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7. 1. 22. 21:02
 


기린은 왜 목이 길어졌을까. 높은 가지의 나뭇잎을 따먹으려고? 기린으로 진화되기 전이라면 그들의 목 길이나 키는 다른 초식동물과 비슷했을 거라 가정해야 할 텐데, 결과적으로 기린으로 진화한 당시의 개체들은 입 높이의 잎을 굳이 마다하고 왜 높은 가지 잎을 따려 애를 써야 했을까. 높은 가지의 잎이 신체의 한계를 무릅써야 할 만큼 맛이나 영양이 우수하지 않았을 텐데. 행동이 느려 높은 가지의 잎만 남았거나 다른 개체들과 경쟁 벌이기 싫었기 때문은 아닐지.

 

틈새시장이란 게 있다. 경쟁이 치열한 주류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선점하면 어렵지 않게 이익을 챙길 수 있기에 누가 먼저 공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경제학자이 분석하는 시장이다. 허허벌판에 홀로 자라는 나무는 다른 나무와 경쟁하지 않고 햇빛을 독차지하는 것 같지만 가지에 달린 잎의 사정은 다르다. 낮은 가지의 잎에서는 높은 가지 잎 사이를 뚫고 내려오는 작은 빛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가 엿보인다. 틈새 빛을 노리는 것이다. 다채로운 풀과 나무가 뒤엉킨 숲도 마찬가지다. 여름철 건강한 나무 아래 몸을 숨기면 강력한 햇볕은 물론 빗방울도 피할 수 있다.

 

경쟁에 치어 따기 쉬운 나뭇잎을 놓친 개체는 틈새를 노려야 한다. 낮거나 높은 가지의 잎을 고르거나 아예 식성을 바꿔야 한다. 높은 가지의 잎을 틈새 메뉴로 택한 개체는 새로운 환경을 맞은 것이고, 바뀐 환경은 새로운 적응을 개체에게 요구한다. 높은 가지의 잎을 잘 따는데 아무래도 키가 커야 효과적일 것이다. 먹이를 많이 차지하니 천적을 피할 기운이 많을 거고, 짝지을 확률도 높을 것이다. 새끼를 낳고 기르는데 상대적으로 유리할 게 틀림없다. 키 큰 개체는 대체로 키 클 후손을 잉태하는 법. 높은 가지의 잎을 고집하는 한, 목이 길어지는 방향으로 적응돼 기린이 진화되었을 것이다.

 

기린은 높은 가지의 잎을 따먹으려 목이 길어졌다기보다 높은 가지의 잎을 따먹다 보니 목이 길어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수많은 분류군 중에 야생조류의 절반 이상이 참새 목이고, 담수어류의 절반 이상이 잉어 목이다. 가까운 조상을 인간과 공유한 원숭이 종류도 꽤 많다. 넓은 지역을 공유하는 종은 드물어도 지역마다 자신의 생태 조건에 맞게 다채롭게 진화되었다. 틈새를 효과적으로 선점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사과 껍질보다 얇은 지구 표면에 생물종이 출현한지 38억년, 다양한 생물종이 그렇게 적응, 방산되었다. 하지만 적응에 실패한 경우가 훨씬 많다. 경쟁을 이기지 못해 사라진 개체는 물론이고, 지진과 화산이나 운석충돌과 같이,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없는 환경변화로 새로운 적응을 강요받은 생물종도 숱하게 사라졌다. 도태된 것이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수백만 년 전부터 틈새 환경에서 적응과 방산과 도태를 거듭해 오늘날 한 생물종으로 진화한 인간은 대략 만 년 전에 경작을 시작했다. 지구 환경에 존재해온 어느 생물종도 감행하지 않은 환경변화를 자연과 합일하던 인간이 저질렀다. 자신의 환경을 스스로 변화시키면서 자연에 대한 편견을 인간 세상에 도입한 것이다. 필요 없는 식물을 뽑아낸 자리에 특정 식물을 심고 해충과 익충을 구별한 인간은 동물을 사로잡아 가축으로 삼는데 그치지 않았다. 자신과 얼마나 가까운가를 편의적으로 따져 고등과 하등을 나누더니 편견을 바탕으로 자신들마저 계층으로 차별한다. 선진과 후진으로. 생명공학이 부추기는 편견은 우생학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편견을 계층을 낳고, 계층은 차별을 낳으며, 차별은 획일성을 추구하게 만든다. 다양성을 원천봉쇄하는 만큼 획일성은 경쟁을 요구한다. 선진에서 후진으로 한줄 서기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를 담보하려면 틈새는 메워지고 환경은 단순해야 한다. 중앙이 정한 표준에 따라 겨울을 덥게, 여름은 시원하게 평준화하잔다. 1949년 미국 투르만 대통령은 미국식 삶을 선진이라 규정하고 미국식 삶을 뒤따르는 걸 발전으로 명명했다. 이후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우리네 삶은 개성을 잃었다. 언어도 예절도 문화와 습관도 교육체제와 각종 제도도 미국화 되었다. 한미FTA는 글로벌 스탠더드 운운하는 미국식 개종의 완결판이다. 사고방식마저 미국화 된 우리는 어느새 성형수술 1위 국가로 등극했다.

