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5. 6. 17. 19:54


개장 기념으로 만원 어치 이상 구입하면 라면 하나 더 드립니다.” “, 물론 맛있어요. 맛없으면 교환해드릴게요.”


새로 문을 연 식품 소매점이라면 마땅할 대꾸가 생활협동조합 매장에서 들린다면 문제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조합원이 되어 서로 돕는 생활협동조합이 아닌가. 맛과 색이 좀 떨어지더라도 소비자는 양해해야 한다. 어떤 생활협동조합 매장이 다른 생활협동조합의 매장과 지나치게 가깝게 문을 열 때에는 사전에 양해가 필요하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신뢰로 이어주어야 하는 생활협동조합끼리 경쟁하는 모습은 영 탐탁하지 않다.


대부분의 유기농산물은 농약이 들어가지 않아 영양분이 살아 있어 안전하고 깨끗하다. 생활협동조합은 그런 농작물을 비교적 높은 가격으로 소비자 조합원에게 판매한다. 이윤을 늘리려는 의도가 아니다. 소비자가 왕이므로 가격을 높인 것도 아니다. 수요와 공급 법칙을 감안한 가격은 더욱 아니다. 생활협동조합에서 소비자는 왕이 아니다. 소비자는 생산자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어야 한다.


누가 그런 걸 모르나? 현실은 간단치 않다고. 현실도 모르면서 그런 말 말라고! 은행이자는 하루도 어김없이 우리의 빈약한 재정을 압박하는데, 경쟁에서 밀리면 문 닫아야한다고! 생산자나 생활협동조합이나, 실업자가 양산될 텐데, 그걸 자네가 책임질 수 있겠나?”


생활협동조합의 원칙, 어떻게 들으면 교과서와 같은 말을 강조하는 원칙주의자를 만나면 생활협동조합을 이끌어가는 운영진은 답답할지 모른다. 하지만 조합원의 동의 없이 외형을 키우다보면 애초 절박한 마음으로 출발했던 생활협동조합의 정신을 잃고 만다. 성장을 강요하는 은행에 융자금을 덥석 받는다면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런 생활협동조합은 소비자 조합원을 왕처럼 모시게 된다. 생산자 조합원을 돈으로 압박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더 싸고, 더 큰 물건을 서둘러 내놓으라고.


한미FTA를 맺은 상황이다. 막강한 자본으로 성장한 해외 유기농산물 판매회사가 들어온다면 우리의 여럿 생활협동조합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느새 왕이 되어 버린 소비자 조합원이 생산자 조합원의 수고와 고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해외의 저렴한 무농약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선호할 텐데, 자본력에서 비교가 불가능한 우리 생활협동조합들은 어떤 대책을 준비하고 있을까? 생산자를 배려하지 않은 소비자 조합원을 덮어놓고 늘린 생활협동조합은 살아남기 어렵다. 우리 농촌도 그만큼 피폐해진다.


유기농산물은 농약을 치지 않는 조건에서 머물지 않는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뿌리지 않아 땅과 생태계를 살리고, 건강한 농산물을 재배하려는 농민의 의지를 살리며, 유기농산물을 먹으며 내일을 건강하게 이을 후손을 살리는 농산물이다. 건강한 농산물을 편안하게 받는 소비자들이 생산자에게 고맙고 미안해하는 분위기가 생활협동조합에 살아 있다면, 해외 자본이 내놓는 농산물을 외면할 것이다. 엄밀하게 따져, 먼 거리를 석유 태우며 싣고 온 농산물을 유기농산물로 보기 어렵다. 내 땅에서 제철에 생산한 농산물에 조합원의 마음이 간다면 생산자와 소비자를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생활협동조합은 FTA 파고를 능히 견딜 수 있다.


