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0. 8. 26. 21:54

 

기상이변. 식상한 단어가 되었다. 도무지 경각심을 주지 못한다. 이변이 일상이 된 세상, 얼마나 파국적인 이변이 닥쳐야 긴장할까? 되풀이되는 기상이변 기록에 시큰둥해하는 사람들은 아파트 가격 상승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기상관측 이래 최고 더위였다는 1994년의 기억은 희미하다. 다음으로 더웠던 2018년 여름은 형벌 같았지만. 이듬해 여름이 덥지 않았다. 다시 와도 견디겠다 싶은데, 2019년은 겨울이 더웠고 제설차가 필요 없었다. 최초의 기록이지만, 도시에서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숲은 달랐다. 조경 전문가는 늘어날 해충을 걱정했고 올봄 매미나방 유충이 걷잡을 수 없었다.

 

2020년 첫 기상이변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길고 수량이 많은 장마다. 단단한 기반 위의 고층아파트에 사는 도시인의 처지에서, 화면 보기 미안한 뉴스가 하루하루 이어진다. 농촌 마을의 농경지가 모조리 물에 잠겼다. 흙탕물에 집과 농토를 잃은 농부는 망연자실한데, 재난을 보여주던 방송사의 다음뉴스는 채소가격 상승이다. 농부의 어려움보다 도시 소비자를 자극해야 시청률이 오르기 때문일까?

 

수확 앞둔 작물을 출하하지 못하는 농민의 안타까움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돈을 풀며 어느 정도 달랠지 모른다. 그런 게 혜택이라면 혜택일 텐데, 소외되는 농민은 있으리라. 세상 물정에 어두운 농민은 그렇다 치고, 가격이 오른 식자재를 구입해야 하는 도시 소비자는 길고 긴 장마의 희생자일까?

 

농촌 없는 도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소비자에 판매할 농작물이 부족한 순간 도시는 아비규환에 빠질 것이다. 농작물뿐인가? 먼 곳의 맑은 물을 받아 오염시켜 밖으로 내버리는 도시는 외부에서 전기와 가스, 통신망을 가져와 쓰레기를 만들고 손을 턴다. 흙탕물에 잠겼던 가재도구를 닦을 물은 물론, 마실 물도 모자라는 농부는 장마 속보를 안락하게 시청하는 도시인을 먹여 살린다.

기상이변이라는 말. 언제 일상 언어로 등극했을까? 19988월 강화는 하루 620밀리의 빗물을 감당해야 했다. 아들 토일이를 재운 수필가 박광숙 선생은 두려움을 빈들에 나무를 심다에 담담하게 전했다. 바다가 인근인 강화에 산사태는 드문데,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상처가 남았다. 이후였을까? 심심치 않게 들리던 기상이변!” 어느새 식상해졌는데, 파국을 염려하는 감성 소유자는 내년 이후에 어떤 식상함으로 전율해야 할까?

 

한 언론은 지난 5년 통계를 풀이했다. 여름 집중호우 희생자의 절반 가까이가 60대 이상 고령자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정보 수집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출연한 전문가는 경험에 의지하는 나이든 농부는 지금의 집중호우는 과거와 다른 패턴을 보이기 때문에 기상특보 등을 유의해야하지만 하천이나 계곡 등에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강조했다.

 

젊었던 시절의 경험에 의존하다가 기상이변이 일상인 요즘에 사고를 피하지 못한다는 건데, 노인의 잘못일까? 비가 거세게 내리면 노인은 안전한 집에 머물러야 마땅한 걸까? 도시인의 상식이다. 이번 기상이변에서 90대 노인은 논밭이 제방 붕괴로 침수되는 모습은 평생 처음이라고 증언했다. 기후변화가 기후위기로 이어지는 요즘, 집중호우가 예전과 다르다는 거, 경륜 있는 농부가 모를 리 없다. 그러므로 어른이기에 논밭에 더 나가야 했다. 나이든 농부가 논둑을 걷기만 해도 벼는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잎사귀를 바르게 펴지 않던가.

 

물꼬를 보러 나왔을 80대 농부가 급류에 휩쓸렸고 숨진 상태에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는 무너진 제방이 토하는 급류에 대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험에 없는 이번 제방 붕괴의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의 영역이더라도, 합리적 의심이 세간에 모인다. 관측 이래 최대 수량이지만, 장마철 집중호우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낙동강에서 발생한 제방 붕괴는 이명박 정권이 밀어붙인 ‘4대강 사업과 무관할까? 섬진강의 붕괴는 상류 대형 댐의 급작스러운 방류와 관계가 없을까?

 

여러 기상전문가가 지적하듯, 올 장마는 지구온난화가 빚은 재난이다. 북극해의 빙하가 녹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여름에도 찬바람에 둘러싸인 북극권이 누적되는 온실가스로 따뜻해지면서 냉기를 단단히 붙잡는 상층의 제트기류가 헐거워진 결과라고 주장한다. 북극권의 냉기가 아래 위도 지역으로 내려가는 이유가 그렇다는 건데, 온난화의 문제는 더 커진다. 빙하 녹은 북극권이 군청색 바다로 바뀌면 하얀색 빙하에 반사하던 햇살이 바다에 흡수돼 수온이 상승한다는 게 아닌가. 전문가들이 알베도라 말하는 현상이다. 여파로 제트기류는 더 헐거워지고 툰드라지대 기온이 오른다. 올여름 섭씨 38도를 넘나든 시베리아에 한반도 면적의 산불이 발생했다. 영구동토층 아래 얼어붙은 메탄이 스멀스멀 분출되며 불탔다. 우리 금수강산이 빗물에 젖었을 때 유럽은 햇볕에 타들어갔다는데, 북극의 알베도 현상과 무관할까?

