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4. 8. 27. 12:41


베란다 밖이 몹시 시끄럽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비를 뿌리지 않았어도 매미들이 극성으로 운다. 장마철이 끝났다는 걸 공식적으로 선언했는데,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정신을 찾지 못하는 걸까? 이러다 늦장마에 기껏 낳은 알 씻겨 버리는 건 아닐까?


도시의 소음을 이겨내려는지, 매미는 부쩍 목청을 높인다. 가로등이 눈부신지, 밤낮이 따로 없다. 여름날에 주어진 짧은 시간, 최선을 다해 짝을 찾으려는 매미는 민원의 대상이 되었다. 아스팔트가 토해내는 자동차 엔진과 타이어 마찰음에 관대한 사람들은 층간소음에 민감해하더니 매미에게 화풀이를 쏟아낸다. 삼복더위를 시원하게 하던 매미는 퇴출 대상이다.


농경지를 메워 조성한 아파트단지는 아스팔트 사이에 둔덕을 가졌고, 둔덕마다 나무가 서 있다. 둔덕과 나무가 차단하는 아스팔트 소음은 신통치 않아도 아파트는 시원해졌는데, 매미가 시끄럽다니. 나무를 베어내야 하나? 민원은 수종갱신으로 이어졌지만 소용없는 모양이다. 플라타너스와 같은 외래종이 뿌리 내렸을 때 머뭇거렸을 매미는 일본잎갈나무에 망설임이지 않았다. 그만큼 절박한 게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대부분의 터전을 잃은 매미에게 대안은 없다. 한줌 남은 녹지대에서 아우성인 매미. 사나운 민원을 언제까지 버티려나.


2010년 추석 연휴 첫날, 중부지방을 강타한 곤파스는 인천시 연수구의 아파트 베란다 새시들을 수두룩 뜯어냈다. 곤파스가 백령도를 지날 때 일본잎갈나무가 너울너울 춤을 추지 않았던들 뜯어졌을 3층의 베란다는 철근콘크리트가 자연 앞에 얼마나 허술한지 여실히 증명했는데, 필리핀 해역의 열대성고기압에서 발달하는 태풍은 날이 갈수록 강력해진다. 인간이 내뿜는 온실가스로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까닭이다.


100년 동안 세계 바닷물은 평균 섭씨 0.7도 올랐지만 제주도 남쪽 해상은 1.4도 이상이라고 기후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우리와 일본, 무엇보다 중국의 산업화와 무관하지 않을 텐데, 어떤 전문가는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에 의혹의 눈을 거두지 않는다. 발전소 터빈을 돌린 고온의 수증기는 차가운 바닷물로 식히는데, 그 과정에서 뜨거워진 온배수가 문제다. 발전소 한 기마다 초당 50톤에서 100톤 가까이 쉼 없이 배출하는데, 주변보다 3도 이상 뜨거운 온배수는 한중일 삼국에서 얼마나 토하는 걸까. 세계 평균 바닷물 온도 상승폭의 두 배인 이유와 무관할까?


우리 바다에 예전에 없던 해파리들이 늘어났다. 터빈 식힐 물을 바다에서 끌어가는 발전소마다 골머리를 앓는데, 피서객들의 불만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해파리를 즐겨 먹는 쥐치들이 남획으로 드물어진 게 원인이라고 언론은 보도하지만 그뿐일까? 광활하던 조간대의 갯벌이 무자비하게 매립된 현상과 무관할 리 없다. 바위에 붙어 성장하면 해파리로 변화되는 유생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던 갯벌의 수많은 어패류가 순식간 사라지지 않았나.


파도와 해일은 오랜 세월 우리 해안을 리아스식으로 침식했고, 리아스식 해안을 피하면 육지의 안전은 대체로 보장되었다. 빙하에 덮이지 않아 고생대 지층을 간직하는 우리 산하에 내린 비는 영겁의 세월동안 백두대간의 곱고 영양 많은 흙과 모래를 강 하구의 삼각지와 바다에 무진장 운반했다. 서해안과 섬 일원에 드넓게 형성된 갯벌이 그 자취다. 수많은 어패류의 산란장과 터전이 된 갯벌 덕분에 뒤늦게 도착한 인간은 해안에 조개더미를 쌓고 농사지으며 목숨을 이어왔는데, 이제 옛일이 되어간다. 굴삭기로 해안을 파괴한 지 불과 한 세대 만이다.


유구하던 한강과 금강, 그리고 영산강을 여럿 댐과 8개의 대형 보로 틀어막은 이래, 서해안은 예전 같지 않다. 바다로 끊임없이 운반되던 모래와 개펄이 가로막히기 때문이지만 아예 사라진다. 인간의 탐욕이다. 강에서 모래와 자갈을 퍼올리던 탐욕은 바닷모래를 탐하기 시작했는데, 얼마 안 가 해안의 모래사장이 휩쓸렸고, 방풍림이 쓰러지고 말았다. 광활했던 갯벌을 크고 작은 공단과 신도시와 신공항 부지로 매립하면서 우리는 기후변화의 충격을 완충하지 못한다.


