세 이상의 노인은 지금 우리 농촌에서 주류 노동인구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 농촌에서 청년회와 노인회의 나이차는 그리 크지 않다. 미국 아미쉬 사회는 10세만 넘으면 일을 한다. 남자는 밭에서 여자는 집에서 집안일을 돕지만 그들의 부모가 비난 대상은 아니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65세 이상의 노인은커녕 50세만 넘어도 노동에서 소외되기 일쑤다. 우리 사회의 생산인구는 누가 왜 줄이는가?


제 스스로 잘 성장한 아이들은 시방 알바인생이다. 대학 졸업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려 애를 쓰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원고료와 강의료로 연명하는 부모에게 대학생 이후 용돈을 받지 않아 고맙기 짝이 없는데, 저축할 여유가 전혀 없다. 알바로 벌어들이는 돈은 모조리 소비하며 순환 경제에 나름 헌신하지만 보잘 것 없을 것이다. 자신을 채용한 자영업자가 알바 수당을 올려준다면? 그래도 모두 소비할 게 틀림없는데, 다정다감한 자영업자가 흔쾌히 올려주고 싶어도 감당이 어렵다. 젠트리피캐이션을 염려하는 처지가 아니던가. 조물주보다 높은 건물주도 할 말이 없지 않겠지.


물건 이야기의 저자 애니 레너드는 4.99달러에 파는 라디오에 경탄한다. 작고 예쁜 라디오가 어쩜 이렇게 저렴할 수 있는가? 곰곰이 생각하다 라디오의 생산과 판매, 그리고 폐기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파헤치더니 소스라치게 놀란다. 세계 곳곳의 자원이 낭비돼 무책임하게 폐기되며 오염물질을 내놓지 않던가. 한발 더 나아간 애니 레너드는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착취되는지 살피는데 그치지 않았다. 가전제품 매장에 전시된 라디오는 과연 생산품일까? 구입하자마자 폐기물 신세가 되는 실상에 전율한다.


마시지 않더라도 뚜껑을 따자마자 폐기물이 되는 각종 술과 숙취해소음료 뿐이 아니다. 큰맘 먹고 구입한 최신 전자제품과 고급 자동차도 시간이 지나면 애물단지가 된다. 다양한 자원과 부품과 땀이 들어가 세상에 화려하게 등장했어도 결국 폐기된다. 그 과정에서 숱한 폐기물과 돌이키기 어려운 오염물질을 내놓았다. 작던 크던, 단순하던 복잡하던, 가격이 높던 낮던, 물건들은 생산된 것이 아니다. 변형되었다. 진정한 생산과 다르다. 생산은 한 톨의 씨앗에서 수십 배의 알곡과 열매를 맺는 농사에 있다. 생명의 잉태와 출산에 있다. 그래서 현인은 농부와 여성의 역할을 같다고 경외했다.


