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1. 8. 28. 03:00

 

가을이다. 여름에 부지런히 탄소동화작용을 한 곡식과 과일나무들이 가지 끝에 결실을 탐스럽게 매단 가을은 내일을 갈무리하는 계절이다. 농작물과 과일만이 아니다. 산과 들의 수목마다 열매를 소담하게 내놓으니 겨울을 준비하는 동물들은 토실토실 살이 오르고 한해 농사를 마무리한 농부들은 기름진 땅을 물려준 조상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우리의 추석과 서양의 추수감사가 그 행사일 터.

 

그런데 우리 추석인 좀 이른 듯하다. 대개의 햇곡식은 추석 전에 갈무리되지 않고 과일도 익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우리는 왜 음력 815일을 추석으로 삼은 걸까. 중국 남부의 풍습에 맞춘 동아시아 문화권의 성급함이었을지 모르는데, 추석이 다가오면 커다란 햇과일들이 가게마다 켜켜이 쌓이긴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조상이 먹던 과일과 같지 않다. 조상은 식물 성장호르몬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과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 차례상에 오르는 밤도 사정이 비슷할 텐데, 거무튀튀한 바다의 밤송이는 어떨까. 바다의 밤송이는 육지와 달리 추석이 다가와야 알 낳을 채비에 들어간다. 내일을 위해.

 

바다의 밤송이는 성게다. 학자들이 관족이라고 하는 발로 주춤주춤 움직이는 성게는 천적의 공격을 쉽게 막아낼 것으로 짐작케 하지만 언제나 그런 건 아니다. 바위에 제 알을 붙인 물고기는 다가오는 성게를 냉큼 물고 저 멀리 내버리다 관족에 찔려 고통스러워하지만, 가제와 게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은근슬쩍 다가가 배 쪽의 관족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불가사리와 달리, 쥐치는 물을 내뿜고 주둥이가 단단한 돌돔은 무식하게 들이받아 곧추세운 가시들이 무력하게 넘어뜨린 뒤, 관족이 성긴 배부터 공격한다. 그래서 성게들은 육지의 밤송이들처럼 여러 마리가 들러붙는다. 경험이 빚은 생존전략이다.

 

엉덩이로 밤송이를 뜯는 징벌로 졸병 겁주는 선임이 군대에 있더라도 엄포에 지나지 않을 텐데, 바늘과 관족이 제아무리 날카로워도 육지든 바다든, 밤송이들은 도구를 손에 쥔 사람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숨 꾹 참고 30미터나 물질하는 해녀의 장갑 낀 손에 사뿐히 들려 바구니에 들어가면 그뿐. 많은 발로 버둥거려도 소용없다. 성게의 관족들은 제거돼 속살이 드러날 것이다. 육지의 밤송이가 그렇듯.

 

우리는 흔히 알이라 말하는 성게의 생식선을 먹는다. 구멍이 숭숭 뚫린 럭비공 모양의 3에서 4센티미터 정도 칼슘 골격 안에 암컷은 황갈색 알을, 수컷은 연한 갈색 정소를 잔뜩 품고 때를 기다리는데, 사람 역시 쥐치나 불가사리처럼 성게의 생식선을 노리는 거다. 정약전이 맛이 달아 날로 먹어도 좋고 국에 넣고 끓여 먹어도 좋다고 자산어보에 상찬한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초밥에 얹는 일본인이 그렇듯, 세계인은 800여 성게들을 별미로 소비한다. 바다의 다른 생물처럼 남획과 멸종위기를 충분히 짐작케 하겠는데, 그 반대에 가까운 경우도 이따금 발생한다. ‘바다의 사막화라 말하는 백화현상의 주범으로 몰려, 대대적 소탕령이 발동하지 않던가.

 

천적의 활동이 잠잠해지는 밤에 바위틈에서 나와 미역이나 다시마와 같은 커다란 해조류를 뜯어먹는 성게는 양식장의 전복과 같은 식성을 갖기에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여객선이 다니기 어려울 지경으로 과밀한 전복 양식장이 필요로 하는 미역과 다시마는 엄청난데, 물질해 들어가니 성게만 바글거리는 게 아닌가. 해조류의 뿌리가 붙어야 할 바위가 온통 하얗게 드러난 모습에 울화가 치민 어민은 민원을 제기하고, 예산을 거하게 편성한 지방자치단체는 소탕작전에 돌입하는데, 사람은 성게가 알량한 해조류에 달라붙는 이유를 헤아리지 않는다. 쥐치의 남획과 바다부터 데우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반성은 아예 없다.

 

바다가 더워지자 해조류가 잘 붙지 않고, 붙는 시기도 달라졌다. 일본 수출을 위해 보이는 족족 잡아들일 적에 고마운 존재였지만 값싼 중국산이 대신하니 사정이 바꿨다. 이제 우리 바다에 터 잡은 성게는 생존을 위해 남은 미역과 다시마를 축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한꺼번에 수백만 개의 알을 낳는 성게는 욕심 사나운 사람에게 천덕꾸러기로 몰렸지만 해녀가 바다를 떠나지 않은 제주도에서 여전히 반가운 존재다. 미역과 함께 끓여 손님상에 올리는 제주도의 인심은 성게에서 나온다고 말할 정도다.

 

담백하면서 짭조름한 바다 향까지 상큼하게 전하는 성게는 회로 먹기에 좋은데, 상인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적잖게 이롭다며 호들갑이다. 그도 그럴 게,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칼슘과 철분이 많을 뿐 아니라 아연까지 포함하지 않던가. 정력을 강화할 뿐 아니라 불임에 효과를 가져 바다의 호르몬이라 불린다는 성게는 빈혈에 도움을 주고 노화를 예방하며 피부에 좋다고 애호가들은 쌍수를 든다. 하지만 성게는 약이 아니다. 체력과 면역을 높이는 성분이 아무리 많아도 맛이 없다면 인기가 높지 않으리.

 

식성을 돌아오게 만든다는 성게의 생식선을 꺼내보자. 신선한 성게의 칼슘 골격에 칼집을 내어 조심스레 반으로 쪼개면 알이나 정소가 오롯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작은 숟가락으로 떼어내 깨끗한 물로 닦아내면 다양한 요리가 기다릴 터. 일본인들은 김으로 감싼 초밥 위에 얹어놓길 희망하겠지만 우리는 대개 끓였다. 미역과 끓인 성게국, 밥에 섞어 끓인 성게죽이 밥상의 주역이라면 삭지 않은 정도로 담가 냉장고에 넣은 뒤 여러 날 먹는 성게젓은 안주로 일품이다. 해독작용이 뛰어나다니 숙취로 밥상 물리는 술꾼에게 제격일 텐데, 마음 급한 이는 따뜻한 밥사발에 듬뿍 넣고 마구 비벼도 좋겠다.

 

단단한 칼슘 골격을 모으면 산성 토양을 개선하는 비료로 활용할 수 있는 성게가 바다에 아무리 많아도 남획을 보장할 정도는 아니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해조류 변화로 나타나는 백화현상은 양식하는 전복이 아니라 성게에 치명적이다. 미역과 다시마를 거덜내는 것으로 보이던 성게마저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해양경찰은 9월에서 10, 산란기를 맞아 성게의 포획을 금지하고 특별 단속에 나선다고 했으니 다행인데, 지구온난화를 부추긴 사람들이 자신의 탐욕을 자제하지 않는다면 바다의 밤송이도 내일을 갈무리할 수 없다. 이래저래 10월은 성게가 마음 급한 때다. (전원생활, 2011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