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2. 11. 27. 17:32

   석유 없는 축제를 위해

 

미국의 저널리스트 리처드 하인버그는 파티는 끝났다고 천명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파티는 값싼 석유로 흥청거릴 수 있었던 시절의 낭비를 말한다. 치솟았던 석유 가격이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때, 세계는 석유위기 시대를 앞두고 있다. 석유가 이끈 산업사회의 광란의 축제는 머지않아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하인버그는 근거를 들며 말한다.


가을 들판이 풍요로우면 우리는 축제를 준비한다. 음식을 저장하지 않았던 수렵채취 시절이라면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축제가 필요하지 않겠지만, 경작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추석이나 추수감사절과 같은 명절이 생겼다. 충분하든 그렇지 못하든, 저장할 수 있는 곡식이 갈무리된 만큼, 함께 일할 사람들과 나누며 즐기는 행사가 중요해졌을 것이다. 봄이 오면 다시 모여야 할 사람들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겨울이 길수록 봄까지 견딜 가을걷이가 요긴했다. 조상은 제 땅과 기후에 맞는 씨앗을 찾아 심고 갈무리하며 소비를 조절하고, 인구를 유지해왔지만, 석유 시대는 오랜 농경사회의 풍속도를 바꿨다. 계절 변화와 농민의 땀을 무시하는 요즘은 석유로 농사를 짓는다. 석유 덕분에 과거에 없던 가을을 풍요롭게 맞지만 그만큼 소비와 인구가 늘었다. 갈무리를 했으니 축제를 벌이지만 전처럼 신명나지 않다. 석유 때문이다.


가을걷이를 만끽하는 축제는 흥에 겨워야 당연하지만, 값 비싼 석유로 빚은 축제는 흥과 거리가 멀다. 봄부터 추수할 때까지 굵은 땀을 흘렸다면 농부는 황금빛 벌판에서 뿌듯해할 수 있겠지만, 석유 펑펑 쓰는 무거운 농기계에 앉아 땀 흘릴 기회조차 없었다면 수확의 기쁨보다 수확의 크기를 견주고 싶을 것이다. 농사라기보다, 농업에 들어간 경비보다 수확으로 챙길 대금이 많아야 당장의 생계는 물론, 내년 농사도 기약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석유를 사용하면서 수확량이 몰라보게 늘어날 때엔 축제가 계속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요즘 농업은 농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농사용 석유에 세금을 감면하고 농기계 구입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해도 봄부터 가을까지, 경작에 들어가는 경비가 만만치 않다. 요즘 농업은 떠날 수 없는 농민의 피땀과 서러움으로 유지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가 유일하게 자급하는 쌀은 비교적 석유를 적게 소비하는 농작물이다. 정작 문제는 쌀이 아니다. 반찬이 밥보다 많은 세상에서 쌀 소비량은 줄어들기만 하는데, 반찬에 들어가는 농작물의 대부분을 수입하지 않던가. 쌀을 뺀 농작물 95퍼센트가 그렇다. 그런 농산물을 수입하려면 석유가 필요하다. 한데 그 농산물들, 언제까지 수입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석유 가격이 치솟기 때문만이 아니다. 산업국들의 석유 과소비가 빚은 지구온난화는 지구촌의 가뭄과 홍수를 빈발하게 해 곡창지대마다 흉작이 전에 없이 심각해진다. 우리나라에 농작물을 계속 수출할 국가는 과연 있을까.


대부분을 미국에서 수입하는 옥수수는 차라리 석유다. 옥수수에서 얻는 에너지의 10배에 해당하는 석유를 경작, 운송, 저장 과정에서 소비하기 때문인데, 그 옥수수 16킬로그램을 사료로 먹으면 쇠고기 1킬로그램을 얻을 뿐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콩과 감자도 마찬가지다. 끝 간 데 없이 농작물을 심는 미국은 농기계와 석유, 그리고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 없이 경작이 아예 불가능하다. 그런데 화학비료는 물론이고 제초제와 살충제 역시 석유로 가공한다.