 

점점 뜨거워지는 북태평양고기압이 북쪽 차가운 기단과 한반도에서 경합하며 오르내리다 한동안 비를 뿌리던 장마는 농사의 기반이었다. 장마철 빗물을 믿고 농부는 벼농사와 밭농사를 준비해왔다. 장마철 지나자마자 한반도를 지배하는 북태평양고기압의 위세에 눌려 우리는 열대야에 시달렸는데, 올해는 달랐다. 북쪽의 차가운 기단이 밀리지 않자 기상청은 관측 이래 신기록을 다시금 발표했다. 위기에 빠진 기후는 인류와 생태계의 멸종을 걱정하게 만드는데, 내년 이후 어떤 이변이 발생할까? 장마철이 아니라 우기를 맞아야 할까? 뜻밖에 혹독한 마른장마를 겪을까? 기상이변의 메뉴는 우리가 종잡지 못한다.

 

사진: 미국의 거대한 단일농업.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무거운 농기계에 의존하는 농업은 토양생태계의 다양성을 비효율로 취급한다. 석유를 가공한 화학비료는 물론이고 막대한 제초제와 살충제 역시 석유를 가공했으며 농기계로 수확한 단일 품종의 농산물을 전 세계에 공급하며 운송, 저장, 가공, 폐기하는 과정에서 소비하는 석유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다국적을 넘어 초국적을 지향하는 단일 품종의 농업은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다.

 

농촌의 물웅덩이를 모조리 없앤 요즘, 농경지는 재해 완충력을 잃었다. 기계화를 위해 산비탈과 구릉지의 논밭을 절도 있게 바꿔놓은 게 화근이었다. 주민이 함께 사용하던 방죽을 관개용으로 개조한 저수지와 작은 보에 물을 가둔 인근 하천에서 농업용수를 공급하면서 집중호우에 대비할 여유를 잃었다. 4대강 사업이 키운 대형보와 물을 천문학적으로 담은 다목적댐은 농부의 경륜을 비웃는다. 한꺼번에 연 수문이 토해내는 급류는 못 보던 패턴이다. 기억에 없는 지구온난화가 파국을 빚었다.

 

비가 내리면 농촌의 어른은 물꼬를 살피러 나온다. 내 논과 이웃 논의 물량을 조정하는 일상이다. 천수답에 의존하던 시절, 물꼬는 이따금 이웃 사이에 드잡이를 일으켰지만 대개 우애의 물길을 터주었다. 수천 년 이어온 우리 땅의 천수답은 저소득 국가의 창피한 후진농업이었을까? 욕심이 빚은 착각이다. 기계화와 관개를 선진농업으로 배운 우리는 석유 지원 없는 농업을 상상하지 못한다. 종자의 선택과 파종, 경운과 수확, 운송과 저장, 그리고 가공과 폐기에 이르는 과정에 들어가는 석유는 막대하고, 석유는 머지않아 고갈될 거라는 예상에 눈을 감는다. 거대 자본이 개입할수록 농업은 지구온난화에 기여한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갖지 못한다.

 

코로나19는 초고속 초고층 철근콘크리트 문화가 빚은 재난이다. 화석연료 과소비가 빚은 파국의 다른 모습이다. 재난이 일상이 된 농촌도 다르지 않다. 다국적기업이 강요하는 다수확품종을 획일적으로 심고, 품종에 맞춘 농사법으로 농촌을 길들이면서 비롯되었다. 다양성을 잃은 농업은 감당하기 어려운 질병을 불러왔다. 조류독감과 구제역만이 아니다. 전에 없던 농경지와 과수원의 질병도 마찬가지다. 집중호우로 제방이 무너지고 물꼬 보러 나온 노인이 급류에 휩쓸리는 현상도 탐욕의 산물이다. 가족농, 소농 시절에 없었다.

 

집중호우에 나이든 농부가 논둑에 나선 풍습이 정겨웠던 시절, 코로나19는 없었다. 생태적 완충력으로 감염된 이웃은 지역에서 치유되었을 텐데, 우리는 탐욕에 젖었다.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일상은 정부가 얼마 전에 발표한 그린뉴딜에 없다. 재난을 생태적으로 완충하던 조상의 삶에서 희망을 구해야 한다. 몽상일까? 다음세대의 생존이 달렸는데 불가능해야 할까?

 

1950년대, 석탄으로 난방하던 영국은 치명적 스모그를 경험한 뒤 삶의 방식을 바꿨다. 상상하기 어려웠어도 난방연료 목록에서 석탄을 없앴다. 석유에서 벗어나는 농업, 지역에서 자급하는 농사는 불가능하지 않다. 코로나19를 모르던 시절의 전통이었다. 우리나 세계나. (작은책, 20209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8. 5. 6. 18:55

 

4월 중순 절정인 벚꽃이 언젠가부터 꽃봉오리를 서둘러 펼치자 상춘객들의 맘이 급해졌는데, 올해는 특이했다. 유난히 혹독했던 겨울을 이었으니 늦겠다 싶던 봄볕이 4월 초순 별안간 따뜻해지자 벚나무와 산수유가 꽃봉오리를 급히 펼쳤는데, 아뿔싸 눈이 내린 게 아닌가. 태양 입사각이 커진 만큼 때 아닌 눈이야 금방 녹았어도 부담스럽게 서늘했고, 상춘객은 패딩점퍼를 꺼내야 했다.


