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5. 3. 21. 17:03

 

하루 만보를 채우려 해서 그런가, 캐주얼인 구두가 쉬 닳는다. 저녁 뒤 운동화로 아파트 일색인 동네를 몇 바퀴 돌려 해도 온갖 약속이 발목을 잡으니 아침에 한 시간 정도 일찍 집을 나서는데, 신축성 있는 구두 밑창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 밑창을 몇 차례 바꿨더니 옆이 더덜더덜해졌다. 아내의 핀잔을 듣고 갈아 신었는데, 편한 구두가 사라졌다. 새 구두에 익숙해져야 한다.


청소년 시절, 우리는 운동화 한 켤레면 충분했다. 날씨와 관계없이 등하교는 물론 축구와 농구, 달리기와 등산을 해결했다. 대학 시잘 이웃 가게에서 맞춘 구두는 낡아 버릴 때까지 갈아 신지 않았는데, 지금 대학생들은 부모가 백화점에서 사준 구두는 거의 신지 않는다. 용도에 따라 선택하는 운동화와 슬리퍼, 비 내릴 때와 걸을 때를 구별하는 런닝화와 등산화까지 각양각색이다. 아내의 다채로운 신들까지, 신발장은 꽉 찼다. 현관에 널린 신발, 신발들. 잔칫집처럼 널린 신발 중 스스로 만든 건 없다.


우리는 지금 어떤 왕보다 근사하고 다양한 신발을 신는다. 어디 신발뿐이랴. 옷은 얼마나 쌓아두었던가. 음식도 마찬가지다. 구중궁궐에서 산해진미를 맛보지 못하지만 겨울에 딸기를 먹고, 열대과일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버리는 음식이 한 해 20조 원에 육박한다고 소비자단체는 주장하는데, 한 번 입고 버리는 옷은 얼마나 될까? 버리고 또 버려도 채워지는 옷과 음식재료와 신발들. 누가 그렇게 거듭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소비는 불가능하다. 그를 위해 원자재와 에너지가 막대하게 사라지겠지.


아침에 전등을 켜고 냉장고의 물을 마신다고 전기 소비가 갑자기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비데를 가동해도 많은 전기가 필요하지 않겠지만 헤어드라이어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적산전력계는 빨리 회전할 게 틀림없다. 그 전기를 노예가 자전거 바퀴를 돌려 생산해야 한다면 몇 명의 노예를 부려야 할까? 미국은 가구당 평균 200명 훨씬 넘는 노예가 필요하다는데, 우리도 100명은 넘어야 하리라.


동서고금을 망론하고 노예를 부렸기에 역대 왕은 호화스럽게 살았다. 노예라 부르든 시종이라 칭하든, 고관대작도 그랬겠지. 한데 우리는 지금 노예가 없다. 인건비 감당을 할 수 있는 부자가 아니라면 집안일을 남에게 맡기지 못한다. 대신 석유와 전기 같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값싼 에너지가 노예인 셈인데, 에너지가 없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삶을 누릴 수 없다. 에너지는 언제까지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을까?


석유자본이나 산유국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전문가들은 세계 석유자원은 고갈이 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발굴하는 유정은 드물 뿐 아니라 퍼낼 수 있는 양도 얼마 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유정이 바닥을 드러낸 건 아니지만 퍼올리는 비용이 적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소비보다 모자라면 가격이 오르고 가격이 올라 경제성이 생기면 석유를 더 퍼올리겠지만 한계가 있을 터. 머지않아 석유산업은 곤두박질할 것으로 예측한다. 석유가격이 오르자 미국과 캐나다에서 막대한 오염물질을 내뿜거나 지상의 생태계를 황폐화시키며 모래 틈과 지하 바위틈에서 샌드오일과 셰일가스를 퍼올리지만 그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 전망한다.