과일도 차라리 석유다. 기계로 자동화한 북중미 대륙이나 유럽만이 아니다. 수확하는 과일 부피의 10배 이상 농약을 살포하는 우리나라도 저장과 보관, 운송과 판매에 적지 않은 석유를 소비해야 한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엽채소와 과실채소도 사정이 비슷하다. 사시사철 수확하기 위해 가동해야 하는 보일러는 석유 과소비의 상징이다. 그렇게 재배한 농산물을 가공하면서 석유는 걷잡을 수 없이 들어가지만 온갖 첨가물이 들어가면서 몸과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석유가 없다면 농축산물만 처리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먼 바다로 나가 해산물을 잡아오지 못할 뿐 아니라 이제껏 누려온 기본적인 생활 자체를 도저히 지속할 수 없다. 옷도 입을 수 없다. 석유를 가공한 인조견만이 아니다. 대량 생산해야 국경선 너머로 수출입할 수 있는 가죽과 양털도 석유 없이 물량을 확보할 없다. 그뿐인가. 드넓은 평야에 심는 면화도 석유 없이 재배가 불가능하다.


음식과 옷에서 그칠 수 없다. 집도 지을 수 없고 많은 지역에서 겨울철을 견디지 못한다. 대부분의 건축 자재는 석유 없이 조달할 수 없고, 요즘의 집은 대부분 석유 난방에 의존하지 않던가. 석유 없었던 시절, 조상은 옷을 껴입으며 혹독한 겨울을 버텨냈지만 참을성을 잃은 지금은 전 같을 리 없다. 석유가 없으면 의식주는 물론, 온갖 편의를 포기해야 하고 석유가 인도하는 문화생활은 잊어야 할지 모른다.


박승옥은 리처드 하인버그의 주장을 빌려, 잔치가 끝나면 무엇을 먹고 살까(녹색평론사, 2007) 물었다. 그 책에서 박승옥은 흥미로운 그래프 하나를 선보인다. 가로 9.6센티미터에 서기 0년에서 4000년까지 표시한 그래프 한가운데, 그러니까 서기 2000년 전후에 지게 작대기처럼 비죽 올라온 석유 소비 곡선을 그린 그 그래프의 설명을 주목해야 한다. 석유 생성 시기까지 그래프를 좌측으로 연장하려면 종이가 17킬로미터 더 필요하다는 게 아닌가.


까마득히 오래 전 생성된 석유를 20세기 전후 마구 소비하는 인간은 그동안 광란의 축제를 벌였지만 머지않아 축제는 끝난다. 산유국과 주식 가격 하락에 민감한 석유기업에서 실상을 감추려 해도 드러나는 한계는 속이지 못한다. 하인버그와 박승옥은 더 늦기 전에 석유 없이 살아갈 방법을 찾자고 호소하기 위해 책을 써야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갈무리 계절이 왔건만 우리는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세계 경기가 주춤해도 석유 가격은 그리 내리지 않을 텐데,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비참하다. 고작 26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 수출해주는 지역이 있기에 우리는 견딜만했는데, 그 시효는 충분하지 않다. 들판이 황금색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석유 없어도 먹고 살았던 조상의 삶에서 내일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갈무리 축제가 다시 즐거울 수 있도록. (작은책, 201212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9. 27. 01:55

    갈무리 계절이 다가오는데

 

가을장마도 기세를 잃어가려는 모양이다. 한여름 뙤약볕을 예고하는 여름 장마를 강수량으로 능가하더니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서늘하고 파란 하늘이 조금씩 높아진다. 거푸 올라왔던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았던 과일들은 머지않아 당도를 높일 것이고 들판의 벼들은 알곡에 영양분을 저장하며 황금빛 고개를 숙이기 시작할 것이다. 세상은 바야흐로 갈무리하는 계절로 접어든다.


우리 주식은 누가 뭐라 해도 쌀이다. 도정해 쌀로 변할 벼가 너른 황금빛 들판에 일제히 고개를 숙인 모습은, 논을 일군 농부가 아니라도 보는 이를 뿌듯하게 만든다. 전국의 논에서 수확한 벼는 우리가 먹는 쌀을 넉넉히 베푼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밥의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리 고된 육체노동자라 해도 커다란 주발 넘치게 밥을 담지 않는다. 반찬이 많아 그런지,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공기사발이면 충분하다 여긴다.