4월 날씨가 다시 따사로워져도 여름을 느낄 정도는 아닌데, 딸기는 끝물이 되었다. 방울토마토에 자리를 내주고 구석으로 밀린 딸기는 떨이용이다. 그렇다고 딸기가 시장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정밀한 냉동기술이 널리 보급된 요즘, 사시사철 맛볼 수 있다. 기상이변과 과학기술은 계절을 종잡을 수 없게 만들었지만 딸기는 요즘 철모르는 과채소가 되었다. 딸기뿐인가? 방울토마토도 마찬가진데 멀지 않은 과거, 딸기는 5월부터 제 계절을 시작했다.


남은 딸기 먹어치우는 현충일 농촌 답사여행을 이젠 대학가에서 볼 수 없다. 딸기를 걷어내고 포도농사에 들어가는 농부도 요즘 없다. 딸기가 비닐하우스로 들어가면서 포도농사와 분리되었다. 비닐하우스의 딸기는 대부분 흙을 버렸다. 수경재배다. 선택한 종자에 최적의 온기와 빛을 공급하면서 뿌리를 적시는 물에 적량 적시의 영양분을 제공하는 장치에 의존하는 농부가 식물성장촉진제를 추가한다면 계란만큼 커다란 딸기를 수확할 수 있다. 그런 딸기는 참외처럼 속이 비기도 한다.


바둑계에 나타나 세상을 놀라게 한 인공지능이 가전제품을 넘어 농업까지 파고들려나 보다. 언론이 인공지능 기술을 탑재한 농업을 취재하는 시절이 되었는데, ‘스마트팜이라고 소개한다. 미래 산업으로 떠올라야 하는 만큼 스마트 농업은 촌스럽다 여기나 본데, 최첨단 기계항공공학의 센서를 농작물에 부착하는 스마트팜은 삽이나 호미를 거세한다. 햇볕에 그을린 농부도 퇴출할지 모른다. 시장에 출하해도 좋을 만큼 잘 익은 딸기를 자동으로 잘라 크기 별로 분리해 포장하는 기술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손길 투박한 농부보다 동작 재빠른 종업원이 어울릴 법하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총아로 등극할 스마트팜은 필요한 물과 영양분을 적시 적량 공급하므로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관련 과학자는 자부한다.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는 물론이고 인건비까지 줄이면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거라 덧붙이지만 스마트팜이 창출할 인력은 농민과 거리가 멀다. 최첨단 농업이 지향하는 몇 안 되는 인력은 빅데이터 분석과 정밀산업이겠지. 개개 농민이 주도할 수 없는 4차산업혁명은 농업마저 대기업에 종속시킬 텐데, 스마트팜에 투자가 지속된다면 농업도 공업처럼 경쟁으로 치달을 게 틀림없다. 자본의 경쟁으로 신선한 농산물을 싼 값에 공급받을 소비자는 마냥 반겨야 할까?


유럽의 소비자들은 신선한 채소와 과일의 절반 이상을 스페인 알메리아의 비닐하우스에서 공급받는다. 신선할 뿐 아니라 가격도 저렴하니 같은 농산물을 생산하던 자국 농민들이 속절없이 쇠퇴하는 걸 목도해야 했을 것이다. 경쟁에서 밀린 자국의 농업 기반이 허물어진 이후 유럽의 소비자에게 선택의 여지는 좁다. 넓은 도로나 비행기로 대규모로 투하되는 농산물에 싫든 좋든 의존해야 한다. 소규모로 다양하게 재배하던 고유 품종이 사라졌으니 맛과 요리 방법이 단순화된다. 지방 특유의 향취와 식단은 잊힌다.


아프리카와 유럽을 직선거리 5km로 잇는 지브롤터 해협은 수심이 깊고 물살이 거세다. 목숨을 걸고 그 해협을 건너 스페인으로 들어온 아프리카인은 수확을 앞둔 알메리아 비닐하우스에서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일이 단순한 만큼 수입이 일천하고 몸은 힘겹다. 정해진 온도와 습도, 일정한 영양분에 최적인 유전자를 가진 농산물로 가득한 비니하우스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데, 열매는 한꺼번에 열린다. 신선도를 유지하는 상태로 경쟁 농장보다 먼저 수확해 유럽 전역으로 공급하려면 농부? 아니 삯일꾼은 곯는다. 알메리아의 농산물이 무차별로 공급되는 지역의 농민들이 뒤를 이어 굶주린다.


20115월 독일 함부르크는 어떤 항생제도 완치하지 못하는 슈퍼 박테리아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함부르크에서 파급된 슈퍼 박테리아 공포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돼 1200여 감염이 발생했고 11명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원인은 알메리아에서 수입한 오이, 토마토, 상추와 같은 신선 농산물이었다. 물이 문제였다고 나중에 밝혀졌다. 덥고 건조한 알메리아는 지하수에 의존하지만 비닐하우스 면적이 320제곱km에 달하니 공급에 한계가 있었다. 하는 수없이 하수를 정화했지만 농장의 경쟁은 부주의로 이어졌고, 슈퍼 박테리아가 번지는 결과를 피하지 못한 것인데, 스마트팜은 그럴 리 없을까?


