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8. 7. 27. 13:00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많이 듣던 소리다. 아이를 방구석에 가뒤놓고 공부 강요하는 부모도 비슷한 논리를 펼 것이다. 좋은 대학에 입학한 뒤 좋은 회사에 취직해 돈 많이 벌면 네게 좋은 일이므로 지금 열심히 공부하라고,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라고 말할 것이다. 좋다는 건 행복하다는 의미일 텐데, 돈을 많이 벌수록 더 행복할까? 돈이 있어야 의식주가 보장되고 물과 공기마저 구매해야 안심할 수 있는 사회이므로 그럴지 모르는데, 월급이 많은 회사에 취직한 젊은이는 그렇지 않은 젊은이보다 행복할까?


많은 월급으로 행복에 겹던 젊은이가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잦다. 월급의 크기가 행복을 좌우하는 건 아닌 모양인데, 회사에 인생을 바칠 때와 퇴사 이후에도 행복이 이어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능동적으로 돈을 쓸 수 없는 처지에서 벗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벌어들이는 돈의 크기와 관계없이, 행복한 이도 있다. 그들은 대개 나이에 관계없이 자신의 일에 창의적으로 몰두한다. 자신의 일이 다른 이의 행복에 기여한다면 더욱 기쁘겠지.


새만금 간척지에 바이오 스마트팜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용어가 아리송하다.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뭔가 감추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34km에 이르는 제방으로 막힌 간척지는 아직도 수많은 계획만 나부낀다. 앞으로 어떻게 개발될지 확신이 어려운데, 들리는 소문은 언제나 아리송하다. 바이오팜? 지역의 농민과 농촌은 소외되는 느낌이다. 기업을 위한 농업인가?


친환경 간척사업이라더니 언젠가부터 명품 산업단지로 홍보하던 새만금 간척지에 들어선다는 바이오팜은 무엇일까? 거대한 온실단지로 예상할 수 있겠는데, 컴퓨터로 전자동 관리 운영한다 하겠지.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할 테니, 자랑 목록을 늘릴 것이다. 적시에 적량의 작물을 재배하여 자동으로 수확한 뒤, 맞춤으로 분류 포장해 소비자에게 제때 배달할 거로 홍보하리라.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청정할 뿐 아니라 모든 게 자동인 까닭에 가격이 저렴한 농작물을 대규모로 생산하는 바이오팜은 수출농업의 꿈을 이루게 할 거라 장담할지 모른다.


바이오팜은 씨 뿌리고 잡초 뽑으며 불만을 늘어놓을 농민을 원하지 않는다. 농촌도 불필요하게 여기는 바이오팜은 기업이다. 월급을 얼마나 받을지 모르지만, 하얀 가운 입을 몇 명이면 충분한 바이오팜에 취직하려면 어려서부터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젊은이가 바이오팜에 취직하든 말든, 드넓은 새만금 간척지에 바이오팜이 가득 들어서면 우리는 식량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식량 자급률이 20%를 겨우 넘어서는 요즘 꿈도 꿀 수 없는 자급의 시대를 맞을 것인가?


에너지 노예란 책이 있다. 과거 노예는 채찍 맞으며 면화를 따야했다면 요즘은 아니란다. 우리가 신용카드의 노예라는 풍자가 있는데, 에너지 노예저자는 다르게 이야기한다. 소비하는 에너지를 스스로 구하자 않으며 의식하지 않지만, 우리는 상당한 수의 에너지 노예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용하는 전기를 내 노예가 옆집에서 발전 자전거를 돌리며 생산한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얼마나 많은 수의 노예를 부리고 있을까? 참고로 미국인 한 사람은 평균 250명의 에너지 노예를 부린다고 저자는 추산했다.



