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1. 1. 13. 10:06

 

이른 여름이면 징검다리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 주위는 알락할미새가 터 잡는 곳이다. 논둑과 밭둑, 벽돌색 지붕과 담벼락 위, 그리고 전선줄에 앉아 먹이가 눈에 띄자마자 낚아채려는 듯, 긴 꼬리를 까딱까딱 중심을 잡으며 냇가를 한사코 떠나려하지 않는 알락할미새는 텃새인가 철새인가. 관록을 가진 도감은 여름철새라 주장하고 요즘 출간된 도감은 텃새라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남방의 무더위를 피해 여름이면 우리나라를 찾았지만 겨울이 따뜻해지자 더러 정착하게 된 모양이다,

 

텃새라. 텃새라면 같은 종이든 아니든, 자기 세력권으로 다가오는 다른 새에게 텃세라도 부린다는 겐가. 대체로 짝짓기를 앞둔 수컷이나 무럭무럭 자라는 새끼들 키우는 계절이라면 모를까, 텃새든 철새든 공연한 시시비비에 몸 바치지 않는다. 둥지에 옹기종기 모인 새끼들이 어미아비가 날아올 때마다 주둥이를 있는 힘껏 벌리며 아등바등 먹이를 보챌 때 충분치 않는 먹이를 차지하려면 침입자가 마뜩치 않다. 절박하게 짝을 찾는데 다가오는 다른 수컷은 방해꾼이다. 예민할 수밖에 없지만 그때를 넘기면 텃새든 철새든, 사람이든 느긋해진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햇살 받은 살얼음이 한낮에 녹아들 즈음, 알락할미새는 짝 찾기에 들어간다. 이때 수컷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도 흥분해 공격 자세를 취하지만, 암컷 만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전깃줄이나 나뭇가지의 높은 자리를 차지한 알락할미새는 배터리가 약한 낡은 무전기의 스위치를 건드리는 듯, “찌찡, 찌찡”, “삐이-, 삐이-. , , 삐이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운다. 차가운 대기에 퍼지는 울음소리는 암컷에게 믿음을 선사할 게 분명하다.

 

장마철이 아직 먼 3월 중순, 물가에서 조금 떨어진 돌무덤이나 사람의 왕래가 드문 건물 구석은 천적에게 새끼가 희생될 확률이 낮을 터. 짝을 만났으니 밥그릇 모양의 둥지를 작년처럼 짓고, 며칠 동안 알 낳을 짬을 낸다. 이어 알 품기를 보름, 시냇가의 키 작은 나무마다 새잎을 펼칠 무렵이면 알을 깨고 나온 애벌레들이 붙을 것이다. 주변에 먹을 게 풍부하면 대여섯 개, 부족하다 싶으면 서너 개 낳은 알에서 눈도 뜨지 않고 태어난 새끼들을 벅차게 만난 알락할미새는 새끼 건사할 때가 왔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다. 몸이 피폐해질 지경으로 자갈 틈과 나뭇잎 뒤에 숨은 거미와 애벌레들을 찾아내, 하루에 제 몸무게만큼 먹어대는 새끼들을 보름 만에 성장시켜야 한다.

 

20센티미터 전후의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알락할미새는 오른 어깨에서 뺨과 새까만 눈과 이마를 지나 다시 왼 어깨까지 하얀 두건을 펼쳐 썼다. 정수리에서 목덜미를 지나 등과 날개와 꼬리까지 이어지는 검은 깃과 대조적으로 흰 가슴은 연분홍이 감도는 배로 이어지지만 수컷은 계절에 따라 의상에 약간의 변화를 준다. 여름이면 부리 아래부터 가슴까지 검은 깃으로 감싸더니 겨울이 되면 가슴 위를 흰색으로 갈아치우는 건데, 암컷은 흰색을 고집한다. 여름이 무르익기 전, 둥지를 빠져나간 다 자란 새끼들이 도처에 널린 애벌레들을 스스로 잡아먹을 때가 다가오면 알락할미새는 너그러워진다. 뺨에 노란색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새끼들은 냇가에서 이웃들과 어울리며 몸을 튼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곧 가을이 다가올 것이다.