요즘 전통시장은 살아 있는 닭을 손님 앞에서 잡아 털을 벗기고 내놓지 않는다. 법으로 금지돼 있다. 죽이는 과정이 혐오스럽고 비위생적이기에 금지했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살아 있는 닭을 옮기는 과정에서 조류독감이 번질 수 있기에 엄격하게 제한할 텐데, 깨끗하게 냉장한 닭보다 요리된 닭고기에 익숙해진 소비자도 살아 있는 닭을 외면할 게 분명하다. 아파트 위주인 도시에서 산닭을 어떻게 요리한다는 겐가.


이미 어느 정도 스마트화 된 상태인 거대 농장의 닭은 어떤가? 충분히 위생적일까? 분명한 것은 마당의 닭이 밀폐된 거대한 양계장 안으로 들어간 이후, 조류독감이 세계적으로 폭발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조류독감으로 수천마리를 살처분할 때, 유기적인 방법으로 사육한 작은 규모의 농가는 조류독감에서 상당히 자유로울 수 있었다. 유기적인 축산을 고집하는 미국 폴리페이스 농장의 조엘 샐러틴은 분명히 밝힌다. 다국적기업의 농장보다 훨씬 깨끗하다는 걸 과학적으로 공식 확인하면서 풍미가 살아 있는 만큼 소비자 만족이 높기에 제 가격을 받을 수 있다며 강조한다.


흔해빠진 바나나가 사실상 멸종위기다. 양판점의 식품매장은 물론이고 길가의 과일노점마다 사시사철 쌓아놓지만 유전적 다양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많은 열매를 빠른 시일 안에 주렁주렁 매다는 종자를 세계의 모든 농장에서 획일적으로 재배하면서 그만 곰팡이에 약해지고 만 것이다. 세계 곳곳 농장의 바나나는 한 그루나 다름없다. 유전자가 완벽하게 같은 까닭에 퍼지는 곰팡이에 속수무책이다. 곰팡이 감염의 징후가 나타나면 다국적 기업의 지배에 있는 농장은 재배 중인 모든 바나나를 불태운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최대 반경 3km의 양계장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하는 공장식 축산과 다르지 않다.


조류독감이 빈번한 양계장과 마찬가지로 곰팡이에 취약한 바나나도 과학기술을 접목한 일종의 스마트팜이다. 거대 자본이 경쟁적으로 투자하는 스마트팜은 이윤추구가 최우선이다. 생산성을 높이려는 스마트팜은 농작물과 축산물의 유전자를 극도로 단순화한 상태에서 생산조건을 획일화하고 공정을 자동화하는 까닭에 일자리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막대한 이윤일 독점하려는 스마트팜 자본은 미래 산업 여부와 관계없이 농민과 농촌을 철저히 배제할 것이다. 거대한 투자와 이윤의 독점을 추구하는 산업은 농업이든 아니든, 석유의 지원 없이 존속이 아예 불가능한데, 석유는 2005년 전후에 고갈을 예고한 바 있다. 스마트팜은 스마트하지 않은 이유가 그러하다. (작은책, 20185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7. 1. 09:03

 

권정생 선생의 7주기가 얼마 전 지나갔다. 조촐한 추모 행사가 열렸는데, 가고 싶어도 머뭇거리게 된다. 적지 않은 인세가 들어와도 청빈보다 평생 가난하게 산 권정생 선생은 생을 거둘 때까지 자신의 영혼을 더럽히지 않았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7년이 지났어도 세파에 찌든 몸으로 찾아갈 수 없었다. 북한 주민의 3분의1이 굶주린다는 말이 들릴 때, 서글픈 세상에서 기쁜 이야기를 쓸 수 없다던 권정생 선생은 죽을 먹어도 함께 살자며 독자에게 북한 지원을 호소한 적 있다.


밥은 바빠서 못 먹고, 죽은 죽어도 안 먹고, 술만 술술 잘 넘어간다.”는 주당의 너스레가 있는데, 동지 때 아내가 팥죽을 챙기지 않는다면 죽 먹을 기회는 거의 없다. 술술 잘 넘어가는 술로 고주망태가 된 다음날 전문식당을 찾은 적이 드물게 있고, 아메리카노가 지겨울 때 단팥죽을 주문할 따름이다. 그저 죽은 별식일 따름인데 죽으로 끼니를 이어야 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 그런 죽이 쇠약해진 몸을 거뜬히 일으키는 모습을 보았다. 지율스님이 KTX 천성산 구간 터널의 부당함을 알리며 100일 가까이 수행하던 단식을 마칠 적이었다.


50년이 넘는 기억 속에 돈이나 먹을 게 없어 굶은 적은 없지만 두어 차례 단식은 했다. 지율스님을 응원하려 조계사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마음을 모을 적에 고작 하루 3끼를 굶었고 물론 견딜만했다. 그날 함께 단식한 수녀들은 24시간 먹는 이야기만 꺼냈다. 팔도음식을 거쳐 각종 샐러드로 이어질 때마다 군침을 다셔야 했는데, 청양고추를 넣어야 샐러드도 제맛이라는 말에 기가 질리기도 했다. 단식을 마치면 조계사 앞 수레에서 파는 수수팥떡부터 먹으리라 다짐했건만 그 시간에 수레는 떠나고 없었다.