아무리 생활협동조합 조합원이라도 생산자가 누구인지 소비자들은 대개 모른다. 생산자 조합원의 노고를 피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생활협동조합이 나서야 한다. 소비자 조합원과 농촌에 가서 농약 뿌리면 간단하다는 걸 알면서 미련하게 땀 흘려 풀 뽑고 퇴비 주는 생산자 조합원의 일손을 도우면 어떨까? 바로 행동이다. 행동이 녹색소비를 이끈다면, 생산자의 고충을 소비자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생산자를 이해하는 소비자는 농산물의 생활협동조합의 다소 높은 가격이 불합리하다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뿐인가? 소비자 조합원의 손을 잡고 시골을 찾은 도시의 아이들은 고향의 이미지를 비로소 느낄 것이다. 핸드폰을 치운 아이들은 자연에 흥미를 가지며 모자란 공감능력을 키울 수 있을 테지. (충청타임즈, 2015.5.28)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10. 10. 00:57

 

미국 금융가에서 세계로 확산되는 시민 99퍼센트의 집회는 탐욕스런 자본 1퍼센트에 분노의 함성을 쏟아낸다. 경쟁을 앞세우는 신자유주의 물결은 얇아지는 중산층까지 빈곤층으로 내몬다. 소득을 일방적으로 편취하는 1퍼센트에 의해 99퍼센트가 수렁으로 빠지는 기현상은 더욱 거친 경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경쟁을 부추겨 이익을 가로채려는 세력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시장, 다시 말해 협동조합의 가치를 다시 되새겨야 한다. 분노의 물결을 넘어 이행해야 할 행동이다.

 

비교우위를 앞세우는 무역자유화는 결국 가진 자의 이윤에 충성하는데,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은 ‘FTA’라는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으로 전이되고 있다. 체급이 전혀 다른 미국과 FTA협정에 나선 우리나라는 곧 실행될 모양이다. 세계의 정치와 무역에 관한 의혹을 폭로해 유명해진 위키리크스한미FTA협정에 참여한 우리 고위 관료의 어처구니없는 비화를 공개했다. 협상에서 미국 요구에 응해 우리의 국회와 시민사회를 설득하겠다고 상대측에 약속했다는 게 아닌가. 그쯤 되면 우리 협상단은 차라리 미국인이거나 미국에 맹종하는 하수인이었던 셈인데, 그로 인해 이미 위축돼버린 우리 농업은 설 땅마저 잃게 생겼다.

 

공산품 수출을 위해 희생시킨 우리의 농업은 지금도 비참해 식량 자급률이 26퍼센트에 불과한 실정이다. 쌀이나마 자급할 수 있어 겨우 버티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계가 심각하다.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국가의 진정한 독립은 식량 자급에 있다고 했다. 무던한 노력으로 80퍼센트였던 자급률을 200퍼센트 이상 끌어올린 프랑스도 자국의 농업을 지키려 애를 쓰지만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쌀 이외 대부분의 곡물을 비롯해 육류와 가공식품을 다국적기업에 의존하는 우리는 한미FTA에 신중해야했건만 실패했다. 드골이 보기에 우리는 식민지나 다름없는 정도였다.

 

한미FTA가 실행될 즈음, 세계 최대 미국계 곡물 다국적기업인 카길이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문을 열 예정이라는 뉴스를 지난 10월 초 국내 언론이 보도했다. 충청남도의 공장이 가동되면 국내 최대 콩기름과 사료업체의 매출을 앞지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자사 농산물을 대량 가공할 테니 소비자는 값싸고 질 좋은콩기름과 사료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격 열세에 놓일 국내업체는 고전할 게 틀림없다. 장차 국내업체들이 경쟁에서 밀려난다면? 카길이 가격을 슬그머니 올려도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할 수밖에 없다. 빗발치는 민원으로 정부가 나서 가격 통제에 나선다면? 카길은 한미FTA협정의 당사자 직접 소송 조항을 근거로 우리 정부를 고소할 테고, 당연히 패소할 우리 정부는 카길이 주장하는 손실액을 세금으로 고스란히 보전해주어야 한다.