 

무겁게 끓는 거대한 액체의 표면이 살짝 굳은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과 자전을 한다. 무거운 액체의 흐름이 표면에 전달되면서 대륙이 움직이며 지진과 화산이 발생하고 지표면의 환경도 46억년 동안 죽 끓듯 했다. 운석도 지표면을 이따금 요동치게 한다. 38억 년 전에 출현해 지구의 변덕스런 환경에 따라 적응과 도태를 거듭해온 생물종들은 틈새 환경을 찾아 종분화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렀고, 환경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6500만 년 전 당시 생존하던 생물종의 95퍼센트가 갑자기 멸종한 까닭은 돌변한 환경 때문이었다. 수만 명의 희생자를 낳은 2년 전 동아시아의 쓰나미는 환경변화의 작은 예에 불과할 것인데, 6500만년은 지질연대를 기준으로 때 비교적 최근이다.

 

자신의 환경을 바꾸면서 우쭐해진 인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오만하기가 이를 데 없어졌다. 잉여와 편견으로 무장한 인간은 계층과 차별을 창조하더니 이윤과 지배를 위해 발전의 개념을 도입한다. 500여 년 전,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를 손에 넣은 인간은 없어도 그만인 물건을 거침없이 만들어내면서 소비를 촉진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더 많이 소비해야 ‘발전’이라고 세뇌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틈새시장을 찾아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후발주자는 세련된 소비가 ‘선진’이라고 광고한다. 틈새 환경을 찾아 다양한 개성이 공존하는 생태계의 다양성과 차원이 다르다. 뒤쳐지면 선진으로 발전하지 못한다는 강박관념은 중앙이 규정한 표준에 따르는 획일성을 촉구할 따름이다. 타자의 개성을 배려하지 않는 획일성은 편견을 바탕으로 남을 대상화한다. 생태계 속의 인간이 그렇다. 사회 속의 인간도 그렇다. 그들을 위해 생태계도 인간 군상의 무수한 다양성도 개성도 무시된다.

 

 


 

발전을 위한 소비는 에너지와 자연자원의 과소비로 이어져 막대한 폐기물을 쏟아냈고, 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변화를 유발했다. 지구 표피와 대기에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폐기물이 쌓이면서 급기야 치유하기 어려운 부작용이 개체에게 속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그치지 않는다. 탐욕은 자신의 삶마저 위협하건만 성공했다 여기는 인간 계층은 자신의 이윤과 패권을 위해 환경 획일화를 더욱 부추긴다. 발생하는 부작용은 과학기술로 극복할 거라 믿으며 자연재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제 온실 안에서 안락한데, 과학기술은 언제까지 인간의 안락한 삶을 보장할까.

 

이제 지구 환경에 위기 징후가 진하게 드러난다. 생태학자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50년 이내 현존하는 생물의 3분의1이 멸종될 것으로 예측한다. 6500만 년 전, 공룡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물종이 멸종한 기간은 대략 만년 정도로 추정하는데, 현존하는 생물종의 3분의1이 50년 만에 사라진다면 끔찍하다. 6500만 년 전의 대량 멸종은 거대한 운석이 원인이었다는데, 오늘날은 순전히 인간의 탐욕이 원인이다. 그런데 원인을 제공하는 인간은 현실의 위기를 깨닫지 못한다. 아니 부정한다.

