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9. 2. 9. 17:34

 

촛불이 탄생시킨 정부의 첫 환경부장관이 재직 16개월 만에 자리를 내놓아야했다. 차관은 더 먼저 바뀌었다. 환경단체에 오래 몸담았고 기후변화에 대한 식견과 현장 활동이 남달랐던 차관이 재임 13개월 만에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다 된 공무원을 어공이라고 한다던데, 정무직인 어공의 재직 기간이 15개월이면 충분한 걸까? 다른 나라는 어떠한지, 상식이 없어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15개월이면 소신 펴기에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기억 속의 우리 정권 하에서, 제 자리를 오래 지킨 장차관은 드물었다. 환경부가 특히 그랬다. 정치적 이유로 임명되어 그런가? 정부 부처의 장이라면 전문성을 각별하게 요구하겠지만 반드시 엄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충분한 논의를 바탕으로 양보와 타협 속에 전개되는 민주사회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전문성보다 중요한 가치가 많으므로. 공직자는 민의로 선출된 임명권자와 뜻이 같아야 정책에 일관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환경부도 예외가 아니지만 이번 정권도 서툴렀다. 그런 느낌이 강했다.


일반적으로 차관은 그 부처 중요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는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도 그렇다. 현 정권의 초대 환경부차관은 흑산도의 공항 건설을 심의해왔는데, 별안간 교체되었다. 항간의 의혹처럼 흑산도 공항 심의가 통과되지 못하는 이유로 차관이 교체되었던 걸까? 사실 여부는 명확치 않다. 장관 교체는 다른 이유일까? 재직할 때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에 혼란이 있었지만 그건 환경부의 책임이 큰 사항은 아니었다. 6개월 전에 중국이 수입 중단을 선언했어도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고작 6개월에? 6년도 모자랄 걸?


밖에 나가기 두렵다. 허파꽈리를 통과해 뇌에 침투하면 염증을 일으킨다는 초미세먼지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보다 느슨한 우리의 기준치를 무려 3배 이상 초과하는 초미세먼지로 하늘이 며칠째 뿌옇다. 저주받은 하늘 아래에서 오늘도 호흡하는 사람들은 당장 쓰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다. 최악을 거듭 경신하는 상황이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내놓는 대책은 여전히 상투적이다. 얼마 전 생명공학원구원은 나노플라스틱이 제브라피시 치어의 생장을 방해한다고 발표했다. 제브라피시 뿐일까? 생태계의 많은 동식물이 그렇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건만 환경부는 신통한 방안을 세우지 못한다.


요사이 희뿌연 공기는 어떤 섬뜩한 냄새를 품는 듯하다. 얼른 착용하는 마스크는 초미세먼지의 90% 이상 걸러주는 대신 호흡을 답답하게 만든다. 오래 착용하면 마스크 안에 땀이 흥건해지고 눈은 꺼끌꺼끌해진다. 그뿐인가? 하루 만보 정도 걸으면 목이 컬컬해진다.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일회용이다. 참다못한 시민들이 근본대책을 묻지만 정부는 관용차 홀짝수와 노후 디젤차 운행제한으로 생색내고, 아리따운 기상 캐스터는 오늘도 마스크 착용을 읊는다.


환경부가 근본대책을 몰라서 세우지 않는 건 아닐 것이다. 산하 연구소가 얼마나 많은가. 똑똑한 연구자들은 대안을 알지만 장관은 현실화할 수 없겠지. 그래도 방안을 세운다면? 아마 조기에 교체될지 모른다. “설거지하라고 임명했더니 감히!” 환경부보다 권력서열이 높고 배정되는 예산이 월등히 많은 부서의 장차관들이 혀를 끌끌 차겠지. 당장 플라스틱을 없애지 못하는 건 잘 알지 않나? 초미세먼지를 막자고 화력발전소를 일제히 끄고 내연기관을 가진 자동차를 모조리 멈추게 하자고? 경을 칠 노릇이다!


인류세가 도래했다. 인류세? 영어로 ‘Anthropocene’이다. 쥐라기에 번성했던 공룡이 6500만 년 전 백악기에 멸종했고 이후 부침을 거듭한 빙하기의 끝자리 플라이스토세를 11700년 전부터 홀로세가 이었는데, 지금은 인류세로 공식 정의한다. 인류가 지층을 창출한 셈이다. 지층이 새로워졌다는 건 환경이 급작스레 변했다는 증거고, 당시 번성하던 생물종이 대량 멸종했다는 의미다. 생물종의 멸종은 그 생물종의 모든 개체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확언컨대 인류세 다음 지층에 인류의 화석은 없다. 인류 이외의 생물도 거의 자취를 감출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지금까지 현존 생물종의 70% 이상 멸종시킨 지층변화가 5차례 있었는데, 인류세는 그 6번째가 가깝다는 징후를 명징하게 경고한다.