 

막대한 자본을 동원하는 카길은 콩만 취급하지 않는다. 우리가 수입하는 미국산 쇠고기의 대부분을 취급하는 카길이 아예 쇠고기 매장을 연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값비싼 한우가 파고를 막아낼 수 있을까.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한미FTA는 카길의 시장 진출을 통제할 정부의 수단을 무력화한다. 농축산물은 물론이고 그 가공식품까지 포괄하는 카길이 막강한 협상력으로 우리 정부를 굴복시켜 한국 내 매장에서 우리네 입맛에 맞는 미국산 쌀을 대거 진열해 비교할 수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농업은 어떻게 될까. 식량 자급률과 더불어 사망선고를 받지 않을까,

 

아무리 막강한 한미FTA라도 소비자의 의지까지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농약으로 땅을 황폐화시키며 농민을 착취한 관행 농산물이 낮은 가격표를 붙여도 생활협동의 소비자 조합원들이 외면했던 건, 땅과 내일을 살리려 애를 쓴 생산자 조합원들의 땀을 신뢰하기 때문이지 정부의 요구나 통제가 없었던 까닭은 아니다. 한미FTA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높아도 공정무역 커피와 설탕의 흔쾌히 사먹는 소비자의 의지가 더욱 굳어진다면, 카길 또는 그 이상의 다국적기업이 이 땅에 거듭 문을 열어 낮은 가격으로 아무리 유혹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한미FTA협정으로 자진에서 무력해진 우리 정부에 대책을 호소할 이유도 전혀 없다.

 

한미FT협정 본격 실행을 계기로 생활협동조합은 새로운 사업을 기획할 때가 되었다. 신뢰할만한 유기농산물의 활발한 거래와 더불어 생산자 조합원의 의욕을 한껏 높여줄 자본을 모을 사업이 필요한 때가 된 것이다. 더는 견딜 수 없어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려는 농민을 적극 도와 전환기 농산물도 흔쾌히 취급하는 것은 물론, 영농비도 지원하자는 거다. 도전하는 생산자 조합원의 생계와 자립을 지원하는 비용까지 생활재의 가격에 공개적으로 포함하면 어떨까.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하는 생산자와 소비자 조합원의 의지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생활협동조합은 한미FTA의 파고 따위는 능히 극복할 수 있다. 조상과 후손 앞에 뿌듯한 일이다. (푸른생협 소식지, 201111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9. 7. 12:36

 

언제부턴지 기상이변이 일상화되었다. 장마에 이은 정체전선과 극지성호우가 중부지방을 푹 젖게 만들 때, 가로등 아래 울어젖히던 매미들은 비 내리는 밤에도 절박하게 울어댔는데,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기울어진 자전축은 이맘때 태양 직사광선의 각도를 비스듬하게 기울이니 북태평양고기압이 여전히 확장돼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아파트단지의 그악스럽던 매미도 귀뚜라미에 바통을 넘겼다.

 

지난 추석, 과일 가격이 유난히 요동쳤다. 여름 뙤약볕에 탄소동화작용이 한창이어야 할 과일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 상태에서 태풍이 엄습했을 뿐 아니라 4대강 주변의 비닐하우스에 빗물이 들어차 많은 농가가 출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 완공 후 대형 보에 물이 가득차면 지하수가 흥건할 수면 아래의 농토는 과일농사를 포기해야겠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도 예측 못할 정도로 기상이변을 심화시키는 지구온난화는 어떤 농작물을 심어야 안정적인 수확을 보장할지 도무지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던가.

