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1. 3. 22. 13:24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바오, 2009.

 

우리의 여왕 김연아가 돌아왔다. 8개월 만에 돌아온 그는 알차게 준비한 피겨세계선수권대회가 무산된데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답게 당분간은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 역할에 조금 더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언론은 전했다. 김연아가 가세하면서 올림픽 유치는 큰 힘을 받을 것처럼 상기된 투로. 불가항력인 대지진으로 무산된 동경 대신 언제 어느 도시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개최될지 모르는 처지임에도 유치전에 김연아가 뛰어든 마당에 반대의사를 공공연히 표하는 이가 거리낌 없이 나타난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사실 지적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 아닌데.

 

설 연휴가 시작될 때, 동남권 신공항을 밀양에 설립해야 하는 이유를 알리려 밀양역에 당도한 시장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참고 볼 수 없었다. 밀양 시내를 뒤덮은 현수막은 부산 가덕도를 비방하면서까지 반드시 밀양에 세워져야 한다고 외치고 있건만 저 젊은이들은 하필 이때 귀성인파에게 반대 전단을 마구 뿌려대는 겐가. 시민 앞에서 체면이 깎일 뿐 아니라 자칫 표도 잃을 수 있다고 여겼는지 시장은 보란 듯 실력행사를 벌였다. “너 같은 XX는 밀양시민이 아니야!” 욕설로 부족했는지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그 광경을 본 밀양시민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때리는 시장은 애향인, 맞는 시민은 추방당해야 할 매향노였을까.

 

유신독재 시대, 다른 의견을 이웃에게 말하던 이가 소리 소문 없이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더니 결국 동네를 떠났다. 1979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지옥의 묵시록은 권력을 쥔 자가 이따금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건 공포가 그 원인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동네의 여론에 영향력이 거의 없는 시민에게도 폭력을 휘두른 유신독재 정권은 무엇이 그리 두려웠을까.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을 휘두르던 군사독재 정권은 학생과 시민의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민주적 정통성도 유권자의 지지도 없었다. 시민의 목소리를 억압하지 않으면 비참하게 퇴출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폭력의 근저에 도사렸을 것이다.

 

16세기 중반, 그러니까 로마가톨릭에 반기를 든 일련의 목사와 신학자들이 개신교를 주창하며 가톨릭 도시와 국가들을 새로운 신앙의 공간으로 바꾸어나갈 무렵이었다. 스위스 제네바의 인문주의자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는 가톨릭의 사슬에서 막 풀려난 도시에 흘러들어와 새로운 독재를 감행하는 칼뱅에 대항해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주창했고, 그 대가로 혹독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박해를 피해 프랑스와 에스파냐에서 제네바로 숨어들어온 신학자 사이에 주도권을 놓고 벌어진 새로운 억압의 시대, 그런 억압에 저항한 한 인문주의자의 목소리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간 20세기 최고의 전기작가, 독일인 스테판 츠바이크 손에서 실감나게 재현되었다.

 

같은 시기, 로마가톨릭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에스파냐의 바야돌리드에서 남아메리카의 원주민을 인간으로 인정할 것인가 동물과 다름없는 미개인으로 취급할 것인가를 놓고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 신부와 신학자 히네스 데 세풀베다가 추기경의 사회로 치열한 논쟁을 벌일 때, 거침없는 열정과 선동으로 가톨릭 성직자를 수도권에서 몰아낸 제네바는 26살의 신학자 장 칼뱅을 끌어들였다. 츠바이크의 말로 예언자적인 확신을 가지고 새로운 교리의 정신적인 요체로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는 기독교 강요를 집필한 칼뱅은 종교개혁으로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질 위기의 개신교를 하나로 붙들어 맸다. 그로인해 방종은 교의가 되고, 자유는 독재로 변했으며 영적인 흥분은 정신적인 규범이 되었다고 츠바이크는 썼다. 조국 프랑스에서 쫓겨나 낯선 땅에 정착한 젊은 칼뱅은 혁명 초기 다채로운 성서 해석이 난무하는 위기 상황에서 상대를 철저하게 파괴하거나 자신이 붕괴하는 선택만이 놓였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그 칼뱅에게 도전한 신학자가 있었다. 칼뱅의 절대 교리에 따라 사람의 기쁨 대신 하나님의 공포 속에서 군대와 같은 규율로 웃음까지 잃어버린 제네바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교리를 들고나온 에스파냐 출신의 미겔 세르베투스가 그였다. 분노에 일그러진 독재자 칼뱅은 교묘하고 무자비한 수단을 총동원해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고집하는 세르베투스를 기어코 산 채로 화형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그 사건은 양심을 깨웠다.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신학자의 양심에 이단자라는 멍에를 뒤집어씌우고 종교적 살인에 나선 냉혹한 칼뱅을 행해 이웃 도시 바젤의 신학자이자 교수인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잠자코 있는 대다수 지식인과 달리 광신자의 살인행위에 저항해야 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표시했다는 이유로 양심에 따를 주장을 한 학자를 불태워 죽인 행위는 개신교가 어렵게 쟁취한 기독교도의 자유의 권리를 단번에 없앤 것이다. 통치 몇 십 년 만에 칼뱅은 가혹한 정신적 독재로 개신교의 명예를 지워버리지 않았나. 이단자라니. 하느님을 찾는 종교인이 성서에도 없는 이단자라는 말을 마구 휘둘러 대립하는 의견을 가진 이를 함부로 죽여도 무방하다는 겐가. 참된 기독교란 무엇인가. 가톨릭인가, 루터파인가, 칼뱅파인가. 저마다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다른 해석을 이단이라 지목하고 서로 처형한다면 하나님 세상에는 피만 넘칠 뿐이다. 화형당한 사람이 이웃나라에 순교자가 되는 해석을 하나님이 칼뱅에게 허락했다는 겐가.