 

어떤 생명공학자는 멸종된 백두산호랑이를 복제해 백두대간에 풀어주겠다고 호언했다. 생태계가 풍요롭게 복원될 것으로 장담하면서. 하지만, 그럴까. 도로와 광산으로 토막난 백두대간에서 호랑이는 생존 가능할까. 애꿎은 등산객이 물리면 공원당국은 호랑이를 두둔할 수 있을까. 400평방킬로미터의 건강한 생태계를 요구하는 호랑이 한 쌍은 총구를 피해 가축을 노려야 할 텐데, 농정당국은 호랑이 방생을 반길까. 수도꼭지에 매달린 정수기는 마실 물을 근원적으로 정화할 수 없다. 실내공간의 공기정화기로 대기오염을 극복하지 못한다. 간선도로의 오염전광판이 안전하다 제시하는 각종 기준치는 믿을만할까. 환경오염이 낳은 질병을 의료기술이 치료할 수 있을까. 기술은 인간이 제공한 환경문제를 해결할까.

 

어떤 환경학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환경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돈이나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는 무책임한 낙관론인데, 부유한 국가나 지역의 환경이 그렇지 못한 곳보다 좋다는 예를 든다. 마소의 똥이 흩어진 거리에 비해 대리석이 깔린 호텔의 환경이 더 좋다는 견해는 일견 타당할까. 부자나라의 하수구 가난한 나라의 시궁창보다 깨끗한 경험의 이면은 무엇일까. 잡목을 뽑아 낸 자리에 깔아놓은 유럽 잔디의 푸른 면모는 골퍼의 눈을 일시적으로 즐겁게 한다. 환경이 좋아진 것일까. 거리에 잡초 한 뿌리 남겨놓지 않고 항균제품으로 온몸을 휘감는 우리의 결벽증은 누구의 건강을 도모하는 것일까. 기업의 채산성과 무관할까. 기업이 편한 도시와 기업이 원하는 인간을 양성하는 정책은 우리의 내일을 얼마나 건강하게 이끌어줄까.

 

발전이라 믿고 자연을 획일적으로 다그친 결과 발생한 위기 징후는 인간에게 자신의 삶을 반성하라 이끈다. 아토피와 성인병이 확산되고 기상이변과 항생제 내성 세균의 창궐이 전에 없이 빈발하면서 왜 반성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된 사람이 늘어나지만, 어려서부터 ‘발전’과 ‘선진’에 세뇌된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반성해야 하는지 도무지 종잡지 못한다. 기술로 해결할 수 없다면 무엇에 의존해야 하는지, 흔히 생태적인 삶을 제시하는데, 생태적인 삶이 무엇인지 얼른 판단하지 못한다.


 

 

생물종의 안위가 인간의 삶과 무슨 관계가 얼마나 깊다는 걸까. 생태계만 보전하면 되는 게 아닐 텐데.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업도 따지자면 생태계 개조와 다르지 않은데 괜찮은 건지, 채식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식물은 생명이 아니라는 건지, 여성성을 도모하자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남성성은 다 나쁜 건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사회가 문제라는 주장, 정치가 변해야 한다는 주장, 법을 손대자는 주장, 문화를 따져보자는 주장, 윤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들, 듣자니 혼란스럽다. 그래서 책을 찾는데, 읽을수록 머리에 쥐가 난다. 알듯 말듯, 비슷한 듯 다른 사상과 주의들. 환경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걸 충분히 동의하므로 의식을 갖춘 행동을 위해 책을 읽는데 머릿속은 더 복잡해진다.

 

환경운동은 활동가의 몫에서 그칠 수 없다. 환경문제는 환경전문가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행동은 어려우니 귀찮고 더럽고 위험할 따름이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삶 속에서 문제를 극복하려 흔쾌히 노력할 수 있다. 다만 요약된 정리가 필요하다. “알면 보인다.”고 했던가. 보이면? 행동한다! 그 행동에는 힘이 있다. 힘이 실린 행동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환경운동의 힘은 지식과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지식이 없는 경험은 흔들리기 쉽고 경험이 없는 지식은 공허할 때가 많다.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운동에 나서는 사람은 대개 생태주의로 수렴한다.