수 억 년 전 생성된 석유는 본격 소비한지 불과 100년 만에 고갈을 예고한다. 풍부해 보이는 석탄도 500년 만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 그와 같은 화석연료를 태워 생산하는 전기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파멸을 부르는 우라늄도 지금과 같은 전기 소비의 추세를 보장하려면 고갈될 날이 멀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우리는 에너지 노예의 수를 대폭 줄여야 하거나 잃을 수 있다는 건데, 에너지가 주는 편의에 길들어진 처지라도 늦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식주가 가장 큰 걱정일 게다. 충격적이고 끔찍한 상황은 가까운 후손에 황망하게 닥칠 수 있는데, 우리는 에너지 노예가 물러간 뒤의 삶을 대비하지 않고 있다. 그때 어떤 과학기술이 새로운 에너지원을 값 싸고 안전하게 공급해줄 거로 막연히 기대하면서 아이들을 낳고 기를 따름이다. 여전히 많은 신발과 옷을 입히고, 냉난방 자동 조절되는 집과 자동차가 계속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수기 완비된 학교에서 기름진 음식과 수입과일을 거리낌 없이 먹는 학생과 교사들도 새로운 과학기술의 등장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요즘 과학기술은 전에 없이 거대하다. 거대한 과학기술일수록 막대한 에너지 소비 없이 가동될 수 없다.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 전쟁과 온갖 사고의 원인은 자본이 지배하는 과학기술이 저질렀는데, 새로 등장할 과학기술은 다를까? 거대한 과학기술은 독과점을 노리는 자본이 좌지우지하는데, 더욱 거대해질 과학기술은 어떤 내일을 안내할까?


과학기술이 제공한 온갖 편의에 젖어 늘어날 대로 늘어난 이 땅의 인구는 대부분 도시에 산다. 이웃 없어도 사는데 지장 없다고 착각하게 하는 아파트는 점점 커지고 높아진다. 단절된 삶을 연명케 하는 양판점은 정들었던 동네 가게들을 몰아낸다. 위아래와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 없어도 되는 주거환경에 살가운 이웃을 만나기 어렵다. 주차 시비로 낯붉히는 공동주택에서 경비원은 나이와 관계없이 얕잡힌다. 구매하는 에너지의 크기로 지위가 구별되는 사회에서 사이코패스가 성행할 수 있어도 공동체는 쉽사리 구성되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 석유가 사라진다면? 우리 사회는 재앙을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런 끔찍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돈이 많든 적든,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도시를 꿈꾸는 이들이다. 그들은 공동체를 구상한다. 따뜻한 이웃이 모이는 동네에서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 삶을 모색하고 실천한다.


치솟는 전세가격을 감당할 수 없던 이웃이 모여 공동주택을 짓고 식당과 거실과 빨래방과 서재 들을 공유하며 어울린다. 육아와 교육은 물론, 노인 봉양도 힘을 모은다. 이웃과 어울리는 도서관, 찻집, 식당 들을 공동 출자로 개설하고, 극장을 만들어 연극도 같이 공연한다. 하지만 그런 주택도 에너지와 물과 음식은 거의 자급하지 못한다. 동네와 건물의 구조가 그럴 수밖에 없다.


짜장면 배달부의 출입을 통제하는 고층이나 초고층아파트에서 공동체를 만들기 어렵다면 골목에 평상과 돗자리 깔리는 동네는 가능성이 높은데, 요금 그런 골목은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에 밀려 거의 사라졌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골목을 승용차로 사납게 채우는 다세대주택들이 어느덧 낡아 재건축을 요구한다. 이참에 다시 이웃의 정이 흐르는 골목으로 만들면 어떨까? 삭막한 도시에 지친 이들을 그 골목 안으로 초대하면 어떨까? 말랑말랑한 건축이 실력을 발휘할 순간이 다가온다.


돈과 나이의 크기, 종교와 학력을 가리지 않는 이웃이 태양광으로 에너지를 어느 정도 자립하는 마을은 유럽의 도시에 많다. 우리도 지붕으로 모은 빗물을 활용하는 텃밭을 이웃과 함께 일궈 채소를 나눌 수 있지 않겠나. 그런 공간에서 의지를 모아 일자리를 만들며 더불어 살아간다면 석유가 고갈되는 신호에 크게 움츠러들지 않을 것 같다. 에너지 노예가 줄어들어도 서로 힘을 합쳐 극복할 수단을 모색할 것 같다. 살가운 이웃이 있으므로 석유 충격은 크게 완충될 텐데. 그런 상상력이 현실화될 수 있는 계획. 건축이 나서길 기대하고 싶다. (와이드, 20153-4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5. 2. 7. 23:13

 

핸드폰 광고였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텔레비전 전파를 탄 광고가 한동안 불편하게 만들었던 적 있다. 아기를 안은 엄마가 남대문을 비껴 지나가는 버스에서 남대문이 국보 1라고 가르쳐주자, 막 말문이 트였을 정도로 보인 아기는 그러면 국보 2호는?”하고 물었던 광고였다. 그 아기는 영특한 걸까? 영특했다면 엄마 국보가 뭐야?”하고 물어야 했다.