농부와 여성의 생산에 폐기물이란 없다. 그렇다. 삼라만상의 생산에 폐기물이란 없어야 옳다. 그런데 라디오를 생산했다고?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생산한다고? 터무니없는 언사로 생태계는 훼손되고 말았다. 지구는 온난화되고 마이크로플라스틱은 바다를 초미세먼지는 대기를 끔찍하게 오염시켰다. 자본의 탐욕이 클수록, 노동자가 착취가 가혹할수록 생태계는 더러워지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자리와 젊은이의 행복이 위축된다. 자본은 늘어나지만 희한하게 경제의 순환은 정체돼 노동 가능한 인구를 압박한다. 그런데 주권자를 대의하겠다는 자는 소득주도보다 출산주도성장을 주창하는가? ‘소득보다 성장에 문제를 제기해야 명징하지 않나? 그가 이야기하는 성장의 주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자본이 추구하는 경제성장은 곧 자본가의 파이를 키울 성장을 의미할 텐데, 경제성장은 무한정 계속될 수 없다.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자원은 벌써 바닥을 드러냈다. 수많은 지하자원은 물론이고 화석연료와 같은 에너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특히 석유는 머지않아 종말을 고할 텐데, 경제성장이 지속될 것인가? 순환 경제의 바탕이 되는 노동자의 수입, 그 수입에 이바지하는 소득이 늘어난다면 정체된 시민경제가 잠시 활발해지겠지만 자원과 에너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지속될 수 없다. 자제하지 않으면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일본보다 7년 빠른 17년 만에 올해 우리나라가 고령사회로 진입했다고 아우성치던 언론은 중국의 진입 속도가 우리보다 빠르다는 걸 굳이 외면했는데,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 74억을 넘는 세계 인구는 100억까지 늘어나다 서서히 정체되다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문제는 경제성장을 위한 세계적인 생산이고 소비다. 1983729일 인구 4천만이 넘었다며, 제발 산아제한에 동참해달라던 우리나라의 인구는 현재 세계의 0.71%, 5천만을 헤아린다. 음식 쓰레기를 포함해 식량의 80%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내일도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어떤 조상도 꿈을 꾸지 못할 만큼 호강하고 있다. 불합리한 분배로 위화감이 커져 그렇지, 자연의 균형을 흩트리는 내연기관과 가전제품을 보유하며 보이지 않는 친지와 영상통화를 즐기지 않던가. 이런 호강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생산과 소비가 필연적으로 빚은 초미세먼지와 마이크로플라스틱은 후손의 건강과 행복은 물론이고 생명마저 지켜주지 못한다. 늦기 전에 생존을 최우선으로 염려하는 대안적 삶을 모색해야 한다. 생산인구 감소를 핑계로 가임여성들 들들 볶을 때가 절대 아니다.


세계인이 미국적 삶을 추구하려면 지구가 6개 필요하다는데 우리는 지구를 생산할 수 없다. 처리 못할 쓰레기로 더럽혀진 지구에서 성장이나 생산을 되뇔 수 없다. 물건을 생산해 소비할 인구가 모자란다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노인의 지혜와 경륜으로 다음세대의 행복과 건강을 고민해야 한다. 65세 이상은 생산인구가 아니라고? 망측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작은책, 201810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5. 4. 20. 19:25


62세 이후, 한 달을 30만원 약간 넘는 돈으로 버틸 수 있을까? 국민연금공단에서 보낸 안내서는 62살에 연금을 신청하면 그 정도 받을 것이라 예고한다. 지금부터 월 30만으로 살 방법을 궁리하라는 듯한데, 몇 년 남지 않았다. 그 사이 아이들 학자금은 마침표 찍을 수 있을까? 요즘 같은 취업난에 기대하기 어려워도, 아이들이 알아서 취직해 결혼까지 스스로 해결한다면 큰돈 들어갈 일 없겠지만 걱정은 남는다. 매달 70만원의 할부금과 이자를 내지 못하면 집을 은행이 빼앗을지 모르니, 아무리 생각하도 62세에 돈벌이 전선을 이탈하면 안 되겠다.


정부는 돈벌이를 위해 노동을 제공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연령층을 생산인구라 칭하는 모양이다. 14세부터 65세 미만의 인구가 그들이라고 하니, 65세 이상이면 부양 대상 인구가 되는 건가?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65세 넘긴 이에게 정부는 ‘어르신카드를 제공한다. 그 카드를 받아 명실상부한 노인이 되더라도 그들은 대개 65세 훨씬 이전에 직장을 잃었다.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어도 직장에서 나가야 했다. 이후 돈벌이 전선에서 좌충우돌하며 식구들 건사해왔지만 여전히 일자리를 찾는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에 노인이 점점 늘어난다. 전체 인구에서 65세 노인이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를 넘기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는 어느새 고령사회에 가깝다. 농촌은 초고령사회로 접어든지 오래다. 정부는 생산인구의 부족을 걱정한다. 현재 생산인구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데, 2036년이면 2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해야한단다. 그러므로 아이 더 낳으라고 가임여성들 닦달하는데, 65세를 넘긴 노인들 듣기에 무척 민망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65세 이상을 부양 대상자로 여기는 모양이지만, 농촌을 보라. 65세 이상의 노인이 농사짓지 않는다면 우리는 수입농작물만 먹어야한다. 현재 우리 식량자급률은 쌀을 포함해도 23%에 미치지 못하지만, 나이든 농부들 덕분에 최소한의 생산이 유지된다. 그 사실을 무시하는 정부에 생산의 진정한 의미를 짚어주고 싶다. 반도체가 집적된 휴대전화와 가전제품, 수만 개의 부품이 조립돼 화석연료를 태우는 자동차와 같은 상품은 엄격한 의미에서 생산이 아니다. 제조로 보아야한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와 같은 제품은 차라리 변형이다. 광산과 유정에서 원자재를 발굴해 재료로 가공하는 과정에 온실가스를 내뿜는 화석연료를 거침없이 태울 뿐 아니라 상당한 폐기물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핵폐기물까지 포함해야한다. 그런 변형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친 뒤 세상에 나오는 제품이지만 오래 사용할 수 없다. 도중에 수리를 반복해도 수명을 다하면 쓰레기가 된다. 재활용하더라도 에너지 소비와 오염물질 배출은 피할 수 없는데, 요즘 제품들은 분명히 더 사용할 수 있어도 버린다. ‘의도적 진부화때문이다. 많이 팔아 이윤을 늘리려는 기업의 의도인데, 그런 제조를 생산이라 칭하기 민망하다.


