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5. 1. 26. 23:58


부자는 3대를 넘기지 못한다는 말.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한데, 많은 사례가 그렇다기보다 그래야 옳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한다. 부를 모으는 과정에서 흘린 선대의 땀과 이웃의 도움을 기억하지 못하는 3대는 과정의 고행을 거의 모른다. 성과를 얻는 과정에서 도와준 이웃에게 고마움을 전할 능력이 부족하기 쉽다. 선조가 어렵게 쌓은 부를 바닥내기 십상인 3대에게 갑질은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항상 무언가를 받아온 부자 3대는 마음의 선물을 다른 이에게 전한 기억이 드물 것이다. 예쁜 그릇으로 간식을 받아왔던 3대는 봉투에 담긴 땅콩을 받자 당황했을지 모른다. 칭얼대면 냉큼 봉투를 뜯어 먹여주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자란 3대는 봉투를 뜯는 수고를 공손하지만 또박또박 요구하는 사람이 몹시 미울지 모른다. 게다가 자신의 피고용자가 그런 요구를 한다면 기막힐지 모른다. “네깟 게 감히!” 그런 분노는 재벌 3세에게 머물 리 없다. 양판점 매장에서 점원 괴롭히는 손님도 분명 3대다. 그는 저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이에게 선물을 준 일 없다.


선물은 받을 때 기쁘다. 꼭 필요했던 물건을 받으면 그런 선물을 전하는 이에게 더욱 고맙다. 한데 선물은 받을 때보다 줄 때 더욱 기쁘다. 꼭 필요한 선물을 받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누구에게 받았는지 잊고 말지만 선물은 전한 이는 다르다. 선물 전해준 사실을 여간해서 잊지 않는다. 선물 받을 사람에게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 살펴, 구입하고 포장한 뒤 전달하는 과정이 모두 기뻤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였을까? 70년대 서유석은 장난감을 받은 아이는 다음날 누구에게 받았는지 잊는다고 노래했다. 장난감 선물한 이는 기억할 것이다. 장성한 아이를 나중에 만나면 그 기억을 이야기할지 모른다.


선물과 뇌물은 다르다. 부자 3대가 피고용인에게 받았을 선물은 어쩌면 뇌물에 가까울지 모른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물과 달리 뇌물은 전하는 이에게 고통과 불안을 안기고 받는 이에게 우월감을 전한다. 우월한 자는 아부 또는 뇌물을 선물로 여기고, 자신에게 선물을 전하지 않는 자에게 호의를 느끼지 못할 수 있겠다. ‘갑질은 거기에서 파생되는 건 아닐까? 비행기를 되돌리고 피고용자를 시켜 검찰청 화장실 청소를 요구한 재벌 3세는 물론, 양판점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 학생 무릎 꿇린 억대 소비자들의 갑질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


부자나 재벌 3세의 갑질은 흔하다. 그들의 갑질은 아파트 현관이나 양판점에서 그치지 않고 유치원 교실에도 위세를 떨치지만 더욱 흔한 갑질은 다른 생명에 대해 인간이 행한다. 무자비하게. 내가 먹기 위해 키우는 가축에 대한 갑질은 어떤가. 어차피 죽을 목숨. 어느 정도 자란 뒤 도축해야 적당하지만, 사정이 생겨 좀 일찍 죽인다고 뭐 대순가. 구제역이 돌자 그런 마음을 품은 사람은 돼지 몇 백 마리, 몇 천 마리 죽이는데 도무지 거리낌이 없다. 그들은 구제역에 감염된 돼지를 생명이 아니라 그저 먹지 못한 고깃덩이로 생각할지 모른다. 사료 축낸 이상의 이익을 내놓아야 했을 살코기들.


농작물에 들러붙어 잎을 갉아먹는 곤충은 해롭다. 물론 농작물에 해롭더라도 그 곤충을 즐겨먹는 새들에게 해로울 리 없다. 농작물의 뿌리가 내린 땅도 곤충에 화가 나지 않을 텐데 사람들은 분노한다. 농작물은 곤충에게 잎의 일부를 잃어도 견딜 여력이 있지만 사람은 참지 못해 독성을 강화한 약을 뿜으려 든다. 그 뿐이 아니다. 타고난 농작물의 유전자를 조작해 곤충의 접근을 차단한다. 그래서 수많은 미생물과 토양생물이 어우러지며 기름졌던 땅은 푸석푸석 황폐해지고, 농경지의 오랜 생태계는 괴멸되었다. 농작물도 물려받은 유전자의 다양성을 잃었다. 내가 씨앗을 심었다는 걸 강조하는 인간의 갑질 때문이다.


생물에 대한 갑질은 부메랑이 되었다. 생명을 잃은 땅은 이제 화학비료와 살충제와 제초제 없이 농작물을 키워내지 못한다. 생명을 잃고 딱딱해진 땅은 무거운 농기계 없으면 농작물의 씨앗을 받아주지 못하고 실한 열매를 남기지 못한다. 인간은 전에 없이 막대해지는 석유를 소비하지 않으면 안 되고, 지구는 그만큼 온난화되었다. 가축에 대한 경쟁적 갑질은 구제역에 이기지 못하는 소와 돼지를 확산시키는데 그치지 않는다. 조류독감을 해마다 번지게 하면서 닭과 오리는 물론 애꿎은 철새들이 방제액을 뒤집어쓰게 만든다. 그래야 산업축산과 식품산업이 번창한다. 비만과 성인병이 늘어 제약과 의료산업이 살찐다.


재벌이나 부자는 함께 일한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존립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갑질은 세상을 줄 세운다. 획일적으로. 다양성을 잃은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달라진 기업환경과 교역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손실을 볼 가능성이 커진다. 돈과 권력으로 갑질하는 사회일수록 다양성은 훼손된다. 아부하려는 자들이 내미는 선물? 아니 뇌물이 판치는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은 개진될 수 없다. 그런 사회는 환경변화에 대처할 능력을 잃는다. 우리는 많은 독재정권과 기업이 무너지는 현장을 멀고 가까운 역사에서 보아왔다.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맥없이 스러지는 건 가축만이 아니다. 산업축산의 사업주는 금융과 국가 재정의 지원으로 다시 일어선다지만, 우리는 가축 뿐 아니라 생태계의 다양성을 잃는다. 다양성을 잃은 생태계는 바뀔 환경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유전자 다양성을 잃은 가축의 획일적 사육을 위해 막대한 석유를 쏟지만, 석유 소비는 지구온난화를 불렀고, 지구온난화는 앞으로 닥칠 환경의 변화를 감당하기 어렵게 키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갑질은 자신의 내일을 해친다. 생태계의 안정성이 유지되기에 이어왔던 인류의 삶에 재앙이 스민다. 끊임없이 소비한 석유는 유정을 고갈시키건만 엎친 데 덮친 격일까? 세일가스가 석유가격을 낮춘단다. 하지만 세일카스는 대지의 안정성과 생태계를 극심하게 교란할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파장을 돌이키기 어렵게 키울 게 틀림없다.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농작물과 가축은 내일의 재앙을 예고하는데, 이웃에게 선물할 줄 모르는 재벌 3세와 부자 3대의 갑질은 위화감 이상의 불안을 안긴다. 그런 갑질은 생태계에 대한 갑질로 이어진다. 그로 인한 부메랑은 멀지 않은 내일, 그리고 후손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미 그 징후가 흉흉하다. (작은책, 20152월호)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