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6. 4. 29. 09:34
 

어떤 모습이든, 이웃과 행복하길 바란다




성곤아! 


엘리엇이라는 시인이 4월은 잔인하다고 했는데, 따스한 5월로 부드럽게 이어져야 하는 이번 봄 날씨가 오락가락 하는구나. 널뛰는 것처럼. 재곤이가 잠깐 열이 나서 엄마와 아빠를 놀라게 했는데 너는 어떨지 모르겠구나. ‘아이와 간장독은 밖에 내놓아도 겨우내 얼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내에 틀어박혀 컴퓨터게임이나 학원공부로 점철하는 요즘 아이들의 삶이 전 같지 않아 옛말도 믿을 수 없지. 그래도 아빠는 풀무학교 마당에서 선배와 친구들과 뒹굴 성곤이를 믿는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키도 더 컸지?


개교하고 처음 다녀가는 날, 앞으로 집에 자주 오지도, 전화도 자주 하지도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엄마가 전하던데, 아빠는 조금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여겼어. 방과후는 물론 주말에도 늘어놓고 할 일이 많다는 건, 오늘의 고등학생에게 행운일 수 있기 때문이야. 아빤 어제 동주 아빠를 만났지. 아빠의 후배가 연수구 구청장 후보로 출마하는데, 그 출정식장에 축하하러 갔다 만난 거야. 너 동주 잊지 않았지? 임동주. 그 녀석도 강화의 산마을고등학교에 신나게 다니고 있다고 동주 아빠는 말씀하시더구나. 그런데 역사가 짧은 산마을고등학교는 방과후 프로그램이 부족해 주말이면 집에 온다고 하신다. 동주 아빠를 비롯하여 아빠가 아는 많은 분들은 풀무학교의 연륜을 부러워한다. 성곤이 네가 집에 자주 오지 못하지만, 경험으로 빚은 연륜이 다져놓은 풀무학교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네가 능동적으로 참여한다고 믿기에, 아쉽더라도 아빠는 믿고 있는 거야. 이번 학부모 모임 때, 네가 보낸 초청엽서처럼 ‘푸르게’ 커가는 너희를 즐거운 마음으로 보려고 한다.


엄마와 아빠는 성곤이가 충분히 짐작하듯, 늘 그 모습 그대로 잘 지내고 있고, 재곤이도 그래. 다만 성곤이의 손길을 잘 타지 못하는 관상어류(성곤이는 매운탕 감이라고 ‘싸이’에 말하더구나. 말 나온 김에 네 싸이에 가끔 들어가렴. 인천중학교 동기, 미래학교의 친구와 후배들이 목 빠지겠더라)들이 좀 서러워하겠다 싶어. 가끔 엄마 아빠 재곤이가 살펴보곤 하지만 성곤이 마음 같지는 않아. 이번에 집에 오면 대대적인 보살핌이 필요하겠지. 엄마는 생명회의에서 요즘 삼국유사를 읽고, 아빠는 복잡했던 ‘풀꽃세상’의 일이 잘 풀려가 한 시름 놓고 있다. 인간관계는 어디 가나 쉽지 않다는 걸 덕분에 잘 깨닫고 있단다. 아빠가 자원활동으로 강의하는 ‘전태일을 기리는 사이버 노동대학’에서 최근 새로운 제안을 받아 고민하고 있다. 만나 식구하고 그 이야기 해볼까?


참, 너, 전태일이 누구인지 『전태일 평전』 읽어보길 바란다. 전에도 이야기하고 책도 보여주었지만, ‘돌베개’ 출판사에서 발간한 그 책, 아마 풀무학교 도서관에 있을 거야. 함께 살아가야 할 민중의 권리가 누구에 의해, 왜, 어떻게 짓밟히고 외면당했는지 모르는 너희들에게 좋은 양식이 될 우리시대의 고전이거든. ‘조국 근대화’라는 명분을 내건 기득권이 이기심과 오만으로 핍박하고 조롱했던 민중의 고통과 그 고통에서 해방되려는 민중의 고민을 다소라도 이해하게 만들어줄 거고, 그런 이해는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평민을 만드는 풀무학교 정신과 잘 통할 거야. 그 이웃에는 가정, 친지, 선후배, 친구, 스승과 이웃은 물론이고, 그들이 살아가는데 서로 도움이 되는 생태계의 생명가치들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아빠가 좋아하는 녹색평론사에서 출간한 『경제발전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도 읽길 바란다. 역시 풀무학교 도서관이 있을 거야. 경제발전의 허구를 깨닫게 해주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확신하게 해줄 것으로 믿으니까.