 

가명으로 쓴 이단자에 관하여에서 악마나 만들어낼 만한 잔인한 살육을 그리스도에게 미루는 인간들의 극악한 용기에 비탄한 카스텔리오는 <칼뱅의 글에 반대함>이르는 고발장에서 법으로 말을 유린하고 교리로 생각을 짓밟는 폭력에 분명한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분노한 칼뱅은 이웃 도시에 압력을 넣어 카스텔리오를 감금하며 입을 다물게 하려 했지만 강금당한 자는 젊은 시절 칼뱅이 꺼낸 말에서 모순을 들춰냈다. 과거 칼뱅의 주장은 현재 칼뱅이 볼 때 화형감이었던 것이다. “진리는 펴져나가는 것이지 강요되는 게 아니라는 신념을 가진 카스텔리오는 바젤 당국의 배려로 감옥에서 풀려나 칼뱅의 글에 반대함이라는 책을 썼지만 발간되지 못했다. 칼뱅이 미리 손을 썼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두려웠을까. 세르베투스의 경우처럼 처형하려 온갖 궁리를 다하던 독재자는 양심의 목소리로 싸우다 심신이 피폐해진 인문주의자가 48세에 사망하자 한숨을 돌렸다.

 

권력을 쥔 자의 관용을 이야기한 카스텔리오의 칼뱅의 글에 반대함100년 뒤 빛을 보았고 세상은 어느새 달라졌다. ‘사람의 기쁨 대신에 하나님의 공포를 내세운 텅 빈 교회들은 관용의 정신으로 서서히 변했다. 감각적인 삶은 언제나 추상적인 가르침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츠바이크는 주장한다. 세월이 지나 카스텔리오가 부활한 것인데, 인류의 거대한 역사 속에서 독재란 잠깐 동안의 과정이라고 츠바이크는 썼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세상은 사상적으로 자유로운가.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다원주의를 표명했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쫓겨나는 신학자가 없지 않다는 건 안다. 원치 않는 예배를 거부한 학생을 퇴학시키는 개신교 학교는 이제 없어졌는가.

 

지하철에서 불신지옥 예수천국을 목청껏 외치는 이를 제지하기 귀찮다. 만일 그런 무모한 짓을 하는 자가 있다면 더욱 큰 소리로 불신지옥 예수천국을 코앞에 와서 외칠 게 틀림없다. 절대 전도가 목적이 아닐 것이다. 이웃의 눈살 찌푸리게 하면서 전도가 가능하다고 여길 리 없지 않은가. 교회의 인정을 받아 천국에 가고 싶은 거겠지. 일본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전도에 나선 이를 볼 수 없는 건 기독교인이 적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메이와쿠 문화에 젖어 있다. 세계인이 대지진과 쓰나미와 방사능 노출 앞에서도 침착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쓰는 모습에 감동하지만, 정작 일본의 지식인, 아사히신문 전 주필인 후나바시 요이치는 우리의 중앙SUNDAY와 가진 인터뷰에서 체념과 포기로 느껴진다.”며 오히려 걱정한다. 다른 의견을 낸 것이다.

 

정부에 거액의 연구비를 받는 핵전문가는 이번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문제의식을 명확히 노출하기를 극도로 꺼린다. 수돗물불소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치과의사 사이에서 나오지 못하는 세상에서 현 정권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정부 일각에서 나오는 걸 기대하기 어렵다. 생명공학 전공자 중에 유전자조작과 배아복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거의 없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이는 권력자를 향해 질문을 해야 한다. 아니라고 믿을 때, 아니오! 하며 일어서야 한다. 고 리영희 선생은 행동하는 지식인만이 지성인이라고 했다. 지식인이 제 목소리를 낼 때 사회는 모순을 쉬 극복할 수 있고 억압된 사회는 해방될 수 있다. 츠바이크가 화려하게 써낸 500년 전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는 지성인의 전형을 21세기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현 정권의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는 건가. 권력이 누수되는 징후가 보이는지, 4대강 사업에 정당성을 부여하던 학자들이 슬며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참 교활한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다른 의견을 가진 것인가. 권력의 향배에 해바라기처럼 고개를 돌리려 획책하는 교활한 지식인에게도 우리는 거침없는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이 없으면 세상은 기고만장해지고 독재를 감행할 수 있다. 그뿐인가. 질문이 없는 교실은 졸리다. 재미없다. 선생은 공부해야할 동기를 얻으려 하지 않는다.

 

18세기 프랑스 지식인 볼테르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런 주장을 펼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목숨이라도 바치겠다!”고 말했다는데, 다른 의견을 말할 권리를 존중하면서 허심탄회하게 논의한다면 서로 납득할 수 있는 양보와 타협이 가능해진다. 학교도, 사회도, 종교와 신념도, 정당정치와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4대강도 조력발전도, 평창 동계올림픽과 하다못해 골프장도 그러할 것이다. 츠바이크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500년 이상, 아니 훨씬 더 오랜 세월을 가로지르는 진리를 우리에게 고하고 있다. (인천in, 2011.3.23)