대략 한 세대 전, 주발에 봉긋하게 담았던 밥이 공기 사발로 줄었으므로 일인당 요즘의 쌀 소비는 틀림없이 감소했다. 그렇다고 전국의 논 면적이 줄어들었든 건 아닐 것이다. 인구가 늘었으므로. 아직 우리 논은 주곡의 자급을 만족시키므로 다행스럽지만 사발 가득 밥을 먹겠다는 사람들이 예전처럼 늘어나면 당장 쌀이 부족해질 수 있다. 요즘 세상에 줄어든 논을 다시 확대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므로. 정부는 부랴부랴 쌀을 수입하려 할 것인데, 다른 용도로 개발한 땅을 논으로 환원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시간도 적지 않겠지만 일할 농부도 쉽게 나타날 성 싶지 않다.


자급하건만 우리나라는 쌀을 수입해야 한다. 그렇게 하겠다고 지난 정권에서 대외적으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수입하는 쌀은 대체로 품질에 불신을 받는다. 가정의 소비자들은 거의 찾지 않는데도 수입을 줄이지 못하므로 저렴한 식당의 김밥이나 거리에서 파는 떡의 재료가 되었을지 모르는데, 정작 우리 쌀은 정부 창고에서 남아돌아 해를 넘기기 일쑤다. 재고량이 늘고 관리의 어려움을 걱정하던 정부는 맹독성 농약인 에피흄으로 훈증해 저장기간을 늘리려 하고, 오래된 쌀을 병사의 식탁에 올린다. 남는 쌀을 식량 부족으로 고통을 받는 북한에 지원하고, 내일의 나라를 건강하게 끌어가야 할 우리 젊은이에게 신선한 쌀을 제공하자는 사회 일각의 청원이 없지 않건만, 현 정부의 귀에 그리 대수롭게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오히려 불경하게도, 쌀을 사료로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보통 밥공기를 다 채우지 않는 우리는 예전에 비해 체구가 크고 체력도 좋다. 당연히 요즘 사람들은 쌀만으로 배를 채우지 않는다. 밥보다 양이 많은 두세 가지 이상의 반찬과 찌개나 국을 놓아야 밥상 구성이 완결된다고 믿는 경향이 어느 틈에 자리잡았다. 논을 줄인 우리가 밭이라고 보전했을 리 없다. 아니, 밭은 개발을 위해 준비되기라도 한 듯 마구 개발했다. 먼저 논을 밭으로 바꾼 뒤, 개발한 땅이 어디 한두 군데인가. 밥을 제외한 음식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농작물은 어디에서 가져오나. 생활협동조합만을 이용하는 조합원도 짐작하듯, 당연히 수입이다.


주식보다 훨씬 많이 먹는 게 부식인데, 부식의 재료가 되는 농작물의 종류는 무궁하다. 반찬거리만 수입하는 게 아니다. 밥에 넣는 잡곡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그 양은 무려 우리가 먹는 양의 95퍼센트가 넘는다. 수입하는 국가는 다양하지만 많은 곡식과 육류는 주로 미국에, 채소는 중국에 의존한다. 돈을 제때 약속한 만큼 지불하므로 이제까지 수입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앞으로 어떨까. 중국과 미국이 언제까지나 우리 밭작물의 부족분을 채워줄 수 있을까. 수출은 국가의 통제를 받는 기업이 맡는데, 기업은 이윤에 따라 움직인다. 농산물 수출은 대개 다국적기업이지만 다국적이라 해도 통제를 받는 국가는 따로 있는 게 보통이다. 이윤이 보장되면 다국적기업은 자국의 공익에 관계없이 수출과 수입에 열 올리지만, 국가가 이윤을 제한한다면, 수출입은 즉각 중단될 것이다.


주요 농산물 수출국들은 농작물을 우리에게 앞으로도 순순히 내줄 수 있을까. 인구가 전에 없이 늘어난 중국은 현재 식량 순 수입국이다. 수출하는 양보다 수입하는 농작물이 더 많다는 뜻이다. 자국의 농산물 중에서 돈이 될 만한 건 기업이 알아서 수출해왔고, 대신 외국에서 값싼 농작물을 수입해왔다는 건데, 그런 현상은 중국에 식량을 값싸게 수출할 국가들이 남아 있을 때까지 유효할 것이다. 중국이 수입하는 농작물은 우리도 수입한다. 대체로 같은 나라, 거의 미국에서 수입한다. 공업화로 농토가 계속 잠식되는 중국은 소득이 늘어나면서 식성이 서구화되어 농작물 소비가 전에 없이 늘었다. 공업화로 농업용수가 오염되는 중국이지만, 엄청난 인구는 예전부터 이웃에게 넉넉히 베푸는 걸 좋아했다. 그들이 수입하는 농작물의 양은 앞으로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구온난화 때문일까. 최근 미국 농작물 작황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가뭄 때문이라는데, 미국의 가뭄은 어제오늘의 사정이 아니다. 올해 그 정도가 유난스러웠을지 모르나, 지구온난화가 느닷없는 일이 아니듯, 미국의 가뭄이 뜻밖은 아니다. 따라서 내년 이후에도 가뭄이 계속될 수 있다는 건데, 누적된 가뭄은 미국의 흉작을 고착화시킬 수 있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빗물의 양에 비해 농경지가 넓다. 빗물이 최근 줄어들면서 의존하는 지하수의 양이 늘어나고 있어 고갈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진다. 옥수수를 비롯한 곡물을 주로 생산하는 미 대륙의 중부는 지나친 관정으로 막대했던 오갈랄라 대수층이 크게 줄었다고 아우성이다.