타의로 끼니를 거른 적 없으니 굶주림의 고통을 이해할 리 없는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 적은 있다. 아직 젊었던 30대 후반의 일이다. 굴업도 핵폐기장을 반대하며 들어간 단식이었다. 주위에서 하도 겁을 줘 잔뜩 긴장하기도 했지만 3일 만에 중단했으니 배고플 기회가 없었다. 10끼 굶고 찾은 식당에서 허연 죽을 미지근한 물에 풀어 내주었는데, 그걸 조금 마시고 일어서니 참기 어려운 허기가 갑자기 밀려왔다. 단식보다 복식이 어렵다니 죽보다 부드러운 음식, 하필 초콜릿을 골랐다. 이후 얼마나 배가 아팠는지. 족히 일주일은 고생해야 했다.

 

 

마른 논에 물 들어가고, 자식들 입에 이팝 들어가던 때

 

청주의 명물 중 하나는 입구 4차선 도로를 덮은 가로수 터널일 테지만 시민들이 지켜낸 산남동의 원흥이 방죽도 빼놓을 수 없다. 2003년 산남3지구 주택 개발 사업이 예정된 곳은 계단식 논이 넓었다. 공사가 시작될 즈음 법원과 검찰청이 예정된 터에서 조금 떨어진 원흥이 방죽에 새카만 두꺼비 올챙이들이 거대한 무리를 이루며 이동하고 있었다. 보호대상종이던 두꺼비의 오랜 산란터라는 걸 확인한 청주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행동했고, 부족하나마 원흥이 방죽의 훼손을 막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6천 가구가 넘는 산남동의 번듯한 아파트에 살림살이를 들여놓은 이 가운데 원흥이 방죽을 기억하는 이 드물다. 그래서 그런가. 산란하는 두꺼비가 해마다 줄어든다.


법원과 검찰청으로 이어지는 넓은 도로의 양 측편은 이팝나무 가로수가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5월 초 회의 참석을 위해 원흥이 방죽 근처의 두꺼비 마을을 찾았더니 이팝나무 가로수들은 저마다 작고 하얀 꽃을 활짝 펼쳐놓았다. 과연 흰밥 한 주발을 엎어놓은 모양 그대로였다. “마른 논에 물 들어갈 때와 자식들 입에 이팝 들어갈 때가장 뿌듯하다는 말이 있다. 이때 이팝은 흰 쌀밥을 뜻한다. 농경사회에서 24절기의 입하(立夏)는 한참 배고플 시기였을 것이다. 그때 꽃이 피니 입하나무로 불렀다는 말도 있는데, 겉보리도 수확하기 전이다.


저장해둔 쌀이 벌써 다 떨어진 입하 무렵이었을까. 들판의 보리가 봄 가뭄으로 타들어갈 즈음, 권전생 선생은 마을 할머니에게 듣던 안동지방의 굶주림을 가만가만 전한다. 방문 닫아걸고 밥을 먹고 있으면 문을 부수고 느닷없이 들어선 거지가 밥주발을 빼앗아 달아났다고 한다. 뺨을 후려쳐 뱉어낸 밥알까지 긁어 먹었던 시절, 뒷산 애기무덤은 발 디딜 틈 없이 애기들이 묻혔고 날보리를 껍질 째 손바닥으로 비벼 먹은 거지들이 주린 배를 움켜쥐며 떼로 죽어갔다는 노인의 기억은 권정생 선생이 태어나기 전, 1920년대 우리 조상의 피눈물나는 고통의 한 단면이었다.


겉보리도 먹지 못하고 죽어간 조상의 후손은 요즘, 요령 있게 밥, 아니 칼로리를 줄이려 애를 쓴다. 밥은 별로 먹지 않는다. 하루 3, 일주일 21끼 중에 밥은 식단의 절반도 차지하지 못한다. 아침을 거르는 경우도 많지만 국수나 빵으로 대신하거나 저녁 때 술 한 잔과 안주로 때우기 일쑤다. 어젯밤 술 때문에 아침을 마다할 적이 많으니 이래저래 쌀 소비량은 줄어든다. 1970년대에만 해도 밥주발에 한 주발을 더 엎어놓은 듯, 고봉을 눌러 담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주발보다 작은 그릇에 채워담지 않아도 으레 남긴다.


허기진 구석을 조금도 찾을 수 없는 요즘 사람들은 칼로리의 대부분을 밥보다 반찬에서 챙긴다. 주문하는 도시락도 밥보다 반찬이 훨씬 많다. 밥은 그저 짜고 맵고 단 반찬을 중화시키려 먹는 용도로 전락했는데, 굶주림을 잊은 우리는 쌀 이외 음식의 자급률이 3%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잊곤 한다. 쌀 자급률마저 80%대로 떨어지고 말았으니 원산지 표시가 허술한 식당의 밥이나 편의점 삼각김밥의 쌀 출처는 의심해볼 일이다.

 

 

비만은 가난의 상징?

 

맨 처음 뷔페식당에 들어간 게 언제였던가. 1980년대에만 해도 대단한 부자가 아니라면 엄두 낼 수 없었는데, 어느덧 일상으로 다가왔다. 결혼식이나 생일에 초대받아 찾는 뷔페식당마다 가득 쌓은 음식. 출처는 과연 어디일까? 접시를 몇 차례 교환하며 받아오는 산해진미의 원산지를 확인하는 손님은 거의 없다. 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 포장지 뒷면의 깨알 같은 글자를 유심히 살피는 소비자일지라도 유전자를 조작한 농산물인지, 광우병 위험이 높은 고기인지, 후쿠시마 일원에서 잡아온 물고기인지 뷔페식당에서 따지지 않는다. 버리는 음식도 상당할 것이다.