진정한 생산은 땅에서 이루어진다. 폐기물 발생이 없는 생산이다. 한 알의 씨앗이 농부의 땀과 깨끗한 물과 바람을 봄부터 받으며 충분한 시간을 보낸 뒤 가을에 수확을 남기는 농사가 그렇다.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일련의 과정도 생산이다. 낳은 생명을 보듬어 기르는 일, 다음세대에 자리를 양보하고 떠난 생명을 거두는 일도 생산인데, 식물이든 동물이든 대부분 생산은 땅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생산은 농부와 여성이 주관한다. 그러므로 농촌에서 묵묵히 농작물을 재배하는 65세 이상의 농부를 생산인구에서 소외하려는 태도는 결례가 아닐 수 없다. 농민만이 아니다.


영어의 ‘product’를 생산으로 번역했어도 마찬가지다. 65세를 넘긴 노동자의 경륜이 제조과정에서 소외되어야 마땅한가? 일할 능력과 의욕이 있어도 일할 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기업과 정부가 먼저 반성해야 옳지 않을까? 나이 들어 근력이 떨어져도 일할 분야는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기업은 사무와 공장 자동화로 멀쩡한 일자리를 없앤다. 참기 어려운 이율배반이다. 컴퓨터와 로봇은 한창 일하는 장년뿐 아니라 청년이 찾을 일자리까지 빼앗는다.


현재 남한 인구는 2077만 세대에 5136만 명이고 한 세대에 평균 2.47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통계청은 실시간 자료를 내놓는다. 작년 우리나라 부부의 평균 출산율은 1.21명으로 추산하는데 15년 째 1.5명에 미치지 못했다고 언론은 걱정한다. 장차 인구가 늘거나 줄지 않는 출산율이 2,08명인데 1.5명이면 초저출산이라면서 그런 출산율이 계속된다면 70년 이후 남한 인구는 절반으로 줄고 120년 지나면 5분의1로 위축된단다. 2750년이면 대한민국의 인구는 사라진다던데, 과연 그럴까?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는 2005년에 ‘1·2·3 캠페인을 펼쳤다. 결혼 1년 안에 임신하여 2명의 아이를 30세 이전에 낳자는 내용이었는데 당시 젊은 연령층의 반발을 불렀다. 캠페인처럼 아이를 낳으면 40세 되기 전에 파산한다는 ‘1·2·3·4 캠페인으로 대응했는데, 그때보다 청년 실업자가 늘어난 요즘, 결혼은 더욱 늦춰졌다. 서울시 여성의 평균 결혼연령은 30세가 넘었다. 연령과 관계없이 요즘 부부들은 한 아이 이상을 엄두내지 못한다. 제 아기를 남 못지않게 키워야할 텐데, 안정된 직장이 보장되는 환경이 아니지 않은가!