당시 그 광고에 문제의식을 드러낸 광고 전문가는 없었는데, 우리 사회에 어른스러울수록 아이를 대견하게 여기는 부모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대학생인 아이의 유치원 졸업식에서 송사답사를 떠듬거리며 읽는 꼬마를 보며 착잡했는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흐뭇하기만 했다. 중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심지어 유치원부터 선행학습에 몰두하는 분위기가 바뀌지 않았으니 여전하겠지?


누가 큰돈을 지원했는지 작년 한 송년회는 고급 호텔에서 열렸다. 송년회 하던 별도의 방을 제외한 넓은 홀에 일반 손님들이 모여들었는데, 음식 값은 상당히 부담스러웠어도 연인들은 물론, 부모와 들어온 유아와 초등학생들도 음식을 고르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아이들은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형편없다는 걸 모를 텐데, 부모는 알까? 관심은 있을까?


식량의 4분의3 이상을 수입하면서 해마다 수십 조 원에 달하는 음식쓰레기를 내놓는 국가답게, 음식 값 때문에 자식 기죽이고 싶지 않은 부모들이 넘친다. 돈을 충분히 벌어들이는 부모들은 고급 식당을 자녀와 드나들기에 별 부담이 없을 텐데, 앞으로는 어떨까? 개인이나 국가가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구입하거나 수입할 식량이 국내에 부족해지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석유위기가 이미 가시화되었는데, 우리의 안일한 분위기가 몹시 불안하다.


국제 석유가격이 치솟자 경제사정이 주춤하고, 치솟는 석유가격은 1000미터 지하의 모래와 바위틈에서 셰일가스를 끌어올리도록 추동했지만 앞으로 어찌 바뀔지 모른다. 지상의 생태계를 황폐화하는 셰일가스가 에너지 시장에 넘치자 석유가격이 떨어졌다. 하지만 석유가격이 떨어지면 셰일가스 개발은 주춤할 것이다. 그러면 석유가격은 다시 오르고 잠깐 반등하던 경제사정도 동반추락하게 된다. 문제는 우리가 배 터지도록 먹는 식량은 막대한 석유의 지원 없이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석유로 가공하는 화학비료와 농약 없이 불가능한 단작은 석유를 들이키는 농기계가 필수다. 대형 트럭과 창고, 비행기와 오대양을 누비는 거대한 선박이 동원된다. 대부분의 산업축산을 뒷받침하는 옥수수는 옥수수에서 얻는 칼로리의 10배 석유가 지원되어야 파종, 경작, 수확, 저장, 이동이 가능하다. 그 옥수수를 16킬로그램을 먹여야 쇠고기 1킬로그램을 얻는데 세계의 유정은 바닥을 드러냈다. 가진 돈이 많다 여기는 우리, 마냥 안심할 수 없다.


요즘처럼 풍족한 삶은 지속될 수 없다. 지금 추세로, 유아들이 어른이 될 때 위기가 닥칠 것으로 석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늦기 전에 다음 세대의 생존을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선행학습에 길든 아이들과 고급 식당을 즐겨 찾기보다 다가올 식량위기에 대처할 마음가짐을 심어주어야 한다. (푸른두레생협 소식지, 20152월호)

 
 
 

자원·에너지

디딤돌 2014. 9. 5. 09:32

 

막바지 무더위로 곡식과 과일이 여물어갈 계절인데, 예년에 몰랐던 가을장마가 길게 이어진다. 추석을 앞둔 농촌의 시름은 깊어질 테고, 조상님은 햇과일을 맛보기 어렵겠다. 가을장마가 식혀도 한낮은 여전히 걷기 부담스럽게 덥다. 일부러 몇 정거장을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곤 하는데, 땀에 젖은 옷차림이 민망하다. 여름이면 밤 시간에 동네를 걷지만 연이은 술 약속은 걷는 시간을 빼앗는다.