재곤이 이야기를 빼놓았나? 요즘도 쑥쑥 자라는 재곤이는 형이 없는 방에서 조금은 쓸쓸해하고 있어. 말 수가 적어졌구나. 조금씩 변성 기미를 보이고 있는 재곤이지만 형과 많은 이야기 재재거리고 싶은 마음일 거야. 영어와 수학 공부를 더 시키려는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아빠지만, 바둑공부에 더 시간 내고 싶어하는 재곤이를 아빠는 충분히 이해하지. 그래서 그런지 재곤이 바둑 실력이 많이 늘었어. 하지만 그러다보니 피곤하고, 아빠가 읽기를 강요하는 <삼국지>도 제대로 손에 들지 못하는구나. 성곤이에게도 강요했던 삼국지는 내용이 좋아서 읽으라는 게 아니야. 삼국지를 알면 그 내용을 가지고 많은 이들과 대화할 때 평생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거지만, 그 보다 너와 재곤이에게 책읽기 습관이 생기길 아빠는 기대하기 때문이지. 책을 손에 놓지 않는다면 앞으로 언제든 어디에서든 무슨 일을 하든, 아빠가 늘 강조했지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아빠 말, 지금도 잊지 않았지? 전화로도 챙기지만, 요즘 책은 읽고 있겠지? 집에 와서도 재곤이를 위해서라도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지난 4월 9일, 한 주일 늦게 한식 성묘를 다녀왔단다. 너도 짐작했는지 모르지만, 아빠는 성곤이가 오는 놀토를 생각해 일주일 연기한 거야. 작은 아빠는 산소에 올 때 공부를 핑계로 수련이와 성재를 빼고 오곤 하지 않던? 아빠는 그런 모습이 내심 탐탁지 않았고, 성재와 수련이가 풀무학교에 간 성곤이를 보고 싶어하기도 해 일주일 연기했는데 성곤이가 그날 같이 성묘에 가지 못해 아빤 참 아쉬웠던 거야. 성곤이는 싫든 좋든 집안의 장손이다. 장손에 대한 기대는 집안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소라도 갖게 마련이거든. 그 중 아빠가 가장 그 기대가 크지. 그렇다고 집안일을 옛날처럼 몰두하라는 건 아니야. 학교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아빠도 올 설날에 유럽에 다녀오지 않던. 하지만 아쉬웠던 것은, 집안의 사정을 미리 알려고 하면서 일을 조정하지 못한 것이란다.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1학년이기 때문일 것으로 이해는 한단다. 학교에서 선배나 선생님들과 가진 약속을 지키는 건 매우 중요해. 하지만, 집안의 사정을 사전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면 내용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앞으로는 학교일도 열심이지만 집의 사정도 미리 생각했으면 한다. 그래야 집안에서도 자랑스러워 할 성곤이로 성장하기 않겠니. 사회도 집안의 연장이거든.


아빠는 밖에서 자식 이야기 나올 때마다 흐뭇해지곤 한단다. 풀무학교를 아는 사람들은 다 부러워하거든. ‘친구가 아니라 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분위기에서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는 데 아빠는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계산하지 않는 친구를 선후배를 선생님들을 만나는 학교가 아니겠니. 평생 큰 힘이 될 관계를 가지는 거지. 공부도 그래. 자신의 개성을 알고, 내 신념과 긍지를 지닐 내일을 생각해 스스로 공부할 수 있을 때 가장 재미가 있고 몸과 머리에 쏙쏙 들어가지 않겠니. 그러므로 일단 풀무학교를 즐기길 바란다. 그 가운데, 앞으로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이 어떤 부분일까를 충분히 고민하면서 말이야. 또한 그 삶이 ‘생태적’이길 아빠는 바란다. 아빠가 생각하는 생태적이라는 것, 나중에 도서관에서 아빠의 책을 찾아 읽어보렴.


고향을 잃은 세대에서 커가는 이 시대 대부분의 청소년과 인생의 짧은 시간, 하지만 인생관을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시간에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성곤이를 아빠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재곤이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점철되는 회색도시에 맡겨져 있어. 그래서 아빠는 재곤이에게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단다. 성곤이가 재곤이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길 아빤 희망해. 어려서부터 크게 다투지 않으며 다정했던 형제애를 커가면서 새롭게 다져나가야지.


한 해 중 신록이 솟아오를 때 자연은 가장 아름답다고 아빠는 생각한다. 바로 너희들의 세상이 열리는 때이기도 해. 평생에 걸쳐 아쉽고 자랑스러워하는 아주 짧은 시간이야. 그 시간 후회 없이 구가하길 바란다. 나중에 무슨 일을 하던, 이웃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 바기 때문이야. 그럼 5월 4일, 학부모 모임 때 만나자꾸나.


2006년 5월 1일, 성곤이를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