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11. 8. 14:38

    성조숙증 뿐이랴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신문을 척척 읽는다면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영재라고 생각하고 특별하다는 교육에 나서려 할지 모른다. 기저귀를 찬 아기가 신문을 떠듬떠듬 읽는 광고도 있는 이 땅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여러 가지 솔깃한 이유로 영재교육을 받았을 텐데, 사실, 어린 나이에 두각이 나타나는 영재는 우리 사회에서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영재교육에 어려서부터 지친 그는 어쩌면, 요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보듯, 신동 소리를 듣던 예전의 모습에서 별 진전이 없는지 모른다. 주눅이 들어, 떠듬떠듬 신문을 읽는.


인간이 생태계의 다른 동물과 확연히 다른 특징이 여러 가지 있지만 커다란 뇌의 예리한 능력이 두드러질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개인의 두뇌가 아무리 빼어나도 사회에서 조화롭게 배려되지 않는다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영재는 물론이고 범재도 마찬가지이건만 많은 사람들을 제 아이의 독특함을 자랑할 뿐, 사회 속에서 이웃과 따뜻하게 어울리는 무던함을 대견해하지 않는다. 후손은 물론 생태계와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가야 하는 사회이건만, 돌출하는 부조리에 저항하는 제 자식의 몸짓을 격려하는 이, 무척 드물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 사회의 부조리는 여간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제 자식이 또래들보다 더 어른스럽다면 마냥 대견해 해야 할 일일까. 무릎에 앉은 아이가 남대문이 국보 1호라는 소리를 듣고, 엄마에게 국보 2호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엄마는 영재 낳았다고 좋아할 거로 광고는 지레짐작하지만, 끔찍하다. 말을 겨우 배웠을 아이라면 엄마에게 국보가 뭐냐고 물어야 정상이다. 제 아이를 또래보다 더 똑똑하게, 키도 몸집도 더 크기 키우기 위한 경쟁은 성조숙증을 낳았다.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하려는 욕심이 빚은 농산물과 그 가공식품이 아이들에게 마구 제공된 맥락과 같기 때문이다. 음식을 통해 들어오는 호르몬과 시선을 자극하는 화면은 어떤가.


카리브의 열대우림 푸에르토리코는 관광산업으로 재정을 꾸려가며 식량의 대부분을 식민지 모국인 미국에서 조달한다. 어느 핸가, 그 곳의 3살 여자아이가 월경을 했다. 화들짝 놀란 부모가 데리고 간 병원은 또래보다 몸집이 커다란 아이가 계란 노른자를 입에 달고 지냈다는 데 주목했고, 그 계란에 여성호르몬이 높은 농도로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의 공장식 산란 농장에서 많은 계란을 빠른 시간 내에 받기 위해 닭의 모이에 여성호르몬을 적지 않게 주입했고, 그런 까닭에 가격이 저렴한 계란을 입에 달고 지낸 아이는 그만 생후 3년 만에 임신이 가능한 신체로 조숙하게 된 것이다.


푸에르토리코만의 사정일 리 없다. 언론이 주목하지 않고 부모가 쉬쉬해서 그렇지, 우리나라 역시 적지 않은 아이들에게 성조숙증이 나오고 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임신하는 사례도 드물게 발생한다고 일선 교사는 귀띔하기도 한다. 우리의 대형 양계장이 여성호르몬 사용을 자제한다는 소식을 들은 바 없지만, 여성호르몬은 우유에도 섞일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신체가 성적으로 성숙해도 남녀 사이의 관계가 없으면 별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지만, 화면 매체를 통해 관음증이 도를 넘는 우리 사회는 무책임한 결과를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


최근 우리 의료계에서 사춘기가 일찍 찾아오는 어린이가 부쩍 늘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닐 텐데, 여자 어린이의 경우 만 8, 남자 어린이는 9세 이전에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성조숙증으로 치료받는 어린이가 6년 사이 194명에서 3600명으로 늘었으며 여자 어린이가 많다는 것이다. 서구화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으로 체지방이 늘어나는 현상을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한 전문 의사는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한 성적 자극이 증가한 것도 한 원인으로 분석하면서 성조숙증 어린이는 성장판이 일찍 닫혀 키가 덜 자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키가 작으면 사회의 부적응자 취급을 받는 분위기에서 전문 의사의 경고는 부모와 아이에게 경각심으로 전달되기 충분한데, 의사들은 집에서 성조숙증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안내했다. 첫째, 가슴에 멍울이 잡히거나 초경을 시작하는 여학생이나 음모가 자라고 변성기가 나타나는 남학생에서 둘째, 머리 냄새와 땀 냄새가 진해진다면, 셋째, 성격이 급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지 의심해야 하고, 넷째, 얼굴에 피지가 보이고 여드름이 나는지 살펴보라고 한다. 다섯째, 키에 비해 체중이 많이 나가고 몸에 지방이 많은데, 여섯째, 성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면 일단 성조숙증의 가능성이 있다는 자가진단이다. 6가지 사춘기 증상 중 두 가지 이상이 아이에게 나타나면 성조숙증 가능성이 있고, 4가지 이상이라면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을 것을 의사들은 권하는데, 폭발적인 관음증을 통제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는 성조숙증에 어떤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성조숙증의 자가 진단과 치료가 물론 요긴하지만 그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기 어렵다. 성조숙증의 원인을 짐작하고 있다면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책임 있는 사회라고 진단할 수 있다. 전문 의사는 성조숙증의 원인으로 서구적인 식습관과 운동 부족을 원인으로 지적했지만, 그런 생활습관이 최근에 붉어졌을 리 없다.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조류독감과 구제역이 발생하고 광우병이 쇠고기를 멀리하게 만들면서 많은 이는 육류 위주의 식습관의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왔어도 우리 사회는 6년 전에 비해 성조숙증이 급격히 늘어난 결과를 가져왔다. 여성호르몬을 적지 않게 포함하는 계란과 우유의 문제, 몸 안에서 호르몬 분비를 교란하는 환경호르몬의 문제가 6년 이전에도 숱하게 제기했어도 정부와 기업은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자기진단을 거쳐 병원 찾으라는 권고는 자칫 환자 유인하려는 병원 측의 판촉으로 오해살 수 있다.