곧 추석이다. 기상이변으로 혼란스러워도 계절은 가을을 향한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지니, 낮에 걸어도 덜 민망해질 텐데, 무얼 신어야 하나. 양복을 입었으니 강의실이나 회의장에 운동화를 신고 들어가기 어색하다. 오랜 보행에 적합한 이른바 트레킹화도 양복에 어울리지 않다. 하는 수 없이 굽이 푹신한 구두를 택하지만 금세 닳는다. 굽을 여러 차례 바꿨지만 감당이 안 된다. 발도 편안하지 않다. 양복에 잘 어울리는 운동화, 어디 없을까?


집에 신발이 참 많다. 색상을 달리하는 구두와 계절을 달리하는 운동화만이 아니다. 식구 수만큼 트레킹화가 있고 슬리퍼도 한두 켤레가 아니다. 비올 때 신는 운동화도 신발장을 차지하니, 어느 날 문득, 현관에 흩어진 신발들을 보니 집안 가득 손님이 온 상황이다. 그리 멀지 않았던 과거, 학생인 우리는 운동화 한 켤레로 살았다. 걷거나 뛰는 건 물론이고 등산도 축구도 해결했다. 어른들도 대개 구두 한 켤레로 만족했다.


페트병을 납작하게 찌그려서 신는 아프리카 난민의 신발을 사진으로 전시하며 후원을 부탁하는 유니세프 활동가를 외면하고 올라탄 지하철에서 건너편에 나란히 않은 승객을 물끄러미 살펴본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면 한가로운 지하철에서 대부분의 승객은 스마트폰에 심취해 건너에 앉은 이가 자신의 신발을 유심하게 바라보는 걸 눈치 채지 못한다. 굽이 높고 낮은 여성의 구두, 형형색색의 운동화, 슬리퍼도 많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레인부츠라 칭하며 높은 가격에 파는 원색의 장화도 제법 눈에 띈다.


운동화와 슬리퍼는 물론이고, 쇠가죽으로 만든 구두라도 굽은 대부분 플라스틱이다. 아예 플라스틱 재질만으로 만든 신발도 많다. 그런 신발은 당연히 구입했다. 신는 사람이 스스로 만들지 않는다. 짚신과 나막신이 아니라면 제 신발을 만들어 신지 못한다. 옷을 스스로 만들어 입고 집도 직접 지어 살았던 조상도 신발은 대개 장터에서 사거나 물물교환으로 구입했을 것이다. 짚신과 나막신이라도 미투리처럼 장인이 만들어 팔았을 텐데, 지금은 대단한 고급 신발이 아니라면 기계로 대량 생산한다. 신발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플라스틱과 가죽의 양은 그만큼 막대하겠지.


플라스틱은 석유를 가공해서 얻는다. 쇠가죽이야 도살한 소에서 얻지만 도살하기 전까지 소를 사육하는데 들어가는 석유의 양이 만만치 않다. 축사의 냉난방과 쇠가죽 운반에 들어가는 정도가 아니다. 주로 옥수수와 콩으로 가공하는 축산사료를 생산하는데 석유가 걷잡을 수 없이 들어간다.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는 석유를 가공해서 제조한다. 곡물과 사료와 도축할 소와 가죽을 운반, 저장, 가공, 폐기하는데 들어가는 석유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한데, 석유가 한계를 보이고 있다.


엄밀하게 석유는 생산하는 게 아니다. 땅 속에서 퍼 올리는데, 전문가들은 석유위기를 점친다. 퍼 올리는 석유보다 소비하는 양이 늘어난 상황을 피크 오일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짧게 잡아도 5년 전, 냉정하게 10년 전부터 피크 오일이 지났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지구촌의 석유 소비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줄기는커녕 신흥공업국의 합세로 도저히 공급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한다. 내려갈 줄 모르는 석유가격은 머지않아 치솟을 것이다.


석유 없으면 의식주를 거의 해결할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신발을 구비해 놓고 그날그날의 취향과 목적에 따라 한 켤레를 신고 거리에 나선다. 그런 호사, 한 세대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는데, 다음세대는 구가할 수 있을까? 석유시계는 곧 멈출 것이다. 넘치도록 많은 신발을 보며 석유위기를 걱정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 것이다. (기호일보, 201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