사진: 석유가 안내하는 내일을 음울하게 묘사한 컷(인터넷에서)


할리우드 영화로 미국 문화에 포섭된 우리는 미국인의 생활수준을 선망한다. 냉난방 자동 조절되는 실내와 수영장이 딸린 집에서 식구 수만큼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면 미국에도 일부 계층일 텐데, 사실 우리도 어느 정도 따라간다. 두 대 이상의 승용차를 소유한 집이라면 아이 방마다 텔레비전이 놓였지 않던가. 기후변화에 대한 교토협약을 부정하던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식 삶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천명했다. 그런 미국식 삶을 선망하는 우리는 언제까지 지금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스마트팜은 막대한 에너지 지원이 없다면 존립이 불가능하다. 자동화 설비에 들어가는 에너지만이 아니다. 예측 가능한 재배와 대규모 수확을 위해 유전자의 다양성을 거의 없앤 농작물은 외부 환경변화에 무척 취약하다. 세균과 바이러스, 그리고 곰팡이의 침입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시설을 유지하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드넓은 밭에서 옥수수를 재배할 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텐데, 미국에서 1000칼로리의 옥수수를 재배하려면 그 10배인 1만 칼로리의 석유가 들어간다고 한다.


대부분의 미국산 쇠고기 1킬로그램은 16킬로그램의 옥수수를 사료로 제공해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미국산 쇠고기 100그램을 값 싸게 구입해 맛있게 먹는다면 그 16배 옥수수를 먹는 셈이다. 그뿐인가. 옥수수에서 얻는 칼로리의 10배에 달하는 석유를 들이키는 꼴이다. 옥수수 재배에서 쇠고기 포장에 이르기까지, 과정 과정마다 정부가 보조금을 지불하므로 미국산 쇠고기는 저렴할 수 있다. 석유는 무한하지 않은데, 이런 호강은 언제까지 가능할까? 석유든 석탄이든, 화석연료를 태워 만드는 전기든, 절대 무한하지 않다. 에너지 노예는 머지않아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석유자본의 지배에서 자유로운 석유 전문가는 매장된 석유는 머지않아 고갈 신호를 보낼 것으로 확신한다. 현재 비축된 석유가 많아 그런 징후를 숨길 수 있지만 2005년 이후 유정에서 퍼내는 양보다 소비하는 석유가 많은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고갈 징후를 계속 감추기 어려울 테고, 석유가격은 치솟을 것으로 예측한다. 그 이후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는 값 싸게 먹을 수 없다. 식량자급률이 형편없는 만큼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때 스마트팜은 아무런 도움도 못 준다.


환경오염과 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수소차와 전기차를 보급하자고 제안하는 이가 있다. 하지만 신기루일 뿐이다. 천연가스에서 분리할 수소의 양은 많지 않으므로 물 전기분해로 수소를 얻어야 할 텐데, 그때 들어가는 전기의 양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오염원인 화력발전으로 감당할 수 없다. 핵발전? 죽음의 재를 대대손손 끌어안을 요량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다. 석유가 고갈된 뒤, 에너지 노예를 부릴 능력이 사라진 사람들은 불행해야하는가?


에너지 소비로 만든 지금과 같은 편의는 지속될 수 없다.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는 현재 없다. 앞으로도 없을 거라 전문가들은 동의하는데, 우리는 에너지 과소비를 전제로 가능한 삶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권한다. 그래야 행복하다고 세뇌하지만 어떨까? 아직 현실이 아닌 바이오팜이나 수소차는 허상에 불과하지만 에너지 노예 없어도 행복한 삶을 대비하지 않는다면 좋은 대학과 좋은 회사도 신기루에 불과한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에너지 노예는 다음세대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다. 전기가 주는 안락함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자에 의해 채찍 수모를 당할 노예는 늘어날지 모르지만.


우리는 석유가 제공하는 풍요로움에 찌들었다. 계절을 잃은 과일과 채소 뿐 아니라 열대과일도 대형마트마다 가득하지만 그 때문에 후손의 삶이 피폐할 거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세대정의에 맞지 않다. 초미세먼지를 마구 퍼뜨리면서 공기정화기를 설치하고 마이크로플라스틱을 거르는 정수기를 집집마다 설치할수록 세대정의는 허물어진다. 석유 몰랐던 선조가 분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돌이킬 여유가 조금이라도 남았다면, 세대정의 차원에서 후손의 행복한 삶을 모색해야 한다. 휴대폰과 승용차를 몰랐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안을 알고 있겠지. (작은책, 2018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