 

사실 우리나라의 추석은 과일과 곡식들이 갈무리될 시기보다 대체로 빠르다. 정도가 더했던 올해는 햅쌀과 과일을 추석 차례상에 올리기 어렵게 했는데, 잔뜩 흐렸던 날씨도 한몫했다. 중산층도 감히 손대기 무섭게 가격이 높은 과일이 백화점에 없던 건 아니지만 그건 식물성장호르몬에 이은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의 과한 살포 없이 불가능한 고에너지 수확물이었다. 햇살이 좋았다면 더욱 우람했을 과일들을 추석 임박해 한꺼번에 출하하느라 트럭운전기사는 대목에도 며칠을 기다려야 했으니, 예년보다 작아도 가격이 오른 과일은 운전기사와 소비자들을 울며 겨자 먹게 했다. 그 직후 갑자기 늘어난 출하량은 농약 뒤집어쓰며 힘겹게 재배한 농민마저 울게 만들었다. 가격이 푹 떨어진 거다.

 

원인을 기상이변으로 돌리면 간단하지만, 기상이변의 원인이 에너지를 과다 소비한 자신이라는 걸 반성해야 하는 우리는 안정된 내일을 생각하는 근본 대책을 더 생각해야 한다. 재작년보다 작년이, 작년보다 올해의 날씨가 변덕스러웠다면 내년 이후는 올해보다 심각해질 텐데, 앞으로 올해 이상 갈무리의 양과 질에 따라 과일의 공급과 가격이 요동친다면 생산자는 물론이고 소비자들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럴 때 나온 대통령의 대책 없는 발언은 생산자와 소비자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자급도 못하는 주제를 망각하고, ? 우리 농업을 수출산업으로 성장시키자고?

 

추석을 일주일 앞둔 96,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국 농업인 한마음 전진대회에서 식품산업과 하나 되어 생명공학과 만난 우리 농업이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한다면 중국과 같은 신흥대국에 수출해 큰돈을 버는 역사가 멀지않다!” 가슴벅차한 대통령은 전문과 책임을 갖는 관광과 체험과 예술과 문화가 융합된 농업으로 발전하자외쳤다는 게 아닌가. 누가 작성한 원고인지 모르지만, 돈보다 생명을 담보해야 하는 농사를 전혀 모르거나 알려든 적도 없는 자의 황당한 미사여구가 아닐 수 없는데, 화답한 걸까. 어떤 재벌언론은 한가롭지만 한해 수천만 원을 벌어들이는 20대 대졸 농부의 장밋빛 투자농업을 가소롭게 소개했다. 그 신기루 같은 20대가 30, 40대 이후에 어떻게 될지 예상하지 않은 채, 농업을 블루오션이라 부추겼다. 이미 투기가 된 농업이 증권회사에 상장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겐가.

 

심화되는 기상이변으로 어떤 농작물을 어떻게 심어야 안정된 갈무리와 수입이 보장될지 종잡지 못하는 우리 농업은 유전자를 조작하는 생명공학으로 절대 회복되지 못한다. 농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더욱 단순하게 만드는 유전자 조작은 막대한 시설 투자와 석유 낭비 없는 농업을 기상이변의 재물로 만들지 않던가. 성공을 무책임하게 약속하는 고부가가치 농산물 수출은 일부 투자농민의 부를 잠시 늘리겠지만 땅의 안정적 생산력을 해칠 뿐더러 이 땅에서 자식을 키워야 하는 장삼이사에 고통을 심각하게 안겨줄 수밖에 없다. 26퍼센트에 불과한 자급률이 더욱 곤두박질칠 게 아닌가.

 

대안은 농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자연스런 농업의 회복이다. 농약과 석유 과소비 없이 아예 불가능한 소품종 다량생산이 아니라 땀과 신념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제철 유기농업이다. 그래야만 기상이변을 이겨낸다. 지구가 자전축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공전하는 한, 계절은 지속된다. 기상이변도 그 범위 내에서 요동칠 테니, 우리는 계절에 순응하는 전통 농업을 반드시 보전해야 한다. 그를 위해 소비자는 달면 삼키고 아니면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는 왕 같은 태도를 지양하고, 자식이 살아갈 땅을 살리며 어렵게 농사짓는 생산자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당연히 생활협동조합이 아름다운 가교를 계속 자청해야 할 테고. (푸른생협 소식지, 2011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