문제는 석유다. 석유 가격 계속 저렴하다면 양수기를 동원해 더 깊은 지하수를 퍼올릴 수 있으니 걱정할 게 없지만, 사정이 전 같지 않다. 석유 수출 국가의 공식 발표는 없지만, 소비량보다 생산량이 늘어난 정황을 더는 숨길 수 없는 상황에 돌입했다. 석유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미국은 앞으로 저렴한 농산물을 예전처럼 수출할 수 없는 처지로 바뀔 수 있다. 국제 석유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이 없는 가운데, 가뭄은 더욱 혹독해지는 현실을 감안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뿐이 아니다. 재정적자에 휘둘리는 미국 정부는 자국의 농업 분야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삭감할지 모른다. 파산을 면할 만큼 농부에게 쥐어주는 보조금 뿐 아니라 수출을 주도하는 다국적기업이 챙겨가는 막대한 보조금도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미국산 농산물의 가격은 그만큼 오를 것이다.


미국의 사정은 당장 미국 농산물을 수입하는 국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가까운 예를 보자. 올해는 다시 세계 2위 밀 수출 국가의 반열에 올랐다던데, 작년 여름, 러시아와 인근 국가들은 자급을 위해 밀 수출을 금지했다. 수출로 얻는 이익이 큰 기업은 내국인이 굶든 말든 수출하려하지만 국가에서 수출관세를 요구하는 까닭에 포기해야 했는데, 상처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러시아 밀을 수입하지 못하자 세네갈에서 폭동이 일어난 거다. 옥수수 원산지인 멕시코가 북중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물밀 듯 들어오는 값 싼 미국산 옥수수에 자급 구조가 깨지자 역시 폭동이 일어났다. 아들 부시 정권 시절이다. 석유를 바이오 연료로 상당량 가공하면서 옥수수의 멕시코 수출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내일은 안전할 수 있을까.


막대한 달러를 보유하는 중국은 미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사며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의 재정을 지탱해준다. 시카고 선물시장에 투기자본의 개입하면서 국제 곡물의 가격은 소문에 의해 요동치기 일쑤이므로, 미국의 흉작 소식은 가격 상승을 부채질할 게 틀림없지만, 달러를 쏟아낼 중국은 미국 곡물을 수입하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설사 혹독한 가뭄으로 미국이 농작물 수출관세를 매긴다 해도, 중국은 미 정부를 압박할 수 있으며, 설사 수입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드넓은 농토가 남아 있는 만큼 자국 내에서 헤쳐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농토의 대부분을 석유 없이 가동 불가능한 공업단지와 주택단지와 사무용 공간으로 바꾼 우리는 견딜 수 있을까. 미국산 농산물을 수입하지 못해도, 4명 중 3명이 굶주려야 할 지경인 식량 자급률 26퍼센트를 우리는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에 춤을 추는 세계 농작물 시장은 안정된 상태가 아니다. 가장 안정된 기반을 가진 미국이 전 같지 않건만, 우린 여전히 농토를 갈아엎는다. 광대한 신도시와 연구단지로 거듭 바꾼다. 논보다 생산성이 높은 갯벌과 그 갯벌을 메워 농토를 조성하겠다는 매립지들이 광속으로 사라진다. 바둑판처럼 달리는 고속도로와 고속화도로가 농토를 짓밟으며 누빈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고 식량 해외 의존도는 치솟는 와중에 음식쓰레기는 해마다 20조 원 어치에 달한다고 한다. 가히 엽기적인 무책임이다. 후손이 볼 때,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나라는 후보자마다 내일의 설계에 거품을 무는데, 농업에 대한 언급은 아무리 귀를 쫑긋해도 들리지 않는다. 유권자의 경각심도 미미하니 선거 쟁점이 되지 못한다. 마음 뿌듯하게 하는 황금벌판을 보아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푸른두레생협, 201210월호)