해마다 우리나라에서 버리는 음식 쓰레기는 얼마나 될까. 2008년 환경부는 일인당 하루에 평균 280그램을 버린다고 조사했으니, 인구를 곱하면 하루 14000톤이고 해마다 510만 톤의 음식 쓰레기가 발생하는 셈이다. 처리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식량의 70% 이상 수입하는 처지에 지나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환경부는 식당이나 가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가 많다고 밝혔지만 식품회사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가정에서 그렇게 많은 음식 쓰레기를 배출할 리 없다. 식품 제조공장의 발생량은 영업비밀일까?


먹는 양보다 상해서 버리는 고기가 더 많을 때가 드물지 않은 나라가 미국이다. 가공과정에서 대장균이나 식중독 균에 오염된 사실이 밝혀지면 그 회사의 같은 제품을 지체없이 폐기하기 때문이다. 주로 대형 식품회사의 제품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2004년 만두소 파동과 2008년 중국산 유제품의 멜라민 오염 사건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많은 음식이 상품화 전에 버려졌던가. 멀쩡해도 버린다. 오스트리아 최대 도시인 비엔나에서 하루에 버리는 가공식품은 두 번째로 큰 그라츠에서 소비하는 양과 같다. 포장도 뜯지 않은 빵과 유제품이 유통기한 지났다는 이유로 전량 폐기된다.


멀쩡한 상태로 버린 음식을 일부로 찾아 먹는 사람을 프리건(freegan)’이라고 한다. 낭비적 삶을 행동으로 비판하는 미국 프리건의 상당수는 고학력 전문직이라지만 그들이 소비하는 음식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유통기한에 근접해 폐기 대상인 식품을 모아 저소득 계층에 무료로 나누어주는 정부나 민간단체의 푸드뱅크(food bank)’ 사업은 우리나라도 실시하지만 결식 시민을 없애지 못한다. 어차피 버릴 음식이므로 식품회사에서 기꺼이 푸드뱅크에 내놓지만, 유통기한 지난 재고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모두 내놓으면 새로 팔 물건이 그만큼 줄어들지 않은가.


음식 쓰레기가 넘치는 세상이건만 굶주리는 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무료 급식소마다 점심 줄이 길어지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 덕분인가? 굶어서 죽어가는 사람은 아주 드물지만 비만이 가난의 상징이 되었다. 예전에 없던 역설이다. 여유가 없어 값싼 가공식품을 허겁지겁 먹는 가난한 계층에 비만이 늘었다는 건데, 필수 영양소나 비타민이 결핍된 가공식품에 의존하다 젊거나 어린 나이에 성인병에 접어들기도 한다.

 

 

녹색혁명과 유전자조작

 

내일도 3끼 먹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사람은 세계에 얼마나 될까?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30명은 진종일 굶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30명은 3끼 먹을 자신이 없다. 분쟁과 갈등으로 구호식량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근본 원인은 다른 데에서 찾아야 한다. 식량을 생산해오던 기름진 농토에 말뚝을 박은 다국적기업이 플랜트농업단지를 만들어 돈 많은 국가에 팔기 위해 기호식품이나 농산물을 재배한다. 식량은 언제 어디에서나 기본적으로 이웃과 나눴지만 지금은 아니다. 상품이다. 돈이 없으면 열외일 수밖에 없다.


록펠러와 포드재단의 후원으로 1943년 멕시코 소노라 주에서 시험한 녹색혁명은 대성공을 거뒀다. 적시 적량의 물과 엄선한 화학비료를 적기 투입하자 밀은 3, 옥수수는 2배의 수확을 올렸다. 과학자가 개발해 종자회사가 공급하는 다수확품종이다. 그 씨앗에 맞는 농사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자 2모작은 물론 3모작까지 가능했다. 기아로 허덕이는 지역의 식량은 충분히 공급하게 될 것으로 믿을 만했다. 다수확품종을 심는 농민은 이윽고 조상이 물려준 씨앗을 버렸다.


다수확품종을 대규모로 심기 위해 농민은 소박하게 농사짓던 농토를 바꿔야 했다. 무거운 농기계에 맞춰 경작지를 커다랗고 반듯하게 정리한 다음, 적지 않은 석유를 소비해야 했다. 막대한 투자에서 소외된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해야 했다. 남은 농부는 돈이 들어가는 만큼 수확한 농작물은 적정 이윤이 보장된 시장에 팔아야 했는데, 씨앗을 남기면 계약위반이다. 농부는 해마다 다수확품종의 씨앗을 종자회사에서 구입해야만 했다. 내년에 심을 씨앗을 몰래 갈무리했다 들키면 감당 못할 벌금이 부과된다.


녹색혁명 이후 농작물은 엄연한 상품이다. 가난한 지역의 인구는 농산물을 구입할 수 없다. 농작물의 생산과 소비 뿐 아니라 운송과 유통까지 통제하는 다국적 식량 자본은 다수확 농작물의 공급 방향을 바꿨다. 과잉 생산된 곡물을 가축의 사료로 공급하는 편이 훨씬 이익이라는 걸 간파한 뒤의 일이다. 요즘 미국의 축산자본이 공급하는 쇠고기가 그렇다. 쇠고기 1킬로그램은 16킬로그램의 옥수수를 먹인 결과물이다. 옥수수는 어떤가. 100칼로리에 해당하는 옥수수를 수확하려면 그 10배인 1000칼로리 열량의 석유를 들이부어야 한다. 농기계와 운송트럭이 태우는 석유만이 아니다. 석유를 가공한 농약과 화학비료도 만만치 않게 사용한다.