 

고 문순홍 선생은 많은 문헌을 바탕으로 생태사상을 분별했지만 다소 복잡하고 어려워 독자들이 접근하기 버거워한 게 사실이다. 이후 발간된 책들도 쉽지 않다. 한데, 생태사상이 그렇게 일반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상가에 따라 다만 다양한 논의가 있을 게고, 고민 끝에 펼쳐내는 생태사상이기에 가치를 발할 것이다. 『환경사상 키워드』는 복잡한 생태주의 사상을 독해하는데 친절한 안내서를 자임한다. 『환경사상 키워드』는 환경운동의 인식론적 기반을 구축하는데 도움을 준다. 주장이 다양한 환경사상이 누구에 의해 왜 대두됐고 과정에 어떤 논쟁을 거쳤는지 두루 이해할 수 있다면 환경운동에 힘이 생길 것이다. 독자에게 핵심을 세심하게 정리해 친절하게 안내하는 까닭이다.

 

 


 

최근 한국 최초의 우주인 후보 2명이 선발돼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들은 한국 우주과학의 앞날을 짊어질 것인가. 한데 그들의 우주선을 쏘아올릴 곳은 러시아이고, 우리는 러시아 우주당국에 천억 원이 넘는 거액을 관광비로 지불했다고 한 언론은 전한다. 그 중 절반은 세금이란다. 세금으로 젊은 과학자가 우주여행을 다녀오면 우리나라 우주과학이 발달할지 여부는 여기에서 따지지 않기로 한다. 우주과학은 왜 발달해야 하나. 핵실험으로 당겨지는 지구 종말 시계가 시급을 다투는 지금, 우리는 우주로 달아나야 하나. 우주 어디에 적합한 장소가 있는지 여부는 둘째로 하고, 그를 위해 소비하는 시간과 엄청난 연구비용을 훼손된 지구 환경을 치유하는데 사용하는 편이 더 합리적 아닐까. 오염된 지구를 탈출하기보다 더 오염되기 전에 환경보전에 노력하는 편이 더 시급한 노릇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우주인 탄생 소식에 열광한다. 황우석 전 교수의 줄기세포 사기극에 전 국민이 놀아난 것처럼.

 

지구의 한계를 인식하여 우리의 삶을 반추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생태주의에 귀의해야 하지만 유명 법무법인에서 기여하는 일 없이 고액연봉 받던 우리 고위 공직자들은 무슨 생각에 젖어 있을까. 골프가 경제를 살린다는 중앙과 지방의 고위 관료들, 아파트 투기로 지역경제를 부양하자는 지방자치단체장은 생태주의를 어떻게 생각할까. 생태사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는 그들도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환경사상 키워드』는 그래서 가치를 발한다. 다양한 생태주의 유파와 그 사상가와 사상은 물론이고 반다나 시바와 제레미 리프킨과 같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생태주의 저술가도 조명하니 반갑다. 무엇보다 급진적인 지식인으로 존경과 비난을 동시에 받는 이반 일리치도 언급하니 기쁘다. 인간, 자연, 생태, 그리고 그들의 생태적 관계를 이해하게 하는 『환경사상 키워드』가 환경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명공학을 일축하는 시각은 아주 당연하지만, 고맙다.

 

『환경사상 키워드』는 일본판이다. 그래서 일본의 눈높이에서 환경사상을 주요 개념을 전하는데, 일본의 첫 사례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보완해야 할 내용이 더 있을 것이다. 생태주의보다 생산력주의에 가까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은 조명하고 있지만 농부이자 시인인 웬델 베리와 스스로 급진주의자라 주장하는 스코트 니어링도 다루지 않은 점이 그렇다. 개정판을 새삼 기다리고 싶다. 이참에 『환경사상 키워드』를 읽고 우리에 맞는 『환경사상 키워드』를 쓴다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 문화에 맞는 사상과 사상가가 조명될 수 있을 테니까.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꼭 필요한 책을 번역 소개한 김원식 선생에게 고맙다. 신념과 열정으로 견뎌온 선생의 85년 세월의 무게가 귀한 책을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는 느낌이다. 『환경사상 키워드』가 김원식 선생의 의지를 이어받을 젊은이를 탄생하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동 영상문화가 지하철의 젊은이를 지배하는 시대에 잘 팔릴지 확신할 수 없는 『환경사상 키워드』를 출간한 알마의 과단성에 감사한다. 알마의 결단은 이 땅에 생태주의를 심는데 적지 않게 기여할 것이 틀림없다. 『환경사상 키워드』를 읽으니, 악화되는 환경위기 시대에, 내일의 생태주의를 꿈꾸는 젊은이를 더욱 기대하게 된다. 2007년 1월, 회색도시 인천에서. (도서출판 ‘알마’ 2007년 1월 발간 예정, 『환경사상 키워드』의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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