쌀이 남아돈다고 하는데 쌀값은 계속 오르기만 하네요. ㅡ.ㅡ;;

 
 
 

자원·에너지

디딤돌 2011. 6. 8. 08:55

 

두 발로 걷는 사람은 쉬지 않고 멀리 이동하지 못한다. 생명평화의 메시지를 퍼뜨리고자 전국을 걷는 순례자들이 우리 주변에 더러 있고, 핵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전하려고 인도에서 핵무기를 가진 나라를 찾아 8천 마일을 걸었던 사티시 쿠마르 같은 이가 있었지만 예외적이다. 그들은 중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했다. 말이나 낙타 같은 동물의 힘을 빌리면서 사람은 제법 먼 거리를 꾸준하게 이동하게 되었지만 동물도 휴식이 필요하므로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휴식을 모르는 내연기관인 자동차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힘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먼 거리를 빠른 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무거운 자동차를 움직이게 할 연료, 다시 말해 석유가 없으면 안 되는 삶으로 구속되고 말았다.

 

내 남자의 자존심!”이라고 속삭이는 승용차 광고에 효과가 한때 있었듯, 자동차 중에 자가용 승용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선지 오래다. 몰고 다니는 자동차의 종류가 연애와 결혼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즘, 승용차는 내 남자를 넘어 가족의 자존심이 되었고, 지위와 명예를 반영하는 세속적 기준이 되었다. 어떤 자동차를 몇 대 가지고 있는가가 잣대일 뿐, 이제 자동차 소유로 빈부를 구별하는 시기는 지났다. 그를 위해 주택과 건물은 자동차만을 위한 공간을 더 확보해야 하고, 도시는 자동차가 혈관 속의 혈구처럼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도로를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미국의 한 경제 전문지 기자는 석유 가격이 오르면 가구 당 승용차의 수가 줄다 도로는 배기량이 작은 승용차로 채워지고, 대중교통으로 이어질 것이라 예견했지만, 자동차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점쳤다. 내연기관의 편의에 길든 현대인이 자동차 문화를 포기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나보다. 하지만 자동차는 석유를 연료로 사용한다는 상식이 머지않아 깨질지 모른다. 석유 가격의 거듭된 상승으로 전기 자동차의 보급이 가시화되는 세상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아직 많은 전문가들은 전기 자동차의 경제성을 의심할 뿐 아니라 개선될 여지마저 부정한다. 석유 가격 상승을 전제로, 석유보다 경제성 있는 연료가 상용화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많은 이가 예견하기 때문이다.

 

같은 거리를 이동할 경우, 자동차가 들이키는 석유에 비해 전기 자동차 배터리에 충전하는 전기의 가격이 훨씬 작다고 누구나 확신한다. 하지만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를 태워 낮은 효율로 얻는 전기의 가격이 석유보다 낮은 건 아무래도 수상하다. 요소마다 지원되는 정부의 보조금을 감안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핵으로 전기를 생산해도 마찬가지다. 핵은 결코 저렴한 에너지 자원이 아니다. 핵연료의 생산과 폐기, 운영을 마친 핵발전소의 폐로와 발전 과정에 발생하는 폐기물의 안전한 처리를 상정한다면, 핵발전소는 석유나 석탄화력발전소보다 경제성이 떨어진다지 않던가. 따라서 채굴량의 정점에 다가서는 석유나 가스, 현재 매장량에 다소 여유가 있다는 석탄의 가격이 앞으로도 거듭 오르는 한, 전기가격도 걷잡을 수 없게 오를 게 틀림없다. 전기자동차의 경제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거다.