옥수수뿐이 아니다. 콩이나 감자도 마찬가지다. 시금치와 당근, 사과나 포도, 아몬드나 땅콩, 돼지고기나 닭고기, 그 가공식품, 우유와 낙농제품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음식이 아니라 석유를 먹는 것과 같다. 그 과정에서 낭비되는 물도 상당한데 강이 오염되거나 지구온난화 여파로 물줄기가 줄어들자 농부는 지하수를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느라 소비되는 석유도 무시할 수 없는데 우리나 미국이나 농촌의 지하수맥은 점점 깊어진다.


제초제와 살충제의 피해가 확산되면서 녹색혁명은 생명공학에 권위를 넘기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옥수수의 30% 이상, 콩의 절반이 유전자조작(GMO)이다. 세계의 곡물창고를 자임하는 미국은 그 비중이 더욱 크다. GMO 씨앗 역시 기업에서 구입해야 한다. 경작에서 가공, 운송애서 저장에 이르는 과정마다 막대한 석유가 들어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지역 단위의 종자회사에 구속되는 녹색혁명과 달리 GMO는 몇 개 안 되는 다국적기업에 세계의 농부와 소비자가 종속된다. 녹색혁명은 지역적 단작을 몰고왔지만 GMO 농작물은 세계가 동일하다. 농작물 고유의 유전적 다양성은 줄어들고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은 떨어진다.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농작물

 

우리나라에도 흔해빠질 정도로 수입하는 바나나는 시방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튤립처럼 뿌리를 뜯어 심는 바나나는 여러해살이 풀이지만 사실상 세계가 한 그루를 심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그 바나나에 곰팡이가 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농작물을 빼곡하게 심으면 질병은 순식간에 퍼진다. 목적에 맞춰 극단적으로 육종한 닭이나 오리는 유전적으로 단순하다. 그런 가금에 조류독감이 쉽게 퍼지듯, 바나나 곰팡이도 무섭다. 전파를 막으려면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된 축사 안전반경 이내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하듯, 넓은 농장을 한꺼번에 불태워야한다.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GMO 씨앗에 포함된 조작된 유전자는 엉뚱한 식물의 유전자를 오염시킨다. 다국적 농화학기업 몬산토가 독점 공급하는 GMO 중에 특정 제초제에 저항성을 갖는 씨앗이 있다. 몬산토가 독점 판매하는 라운드업’(Roundup, 한국 상품명은 근사미’)을 뿌려도 끄떡없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것인데, 콩과 유채 속의 조작 유전자가 옮겨가면서 잡초까지 끄떡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른바 수평이동이다. GMO를 개발할 때 몰랐던 독성이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먹는 가축이나 사람에게 피해를 안기는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다. GMO에 질병이 번진다면 대책 세우기 무척 어렵다. 생산량이 급감해 굶주림이 만연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은 유전적 다양성을 상실한 농작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곡창지대의 가뭄으로 옥수수와 밀 생산량이 줄어들자 국제 곡물가격은 크게 치솟았다. 2010년과 2012년 발생한 러시아의 가뭄은 국제 밀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져 아프리카 지역의 국가에 기아를 부추기고 말았다. 북중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값싼 미국 옥수수가 멕시코로 밀려들어가자 원산지인 멕시코의 옥수수 농업이 붕괴되고 말았다. 자급 기반을 잃은 멕시코 민중은 미국 옥수수로 또띨라를 반죽할 수밖에 없었는데, 가뭄은 옥수수 가격을 끌어올렸다. 식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계층이 폭동을 일으켰지만 미국 기업의 세계무역기구 제소를 두려워하는 멕시코 정부는 진압 이외에 다른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


바이오디젤로 가공해 챙기는 이익이 옥수수 수출보다 크자 다국적기업은 수출 물량을 줄였고 옥수수의 가격은 더욱 치솟았다. 옥수수를 사료와 식용유 재료로 수입하는 우리나라에 큰 영향은 없을까? 식용유와 사료 가격의 상승은 가계소비 위축을 넘어 가공식품과 축산업계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로 아직 큰 문제가 없다지만 마냥 안심할 수 없다. 수출전선에 차질이 생기면 식량 부족 현상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다. 한두 기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반도체와 자동차는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정부는 노동쟁의를 가혹하게 억압한다.


구입할 돈이 충분해도 식량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 16세기 거대한 노천은광에서 큰돈을 벌어들인 볼리비아 포토시의 스페인 출신 귀족은 유럽에서 식량을 실은 배가 제때 접안하지 못하면 굶거나 쥐를 잡아먹어야 했다.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농작물은 환경변화에 약한데 지구온난화는 가뭄과 홍수가 느닷없이 곡창지대를 휩쓸게 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수입할 식량이 없으면 예나 지금이나 굶주릴 수밖에 없다. 다국적기업에 식량의 4분의3을 의존하는 우리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석유로 돌아가는 농업, 다가오는 굶주림의 공포

 