경제성장 없다면 일자리는 늘지 않는다. 자원과 석유위기 상황이 세계적으로 호전되지 않으니 경제성장은 지속될 수 없다. 그뿐인가. 자동화로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소득 격차는 심각해진다. 성장기 자녀가 있는 가장의 실업이 만연되는 추세가 진정되지 않는다. 출산을 장려하는 정부가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모른다면 용서하기 어려운 직무유기일 테지. 출산율 저하에 긴장하는 곳은 기업인데, 정부는 기업 친화적이다. 지금도 착취되는 노동자가 앞으로도 원활하게 공급돼야 기업의 이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면 지나친 걸까?


성장이 한계에 왔다. 지금은 덮어놓고 인구를 늘릴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65세 이상을 생산인구에서 소외할 일이 아니다. 정부와 기업은 자동화보다 노동자의 근무시간을 줄여 청년층은 물론, 의지와 능력이 있는 노인을 경제활동인구의 일원으로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또한 진정한 생산자인 농촌의 노인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농촌에서 도시의 인구를 실질적으로 부양하지 않던가. 도시에서 할 일을 찾지 못하는 노인에게 생산의 기회를 농촌 또는 도시의 텃밭에서 제공하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겠다.


평균수명이 아무리 늘어도, 노인은 때가 되면 떠난다. 떠나기 전까지 생산인구로 남는다면 출산율이 떨어져도 부양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후 줄어든 인구는 다시 균형을 잡을 것이다. 경제가 둔화되어도 견딜 여력이 생길 것이다. 노인은 경륜을 가진 선배다. 국민연금공단이 62세부터 30만원으로 살아가라고 아무리 속삭여도 노인은 부양 대상자가 아니다. (야곱의우물, 20155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12. 31. 19:06

2015년 을미년이 밝았다. “을미적거리면 병신되어 못 가리하던 갑오년이 맥없이 흘러갔다. 올해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은 취업걱정이 크다. 을미년만의 걱정은 아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정도는 커지기만 한다. 2016년 병신년이나 2017년 정유년은 어떨지.


1980년대 초,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을 만끽했다. 제대한 공과대학 졸업반이라면 대부분 취업되었을 뿐 아니라 전공에 따라 3학년 마칠 즈음 취업이 예정되곤 했다. 요즘 최고의 직장으로 회자되는 공기업이나 교사직은 선호되지 않았다. 졸업이 무서운 요사이 대학생에게 아득한 전설로 들리겠지만, 초봉 많은 대기업마다 러브콜을 보냈다. 그 시절에서 한 세대 이상 지난 요즘, 거품처럼 성장하던 경제는 정체돼 간다.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해야 우리는 만족할까? 행복을 이야기하는 경제학자는 일인당 소득이 15천 달러까지 소득과 행복은 대체로 비례하며 상승한다고 주장한다. 이후 4만 달러로 소득이 오르더라도 행복은 정체되는데 4만 달러 이상 소득이 오르면 행복은 오히려 떨어진다고 덧붙인다. 필요가 아니라 질투가 소비를 이끄는 형국이 그리 만든다는 것이다. 생활을 윤택하고 안정되게 하는 물건은 대체로 15천 달러 정도에 이르면 완비되고, 4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자들은 필요하지 않은 고가의 물건들 이웃과 경쟁하며 과다하게 구비하느라 행복을 희생시킨다는 해석이다.


어느새 일인당 2만 달러 내외의 소득에 이른 우리나라에서 있던 승용차를 없앴다고 불행해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하는 이 드물다. 예전 모델의 핸드폰을 고집하는 대학생이 최신형 전화기 가진 친구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요란한 광고가 소비를 아무리 현혹해도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외면하는 사람이라면 막연한 경제성장에 자신의 행복을 의탁하지 않는다. 다만 기업이 만들어낸 물건이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취업문은 좁아지고,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로 돈벌이가 신통치 않은 젊은이들이 돈이 매개하는 사회에서 능동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취업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깊어지면서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한 절박한 경쟁은 유럽과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도 치열해졌다. 졸업장으로 취업요건이 부족하다고 예단하는 젊은이들이 필요하지 않은 자격증과 학력을 추가하기 위해 학원과 대학원으로 뛰어다니면서 학력과 자격증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었다.


