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11. 16. 03:45

 

주변의 경험을 미루어볼 때 노화를 감추려는 의지는 여성일수록, 그 여성이 유명할수록 심한 것 같다. 유명한 여성만이 아니다. 팽팽한 피부를 과시하는 40대 여배우가 귀엣말로 유혹하는 고가의 화장품 광고가 텔레비전의 황금시간을 차지하는 걸로 보아, 보통 여성들도 노화를 피하려는 마음이 강한 모양이다. 물론 남성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노화는 어느새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걸 깨닫는 이에게 젊음은 부러움을 넘어 상품이 된 것인데, 젊음은 무엇이고 언제까지일까. 젊음은 건강일까. 피부가 팽팽하고 근육에 탄력이 탱탱한 20대는 분명히 건강하지만 30대와 40대도 얼마든지 건강하다. 한시적인 신체의 건강보다 정신의 건강까지 살핀다면 젊음을 얼마든지 상대적일 수 있지만 많은 이는 신체적인 젊음을 턱없이 연장하려 든다. 노화를 지나치게 막으려다 몸과 마음 그리고 돈의 한계마저 무너뜨린다.

 

작년 가을, 영국의 한 언론은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노화 방지 산업이 880억 달러로 성장했다고 전했다. 주름 제거를 위한 보톡스나 비타민은 물론이고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호르몬 요법이 등장했으며 성호르몬을 주사 맞거나 피부에 바르는 시술이 성행한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노화 방지 클리닉의 수입이 늘고 관련 책자가 불티나게 팔린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실버산업’이 점점 커지는 거다.

 

머리카락 염색약과 대머리를 위한 가발산업이 성장하고 보청기와 전동 휠체어 판매량이 늘어나는 건 물론이지만 가장 유망한 실버산업은 단연 노인병원이다. 임종이 다가온 노인을 맡는 병원만이 아니다. 관절염과 치매를 전문으로 치료한다는 병원도 등장한지 오래다. 계단을 내려갈 때 뜨끔거리는 관절염은 분명 정상은 아니다. 뇌기능이 퇴화되어 나타나는 치매도 마찬가지인데, 노인의 관절염과 치매는 병원에서 치료해야 할 질병일까. 치료하면 낫긴 낫는 걸까. 어느 수준으로 낫는다는 건가. 젊음을 되찾는 겐가.

 

언젠가 유명한 연구소의 어떤 연구자가 거액의 연구비를 정부에 신청했다. 우리나라 여성에게 많은 관절염을 치료하려는 목표를 자랑스레 내세운 그는 그 관절염에 관계하는 유전자를 찾아내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걸음 옮길 때마다 고통스러운 우리 여성들을 위한 연구라는 걸 강조했지만 연구자는 그 유전자가 왜 나이 든 여성에게 발현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문제의 유전자가 몇 개인지, 어떤 염색체의 어디에 있는지 모르므로 거액이 필요하다고 당당하게 주장했어도 어린 여성도 가지고 있는 관절염 유전자가 왜 나이 들어야 발현되는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몸에서 질병으로 나타나는 대부분의 유전현상은 단순하지 않다. 유전자가 있으므로 당연히 발현되는 게 아니다. 환경이 맞아야 비로소 발현되는 유전자의 발현 정도는 사람에 따라,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그 관절염 유전자를 샅샅이 알아냈어도 관절염 발병과 치료의 상관관계를 단정할 수 없다. 어쩌면 관절염 유전자는 관절에 염증이 생겼기에 발현되었을지 모른다. 유방암 유전자가 그렇듯, 정상인에게 훨씬 많다면 관절염 유전자를 찾아 치료제를 발명하는 연구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관절염 발생 원인을 먼저 찾아내는 순서일 텐데, 노인성 관절염은 근원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 치매 연구도 매우 활발한데, 노인의 치매는 연구자의 기대처럼 발본색원할 수 있을까.

 

갱년기를 낫게 한다는 성호르몬은 갱년기 증세를 질병으로 바꿔놓았을 뿐 아니라 노화되는 몸의 균형을 뒤흔들었다. 나이 들수록 누구나 근육과 장기의 기능이 약해지는 게 정상인데, 높은 농도의 성호르몬이 느닷없이 혈액에 흐르면서 신체 일부가 감당할 수 없게 활성화되면 몸의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근육을 마비시켜 주름을 없애주는 보톡스는 차라리 애교에 불과하다. 거듭되는 성호르몬 처방으로 과부하가 걸린 신체에 면역이 약화되면 암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문 의사들은 경고한다. 성호르몬뿐인가. 최근 줄기세포를 이용해 젊음을 되찾겠다는 이가 많은데, 역시 위험하다. 안정성까지 의심스러운 줄기세포가 몸의 균형을 해칠 수 있는 탓이다.

 

85세 이상의 절반이 치매라지만, 사람마다 현상은 천양지차다. 노화되는 뇌 부위에 따라 증상과 증상의 정도가 다르다. 진행에 따라 치료 방법도 다르다고 한다. 젊을수록 정상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고 고령일수록 진행을 늦추는 수준에서 그칠 수밖에 없다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뇌 건강을 신체와 더불어 유지하도록 젊어서부터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리라. 적당한 활동으로 관절염을 예방하거나 늦추듯, 돈독한 독서나 대화는 치매의 확률을 낮출 것이다.

 

젊음이 건강을 독점하는 건 아니다. 나이에 맞게 살 때, 누구나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다. 노화를 피해야 할 질병이라기보다 받아들여야 할 현상으로 인식할 때, 노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은 편안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실버산업은 젊음을 함부로 유혹하지 말고 경륜으로 후손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사회와 노인을 배려해야 옳다. (야곱의우물, 2011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