예로부터 사흘 굶어 도둑질하지 않을 놈 없다고 했다. 식량은 부족하지 않아야 돈도 명예도 유지될 수 있다. 지급된 건빵을 병사에게 나눠주던 군종장교도 고된 훈련으로 배가 고프면 슬며시 숨긴다는 게 아닌가. 평화(平和)는 밥을 공평하게 먹는 일로 해석할 수 있다. 식량 자급률이 처참한 우리나라는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기준으로 진정한 독립국이 아니다. 드골 대통령 취임 당시 80%였던 식량 자급률을 프랑스는 현재 200%에 육박할 정도로 끌어올렸다. 프랑스에서 농부는 존중된다. 덕분에 먹고 사는 시민들에게 고마운 존재인데 우리는 어떤가. 고마운 마음은커녕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석유농업이 확산되고 고기 소비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중국도 식량 수입국가가 되었다. 수출하는 식량보다 수입량이 많아졌지만 자급할 농토는 아직은 충분하다. 그래도 자국의 농촌과 농민, 그리고 농업의 안정적 유지를 지원하는 관료와 지식인이 늘어나는데, 우리는 경각심조차 배양하지 못했다. 정부와 지식인들은 가족농이나 소농보다 시대착오적으로 기업형 농장을 지원할 따름이다. 귀농 인파가 늘어나는 현상과 관계없이 농부가 천대받는 분위기에서 농토는 점차 사라진다. 투기 목적으로 농토를 구입한 외지인은 개발 기회를 엿보지만, 주택이나 공업단지, 또는 연구시설로 농토를 대규모로 매립하는 정부에 비교하면 애교에 불과하다.


서울시의 인구 과밀화를 분산하기 위한 세종행정수도는 보호대상종인 금개구리가 분포하는 논밭을 넓게 매립했다. 충북 오송 생명과학연구단지와 오창 과학산업단지도 논밭이었다. 행정을 위하든 연구를 위하든, 특별시에서 논밭을 없앤 도시로 주소를 옮긴 시민들도 날마다 무언가 먹어야 한다. 아파트 숲으로 뒤바뀐 옛 김포평야에 입주한 시민들도 무언가 먹는다. 인천 아시안게임의 경기장은 하나같이 논밭을 깔고 앉았다. 오는 921일부터 보름동안 경기장에 모여들 아시아의 선수와 인원, 그리고 관중도 먹어야 하는데, 논밭을 매립한 우리는 무엇을 권해야하나.


나날이 과도해지는 화석연료 사용이 지구온난화를 심화시키는 요즘은 석유위기 시대다. 이제 석유가 고갈을 눈앞에 두고 있다. 뽑아올리기 위해 들어가는 에너지의 양이 늘어나면서 석유 가격이 치솟고, 가격 상승으로 석유 소비가 억제되어도 올라간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석유로 짓는 농사는 머지않아 한계를 만날 수밖에 없다. 악몽의 전조는 벌써 시작되었으니 식량과 에너지 부족이라는 이중고가 지구촌을 엄습할 텐데 자식 키우는 우리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나.


굶주리는 국가의 곡창지대에 플랜트농업단지를 조성하는 행태는 지탄의 대상일 뿐, 전혀 정의롭지 않다. 막대한 석유를 소비해야 하는 플랜트농업은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다. 수확한 농작물의 저장과 운송 과정에서 막대한 석유가 낭비될 뿐 아니라 음식 쓰레기가 발생한다. 상당한 화학물질을 운송 도중인 농작물에 살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시에 농사를 위한 빌딩을 짓고 LED 조명으로 수경재배하는 이른바 수직농장도 석유위기 시대에 대안이 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소비자와 거리가 가까운 만큼 농장주에 배타적인 이윤이 발생할지 모르지만, ‘로컬푸드로 분류할 수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 얼굴을 마주하며 안전한 농작물을 거래하며 마을을 나눌 때 비로소 로컬푸드라 말할 수 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수직농장이 유기농업일 수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물론이고 생태계와 문화까지 두루 유기적으로 이어져야 유기농으로 인정할 수 있다.


어떻게든 내 땅에서 석유 소비를 줄이며 식량을 자급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농토를 더는 개발하지 않아야 하고, 개발된 농토를 경작지로 환원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그를 위해 정부는 인력을 양성하고 실행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모자라지 않은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식단을 다양하게 연구하고 널리 보급해 식탐과 낭비를 부추기는 말초적 식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곡물사료 사육으로 얻는 육류의 소비를 줄이면 소비자와 환경이 크게 개선될 뿐 아니라 식량 자급률도 크게 높일 수 있다. 전통 가족농과 소농을 적극 지원하고 천혜의 갯벌을 보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갯벌은 수많은 어패류의 서식지이자 산란장이고 지구온난화를 예방하며 태풍으로 인한 해일을 완충하지 않은가.


아무리 노력해도 뾰족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을지 모른다. 많은 인구가 먹을 수 있는 유기농산물을 자급할 농토가 충분하지 않은 현실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를 감안해 국가와 전문가, 그리고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종합적이고 체계적이며 정의로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사막화 확산으로 방목 위주인 전통 축산업에 위기를 맞은 몽골을 유기농업으로 지원하며 사막화를 방지하는 방법은 없을까? 몽골과 우리가 상생하며 만족할 대안을 함께 논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춘궁기를 두려워하던 조상을 모시는 우리는 늦기 전에 배고픔을 모르는 자식과 행복하게 살아갈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기억은 물론 상상조차 어려운 굶주림의 공포가 코앞으로 다가오기 전에 대안을 절박하게 모색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기쁨과희망, 2014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