취업 연령이 늦춰지면서 결혼이 미뤄지는 현상이 생긴 지 오래다. 서울 여성 평균 결혼 연령이 만 30에 가깝다. 남성에게 자신의 내일을 의탁할 생각이 없는 여성도 취업문을 노크해야하는 세상이다. 그 와중에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하고 짝을 만나 결혼을 해도 내일이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첫 아이를 낳아도 맞벌이를 중단할 수 없다. 젊은 부부는 이내 둘째를 포기하게 된다.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정부와 기업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이 늙어간다고 아우성이다. 기업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언론은 아이 울음소리는 점차 들리지 않고 힘없는 노인들만 증가한다고 추임새를 놓는다. ‘생산인구의 감소로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2060년이면 경제 실질성장률이 0.8%로 곤두박질할 것으로 통계 수치를 들먹인다.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제도와 시설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이 색 바랜 주장을 번번이 늘어놓는 가운데, 관련 국가 재정을 늘리기 위해 조세 부담을 조정해야 한다는 정부 부처의 목소리도 들린다.


부족한 예산을 인상한 담배 값으로 충당하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부는 출산율 늘릴 재정은 어떻게 조달할까? 육아시설을 갖추고 산모와 그 남편의 육아휴직의 기간을 늘리라는 전문가의 오랜 권고를 한사코 외면해온 기업인들에게 세금을 더 걷으려 들 것 같지 않다. 불안하지 않은 직장환경을 만들어야 직원의 업무능률이 오른다는 사실보다 당장 들어가는 비용에 민감해하는 기업이 스스로 세금을 더 낼 듯싶지 않다. 결국 자식의 내일이 불안해 학원과 과외로 알량한 맞벌이 소득을 쏟는 시민들이 고혈을 더 짜야 할 게다.


상황이 이럴 진데 출산율이 높아질까? 내일이 불안한 기업도 선뜻 육아시설과 출산휴가를 늘리기 어렵다. 성장이 둔화된 만큼 경쟁이 치열해진 국내외 경제 현실에서 자칫 투자에 실수하면 낙오될 수 있지 않은가. 언론은 출산율 감소로 2060년이면 연금이 바닥날 것으로 지례 짐작하지만, 젊은이들이 요즘처럼 취업하지 못한다면 그 전에 바닥날 수 있다는 점은 상기하지 않는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평등이 무너질수록, 내일이 불안할수록 출산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언론과 정부, 심지어 전문가들도 파악하려 들지 않는다.


경제성장이 무한할 거라 믿는 자는 경제학자이거나 바보라는 말이 있다. 자원이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 철광석도 우라늄도 머지않아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이미 석유는 퍼올리는 양보다 소비하는 양이 더 많다. 경제성장이 주춤하면 잠시 남아돌아 가격이 조금 덜어지지만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석유가 부족해지면 경제성장은 즉각 중단되거나 곤두박질할 게 틀림없으니 거품경제 시절에나 볼 수 있는 완전취업이나 평생고용은 더욱 힘겨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율 높이라는 주문은 가당할까? 아이를 더 낳으라는 주문은 누구의 행복을 위한 꾐인가?


헐값의 노동력으로 시장의 지위를 놓치지 않으려는 기업, 그런 기업의 보고서에 충실한 언론과 정부가 아니라면, 출산율보다 근원적인 대안정책을 요구하고 모색해야 한다. 화석연료의 뒷받침 없이 불가능한 경제성장의 분별없는 추구로 이미 지구온난화는 심각하다. 세계 인구는 줄여야 하고 우리는 늘리라는 요구, 타당한가? 정의로운가? 정부의 요구로 태아난 아이의 내일은 건강하고 안정적일 수 있을까? 식량 자급률이 지금보다 높을 때 그만 낳으라고 다그쳤던 우리 정부의 저출산 대응 정책은 도무지 설득력이 없다.


소득 4만 달러가 넘으면 행복이 줄어든다. 우린 이미 충분히 잘 산다. 역대 어느 황제도 요즘처럼 겨울철 실내가 따뜻하고 잘 먹지 못했다. 기업을 위한 경제성장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는 다음세대의 행복에 있다. 지금은 줄어들 인구가 석유 없이 행복한 삶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내일이 불안한 젊은이들에게 아이 더 낳으라고 닦달할 때가 아니다. (작은책, 2015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