 

나무를 잃은 산이 헐벗고 강변을 매립한 자리에 들어선 공장과 주택에서 폐수를 콸콸 쏟아내면서 알락할미새는 오염된 도시를 떠났다. 그러자 놀랐나. 버들치를 맞자며 정신 차린 사람들이 분리된 하수관으로 악취까지 차단하고 산에 열심히 나무를 심자, 제법 깨끗한 물이 흐르게 되었다. 중랑천과 안양천, 양재천과 탄천, 그리고 같은 사례를 지방의 하천들이 속속 따르게 되자 알락할미새가 도시를 찾기 시작했다. 낚싯대 드리운 강태공 사이에서 꼬리를 까딱이는 게 아닌가. 뭐 먹을 게 있나. 폐수 찌꺼기가 가라앉았던 바닥을 깨끗한 물이 닦아낸 자리에 자갈을 깔자 어쩌면! 나비와 나방이 시냇가 작은 나무의 잎사귀 뒤에 알을 낳았고 물가 자갈에 거미들이 모여드는 게 아닌가.

 

아열대에서 북극권까지 넓게 퍼져 사는 알락할미새는 사실 시냇가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이른 봄 계절풍을 타고 우리나라로 날아오는 무리도 마찬가지지만, 봄가을마다 먼 지역을 이동하는 무리도 우리 서해안의 섬들을 징검다리 삼는데, 작은 섬에는 이렇다 할 시내가 없다. 우리나라를 지나치는 철새와 나그네새의 십중팔구가 방문한다는 전남 신안군의 홍도와 주변 섬들, 그리고 인천시 옹진군 일원의 덕적군도와 서해5도를 가보자. 봄부터 가을까지 밭 울타리에 내려앉은 알락할미새는 꼬리를 까딱거린다. 논밭에도 시냇가만큼 먹이가 많은 걸 잘 아는 녀석들은 섬에 둥지를 틀기도 한다.

 

텃새라 해서 한 자리를 고수하는 건 아니다. 까치는 논밭과 키 큰 나무가 남아있다면 사시사철 한 지역을 떠나지 않지만, 박새와 딱새도, 멧새와 오목눈이도, 추운 겨울이면 산록의 양지로 모여든다. 초보 텃새인 알락할미새야 오죽하겠나. 겨울철새가 와글거리는 주남저수지에 왜가리와 백로들이 터줏대감처럼 자리잡더니 그 사이를 알락할미새도 끼어들었다. 얼음이 없는 시냇가에 꼬리를 까딱이면서. 예년보다 섭씨 2도 이상 겨울이 더워지자 10여 년 전보다 3배 이상 여름철새가 늘었다고 전문가들은 걱정한다. 지구온난화는 계절 변화를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데, 올겨울 북극을 녹인 온난화는 역설적으로 주남저수지 시냇물을 꽝꽝 얼어붙게 만들지 않았던가.

 

1999년 서울시는 제비, 물총새, 그리고 머리가 하얗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할미가 된 노랑할미새와 알락할미새 4종을 보호야생동물의 반열에 올렸다. 예전에 흔했지만 어느덧 보이지 않게 된 자연의 친구들이다. 중국은 할미새에서 형제 사이의 우애를 엿보고 우리 선조는 내 집에 둥지를 틀면 번성할 거라 여기며 반겼다는데, 하천이 맑아져 먹이가 늘었어도 알락할미새는 둥지를 틀 곳을 도시에서 통 찾기 어려운 모양이다. 남녘에서 하필 공사장에서 돌아온 레미콘 트럭의 엔진 옆에 둥지를 치고 11개의 알을 낳은 알락할미새가 알을 품지 못하고 결국 새끼를 잃었다고 운전기사는 안타까워했다. 결국 지구온난화를 부르는 개발이 사람과 알락할미새에게 문제를 일으킨 셈이다. (전원생활, 20113월호)

사진까지 곁들이면 더욱 실감 날 듯 싶어요.
그러게요. 저는 사진을 찾아 붙이는 연습부터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