성조숙증만이 최근 늘어나는 어린이들 식품 문제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아토피나 당뇨와 같은 성인병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성조숙증처럼 발생 원인을 짐작하는 질병이건만, 알면서도 분명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통이다. 일부 헌신적인 시민단체를 제외하고, 서구식 식습관을 고치려는 전문가 집단의 체계적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으며 여성호르몬을 첨가하는 공장식 축산 체제에 제재가 가해지거나 가공식품에 첨가물을 단속하는 정부와 관계기관의 움직임도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성조숙증을 만연시킬 농축산물과 그 가공식품이 넘치지만 개개인에게 그 책임을 물을 따름이다.


머지않아 대학입학의 풍랑이 우리사회에 몰아칠 것이다.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채워지다 지방의 전문대학을 위기에 몰고갈 입시제도는 중앙 집중적이고 획일적이다. 학생은 물론이고 학교의 개성은 철저히 무시된다. 대학은 그저 빨리 키워 많은 돈을 벌어들이려 하는 공장식 축산과 그다지 다르지 않고 학생은 그런 축사에 갇힌 가축과 처지가 비슷하다. 대학을 지망하는 많은 젊은이들은 어려서부터 획일적으로 사육되었다. 개성은 무시되었으니 전공이 입시에서 고려될 리 없고 취향이 거세되었으니 지방은 소외된다. 그저 취직 통계나 서푼어치 명성의 잣대로 줄을 세워 차례로 밀어넣을 뿐이다.


요사이 대학을 들어간 젊은이 중에 일찍이 선행학습을 강요받지 않은 이 몇이나 될까. 중고등학교 시절은 물론이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심지어 유치원 단계부터 강요받은 선행학습은 대학에서 전공을 택해 공부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입시에 도움이 되었을까. 그렇게 치열했던 선행학습에 들어간 비용과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선행학습 덕분에 대학에 들어갔다고 치자. 들어간 대학과 전공은 자신의 장래를 담보할 수 있을까. 공부하면서 신념과 긍지로 자신의 인생을 던지게 할까. 자신의 내일을 스스로 설계하며 세계관을 다지는 시절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 젊은이들은 피해자다.


황금들판의 벼와 과수원의 과일이 거의 갈무리되었다. 풍요롭게 보이던 논밭의 농작물은 우리 식량 자급 정도에 비참할 정도로 모자라는데 그나마 자급해왔던 쌀마저 부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굶주리지 않으려면 막대한 식량을 수입해야 할 텐데, 멀리서 재배한 까닭에 경작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없던 외국의 농산물이 얼마나 건강할지 우리는 알기 어렵다. 문제는 게으른 식탁에 올려놓기 쉽게 가공한 음식이다. 곡물이나 채소든, 육류나 낙농제품이든, 빠르게 많이 재배한 공장식 농축산물에 첨가물을 넣은 가공식품은 성조숙증과 무관하지 않은데, 해마다 수십 조 원 어치 음식 쓰레기를 버리는 우리는 내 땅에서 더욱 빈약해진 가을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성조숙증은 어린 나이에 사춘기에 접어들게 하면서 오히려 건강한 신체 생장을 방해한다. 성조숙증을 부추기는 공장식 축산은 식량위기를 자초하는데, 획일적인 선행학습은 젊은이의 건강하고 다채로운 사고를 방해한다. 하지만 돌이켜보자. 누군가 부추기는 선행학습을 거부하는 젊은이, 공장식 축산을 외면하는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세상을 바꾼다. 성조숙증을 부추기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깨어 있는 자는 속된 사회가 부추기는 성조숙증을 슬기롭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가을이 무르익었다. (푸른두레생협, 201211월호 소식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