 

자동차 문화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석유를 대신할 경제성 있는 연료를 찾아야 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대안으로 바이오 연료를 개발하려는 의지가 넘친다. 어떤 환경단체는 폐식용유를 활용하는 안을 제시하고, 경작지로 활용할 수 없는 황무지에 유채를 심어 바이오 연료를 가공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오스트리아는 폐식용유를 정화해 버스와 같은 디젤 자동차의 연료로 활용한다. 어차피 버려야 하는 기름을 재사용하는 만큼, 경제적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폐식용유는 식용유의 사용을 전제로 하는데, 식용유의 원료는 무엇이고 어떻게 재배해서 가공하는지 먼저 살필 필요가 있겠다. 유채 열매는 양질의 바이오 연료가 되고 나머지도 땔감이나 퇴비로 활용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어떨까. 황무지에서 재배되는 유채의 양은 보잘것없을 것이라서 늘어나는 수요를 충당하려면, 아니 돈벌이를 만족시키려면, 더 많은 수확을 위해 황무지 개념을 함부로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숲이나 초원까지.

 

바이오 연료의 효율은 과연 석유보다 나을까. 바이오 연료로 가공하는 주요 농작물인 옥수수나 콩, 또는 사탕수수를 생각해보자. 거대한 농기계 없이 경작이 불가능한 드넓은 농장에서 수확한 뒤, 공장으로 운반해 가공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석유를 소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거운 농기계와 트럭, 초대형 선박과 창고, 그리고 가공과 폐기물 처리과정에 들어가는 석유만이 아니다. 막대하게 들어가는 화학비료와 농약도 석유로 가공한다. 식용유의 재료인 옥수수에서 100칼로리의 에너지를 얻으려면 그 10배인 1000칼로리의 석유가 필요하다는데, 식용유를 가공하는 공정에 들어가는 석유는 또 얼마나 될까. 따라서 폐식용유는 석유를 전혀 대체하지 못한다. 같은 맥락으로, 옥수수와 콩을 재료로 가공하는 바이오 디젤이나 에탄올은 석유보다 경제성이 없다.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바이오 연료를 가공하는데 한 사람의 1년 치 소비량인 200킬로그램의 농작물이 들어가니, 석유를 대체할 정도의 양이 보장될 리 만무하다. 유채와 사탕수수도 마찬가지다.

 

바다에 흔한 파래나 미역과 같은 조류를 바이오 연료로 활용하는 연구가 많은 나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옥수수나 콩보다 바이오 연료로 가공되는 효율이 10배 이상 높을 뿐 아니라 경작지를 잠식하지 않으니 식량 수급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바다나 호수, 심지어 폐수에도 잘 자라므로 친환경적이라는 점을 전문가는 장점으로 꼽는다. 그럴싸하다. 우리나라의 관련 산업체는 다른 국가보다 기술개발을 앞당겨 상용화를 선점한다면 국제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인데,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석유를 대체할 정도의 연료를 조류에서 얻으려면 새우나 해양어류 양식 산업에 비교할 수 없이 어마어마한 면적의 해양 생태계와 경관이 파괴될 게 틀림없지 않은가. 수산업자는 물론이고, 시민사회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생산량을 줄이고 있는 중동의 산유국들이 밝히지 않아서 명문화하지 못할 뿐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석유 생산량의 정점이 이미 지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석유는 생산량이 정점이 지나는 순간, 가격이 치솟는다. 의식주를 비롯해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요긴하게 사용하는 석유는 자동차나 난방을 위한 연료로 소비해 없애기에 무척 아까운 자원이다. 따라서 연료용 석유 가격은 더욱 앙등할 수밖에 없을 터. 그런 상황에도 자동차를 포기할 수 없는 현대인은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연료를 개발하려 노력하겠지만, 살펴본 대로 한계가 분명하다. 자동차용 대체 연료 가공하려고 더 많은 석유를 소비하는 모순만이 아니다. 지구촌에 현재 8억 대가 굴러다니는 자동차의 탐욕을 바이오 연료로 충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위해 굶주리는 지역의 인구와 생태적 안정성을 무시한다면 모를까.

 

바이오 연료를 제외한 자동차 연료의 대안은 당연히, 배터리로 움직이는 전기자동차도, 태양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도 아니다. 결국 대안은 덜 타거나 안 타는 거다. 궁극적으로 자동차 없이 만족하는 삶, 다시 말해 마을에서 다정한 이웃과 자급자족하는 삶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를 위해 우선 승용차 소유하지 않는 삶에서 자부심을 갖는 마음과 행동의 준비가 필요할 텐데, 바이오 연료라는 신기루가 앞을 막는다. (지금여기, 2011년 7월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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