매립과 해안 개발로 갯벌과 리아스식 해안을 파괴한 사람은 강력해진 태풍에 속수무책이다. 해일을 완충하는 갯벌은 같은 면적의 논보다 10배 이상의 영양분을 공급했지만, 이제 우리는 어패류를 수입에 의존한다. 산란장을 잃은 조기와 민어는 먼 바다에 가야 겨우 만난다. 갈치와 낙지도, 백합과 꽃게도, 밴댕이와 망둥이도, 하다못해 그물에 올라오면 재수 없다며 바다로 덤펑덤펑 던졌던 아귀도 자취를 감췄다. 대신 해파리 유생들이 콘크리트 제방에 붙어 바닷물에 커다란 해파리들을 기하급수로 늘였다.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모여도 크게 굶주리지 않은 건 우리 서해안에 갯벌이 드넓었기 때문인데,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하면서 갯벌은 그만 생태적 가치를 잃었다. 갯벌에서 먹이를 찾던 저어새는 삶터를 잃어간다. 백로와 비슷한 몸에 주걱처럼 생긴 주둥이를 가진 생김새로 주목받는 저어새는 한때 700여 마리에서 현재 2700여 마리로 늘었지만 위기다. 겨울을 나는 대만과 여름을 보내는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눈물겨운 보호운동을 펼치지만 100여 마리가 찾아와 알을 낳는 인천에서 갯벌을 맹렬하게 매립하는 탓이다.


사람 접근이 차단된 절해고도에 둥지를 치던 저어새가 남동공단의 유수지를 찾은 이유는 갯벌이 인근에 남았기 때문인데, 현재 고사 직전이다. 방치하는 매립지가 널렸건만 탐욕은 끝이 없다. 저어새가 스스로 찾아와도 반기지 않는 탐욕은 재해를 자초한다. 매립지에 만든 발전소와 공장과 도로와 활주로에서 내뿜는 온실가스는 해수면을 상승시키고. 태풍과 해일은 위력을 높인다.


발전소 거듭 증설로 전기가 남아돌자 정부는 관공서의 에어컨 온도 규제를 슬그머니 없앴다. 문을 활짝 연 상가의 냉기가 쏟아지는 거리는 휘황찬란하다. 뒤축 높은 구두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거리에 땅강아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빗물이 지하로 스밀 수 없는 거리에 개미 한 마리 볼 수 없고 간판 가린다며 상인이 불평하는 가로수에 참새 한 마리 앉지 않는다. 갈수록 삭막해지는 도시의 거리는 휘황찬란할수록 외롭다. 어깨를 부딪치는 사람들은 낯설고 질주하는 아스팔트의 자동차들은 뒷골목의 어깨들처럼 무섭다.


지난 320일 경, 경남 김해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일본 효고현 토요오카의 황새고향마을에서 황새 한 마리가 스스로 방문한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텃새였던 황새가 사라지자 외국에서 도입해 증식해왔는데, 그 중 한 마리가 김해로 온 것이다. 한 스님의 지극정성 때문인지, 먹이가 풍부하고 해코지하는 천적이 없는 김해를 아직 떠나지 않는다. 일본에서 사라진 수달이 최근 잠시 늘어났던 이유도 그러할 것인데, ‘4대강 사업이후 수달은 급속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딱따구리 둥지에서 새끼를 기르는 하늘다람쥐는 앞다리에서 뒷다리까지 이어지는 옆구리 피부를 넓게 펴서 나무와 나무 사이를 행글라이더처럼 활강한다. 커다란 눈으로 사방을 경계하는 하늘다람쥐는 강원도 산림을 40군데에서 할퀸 골프장에 터전을 잃었는데 골프장은 끊임이 없다. 늑대와 여우마저 사라진 우리 산림에서 엉겁결에 최강자가 된 담비까지 드물어진 강토를 이리저리 끊은 아스팔트는 멧돼지와 고라니의 터전을 좁혔다. 하는 수 없이 도로를 건너던 고라니는 로드킬 당하는데, 배고파 마을을 서성이던 멧돼지는 총살되고 만다.


숱한 보호종이 깃든 김포공항 인근의 습지가 골프장으로 매립될 위기지만 서울시는 제비를 보호종으로 지정했다. 이제 제비는 웬만한 시골에도 자취를 감췄다. 먹이가 부족하고 둥지 재료인 진흙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한데 희소식도 들린다. 농약 사용이 줄자 금개구리와 더불어 제비도 늘어난다는 게 아닌가. 이럴 때 중국이 임대해줄 판다 이상의 관심을 우리 자연의 오랜 이웃에서 쏟으면 어떨까.


어렵지 않다. 우리 조상이 그랬듯, 그들에게 터전을 일부 배려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후손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일이다.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사납지 않다. 탐욕 때문에 이웃을 해치지 않는다. (새가정, 2014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