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6. 1. 24. 11:22
 

숙취에 효과 있는 칡은 원래 미국에 없다. 어떻게 건너갔는지 알 수 없지만 칡은 미국의 산림을 뒤덮어 가고 있다. 칡에 덮여 탄소동화작용을 할 수 없는 숲을 그대로 두면 얼마 안 가 황폐화되고 말 것이다. 원조식량을 따라 들어왔다고 추정하는 미국자리공은 변산반도국립공원을 잠식하고 있다. 미국자리공은 조화로운 우리 생태계를 비집고 뿌리내리지 못한다. 경작을 멈춘 묵정논이나 밭, 폐가, 이용객의 발에 밟혀 교란되는 숲 가장자리에 자리 잡곤 여간해서 물러서지 않는다. 강력한 독성 물질을 뿌리로 분비하기보다 미국자리공의 천적이 우리 땅에 없기 때문이다.

새로 개설되는 고속도로망이 백두대간과 백두대간에 맥을 잇는 정맥들을 바둑판처럼 절도 있게 끊고 뚫으면서 전국이 반나절 권역으로 좁아진다. 한여름, 강원도 춘천에서 원주 제천을 지나 안동과 대구로 이어지는 중앙고속도로를 지나보자. 빠른 속도로 스쳐가는 풍광 속에 어딘가 이상하다. 왁스를 바른 숲이 많다. 칡이 숲을 완전히 뒤덮었기 때문이다. 국토의 65퍼센트가 산지인 우리나라에서 크고 작은 마을은 산에 둘러싸여 있다. 마을 뒷산을 올라보자. 가느다란 등산로는 조릿대로 빽빽하다. 다른 식물의 씨앗이 흙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태세다. 초식동물이 없기 때문이다.

겨우내 토끼는 칡과 조릿대를 뜯어먹는다. 동면하지 않는 산양, 멧돼지, 노루, 고라니도 살아남으려 질긴 조릿대와 땅 속의 칡덩굴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설악산과 점봉산을 넘나드는 시라소니와 작은 산의 삵도 위험한 인가를 기웃거릴 필요가 없었다. 털을 노리는 포수가 여우와 수달을 차례로 거덜내고 일제가 민족정기 말살하려 호랑이와 반달가슴곰을 싹 쓸어버려도 그답지 않던 칡과 조릿대는 왜 요즘 극성인가. 고속도로와 이어진 좁은 임도로 수시로 진입한 사륜구동차량에서 불법 개조한 총포를 난사하고, 마을 뒷산까지 휘감는 올무와 덫이 밀렵꾼과 몬도가네 족을 은밀하게 유혹하는 한, 칡과 조릿대의 세력은 확장될 것이다. 우리 강산의 생물종다양성은 계속 위축된다.

최근 환경부는 멸종위기종의 복원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펼쳐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밀렵과 분별없는 포획으로 영원히 자취를 감추기 전에, 우리 강산에 오래 전부터 다채롭게 어우러졌던 157종의 야생동물과 64종의 식물을 복원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드러낸 것이다.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종이 어디 221종뿐이겠나. 하지만 이제라도 복원을 구상하겠다고 하니 대견하다. 무소불위 개발부서와 사전에 조율하지 않았을 테지만, 핵발전소 주변의 고리도롱뇽과 천성산 일원의 꼬리치레도롱뇽이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을 외면하고 보호대상종에서 그 종을 제외한 허약한 환경부로서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221종 중 64종을 우선 복원하겠다는 환경부는 월악산에 비무장지대의 산양 일부를 옮기려고 3억 원의 예산을 확정했다고 자랑한다. 황새, 크낙새, 수리부엉이와 올빼미를 우선 복원 대상 야생조류로 선정하고 크낙새 도입을 위해 북한에 협조 요청했다고 전한다. 그 예산은 얼마일까. 황새 복원을 위해 십년 가까이 수십억의 연구비를 사용한 한국황새복원연구센터는 러시아에서 성체 한 쌍을 들여와 33마리로 늘이는데 성공했는데, 수리부엉이와 올빼미는 몇 년에 걸쳐 얼마나 많은 예산과 연구원을 동원해야 성공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을까. 구상 단계에서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비무장지대에 방사할 사향노루, 설악산에 자리잡게 할 대륙사슴, 덕유산의 깃대종으로 계획하는 여우, 북한산의 상징으로 대두시킬 표범은 이 땅을 떠난 지 오래 되었다. 조상을 공유해 유전자가 비슷한 외국에서 도입해야 할 텐데, 쉽지 않을 것이다. 충분한 개체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해 환경 적응력이 위축되고, 치명적 유전병 발현을 막지 못한다. 유전적 획일성만이 아니다. 33마리로 늘어난 황새를 농약을 치지 않는 생태마을에 풀어놓아도 안심하기 어렵다. 손해 보면 사나워지는 사람들과 화해 가능해야 할 텐데, 관련 절차와 비용이 만만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

이미 시작된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은 성공할 수 있을까. 자신의 밭을 기웃거리는 멧돼지는 막기보다 잡아 부수입 올릴 요량으로 설치한 올무는 심혈 기울여 방생한 반달가슴곰을 거푸 죽이고 있다. 현장에서 물어보라. 어느 농부가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반기나. 반달가슴곰 피해를 보상해준다고 약속해도 멧돼지 피해를 몰라라 하는 정부를 믿을 농부는 없다. 먹고 살고자 산간 깊숙이 들어온 농부들을 내몰 수 없는 정부는 밀렵꾼 단속은커녕 실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 전국 국립공원에 떠들썩하게 방생할 멸종위기종은 옛날 같은 일가를 이룰 수 있을까.

체세포 핵이식 복제로 백두산호랑이를 복원하겠다는 터무니없는 발상이 언급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지만, 멸종위기종 복원에 앞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지자체 수입을 배려하는 순환수렵제도를 계속 고집하는 정부는 물론이고, 이벤트나 언론플레이에 관심이 큰 환경단체, 밀렵꾼을 두둔하는 지역주민,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그린벨트 해제에 찬성하는 전국의 시민들이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편의를 위해 훼손하는 야생동물의 생태계와 야생동물이 생존할 권리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 복원계획은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멸종위기종 복원은 사람의 눈높이에서 기획되어야 하는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멸종위기종 복원을 토대로 지역 생태계의 가치를 웅변하는 ‘깃대종’을 보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파괴의 화신인 사람이 상처받은 생태계 앞에서 반성하는 태도를 우선해야 한다. 자연의 일원일 때 가장 건강한 사람에게 생태계는 마지막 비빌 언덕이다. 사람들의 손찌검이 없는 야생에서 생물종은 가장 행복하다. 야생동물의 눈높이에서 차라리 무관심이 낫다. 생태계마저 허무는 사람에게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종은 바로 자신인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니 참 안타깝다. (환경미디어, 2006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