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3. 1. 7. 19:16

   치유 기대감과 멘붕

 

2012년이 지났다. 대통령 선거의 회오리바람을 타고 2013년에 그 바통을 넘겼다. 시간에 매듭이 없어도 달력을 통째로 바꾸었으니 2012년은 분명히 지났지만 회오리바람의 흔적 때문인가, 2013이라는 숫자가 익숙하지 않다. 아직 멘붕에서 헤어나지 못해 그런 걸까.


멘붕이라. 인터넷이 만든 재미있는 조어다. ‘멘탈 붕괴’, 다시 말해 정신적으로 몹시 충격을 받은 상태를 멘붕으로 줄여 이야기한다는 건데, 요사이 멘붕은 당선되지 않을 거로 믿었던 후보가 차기 정권을 잡은 선거 결과 때문이다. 작년 1219일 오후 6시 이후 방송3사에서 일제히 발표한 출구조사와 이어진 개표가 줄기차게 예상했던 기대와 어긋난데 따른 허탈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투표에 참여한 절반 가까운 유권자들이 신문을 기피하거나 텔레비전 뉴스를 거부했다.


지지하던 후보가 낙선했기에 발생한 멘붕이라면 세월이 약일 수 있다. 하지만 신문을 읽는데도 여전한 멘붕은 정치적인 이유와 거리가 있다. 이어질 정권에서 치유를 기대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상실감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보인 절반 가까운 유권자의 뜻을 헤아리라고 정치학자들은 당선자에게 조언했지만, 그런 배려와 무관하다. 당선자가 집권하면 실행해야 할 치유는 생태적이어야 한다. 현 정권이 이 산하에 저지른 패악에 대한 생태적 치유를 기대하려 했는데, 충족되지 않기에 멘붕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당선자는 유세 기간 중에 4대강에 대한 문제의식을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지난 정권이 한 일이지만 그 여파는 차기 정권에 치명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전문가들의 예상했건만,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4대강 만이 아니다. 지금도 일본 후쿠시마에서 방사성물질이 날아들어도 우리나라는 사고에서 예외라도 되는 듯 현 정권은 핵발전소를 더 지으려 하건만 당선자는 후보 시절이나 대통령 출마가 유력한 국회의원일 때나 문제제기한 적이 없다. 그러니 핵발전소 증설, 그와 관련한 송전탑 때문에 심신이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지 않을 것 같다.


치유가 필요한 분야가 4대강 사업과 핵발전소로 상처받은 자연과 사람에 한정할 리 없다. 현 정권에 와서 극한의 경쟁에 내몰린 청소년들이 잇따라 자살하고 생산현장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삶을 포기하는 상황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 사회적 약자가 일방적으로 희생될 수밖에 없게 된 법과 제도를 개선해서 치유에 나서야하는데, 곧 태동할 정권에서 실행하려 할까. 문제는 우리가 삶을 기대야 하는 생태계에 대한 근원적 파괴다. 유력한 후보 모두 산하를 무너뜨릴 개발계획을 어김없이 내세워 아쉬웠지만, 5년의 국정을 책임질 당선자는 여성이다. 그럼에도 현 정권이 남긴 산하의 상처를 제대로 살펴보려하지 않았다.


개발이 남성적 행위라면 치유는 여성적이다. 생명을 낳아 보듬어 키우고, 늙고 기운 잃은 생명을 편안하게 이끄는 여성에게 치유의 행위가 아무래도 잘 어울린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당선자의 여성성을 놓고 언론과 인터넷 공간에서 잠시 설왕설래했는데, 치유는 여성성을 반영한다. 대통령 선거는 물론이고 이제까지 치룬 대부분의 선거에서 후보들은 개발을 이야기했고, 당선자 대부분은 남성이었다. 여성이 없지 않았지만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식이 지배했는지 그들 역시 개발을 당연시했다. 남성성이다. 이제 여성이 당선자이므로 치유를 준비할 때가 되었건만, 인수위원회를 살펴볼 때 그 기미를 느낄 수 없다. 해가 바뀌어 신문을 읽기 시작해도 멘붕은 여태 멈추지 않는다.


재작년 겨울, 올 겨울처럼 맹추위가 계속될 때 타설한 4대강 대형 보들의 콘크리트는 작년부터 곳곳에서 치명적 위험을 노출했다. 무너질 가능성을 경고하는 전문가가 지금도 적지 않다. 구조적 결함을 지적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흐름을 멈춘 강에 녹조가 두툼하게 끼고 물이 시커멓게 썩어가지 않았나. 그 물을 마시는 사람에게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강에서 수 억 년 이상 삶을 의탁했던 생명들도 위험에 빠졌지만 파탄은 이 겨울에도 이어졌다. 기억을 더듬어서 내려온 겨울철새 고니와 오리 종류들은 생태계가 무너진 낙동강에서 먹을 걸 찾지 못해 탈진해 있다. 내년 봄, 번식지로 제대로 날아갈 수 있을까. 내년에 낙동강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현 정권에서 망가진 자연은 그냥 두면 저절로 회복되겠지만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텐데, 4대강의 보나 둑이 무너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4대강 사업에 책임이 거의 없는 주민들부터 다치고 논밭과 집이 무너질 것이다. 오염된 강물로 농사를 짓거나 마시다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면, 현 정권을 이을 당선자는 치유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모래를 다시 흐를 수 있도록 4대강의 대형 보를 걷어내야 한다. 생태계가 회복되고 경관과 수질이 빠른 시간 안에 옛 모습으로 돌아가야 상처받은 4대강은 치유된다. 하지만 다음 정권에서 그 시간을 놓치면 어떻게 될까. 치유할 기회조차 잃는 건 아닐까.


150년 전 강을 직선으로 바꾸고 강 앞에 운하를 만들었던 독일은 십여 년 전부터 강의 재자연화를 위해 무척 노력하고 있지만, 생태계는 완전히 돌아오지 못한다. 직선으로 변형되면서 발생하는 피해를 감당할 수 없어 막대한 예산을 세워 강을 자연 상태로 돌이키려 한다. 핵발전소를 전부 끄거나 아예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폭발은 물론 핵폐기물의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한 번의 사고는 치유 불가능한 상처를 대대손손 남기기 때문인데, 과연 다음 정권은 온갖 부정과 결함이 드러나는 핵발전소를 수명 이내에서 폐기하려 할까. 자식 키우는 어머니들은 핵발전소의 즉각 폐쇄를 원하는데.


     임진년 2012년을 이은 2013년은 계사년이다. 검은 용에 이은 검은 뱀이라는데, 아시아는 뱀을 지혜의 상징으로 여기고 서양은 치유를 상징한다. 2013년은 2012년 이전에 남긴 이 자연의 상처, 후손에게 치명적으로 전가될 상처를 슬기롭게 치유하는 해가 될 것인가. 당선자가 여성이므로 생물학적 남성보다 나을 것으로 기대하고 싶지만, 인수위원회의 면면을 볼 때 막연하기만 하다. 멘붕은 쉽사리 진정되기 어려울 듯하다. 상처가 깊어지기 전이라야 치유가 순조로울 텐데, 5년 이후에 치유가 불가능해질 수 있는데. (지금여기, 201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