많은 전문가는 콕 짚어 1945년부터 인류세라고 주장한다. 핵폭탄이 그때 터졌다. 수천 회의 핵실험이 이어졌고 그 흔적은 오롯이 빙하에 남았다. 그뿐인가? 생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이 등장했고 생태계에 존재하지 않던 유기화학물질이 땅과 하늘을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눈에 띄지 않을 때 무시되던 환경오염은 순식간에 돌이킬 수 없게 누적되었다. 이제 생태계는 순환을 멈췄다. 공전과 자전하는 지구의 모든 강은 범람하고 바싹 마르며 생태계의 다채로운 순환을 이끌었지만 돌연 생명력을 잃었다. 세계 최대 삼협댐은 쓰촨성의 대지진을 의심케 하고 해안선이 철근콘크리트로 반듯해지자 더욱 거대해진 쓰나미는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폭발시키고 태평양을 광활하게 오염시켰다.


호모 사피엔스는 역시 똑똑하다. 그중 카이스트가 주축이 된 한국의 인류세연구센터100억 원의 연구비를 끌어왔다. “연구센터가 인간과 지구를 키워드로 과학, 공학,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의 패러다임 변화를 촉발할 것이라며 더 나은 인류의 삶과 더 나은 지구를 함께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기술과 사회정책을 만들어나가는데 기여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인류세마저 돈벌이 수단이었나? 조금만 추워도 보일러 펑펑 틀고 오리털 롱패딩과 모피 속으로 파고드는 인간인데, 가능할까? 다가오는 비극을 비극으로 느끼지 못하는 인류는 인류세의 엄중함을 깨닫지 못한다. 아니 왜곡한다.


과밀한 수도권의 균형발전을 위해 GTX는 지하 40미터에서 고속으로 달리겠단다. 막대한 에너지를 요구하는 GTX 노선이 예정된 지역마다 예비타당성 면제를 요구하는데, 수도권에 생기를 빼앗긴 지방은 비행장 건설에 사활을 걸었다. 경제적 타당성은 따지지 말란다. 새해를 맞아 대통령은 격의 없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양질의 일자리 확보와 정의로운 경제성장을 약속했지만 가슴이 답답해졌다. 약속이 성과를 올리면 경제정의와 사회정의가 실현되겠지. 하지만 초미세먼지는 더욱 그악스러워지고 마이크로플라스틱은 후손의 생존을 한층 위협할 것이다. 인류세는 더욱 가혹해질 테고.


파국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우리는 인류세를 시급하게 직면해야 한다. 전기 자동차로 디젤과 휘발유 자동차를 대체하자는 주장은 이미 한가해진 상황이 아닌가. 그에 필요한 전기를 화력연료나 핵연료로 생산하기 때문이 아니다. 새만금의 태양광 발전도 거대자본이 독점 운영한다면 대안일 수 없지만 우리는 급진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행복해야 할 후손의 건강한 생존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한다면, 전기 없어도 행복한 삶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다리가 불편한 노인도 편리하게 이용하더라도 설악산의 케이블카는 생태계에 정의롭지 않다. 생태계는 인류 생존의 마지막 비빌언덕이 아닌가?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하며 대치동 과외를 강권해도 다음세대가 정의로워지는 건 아니다. 서울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 졸업하고 대기업 특채된 아이에게 행복이 보장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자신의 일을 스스로 찾아 매진할 수 있을 때 행복은 살갑게 다가온다. 수많은 생물이 다채로운 생태계에서 독특한 삶을 영위하듯, 자신의 일은 다양하다. 돈으로 유혹하거나 지위로 강요되는 삶에서 행복은 깃들 수 없다.


돼지가 의외로 똑똑하다고? 착각이다. 돼지는 자신의 지능을 사람에게 묻지 않았다. 돼지에게 돼지의 삶이 있을 뿐인데, 돼지해를 맞은 우리는 선명해지는 인류세를 직면하고 있다. 인류세의 파국을 늦출 마지막 대안은 무엇일까? 경제정의와 사회정의에서 머뭇거릴 수 없다. 세대정의와 생태정의로 확장해야 한다. 그를 위한 우리와 세계 정부의 다급하고 성실한 대책이 필요한데, 기대하기 어렵다면? 환경단체는 초심으로 돌아가 현장에서 다시금 행동할 밖에. 다음세대의 행복. 아니 생존을 생각한다면 주춤거릴 수 없는 노릇이다. (작은것이아름답다, 2019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